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조선희의 ‘제주 바보이야기’ 를 읽고-1
* 2005년 3월 10일 초판 제1쇄 발행
* 글 : 조선희
* 그림 : 이왈종
* 펴낸이 : 김재광
* 편낸곳 : 도서출판사 솔과학
* 총 쪽수 : 300쪽
* 나는 책을 읽은 담에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책 내용을 뽑아서 내가 관리하는 카페에 올리고
또 내가 즐겨 방문하는 카페에도 올려서 시간이 없어서, 혹은 기회가 되지 않아 읽지 못하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고, 또 나 자신 감명 깊은 내용을 쓰면서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참으로 좋은 것 같아, 지난 2007년 1월부터 그렇게 누적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읽은 이 책은 아마 서울에 살던 조선희라는 전 신문기자 혹은 수필가가 도회지 삶을
접구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제주도에가 감귤 등 농사를 지으며 경험한 생활 내용의 글로써,
이왈종 화백의 그림과 함께 출판한 수필집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라 재미가 솔솔 했으며,
특히 상당히 많은 훌륭한 그림들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럼 그 중에서 양가씨 맘에 들었던 부분을 옮겨볼까요.
*참고로 이 책을 읽고 ‘조선희’라는 이름을 검색해보니 사진가 한분과 소설가 한 분이 나오던데,
그 두 분은 제주 바보가 아닌 듯 하고요.
카페에서 검색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끝부분에 붙여 보았습니다.
14쪽에
* 옛날 그 어느 임금님이 老화가를 불러 이 세상에서 가장 야한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더란다.
며칠 후 老화가가 그려온 그림인즉슨, 사위가 고요한 숲 속게 자그마한 초가집이 한 채
있고 댓돌 위엔 남녀 신발이 나란히 놓여 있더란다. 방문은 다소곳이 닫힌 채 ....
45쪽에
* 어느 날 큰언니와 통화를 하면서 속내를 털어놓았더니 언니가 들려준 한마디가 일품이었다.
‘네가 시속 20km로 늙어가고 있다면 나는 시속 120킬로미터로 늙어가고 있다.’ 큰언니는
나보다 무려 열 다섯 살이 더 많다. 아, 결국 늙어간다는 것은 그 속도를 체감하게 되는
것이구나.
49쪽에
* 내가 남편을 따라 농부가 되겠노라고 결심을 굳혔을 때 남편은 제법 호기롭게 말했다.
‘농사를 지어 식구들 먹여 살리는 것은 내가 책임지겠으니 당신은 텃밭에서 오전 근무만
해라. 나머지 시간을 다 가져도 좋으니 반드시 작품을 써야 한다.’ 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로 고마운 말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시무시한 조건이기도 했다.
우리의 귀농 스토리를 잘 아는 어떤 이가 자기 시어머니에게, 누구누구는 시골로 농사지으러
가는데 남편이 오전 근무만 하라고 했다며 참 부럽다고 했더란다. 그랬더니 그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아직 철이 없구먼. 농사가 오전 근무 오후 근무 따로 해서 되는 일로
아는 모양이지? 하시더란다. 그 분은 평생을 시골에서 채소 농사를 지어오신 분이라고 했다.
나도 물론 이곳에 온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그 분 말씀 마따나 농사라는 게 오전 오후
근무가 따로일 수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늘 24시간 365일 비상대기
해야 하는 일이 농사인 줄 알겠고, 때로는 나무가 시키기 전에 땅이 부르기 전에 야근(?)도
불사해야 하는 일이 농사인 줄 이미 터득했다. 애초에 ‘오전 근무조’ 따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 농사인 것을!
65쪽에
* 이제야 일상적인 제주도 말은 조금씩 알아듣게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이방인의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제주 토속어이다. 처음에 이사와서는 지극히 간단한
인사말조차도 몇 번씩 생각을 하고 묻고 물어서야 소통이 가능했으니 어디 속성으로 배우는
제주도 토속어 코스가 없나 싶을 만큼 답답했었다. 다행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날마다
친구들에게서 듣고 물어다 주는 말을 귀 넘어 배울 수 있어 이제는 대강으로나마 의사를
소통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고라봅서’ 라는데 무엇을 고르라는 이야긴지 알 수 없어 입다물고 있으면 뒤늦게서야
상대가 ‘말해보라’ 고 고쳐주었고, ‘속았수다’ 하길래 내가 무엇에 속아넘어갔나 싶어 바짝
긴장하면 ‘수고했다’ 고 바로잡아주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우리의 꼴이라니.
66쪽에
* ‘~ 아니냐?’ 라고 물어야 할 것을 ‘~ 아니?’ 라고 싹뚝 잘라버리는 경쾌함, ‘가서 보고
와서 말하라’ 는 거추장스러운 문장도 ‘강 방 왕 고라’라는 단순 명료한 문장으로 바꿔버리는
재치, 굳이 ‘했느냐?’ ‘갔느냐?’ 라고 물을 것 없이 ‘핸?’ ‘간?’ 단 한 음절로 의사를 소통하는
생략의 묘미가 은근히 즐겁기까지 하다.
101쪽에
* 상자를 풀어 한 손에는 잡히지도 않을 만큼 커다란 배를 꺼내놓고 보니 그것은 영락없는
만월(滿月)의 모습이다. 손 박사님은 필시 내게 고향의 보름달을 부쳐주고 싶었으리라.
이번엔 내가 화답할 차례다.
‘박사님, 보내주신 보름달, 징하게 만나게 먹었습니다. 배의 속살은 꿀맛으로 삼키고 박사님의
속마음은 가슴패기에 보름달로 박아두었습니다.’
------------------ 곧 다음에 계속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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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your life a wonderful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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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책에 관하여 알아보니 다음 카페 ‘오지를 꿈꾸는 사람들’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 귀농서적 “농부가 되어가는 바보의 행복일기” *
도시에 살던 지인이 느닷없이 귀농하겠다면?
더구나 그가 호미질 한번 해본 적 없는 이라면? 폐일언하고 “바보”소리부터 튀어나올 것이다.
수필가 조선희씨(43.표선면 토산리)가 그는 바보다. 광주출생인 조씨는 서울에서 대학을
마친 후 10여 간 고향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 1999년 제주섬에 둥지를 틀었다.
대학선배인 남편이 결혼 때부터 ‘귀농’을 읊었고, 그 말을 흘려듣기만 했던 조씨가 끝내
‘굴복’한 것.
코흘리개를 겨우 면한 두 아들과 함께 따뜻한 남쪽나라에 정착한 부부는 감귤을 재배하며
농사꾼으로서의 삶을 일구기 시작했다.
그런데 ‘망건 쓰자 파장’이란 말마따나 그 해 감귤가격은 전례 없이 폭락했다.
나이와 함께 빚만 쌓여가던 중 조씨는 문득 자신이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닌가 돌아보고,
서툰 감귤농사에만 목숨을 걸게 아니라 내 마음의 농사부터 짓자는 ‘대견스런 결론’에 이른다.
“농사는 하늘과 절반씩 나눠 짓고, 소출은 나무와 새와 벌레와 땅과 절반씩 나눠 먹고
그 사이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주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가 ‘제주바보 이야기’(솔과학 刊)를
펴냈다. 조씨가 2000년 8월부터 서귀포.남제주신문에 격주로 연재해온 수필들을 엮은 것
으로 ‘타고난’ 농부가 아닌 ‘학습 중인’ 농부의 성장일기다. 책에는 이왈종 화백의 ‘유유자적한
삽화’들도 다수가 실려 눈을 즐겁게 한다.
조씨와 이 화백 사이는 각별하다. 신문에 실린 조씨 가족의 귀농 이야기를 가슴 따뜻하게
읽은 이 화백은 삽화를 함께 게재할 것을 제안했고 이후 더없는 이웃이자 조언자가 됐다.
‘바보’는 이 화백이 붙인 조씨의 애칭. 이번 출간도 이화백이 적극 권유해서 이뤄졌고
표제도 직접 짓고 글씨를 써줬다. 조씨는 “매번 은혜를 입는다”며 감사해한다.
“대충대충 줄기나 이파리만 잘라내지 말고 저 깊이 숨어있는 뿌리를 발본색원하는 일,
이것이 내가 발견한 검질(김)매기의 미학”이라는 조씨는 이제 옹골찬 농촌 ‘아주망’이 다 됐다.
한편 조씨는 귀농 후 ‘마흔에 밭을 일구다’를 펴냈고, 이번 책은 그 이후의 기록이다.
300쪽. 1만3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