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애정의 조건>이 '여자의 과거'라는 진부한 소재를 통해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급격히 변화하는 듯하면서도 여전히 그 위력을 잃지 않는 우리의 남성중심 가부장제 문화의
저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의 동거 사실과 유산 내력을 숨기고 결혼한 한가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은
어찌보면 '왜 그러게 사실대로 말하지?' '그러니 여자는 항상 몸가짐을 조심해야 해' 등의
반응처럼 무의식적으로 여성이 책임의 주체로 몰리고 있음을 간과하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 한가인을 이토록 질곡의 삶으로 몰아넣은 남자는 왜 큰 비중을 차지하며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았을까? 그는 무슨 의도로 한가인과 동거했고, 왜 그녀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남자는 그럴 수도 있어'라는 당연한 생각때문인지
이에 대한 논의는 아예 논쟁의 중심이 되지도 못한다.
문제는 결론이다. 이번주 종방할 이 드라마는 또다시 어설픈 화해로 막을 내릴 것이다.
아내의 과거에 분노해 폭력을 서슴지 않던 송일국은 사랑의 힘으로 그녀를 용서할 것이다.
한가인 또한 새로운 생명에 대한 책임감으로 이미 신뢰가 무너진 인형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애정의 조건>의 다른 결론은 없었을까.
하나 유추할 수 있는 또다른 결론은 지성의 판단착오때문에 사장되었다.
<올인>의 인기로 스타 반열에 오른 그는 <애정의 조건>에서 한가인의 상대역으로
큰 기대를 가지고 배역에 임했지만, 다소 어쩡정한 배역 비중때문인지
중도에 유학을 가는 설정으로 도중 하차한다.
만약 그가 끝까지 한가인을 지켜봤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는 적어도 여자의 두번의 실패를 모두 감싸안는 진정한 로멘티스트, 아니 오히려
여성을 소유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동반자로 생각하는 진정한 페미니스트로 자리매김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가 아니더라도 한가인은 무쏘의 뿔처럼 당당히 자기 인생을 가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것이 여성에 대한 이중잣대를 가진 이 사회에 대한 새로운 메세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드라마는 당당히 인형의 집을 박차고 나가는 한가인을 그려내지 못했다.
이러한 한가인과 함께 할 새로운 남성상을 창조해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혈연과 가족을 중시하는 많은 기성세대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면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MBC의 <아일랜드>는 새로운 인물형을 전면에 내세워
기성세대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중이다.
결혼했지만 결혼했다는 것때문에 상대를 구속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사랑을 호소하는 남편,
딸의 동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상대남을 가족처럼 대하는 가족들...
제도보다는 인간 본연의 감정에 충실한 이 드라마는 기성세대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야말로 버릇없는 젊은것들의 욕설이 난무하는 3류 드라마일지도 모른다.
'한가인이 적어도 남편한테는 사실대로 말했어야 하는거 아냐?'
'과연 현실이었다면 더 말하기 어려웠을 걸. 생각해봐.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겠지. 그나마 드라마라면 이해해 줄 남자라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런거야.'
물론 이혼한 여자와 초혼 남성의 결혼도 심심찮게 이뤄지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애정의 조건>을 보며 여자가 처신을 잘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무의식적인 여성 순결주의가 위세 등등한 사회임을
<애정의 조건> 시청률이 다시금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ps. 정치권의 과거사 논쟁은 그 진의가 철저히 왜곡되어 폄하되고 있는 반면
여자의 과거사 논쟁은 국민적 관심 속에 그 결말을 치닫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첫댓글 개인적으로 송일국이 넘 잘생겨서.. 그맛에 드라마를 몇번 봤는데... 마지막 앤딩장면은 정말 넘하더군요.. 유치찬란 그자체...ㅎㅎㅎ 근데, 송일국이 김을동 아들이라는건 정말 충격적이였어요...추석때 알았음(시누들한테...)
김두한의 외손자이자, 독립투자 김좌진 장군의 증(외)손자이기도 하지. 그러고 보니 대단한 친군걸. 친일파 자손들이 정치하고 있는 거보다 보기가 헐 낫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