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북공정, 어떻게 봐야 하나
黃河의 물줄기
김태우, 핵전문가
黃河入海流 欲窮千理目 更上一層樓....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황하의 물줄기를 보려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 唐代의 시인 王之渙이 읊은 시귀절이지만,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자는 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에게 훌륭한 격언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멀리 내다보면서 미래에 대비하고 있는가? 불행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20년쯤 지난 동북아의 지도를 떠올려보면 거기에 한국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내부분열과 정체를 지속한다면 시시각각 현실로 다가오는 동북아의 난기류에 대비할 능력을 상실하고 상대적 위상도 왜소화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오늘도 한국인들은 중국의 “고구려 죽이기”를 “통일한국이 간도를 돌려달라고 할 가능성에 대해 미리 쐐기를 박는 행위” 정도로 생각하는 무사안일에 빠져있다.
한국이 권위주의적 군사독재에서 벗어나고 남북교류가 확대되면서 한국인들의 안보인식은 이상주의로 흐르고 있다. 젊은이들은 북한을 위협세력으로 보지 않으며, 남북문제를 순수한 민족문제로만 보려 한다. 개인주의의 발달로 통일 자체에 대한 선호도도 줄고 있지만, 어떤 체제로 통일되든 무방하다는 사람들도 많다. 많은 나라들이 국가안보를 위해 여전히 애국주의와 영웅주의를 고무하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보듯 한국의 전쟁영화는 가족애나 친구애를 앞세우는 이야기로 도배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전쟁에서 산화한 수많은 용사들이 원혼되어 떠도는 이 山河에서, 안보문제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안보인식 희석, 이대로 좋은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줄고 남북간 거리가 좁혀진 시대인 만큼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인가? 조금만 높이 올라가 한반도의 미래를 내다본다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북한이 “동족”과 “주적”이라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한 한국의 대북정책은 “화해 협력”과 “안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에 의해 굴러갈 수밖에 없다. 화해협력을 모색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동족”의 모습을 쳐다보면서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안보를 담당한 사람들은 “주적”이라는 얼굴을 쳐다보면서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이것이 통일의 그날까지 또는 완전한 평화공존이 정착되는 날까지 견지해야 할 대원칙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수구냉전 세력” 매도하는 분위기에서 미래의 모든 가능성에 두루 대비하는 정책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상호보완적인 것이 되어야 할 두 수레바퀴간의 관계를 상호배타적인 것으로 모함하는 세력들이 활보하는 한, 안보는 대비하지 않아도 그만인 하찮은 문제로 격하될 것이다. 북한에서 어떤 사태든 일어날 수 있는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여차하면 모든 것을 접수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춘 “하나 된 대한민국”이지만, 현재대로라면 이를 성취할 가능성은 없다.
좀 더 높이 올라가서 동북아 및 세계를 내다보면 걱정스러운 점은 더욱 많다. 당장 다가오는 것이 미중간 패권경쟁 가능성과 중일간 지역패권 경쟁 가능성이다.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이 언젠가는 미국을 따라잡고 패권국가로의 부상을 시도할 것이라는 추측은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던 터다. 그래서 헌팅턴 교수는 저서「문명의 충돌」에서 미중간 문명충돌을 불가피한 것으로 예고하고 있다. 일본도 그렇다. 미일동맹의 우산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경제력과 기술력에 걸맞는 군사력과 정치력을 가진 정상적인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정상국가론”은 중국의 팽창에 대비한다는 명분아래 또는 북핵에 대비한다는 명분아래 착착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최첨단 원자력 산업에 30톤이 넘는 플루토늄까지 보유한 일본이 오래전에 한국이 행한 사소한 핵물질 실험을 두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중일간 지역패권 경쟁이 본격화될 때 여전히 “새우”일 수밖에 없는 한국의 생존전략은 어떠해야 하는가?
“동북공정”은 中華패권의 전주곡
향후 국제질서는 미국 주도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될 가능성이 높다. 도전세력들의 부상 정도에 따라서 미국 주도하 주요 국가들이 결정권을 공유하는 팍스 콘소시아(Pax Consortia)가 될 가능성도 있지만, 미국의 군사적 주도권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가장 강력한 도전세력은 중국일 것이다. 수천 년간 세계 최대의 정치세력과 경제세력을 구축해왔던 중국인들, 그러다가 근세에 와서 서방열강에 의해 찢김을 당했던 그들에게 있어 中華패권 의식은 囊中有錐(낭중유추: 주머니에 든 송곳)와 같은 것이어서 언젠가는 뾰족한 끝을 내밀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동아시아에는 “2초(미국, 중국) + 2강(일, 러) + 3약(남북한, 대만)”의 국제질서가 구축될 가능성이 있다. 중일간 지역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미일 해양세력과 중러 해양세력이 대치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중국정부가 주도하는「동북공정」은 中華패권의 전주곡일 뿐이며, 그 몸체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종합 1위를 달성하면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향후 동북아에 불어 닥칠 강대국들의 칼바람을 내다본다면 대북 안보를 그토록 소홀하게 다룰 수는 없다. 때로는 이에 대비하면서 때로는 이를 명분으로 활용하면서 더 먼 미래에 대비하는 속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한미동맹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 중국과 동맹을 맺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강대국은 늘 인접한 주변지역에 대해서 영토적 야욕을 가지거나 직접적인 지배를 원해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유념하라고 권하고 싶다. 遠交近攻이란 말이 생겨난 연유를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19세기 말 스스로를 지킬 힘도 강력한 외부동맹도 가지지 못했던 고립무원의 약소국 朝鮮이 以夷制夷 전략으로 국권을 지키려 했지만 참담한 결과만을 초래하지 않았던가.
미래에 대비하는 대한민국으로 거듭나야
고립무원의 약소국에게는 미래가 없다. 급변사태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갑작스러운 북한의 붕괴로 한국인들이 평화적 흡수통일의 단꿈에 빠지는 순간 중국군이 압록강을 건너 북한을 접수해버린다면 우리는 또 다시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볼 것인가. 지금은「동북공정」에 감추어진 다양한 가능성들을 새기면서 미래에 대비해야 할 때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경제성장과 국력신장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유지해야 하며, 때로는 그들과 화친하면서 때로는 그들을 견제하면서 상호의존관계를 심화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기존의 동맹도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사회 일각에서 나타나고 있는 반미친북, 안보인식 좌경화 등의 사조는 앞으로 대한민국이 맞닥뜨려할 미래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아들과 딸들을 믿고 싶다. 북한땅에서 벌어지는 일들만 바라보면서 一喜一悲하는 그런 젊은이들이 아닐 것이다. 세계를 놀라게 했던 “붉은 악마들”의 호연지기에 냉철한 분별력과 긴 안목이 가세될 때면 대한민국은 정체지향적・과거지향적 이상주의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또 다시 미래를 향한 힘찬 도약을 재개할 것이다. 아들들이여 딸들이여, 높이 올라가라. 和平堀起(화평굴기: 평화스러운 가운데 우뚝 일어선다)을 되새기면서 시기를 조절하고 있는 만만디 중국인들을 바라보라. 때로는 급하게 때로는 유순하게 굽이쳐 흐르는 저 黃河의 물줄기를 바라보라. (끝)
「전쟁기념관」2004년 제49호 (2004.10.)에서 퍼온 글
김태우 www.kimtaewoo.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