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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처럼 베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겁기만하다. 터벅터벅 걸어가고있는 새벽길이 참으로 조용하다. 먼 훗날 빛바랜 기억을 들추어보며 나는 오늘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움에 대한 원초적 열망뒤에 숨어있는 가슴아픔을 쓸어안고 오늘을 시작하는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이 될까. 감정의 격랑을 타고 내게 다가오고 있는 공허로움이 나이에 상관없이 이 새벽을 무겁게 하고있다. 불참을 통보했었는데 나타난 나를 보신 회장님께서 의아스럽게 쳐다보신다. 택시를 타고 당산역까지 달려온 홍영미씨의 얼굴에 건강이 넘쳐흐른다. 그녀의 밝고 쾌활한 성격이 조용하게 가라앉아 있던 분위기를 들뜨게 하고있다. 요즘들어 열심히 산행에 참가하고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맑고도 투명한 수채화를 보고있는 듯해서 덩달아 마음이 가벼워지고있다. 이원분선생님과 동행하신 오라버니의 모습에서 오누이의 다정함을 보고있다. 갈기를 세운 적토마처럼 거침없이 질주하고있는 영동고속도로다. 구름한점없는 높은 하늘위에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있다. 새벽에 떠오르는 태양은 늘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하고있다. 그래서 우리는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숙연한 마음으로 소원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것일게다. 치악휴게소를 거쳐 8시30분에 신림IC를 빠져나오고있다. 이제 89번 국도를 타고 주천읍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적한 시골길이다. 연록과 초록이 조화를 이룬 산과들의 모습에서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느껴지고있다. 잿빛으로 변해있던 산과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났음을 뽐내기라도 하듯 작은 바람에도 끊임없이 일렁이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가슴속에도 잔잔한 물결이 일고있었다. 황둔면을 지나 솔치재를 힘겨웁게 오르고있다. 솔치터널을 지나자 영월군 서면이다. 햇볕을 받아 반짝이며 천천히 흐르고있는 서강을 끼고 얼마를 굽이 돌아 다시 배일치터널을 지나고있다. 이곳이 영월군 서면과 남면의 경계선인듯싶다. 남면을 돌아 잔잔하게 흐르고있는 물줄기가 동강이다. 다시 고향땅을 찾은 감회때문인가 회장님께서 앞만 응시하고 계신다. 자신들의 모든것을 내던져 작은 소망과 소박한 꿈을 키워왔던곳 고향땅, 그래서 고향을 어머니 품속같은 곳이라고 하지않던가. 영월과 정선의 경계선에 서있는 아주 작은 부광역을 지나니 아리랑의 고장 정선땅이다. 예미 육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니 예미역이정표가 선명하다. 정선, 사북, 태백을 잇는 기찻길이 길게 이어져있다. 10시20분에 자미원역에 도착했다. 철길옆에 버스를 세우고 하차를 서두른다. 해발 600미터가 넘는 이곳에 동화에나 나옴직한 그림같은 자미원역이 보이다. 그 분위기가 참으로 고즈넉하기 이를데없다. 잠시 철길을 따라 걷는동안 어느 여인이 기찻길옆 오막살이~ 하고 중얼거린다. 바로 기찻길옆에있는 작은집들을 두고 하는말이다. 아주작고 조용한 산골마을에 등산객들이 들이닥치며 잠시 활기가 넘쳐나고있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후미에서 천천히 선두를 뒤따라가고있다. 아직도 몸과 마음이 무겁기만하다. 잠시 후 숲속으로 들어서며 오른쪽으로 흐르는 계곡물 소리에 서늘함이 느껴진다. 짝잃은 외기러기 이근자씨가 오늘따라 쓸쓸해 보인다. 강이사님이 바빠서 불참을 하고 혼자 산행에 참석을 했었다. 홍영미씨의 활기참은 산속에서도 여전하다. 자기는 뚱뚱한게 아니라 통통해서 보기좋은 거라며 자화자찬을 하고있다. 붉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 어디에도 근심걱정이라곤 찾아볼수가 없다. 참으로 보기 좋은 건강 미인이다. 첫번째 이정표다. 정상 4.3키로미터 130분, 자미원역 2.7키로 20분 계곡을 사이에 두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갈리어있다. 다른팀들은 오른쪽으로 우리는 왼쪽길을 택해서 올라가고있다. 꽤나 더운날씨다. 연신 구슬땀이 흐르고있다. 11시에 도착한 샘터다. 해발 830미터, 몇모금 마시니 오장육부가 시원해진다. 이제는 보면 알수있을것 같은 자작나무, 업나무, 박달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는 밑에는 산죽들이 군락을 이루며 길 양옆으로 도열해있다. 일행 몇몇이 산죽잎을 따느라 분주하다. 너덜지대를 지나고나니 두번째 이정표다. 정상 2키로 100분. 이곳 이정표에는 거리와 시간이 표시되어있어 산행속도를 가늠할수있어 편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도를 높여갈수가 경가사 가파라지기 시작하고있다. 일행들 모두가 앞서가고 혼자 남았다. 길섶에 홀로 외롭게 피여있는 보라색 앵초꽃이 눈길을 끈다.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 지고있다. 새벽 5시경이었다. 거실로 나온 아들녀석이 '아버지 절 받으세요'하며 넙죽 큰절을 하는게 아닌가. '잘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녀석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수가 없었다. 군입대를 위해 머리를 박박밀어버린 녀석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져있는것을 보았다. '그래, 아무 생각하지말고 건겅하기만 해라.' 무슨 말이라도 더 해야겠는데 입이 열리질 않는다. 이제 녀석은 얼룩무늬 제복을 입고 군인의 길을 가야만한다. 녀석은 우리 부부에게있어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없는 자식이다. 학교를 옮겨다니느라 스물여섯 늦은 나이에 머리를 깎고 부모곁을 떠나야만 하는 녀석에게 녀석나름데로의 희안이 왜 없겠는가.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는 옆에서 집사람이 훌쩍이고있다. 결국은 참지못하고 꽥하고 소리를 질렀다. '애가 전쟁터라도 가는거야?'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베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학교앞까지 배웅을 나온 녀석이 장승같이 앞에 버티고 서있다. 장대같은 녀석을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키가 작은 내가 역부족이었다. 늘 그리움을 안고 찾아드는 산이었지만 오늘은 아픔을 안고 찾아온 산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못나게도 이렇게 눈시울을 붉히며 산속에 서있는 것이다. 친구들과 논산으로 출발한 녀석이 도착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연락이 없다. 핸드폰에 자주 신경이 쓰인다. 아들녀석의 방을 정리하며 눈물짓고, 옷을 정리하며 눈물짓던 집사람은 어떤모습을 하고있을까. 녀석이 떠나버린 집안은 적막 그자체일것이다. 조금만 참고 아들녀석을 보내고 옆에서 위로라도 해줄걸 하는 후회가 가슴을 치고있다. 다리가 휘청거린다. 다시금 감정이 복받쳐 오르고있다. 덧없이 흘러간 세월의 무게가 내 두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거대한 산이 침묵하고 숲이 침묵하고 내가 침묵하고 있다. 헤어짐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그토록 그리워했던 이 산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나야만 한다. 그리고 이 아픔을 떨쳐버리고 텅비어버린 내 집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녀석이 떠나버린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수 있을 것인가. 자꾸만 흐려지는 눈을 비비며 다시 발길을 옮긴다. 뒤따라 오신 회장님께서 삿갓나물에 대해 설명을 해주신다. 독이 잔뜩 들어있는 풀이라고.. 어느덧 1275미터 지점에 올라섰다. 일행들이 옹기종기 모여들 있다. 그곳엔 작은 천연연못이 있었다. 이 높은 고지위에 이런 연못이 있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물이 얼마나 찬지 새까만 올챙이들이 햇빛이 비추이는 곳에만 바글바글 모여들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힘으로도 도저히 해내지못할 이 신비로움앞에서 다시금 위대한 자연의 힘과 조화를 보고 느낄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연앞에서 머리가 숙여진다. 12시10분 해발 1300미터 주능선에 올라섰다. 선착한 일행들이 간식을 나누고있는 시간이다. 조희순여사가 쑥개떡을 두조각이나 건네준다. 산속에만 들어오면 세상의 모든것을 잊을수있어서 좋다는 그녀의 말이 생각이 난다. 괴산의 군자산에서 들었던 말이다. 그런데 어찌해서 나는 이 깊은 산속에서 아직도 아픔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오늘따라 그녀의 얼굴이 밝아보인다. 참 고마운 분이다. 두위봉을 오르는 길이 지체가 되고있다. 사방에서 철쭉을 보러 올라오는 등산객들로인해 좁은 등산로가 여간 붐비는게 아니다. 천천히 뒤따라 올라가다보니 어느덧 사북의 두위봉이다. 좁은 공간속에 조금전 보았던 올챙이들마냥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정 중앙에 커다란 철쭉비가 세워져있다. 12시31분 해발 1465.8미터. 자뭇골 100분, 단곡계곡 60분, 자미원 90분. 저 밑에는 드넓은 철쭉군락지대가 시원스럽게 펼쳐져있다. 아직은 20프로정도만 만개해있고 나머지는 봉우리들이다. 속살을 보여주기가 그만큼 수줍은 것일게다. 바래봉 철쭉의 붉은빛과는 달리 이곳의 철쭉은 연분홍인게 특징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 모습을 보고 연분홍물결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올라왔으면 내려가야만한다. 산신령이 아닌다음에야 이곳이 천상의 낙원이고 극락인들 언제까지고 이곳에 머무를수야 없지않은가. 차라리 지금은 망부석이 되어 모든 상념들을 잊고싶은 심정이다. 급경사 내리막이다. 좁은 바위틈새를 비집고 내려가는길에 등산객들이 줄지어 서있다. 헬기장에 내려섰다. 철쭉과 어우러진 넓은 초원지대다. 여기저기 나물을 뜯는 여인네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등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달아오른 몸을 식혀주고있다. 오르고 내리며 두번째 헬기장을 지나가고있다. 제법 가파른 능선이다. 실컷 먹고 마셔도 항상 그 체중을 유지하는 비결이 산에 오르기 때문이라고 자랑하는 영미씨에게 ' 산이 당신 헬스클럽이야?'하고 핀잔을 준다. 그래도 밝은 웃음이다. 1시6분에 정선의 두위봉에 올라섰다. 해발 1465.9미터. 맑은 하늘밑에 사방이 확트인 조망이 일품이다. 푸른하늘, 붉은 태양을 바라보는 나의 망막이 시리다 못해 저려오고있다. 웅장함과 매혹적인 모습으로 우뚝솟아있는 봉우리들은 언제까지고 침묵만 하고 있을것인가. 모든 것을 품에안고 때로는 삼켜버릴것만같은 저 거대함 앞에서 나는 세상을 의지만 가지고 살아갈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무한한사랑과 정직이 있는 세상을 꿈꾸는 일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한것일까... 옆에 서있는 홍대장의 얼굴에 그늘이 지고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고뇌를 내가 나누지 못함이 안타깝기만 한 지금이다. 얼마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자미골 갈림길을 지나자 다시 헬기장이다. 모두들 모였다. 건네주는 술잔을 간곡히 거절해버렸다. 술이 들어가면 잠시 가라앉았던 가슴이 다시 주체할수없이 격랑에 휩싸일것 같아서이다. 현호색 벌떼덩굴 산괴불주머니의 노랑꽃이 깜찍하게 피여있다. 꽃이름을 들으면 잊어버리고 또 들으면 까먹고 피곤한 중에도 열심히 메모를 했다. 총기가 사라져버린 지금은 그저 멍청할 뿐이다. 나이탓이겟지. 1345미터 지점에 수령 수백년의 주목지대를 통과하고있다. 1시37분, 1460봉의 마지막 헬기장이다. 아마 여섯번째 헬기장일것이다. 도사곡으로 내려가는 삼거리 안부에 내려섰다. 얼마후 나타난 1400년 이상된 주목들이 하늘과 맛닿아있다. 정확한 나이를 모르겠다고하자 오이사님께서 1780년 하고 소리를 지르신다. 멍청하게 그대로 메모를 했다. 그중 온몸이 깊게패여 시멘트를 발라놓은 주목 한그루를 두팔을 힘껏 벌려 껴안았다. 얼마나 많은 질곡의 시간들과 풍상을 겪었으면 이 모습이 되었을까. 한참을 어루만졌다. 그 아픔이 내게로 다가오는듯해 가슴이 저려온다. 얼마간 앞을 가다가 다시 뒤돌아보며 둥근 나무계단을 하염없이 내려오고있다. 물참피나무의 하얀꽃이 싱그러운 너덜지대를 지나니 감로수가 솟아오르는 샘터에 도착했다. 2시35분, 1080미터 지점이다. 모두들 이산은 물이 많아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잠시 흐르는 계곡물에 땀을 닦아내는 시간들이다. 맨뒤에서 홍대장과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오는길이 퍽 지루하기만하다. 끝간데없는 길이 길게 이어지고있다. 그 이야기속에 현재를 살아가는 삶의 아픔과 고통이 스며있다. 그의 곁으로 서서히 다가오고있는 고뇌의 시간들이 눈에 보이는듯해 나의 작은 아픔위에 더욱 큰 아픔이 더해지고있다. 나는 그가 슬기롭게 그리고 꿋꿋이 그의 일들을 그의 삶들을 감당해 내기를 내가 아픔으로 올랐던 두위봉 끝자락에서 간절히 바라고있다. 언제쯤 그의 얼굴에 깊게 드리워져있던 그림자를 지워버릴수 있을까...
2005년 5월 29일 두위봉 산자락에서... |
첫댓글 오랜만에 접하는 글 반갑습니다. 애들만 크는게 아니라 애비들도 그런 이별을 겪으며 성장하는것 아니겠어요???
정감사님...밝은 모습으로..기억 해 주셔서 감사감사..다음 산행을 기다리면서.....중왕산 산행때 활기찬 모습으로 만나요. 그리구,글.읽으면서,...많은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