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적었던 '가을에 떠나기 좋은 간이역' 이야기입니다. (어디에 쓰려고 적은 건지 기억도 -_-)
이미 선장역은 기차를 볼 수 없지만 아직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소개해도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
그럼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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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여의도와 진해로 벚꽃놀이를 가야 하고, 여름이면 경포대나 해운대, 대천 앞바다에 간다. 가을이면 설악산과 내장산 단풍놀이를 가야 하고, 겨울이면 강원도와 지리산 설경을 찾아 떠나야 한다. 여행문화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는 이렇게 다녀와야 제대로 된 여행을 다녀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떠날 수 있는 자유는 누구나에게 주어진 것인데, 어째서 떠나는 곳은 똑같아야 하는가? 여행의 기준은 목적지를 정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즐거움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막상 ‘어디로 떠날까?’ 고민되는 게 현실이다. 지도를 펴 놓고 어디에 볼거리 뭐 있나 찾기에 우리나라는 너무 좁아 보인다.
이런 분들을 위해 여행의 새로운 기준, 관광지의 블루오션, 간이역을 찾아 떠나볼 것을 제안한다. 최근 들어 근대문화유산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간이역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볼거리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와 낯선 동네를 구경한다는 호기심과 함께라면 더없이 색다른 여행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에, 친구와, 연인과, 가족과 함께 가을에 떠나기 정말 좋은 간이역 네 곳을 소개한다.
1. 기다림 : 가로수길이 아름다운 장항선 선장역
내 마음 속 간이역의 모습은 어떠한가? 한적한 농촌마을 한가운데 봉긋 솟아난 삼각형 지붕에서 톱밥난로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한겨울 이미지일 수도 있고, 간이버스정류장처럼 생긴, 비 피할 지붕 하나에 역명판만 덩그러니 서 있는 기다림의 이미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장항선 선장역은 바로 이런 모습, 즉 간이버스정류장처럼 생긴 지붕 하나가 전부인 미니간이역이다.
이곳은 철도동호인들에게는 가장 인기 있는 간이역 중 하나이기도 한데, 그것은 예사롭지 않은 역 주변 풍경 때문이다. 기차에서 내리면 도고온천장을 이루는 온천건물 몇 동이 보이고, 주변에 넓게 펼쳐진 논두렁이 눈을 시원하게 만든다. 그리고 시선을 사로잡는 가로수길...
건널목을 사이에 두고 계절마다 다양한 색깔의 옷으로 갈아입는 가로수길을 가로지르는 기차를 본 사람들은 선장역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어 반드시 다시 찾게 된다. 최근에는 사진작가나 영화촬영을 위한 장소 섭외시에도 빠지지 않는 철도여행명소로 각광받고 있지만, 아쉽게도 장항선 선장역에는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다. 2007년 6월 1일부터 개정된 시각표에 따라 모든 열차가 인근 도고온천역에 정차하도록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장항선은 느리고 굴곡이 심한 재래선을 신선로로 개량하는 공사를 진행중이여서 늦어도 2008년 중에는 선장역을 지나가는 철길을 더 이상은 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아쉬워하기에는 이르다. 아직 장항선 선장역에는 몇 번의 계절이 남아있고, 가까운 도고온천역에 내려 도보나 시내버스/택시를 이용하여 찾는 방문객이 늘어 ‘알려진 간이역’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도고온천장 한 켠에 외롭게 서 있는 선장역. 머지않아 제 기능을 완전히 잃게 될 간이역이지만, 자신의 상징물과도 같은 가로수길과 함께 가을옷인 노란색 옷으로 갈아입고 오늘도 간이역을 찾아 떠나게 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2. 정겨움 : 군산선 임피역
많은 간이역들이 사람들로부터 멀어졌다. 하루 200-300명이 타고 내리던 시절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적자역에 포함되어 폐역대상으로 지정되는 일만은 면했으면 하는 게 요즘 시골 간이역 마을 주민들의 작은 소망이다.
1912년 개역, 100년 가까이 주민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는 군산선 임피역은 적어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2005년 11월, 그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군산선 임피역의 매력은 역 구내에서부터 보이는 호남평야의 여유로운 모습과, 일제시대 이후 그리 변하지 않은 시골마을의 풍경에 있다. 수십 년을 살아 온 주민들에게는 발전이 정체된 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일지 모르지만, 개발만을 고집해 온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런 모습 때문인지 요즘은 TV드라마 촬영지나 영화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하는 단골촬영지가 되었다. 최근에는 KBS1 TV ‘서울1945’의 안성역으로 등장했고, MBC TV '고향역‘의 배경장소가 되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은 이러한 외지인들의 방문을 때로는 신기하게 여기기도 하지만, 대체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임피역을 이용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군산장터에 내다 팔 농산물을 싣거나 익산 쪽에 볼일 보러 다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그래서인지 세 칸 짜리 통근열차가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이것이 군산선의 매력인 ‘정겨움’이기도 하다. 벼가 익어가는 호남평야를 따라 달리는 군산선 열차를 타 보는 즐거움은 가을 임피역 여행이 주는 보너스인 셈이다.
3. 외로움 : 경춘선 백양리역
춘천 가는 기차, 경춘선 열차는 주말이면 사람들로 미어 터진다. 낭만을 기대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렇게 어렵사리 기차에서 내려도 강촌역은 여전히 분주하다.
백양리역은 청량리->남춘천 방향으로 보면 강촌역 직전에 위치한, 여러모로 외로운 역이다. 강촌역과는 달리 별다른 시설물도 없이 역 주위에 작은 마을만 하나 있다. 강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임에도 이곳에서 사람 보기가 쉽지 않다. 플랫폼 위에 서 있으면 혼자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얼마 전 역무원마저 철수한 이곳은 역사(驛舍)조차 외딴 섬처럼 철길과 철길 사이 플랫폼 위에 있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어 그 느낌을 더한다.
철길과 철길 사이 플랫폼 위에 기차역이 서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역 주변 철길은 경관이 빼어나고, 골목길을 따라 잠시 역 진입로 아래로 내려가면 남한강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다. 가까운 강촌역과는 달리 호젓함이 매력인 곳이다.
경춘선을 타고 떠난 가을 기차여행이 넘쳐나는 승객들로 복잡하고 답답했다면, 백양리역에 내리거나 강촌역에 내려 자전거를 빌려 타고 백양리역까지 달려보는 건 어떨까? 기분 좋은 외로움이 2007년 가을, 간이역을 찾은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4. 그리움 : 영동선 하고사리역
앞서 소개한 간이역의 두 가지 이미지 중 다른 하나인 ‘한적한 농촌마을 한가운데 봉긋 솟아난 삼각형 지붕에서 톱밥난로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이미지’를 가진 기차역이 있다. 영동선 하고사리역이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아기의 고사리손 같은 느낌을 가진 이곳의 역사는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이곳 명칭은 고사리였는데, 현재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탄전인 도계광업소가 개업하고 그 운송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주변에 현재의 고사리역을 개발하게 되자, 마을이름이 일순간 하(下)고사리로 바뀌고,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도시를 찾아 하나둘 떠나고 지금은 기차가 서지 않는 마을이 되어버렸지만, 주민들의 힘으로 1966년에 지어진 이 기차역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올해 4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주민들에 의해 지어진 기차역이 문화재가 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직접 방문해 보면 그 소박한 매력과 아름다운 주위 경관에 빠져들게 된다.
마을에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오십천 제방 위에 지어져 있는 하고사리역의 모습은 그리움이다. 간이역으로 태어나 올해 3월까지 기차가 멈춰 서던 간이역으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실어나르던 모습을 간직한 채 문화재로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고, 그런 하고사리역을 바라보는 주민들과 나그네가 느끼는 기분은 그 성격은 조금 다를지언정 분명 그리움일 것이다. 4계절이 모두 아름다운 간이역이지만, 특히 역 앞 수양버들과 역 뒤로 보이는 산에 단풍이 드는 가을의 모습은 대도시에서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추천할 수 밖에 없는 곳이다.
기다림, 정겨움, 외로움, 그리움... 각각의 간이역이 가진 주요한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떠나보낸 간이역이라는 존재가 안고 있는 본질이자 속성이기도 하다. 바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간이역은 속도 속에서 사람을 그리워하고 외로움도 사랑할 줄 아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첫댓글 모두다 가고 싶은 간이역입니다, 특히 하고사리역 겨울 사진을 보니, 당장이라도 가보고 싶은 ㅠ.ㅠ
아~~~넘좋으네요
그러게요~가져가서 읽으려고 지금 자세히 글을 다 읽진 못햇지만 글에 동감입니다 ...자유로히 내마음 을 쉴수잇는곳.. 저도 앞으로는 그런 여행을 하려는 꿈이 있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다행히 스크랩이 되네요^&^
임피역의 가을... 캬~ 제가 찾던 사진 입니다!
하고사리역 사진 보니 겨울이 무척 기다려지는데요.ㅎㅎ
고향이 원래 군산인데.. 간이역을 제대로 찾아본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내 고향에 좋은 간이역이 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구.. 꼭 한번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여...^^
좋은 정보 알아갑니다~~^^
간이역.... 그냥 가슴이 찐해지는 어쩌면 우리 사람살이 같은 그런 느낌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