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사랑한 가치(價値)
홍익인간
‘나와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이롭게 하자’ 저는 홍익인간을 이렇게 말해보고 싶어요. 가방을 수리한다고 해봐요. 2만 원짜리 가방을 수선하는데 수선비가 1만 원이라고 가정해 봐요. 새로 살 수도 있지만 수선해서 쓰면 수선공에게는 1만원을 벌게 하고 저는 세상에 쓰레기를 줄이는 일을 한 것이에요. 홍익인간은 거창한 뜻이 아니라 세상에 와서 흔적을 덜 남기고 쓰레기를 덜 남기는 것처럼 작은 일일지도 몰라요. 포장지 쓰레기를 덜 만들려면 끈이나 보자기, 큰 가방을 잘 활용하면 되지요. 가방이 크면 물도 넣어 다니고 책도 넣어 다니잖아요. 선물을 받으면 넣을 수도 있고요. 저는 가게에 가면 비닐포장지를 받지 않아요. 옛날처럼 보자기에 물건을 싸서 다녀도 좋을 것 같아요. 보자기는 만능이지요. 보자기를 널리 쓰이게 하면 방송에서 스타들이 먼저 그것을 활용하는 것을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요.
생명존중
싱크대 밑에서 점처럼 작은 벌레를 본 적이 있어요. 그런 벌레들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창조물이 아니잖아요. 비록 미물이지만 그런 생명들도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먼지 같은 벌레들이라고 물로 함부로 씻어버리는 건 불쌍하잖아요. 의사는 생명을 존중해야합니다. 생태계를 쉽게 파괴하거나 훼손하면 안 되지요. 집에 거미가 들어오면 종이에 받쳐서 집 밖으로 내보내 줍니다. 아파트에 사니까 1층까지 내려가서 무사히 땅에 착륙시켜주고 다시 올라오지요. 생명에 대한 예의 가운데 하나는 음식에 대해 충실한 것입니다. 음식을 먹는 일은 사람에게 유익한 일인데 그러려면 깨끗이 먹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서 음식을 남기지 말라고 늘 당부하신 것도 있지만 그릇은 비워야 하고 배는 채워야 하지요. 배가 부르다고 음식을 남기는 것은 좋은 습관이 아니라고 봅니다. 배는 저장기관이니까 많이 넣어도 된다고 생각해요.(웃음)
약자배려
초등학교 1학년 때 논길을 걷다가 옆집 소에게 차인 적이 있어요. 뒷발로 어린 저를 찼는데 제가 어리고 약하니까 소가 얕잡아 본 것 같아요. 약자에 대해 함부로 하는 것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본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짐승이 아닌 인간이니까 서로를 배려해야 해요. 초등학교 3학년 때였지요. 친구 세 명이 길을 가는데 친구가 코피를 흘리는 거예요. 이유를 물어보니 방금 길을 가던 낯선 아저씨가 친구 콧구멍에 담뱃불을 꽂았다가 뺐다는 거예요. 너무나 끔찍한 인간이지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실수로 길을 잃어 군부대에 들어갔다가 군인들에게 기합을 심하게 받은 것도 우리가 군인에 비해 약자였기 때문이죠. ‘왕따’도 괴롭힘을 당하는 대상이 약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나쁜 행동을 하는 거예요. 그런 나쁜 본능을 없애고, 약한 사람은 일부러라도 더 보호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린이들에게도 존댓말을 씁니다. 아이가 나보다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하면 심하게 야단칠 수 있겠어요. 아이가 약하다고 생각하니까 마음대로 하려는 부모가 있는 거겠죠. 아이는 ‘내게 온 손님’이라고 생각하면서 잘 키워야 해요. 예수님의 어머니도 그랬을 것 같아요. 내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식이라 생각하면 누가 함부로 아이를 때릴 수 있겠어요. 가끔 머리가 아픈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부모님이 계시는데, 대부분 아이가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하기 때문에 머리가 아픈 게 아니냐고 이이 탓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저는 스마트폰과 두통은 관계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뉴스를 보면, 죄를 지은 사람이 받는 고통이, 피해자가 받은 고통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약자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에게는 ‘비겁죄’를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한 사람이 약한 노인이나 아이, 여성들에게 행하는 범죄에는 더 큰 죄를 물어야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어린이에게 범죄를 저지르면 ‘국보훼손죄’를 추가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린이는 나라의 보물이잖아요. 약자인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는 나라가 무슨 쓸모가 있겠어요.
준법
법을 지켜야한다는 준법과 융통성은 서로 상치되는 점이 있어요. 잘못된 법은 거부할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된 법이라면 지켜야지요. 공중보건의 시절에 할 일이 없어 무료할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는 시간을 좀 효율적으로 쓰고 싶은데 공무원들은 무조건 자리를 지키라고만 했지요. 공무원들이 참 답답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저도 누군가에게 지시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그때 공무원 분들의 원칙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텅 빈 거리에서 신호를 지키는 일은 융통성 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지만, 그런 준법이야말로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을 이제 깨닫게 된 것이지요. 크게 생각해보면 각자의 자리를 지켜줄 때 세상은 제대로 돌아간다는 거예요. 쉽게 넘어가서 안 될 것들이 많지요. 가령 병원에서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든지 이런 작은 원칙들부터 지켜야 해요. 그래야 약점도 잡히지 않고 협박도 없어요. 법을 지키면 자연스러워지고 당당하며 힘이 생겨요. 어린이는 벌로써 준법정신을 가르친다면 어른은 벌금으로 법을 준수하게 해야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의식 수준이 낮은 게 아니에요. ‘금연법’이나 ‘주차법’ 같은 것들은 잘 집행만 하면 법을 잘 지키게 마련이에요. 미국에서는 ‘law enforcement’ 라고 하는데 법을 강하게 집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저는 이런 사례를 보며 ‘질서 산업’이란 말을 만들어 봤어요. 질서를 잘 지키도록 하는 분야에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죠. 불법주차 벌금을 없애는 대신 주차비를 벌금만큼 비싸게 받으면 불법주차는 없어지지 않을까 해요. 그런 일을 노인이나 청년실업자가 한다면 실업이 많이 줄지 않을까요. “이곳 주차비는 30분에 6만원입니다”하면 어떨까요.(웃음)
겸손과 솔선수범
좋은 사회는 궂은일을 솔선수범하는 사회입니다. 누군가는 궂은일을 해야 하니까요. 옛날에는 백정 같은 분들을 천시했지만 그런 분들이 없었다면 고기는 어떻게 먹었겠어요. 환경미화원이나 119 소방대원 같은 분들도 마찬가지죠. 사회의 공익을 위해 일을 하시는 분들이 존경받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양식장에서 향어를 많이 키우던 시절에 손님께 회를 떠서 대접을 하려면 살아있는 향어를 죽여야 해요. 토끼나 닭도 누군가에게 먹이려면 피를 보며 잡아야 하니까 정말 하기 싫은 일이었어요. 제가 근무하는 병원에서도 화장실을 고치다거나 험한 일이 생기면 직원에게 시킬 수는 없으니 제가 하지요. 더러운 것은 주인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성경 구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느니라.” 누가복음 16장 10절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렇듯 작은 것에 충실해야 나중에 큰일이 닥치면 잘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필요 없는 전기는 끈다거나 주위를 살펴보고 고장 난 것을 미리 고쳐 놓는다면 이런 것들이 화재를 막거나 재난을 예방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는 작은 것에 충실해야 해요.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이 말씀도 누가복음 14장 11절 말씀이에요. 겸손과 솔선수범은 결국 한 몸이지요. 겸손한 사람은 솔선수범을 잘 하는 사람이고 솔선수범을 하는 사람은 결국 겸손이 몸에 밴 사람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