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주성치에 대한 글은 그의 영화 대부분을 적어도 2번 정도씩은 마무리한 후에나 시작해볼 욕심이었다. 그런데 시간은 없고… 몇몇 영화를 2번정도 보자 기다리기 어려운 감정의 분출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비록 좀 부족한 면이 있겠지만 우선 주성치와 그의 영화에 대해 알고 있고 또 느끼고 있는 대로의 감상을 나름대로 열거해보자는 욕심을 부려본다.
주성치를 알게되고 그에게 열광하게 된 과정은 임요환에 대한 그것과 매우 비슷하다. 우선 그들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으나 별 관심이 없다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들의 매력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이후 두서너달동안 확보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 그들에 대해 알아보게 된다. 주성치의 영화를 진지하게 본 적이 거의 없는 나도 – 내가 알고 있던 유일한 영화는 서유기 월광보합뿐이었고 그도 추석때 TV에서 간간히 보여주던 것이었기 때문에 완결된 한편의 작품으로 감상하기 어려웠었다. – 워낙 유명한 그의 이름자 정도와 그에 대한 세상의 편견섞인 판단을 알고 있었다. 홍콩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이고 코메디에 능하나 유치하고 저급하다… 그러나 도학위룡을 통해 새롭게 인지하게 되고 찾아본 주성치는 그러한 몇마디 단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배우였다. 간단히 말해 나는 – 꽤나 영화를 좋아하고 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 주성치를 감히 세계 최고의 배우라 공언하고자 하며 이젠 더 이상 다른 영화를 보는데 시간낭비 말고 주성치 영화의 재생 및 재발견에만 나의 에너지를 쏟고 싶다. – 그러한 연유로 나의 블로그 영화칼럼은 이제 앞으로 매우 단조로운 장소로 변할 것이다. 왜냐면 주성치 영화에 대한 글만 올라올 것이기 때문에.
1. 영화속 캐릭터 구현방법
주성치의 주요작품을 섭렵하면서 느끼게 된 가장 커다란 놀라움은 그가 맡은 배역의 다양성이다. 물론 그 근저에는 공통점이 있다. 앤티 히어로이고 대부분의 경우 무공에 능하고 코믹하고 소시민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개별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배경등은 놀라울 정도의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엑스트라 배우이기도, 경찰이기도, 변호사이기도, 축구선수에 사설탐정, 요리사, 첩보원, 배달원등. 시대적 배경도 고전과 현대를 아우른다. 그럼 동일한 얼굴의 배우가 비슷한 시기에 많은 캐릭터를 소화해 낸다? 그리고 코메디라는 장르를 늘 버무리면서? 식상하지 않을까? 그 많은 인물을 어찌 구분해낸단 말인가. 그런데 그게 가능했다.
일단, 소품과 의상으로 그들은 구분이 된다. 천왕지왕의 잠자리 안경에 거만한 표정, 희극지왕의 짧은 양복바지에 슬리퍼, 성전강호의 후드티에 뒤로 제낀 걸음걸이 (개인적으로 성전강호에서의 고추형사가 그의 캐릭터화의 대표적 예라고 생각된다), 도학위룡의 썬글라스에 군인바지등 딱 그의 표정과 소품만 봐도 우리는 그게 어느 영화의 어느 장면인지 확연히 구분할수 있게 된다.
그의 이러한 캐릭터화는 희극지왕의 대사에서 표제화되는 느낌이다. 그는 영화의 주연으로 발탁되었을 때 대본을 연구하고 캐릭터에 대한 다양한 설정과 해석을 서너가지 준비한 후 이에 대한 토론을 감독과 제작자에게 제의한다. 이건 주성치가 자신의 영화를 준비하는 방법이 아닐는지.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열정을 이 영화에서 직접 드러내보여 주는 것은 아닌지.
2. 쿵후와 주성치
주성치가 공언한 대로 그는 이소룡에 대한 열정을 승화시켜 현재의 대배우가 된 사람이다. 많은 홍콩의 배우들에게 있어 쿵후가 그리 낯선 대상은 아니겠지만 – 그들은 배우입문시부터 쿵후에 대한 기본자세를 숙련한다고 알고 있다. – 그는 이를 각각의 영화 소재와 적절하게 조화시킨다. – 물론 무공을 모르는 공공발도 있고 희극지왕에 무공이 많이 나온다고는 말할수 없지만. – 그는 잘 알려진 바의 카지노무비에서도 쿵후를 선보이고 요리에서도 쿵후를 보여주고 심지어 당구대왕이 되어서도 쿵후를 한다. 다른 소재를 버무리면서 쿵후를 뒷배경으로 깔면서 축구에까지 진출하더니 급기야 쿵후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까지 나온다. 아마 이게 쿵후허슬을 그가 가장 사랑하는 이유이자 그의 영화가 계속 진보하고 있다는 성치팬들의 판단이 아닐까. 비록 그의 원맨쇼 색채가 많이 줄어들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주성치를 사랑한다면 그의 진화 또는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언론이 말하듯 주성치가 관객을 선택해왔고 이번에도 역시 그러하다면 난 그의 배우로서의 자존심과 결단을 존중하고 기꺼이 선택된 그의 관객이 되어 그의 변화를 즐기겠다.
3. 주성치 영화의 여자주인공.
어느 평론가들이 말한바대로, 그의 여성에 대한 표현방식은 솔직히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을뿐 아니라 왜 그런 설정을 사용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야기한다. – 이는 최신작으로 오면서 더 강도가 심해진다. – 초기작에서는 장민/오군여/막문위/주인등… 우스워보이는 설정에서 막무가내로 망가지는 정도에서 그만이었다. 그들은 그래도 이뻣고 정상이었다. 그런데 최근작으로 오면 이들 여주인공들은 무언가 외면적인 장애요소를 품게 된다. 식신 (’96)의 막문위는 뻐드렁니에 얼굴이 심하게 망가졌고 희극지왕 (’99)의 장백지는 일단 외모는 문제 없었으나 술집아가씨였고 소림축구 (’02)의 조미는 화상을 입어 얼굴이 심하게 얽어있었으며 지저분하여 머리에 파리가 집을 지을 지경, 이제 쿵후허슬 (’04)의 황성의는 귀가 안들린다. 또한 이들이 성치와 사랑의 엔딩을 하게 되는 순간은 우연히도 그들의 외모가 개선되는 것과 시점을 같이 한다. – 막문위는 수술로 이뻐졌고 장백지는 술집을 그만두고 조미는 얼굴이 깨끗해진다. 황성의는 예외.
그렇다고 주성치가 얼굴이 이뻐져서 그들에게 마음을 돌렸느냐 하면 실은 그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건 영화적인 서비스일수도 있다. 관객은 못난 여주인공보다는 예쁜 여주인공을 은근히 바라기 때문에 못난이들이 예뻐진다는데서 심리적 위로감을 느낀다. 허나 식신에서 주는 이미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막문위에 감동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장백지의 직업과 상관없이 윤천구는 그녀를 위해 평생을 바칠 각오를 하고 있었고 소림축구에서도 조미가 예뻐져서 결혼에 골인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는 이미 그녀가 못난이였을 때도 그녀의 마음씨와 능력을 인정하고 자존심을 찾게 해준 유일한 친구였다. (성치에게 있어 자존심이란 매우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이다.)
아마 그는 자신이 표상하는 소시민적 안티 히어로의 이미지를 그대로 여주인공에게 이식한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에게 능력이 중요하다면 여자에겐 외모가 중요하다. 그런 여주인공의 외모가 정상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지만 우리의 주인공 주성치는 다르다. 그는 흙속의 진주를 알아보는, 마음을 꿰뚫어보는 신기한 눈을 가졌다. 우리도 예쁘지 않은 여자에게서 진실을 찾아낼 수 있을는지 모른다.
4. 주성치 영화의 발전
물론 최근 주성치가 제작을 하고 감독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전의 영화들에는 분명 이력지나 왕정 같은 실제 감독이 있었고 주성치는 한갖 주연배우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주성치의 영화라고 부르는가. 주성치라는 배우의 아우라가 강하긴 하지만 그는 감독과 여타 다른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고 보통 배우의 연기는 감독의 권한 아래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게 아닌가보다. 그 감독들이 그 영화를 연출하면서 주성치를 주연으로 내정했을 때는 생각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 대본과 연기를 소화할 배우는 주성치밖에 없고, 실은 이미 주성치를 주연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전제가 미리 깔려 있었을수도 있다. 장면마다의 유머감각은 주성치의 아이디어가 많이 섞였을 것이고 – 정고전가에서 머리띠에 밴드를 붙이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 그의 애드립이 있기에 가능한 영화도 많았을 것이다. 그게 그 모든 영화가 주성치의 영화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이상 간략하게 주성치영화를 보고 나름대로 느낀 점을 열거해 보았다. 틀린 내용이 더 많을 수 있는 것은 주선생을 알게 된게 고작 50여일밖에 되지 않기에 생각과 관람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주성치를 알게 된후 바뀐 내 인생관에 감사하고 영화를 돌리면 돌릴수록 새롭게 나오는 주성치의 천재성과 연기적 재능, 표정을 보고 뭔가 써내리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기분이었다.
나를 주매니아로 바꾸어준 수퍼액션에 감사하고 세상에 주성치를 보내주신 하느님과 주선생의 부모님께 감사한다… 다음에는 각 영화마다 보고 또 보고 개별적인 글을 올리고 싶은 소망이 있는데 언제 될려나…
첫댓글 잘봤어요~~ 이런생각을 하고 있으신분이 있다니 ,, 대단하다는 생각과 제자신의 초라함이 느껴지네요~
전 그저 주성치를 알게 된걸 감사해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저의 소소한 의견을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을 뿐이고요... 같은 대상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 좋은 일이잖습니까.
멋지십니다. 저도 이렇게 하고 싶지만 아직도 정리를 못하고 있는데... 나중에 다시 찬찬히 읽어봐야겠어요. 님의 블로그가 어딘지 가르쳐 주셔요. 열혈 구독자(?)가 되겠습니다. ^^
다시 정리할 게 4가지 정도 더 있네요. 빠뜨려서... 제 블로그는 엉~~~ 좀 허접하지만 http://eflowertown.dnip.net/~spooky/입니다. 예전에 1년정도 유지하던게 있었는데 날아가버려서 지금은 석달치 정도밖에 없습니다. 별로 읽을 건 없을텐데 쑥스럽네요...
우와 진짜 멋지시네요 ....
멋지십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멋질 글이였습니다 전 글제주가 없어서 이런 멋진글 못쓰는데 ㅋㅋㅋ 우리모두 주성치를 좋아하여 모인 사람들이 니깐 그냥 그의 영화를 즐기고 사랑하고 합시다 ㅋㅋㅋ 마무리는 이케? ㅋㅋㅋ 하이튼 멋진글~이였어여
분석력이 대단하십니다. 공감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