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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제18강 泰伯篇 2
제8장 태백편(泰伯篇)
제11절
子曰, 如有周公之才之美, 斯驕且吝, 其餘不足觀也已矣.
자왈, 여유주공지재지미, 사교차인, 기여부족관야이의.
ㅇ 子曰,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如有周公之才之美, 如有, 만약 있다면, 있더라도 뭐가 주나라 주공이 가진 재주의 아름다움이죠. 훌륭한 것 하고는 다릅니다. 아름다움이니까. 크다는 뜻이죠. 아름은 알이 움터오는 아름다움. 여기서는 크다는 뜻이 되겠죠. 주공이 가졌던 그 재능의 아름다움이 있다손 치더라도,
ㅇ 斯驕且吝, 교만하고 또한 인색하다면, 인색하게 한다면 其餘, 그 나머지는 不足觀也已矣. 이때 그 其자는 두 가지 용법이 다 쓰입니다. maybe의 추측의 기자도 되고, 그 나머지라는 구체적인 the도 되고. 其其 이렇게 될 텐데 합쳐지니까 빼버린 거죠. 其餘, 그 나머지는 不足觀也已矣. 已는 也와 矣를 붙여주기 위해서 들어갔죠. 나머지는 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강한 추측이죠.
ㅇ 그래서 비록 아름다운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이 너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너무 인색하다면. 남을 위한 마음이 없다는 얘기 아닙니까. 재주가 있으면 뭐 합니까. 재주라는 것은 남을 위해서 쓰는 것이라는 얘기죠. 교만함의 반대가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데 쓰이는 것이고 또한 인색한 것이 아니라 뒤집으면 풀어주는 것이니까 남에게 쓰기 위한 재주 그것이 시대문화로써 갖춰야 되는 재주인 거죠. 반대니까. 남에게 봉사하는 것, 남에게 베푸는 것 거기에 해당되는 재주의 아름다움만이 진정한 아름다움이고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이야기죠. 뒤집어 해석하면 빠릅니다.
제12절
子曰, 三年學, 不至於穀, 不易得也.
자왈, 삼년학, 부지어곡, 불역득야.
ㅇ 子曰,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三年學. 삼 년 동안 공부 했습니다. 배웠습니다. 삼 년 동안 배워도 배움과 공부는 다르다 그랬지 않습니까 원래. 學과 工夫는 다르다 했는데 이 학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거죠. 외부에서 들어오면 공부를 해야죠. 학은 지식이 들어오거나 외부에서 나에게 들어오는 것이 학이죠. 그리고 그걸 익히는 건 공부죠. 달구는 거죠. 결국은 배움과 달굼이죠. 여기서는 배움이죠.
ㅇ 삼 년 동안 배웠어도 不至於穀, 벼슬살이라든가 등등, 자기의 호구를 면하는 것이, 음식이 곡 아닙니까. 곡식, 녹봉, 월급, 삼 년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도 벼슬살이에 또는 그렇게 월급 살이에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不易得也. 바꾸지 말지니라. 자기가 얻는 바를 그렇게 바꾸지 말지니라.
ㅇ 근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는 경우가 있냐 하면 삼 년 공부를 해가지고도 녹봉을 받지 못한다. 이것은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돼 있는데 그런 게 아닙니다. 뭐 3년 동안 배워도 공부가 안되면 꽝이죠. 요즘 들어서 우리야 배움이 근 20년이 이어지는데도 달굼이 안돼 있으니까 언제든지 자기가 배운 것을 바꿀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갖춰져 있지 않습니까.
제13절
子曰, 篤信好學, 守死善道. 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邦有道,
자왈, 독신호학, 수사선도. 위방불입, 난방불거. 천하유도즉현, 무도즉은. 방유도,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
빈차천언, 치야. 방무도, 부차귀언, 치야.
ㅇ 子曰,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篤信, 믿음을 놓지 않고, 독실하게 믿으면서, 마음을 풀지 않고 신뢰성 있게 好學, 배우기를 즐기고 守死善道. 수사선도를 사수선도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수사선도로 읽어놓고 사수선도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음으로써 착한 길을 지킨다 이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아니고 守 동사, 死 목적어, 善 동사, 道 목적어 입니다. 죽음을 지키며, 잘 해석해야 합니다. 도를 튼다는 표현이 맞겠죠. 도를 善한다. 길에서 훌륭해진다. 길을 훌륭하게 한다는 뜻이니까요. 이게 착한 도가 아닙니다. 도가 착한 게 어디 있고 악도가 어디 있습니까. 악행, 선행은 있어도 악도, 선도는 없죠. 그래서 선도라는 것은 도를 선하게 하다, 도를 튼다는 얘기입니다. 죽음을 지켜, 죽을 때까지라는 이야기겠죠. 죽음을 지켜 도를 트며,
ㅇ 危邦不入, 위험한 곳에는 들지를 않고, 위험한 나라에는 들어가지를 않고, 亂邦不居. 어지러운 지역에는 무질서한 지역에는 거처하지 않으며. 요 문장도 공자가 비겁한 것처럼 만드는 구절입니다. 그래서 위방은 재난이 닥쳐오는 나라 아닙니까. 不入이라고 했을 적에 그 나라로 살러 들어간다. 이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 나라의 국정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나라에는 국정에 참여하지 않으며 즉, 그런 나라에서는, 위방에서는, 위험한 나라에서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하지 않으며, 위로부터 개혁을 꿈꾸지 않으며,
ㅇ 亂邦不居, 무질서한 거죠. 위방은 재난이 닥쳐오는 나라고 난방은 무질서한 나라죠. 무질서한 나라에서는 아예 거처하지 않는다. 그 나라 밖에서부터 그 나라를 바꿔 들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즘의 방과 국가개념 하고는 좀 다르죠. 나라하고는.
ㅇ 예를 들어서 서울이라는 곳이 너무 무질서하면 서울을 벗어나서 질서를 잡아가야지 서울서 해서는 질서가 안 잡힌다는 겁니다. 뭐든지 그 중심에서부터 해나가려고 하는 것은 도가 있을 때 얘기고, 도가 없을 때는 그 중심에 도가 있느냐 없느냐를 보라는 겁니다. 그 중심에 도가 없으면 이미 그것은 중심 자체가, 다른 전체는 중심의 확산이기 때문에 그 확산돼 있는 중심에 들어가서 뭘 바꿀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ㅇ 요즘 정치하러 들어가면서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는 거짓말, 그건 요런 걸 읽어보면 거짓말이죠. 자기는 진실로 생각해도 안 되는 일이죠. 자기가 물들러 들어가는 거죠. 호랑이가 되려고 들어가거나, 호랑이 심부름하러 들어가거나 그러는 거죠. 그 다음에 여당 속에 야당, 참여 속에 개혁 요 다 거짓말인 겁니다. 진짜 개혁이 아니고 사이비 개혁이라는 것이죠.
ㅇ 天下有道則見하고, 그래서 하늘 아래에 도가 있으면 당연히 그 모습이 드러나게 되고, 자기자신이 그 길을, 공도자의 길을 가고 있다면 천하에 도가 있으면 제 모습이 들러나게 될 것이고 無道則隱. 도가 없다면 숨겨지는 게 당연하다. 숨는다. 나타난다는 능동성이 아니고 수동성인 것입니다. 천하에 도리가 행해지고 있으면 당연히 도 있는 자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고, 천하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도 있는 자의 모습은 가려지게 되겠죠. 스스로 나타난다, 숨는다가 아니고요. 숨는다, 나타난다로 보면 굉장히 비겁해지죠. 문장을 자기가 잘못 해석해놓고 나서는 공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기가 십상이죠.
ㅇ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그래서 나라에 도리가 행해지고 있는데도 가난하고 천하다면 이건 치욕이다.
ㅇ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는데도 부하고 귀하다면 이것 또한 치욕이다. 수치로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떻게 부할 수 있고, 귀할 수가 있습니까. 예를 들어서 오늘 백만 원이 생겼으면 내일 풀기도 바쁜데 어떻게 부를 누리며, 그렇게 풀어버리고 사는데 어디서 귀한 자리 얻을 것이며 민망해서 어떻게 귀한 자리에 있을 것이며, 그 나라에 도리가 없는데도 귀할 수 있는 건 참여 속에 개혁이라는 요런 헛소리를 하기 때문에 귀하게 될 수 있는 거죠. 사기접시를 돌리기 때문에 요렇게 되는 거죠. 마찬가지로 부할 수도 없는 거죠. 근데 반대로 나라에 도리가 행해지고 있는데 어떻게 가난할 수가 있겠습니까. 부할 수는 없더라도 못 먹고 살리는 없죠. 나라에 도가 행해지고 있는데 공도를 일으키는 사람이 천대받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도 공도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진정 참된 공도로 가는 사람들이 부유한가 가난한가, 귀한가 천한가를 따져보면 방에 도가 있는지 없는지 알고 남음이 있죠. 나라에 도가 있고 없는 걸 떠져보는 기준이 역으로 기준이 되기도 하는 거죠.
제14절
子曰, 不在其位, 不謨其政
자왈, 부재기위, 불모기정
ㅇ 해석 안 하겠습니다.
제15절
子曰, 師摯之始, 關雎之亂, 洋洋乎盈耳哉.
자왈, 사지지시, 관저지란, 양양호영이재.
ㅇ 子曰,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師摯之始, 사지는 공자가 좋아했던 노나라 악사의 이름입니다. 노나라의 음악을 총괄하고 있던 오케스트라 지휘자. 요즘 말하면 오케스트라 지휘자 이름입니다. 師摯之始. 사지가 처음 연주를 하는데, 여기서 始란 것은 당연히 연주를 시작하는 겁니다. 사지가 연주를 시작하는데, 연주를 시작하자 마자 바로 뭐가 나오냐 하면 關雎之亂, 관저가 관관저구하는 부분, 시경의 첫 구절 아닙니까. 관관저구하면서 바로 끼륵끼륵하는 소리가 어지럽게, 무질서하게 들려오는데 그 무질서가 화음이 되어 들려온다는 거죠. 정말로 ~~~가 짓는 소리가 무질서한 듯 하면서 들려오는데 그 소리가 洋洋乎, 넘치더라 어디에. 양양하다는 의기양양하다 그러지 않습니까. 기운이 노도처럼 밀려오는 모습이죠. 노도처럼 밀려와서 盈耳哉. 내 귀에 차오더라. 노도처럼 내 귀에 밀려오더라.
ㅇ 사지가 연주를 잘 한다는 것인지 관저가 좋다는 뜻인지 물론 둘 다죠.
제16절
子曰, 狂而不直, 侗而不愿, 悾悾而不信, 吾不知之矣.
자왈, 광이부직, 통이불원, 공공이불신, 오부지지의.
ㅇ 子曰,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狂而不直, 狂이란 것은 사람이 미쳐 날뛰는 것이 광이지만 한편 용기 있는 어떤 모습과도 비슷하죠. 사람이 광기를 부릴 정도로 그렇게 배짱도 있으면서 그러긴 한데 문제는 정직하지 않아요. 다시 말하면 直하긴 한데 直이 무례가 되는 거죠. 광이부직은 어떤 면에서는 직이무례와 비슷한 거죠.
ㅇ 侗而不愿, 통이란 것은 그릇이 속이 아직 덜 찬 것을 말합니다. 의태어에서 왔습니다. 대나무나 나무 같은 것을 두드려보면 덜 익은 놈은 통통 소리가 나잖아요. 아직 덜 익은 그릇입니다. 즉, 아직 사람 됨됨이가 덜 됐는데도 不愿, 성실하지 않다. 노심초사하는 것을 愿이라 합니다. 글자 모를 때는 간단합니다. 원이니까 근본 원자에다가 마음 심자, 마음의 근본이다. 마음의 근본이 성실한 거니까 마음의 근본을 다한다 이렇게 되겠죠. 마음의 근본을 다 안 한다. 즉 노심초사를 안 한다. 마음을 안 쓴다.
ㅇ 悾悾而不信, 공공은 마음이 비었다는 이야기죠. 마음이 비었다는 얘기니까 어리석다는 얘기죠. 이것이 한국으로 넘어와서 발음이 어떻게 바뀌느냐 하면 ‘깐깐하다’로 바뀌었습니다. 공공은 강강으로 읽기도 합니다. 강강, 깐깐하다 그러지 않습니까. 깐깐하다는 말이 오늘날에 와서는 좀 ‘깐죽거리다’로 들리고 ‘꼬장꼬장하다’로 들리는데 원래는 깐깐하다는 것이 어리석다는 얘깁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고집세우는 것을 강강이라 그럽니다. 어리석으면서도 不信, 믿음이 없다.
ㅇ 그러면 吾不知之矣. 난 모르겠다. 그런 경우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이 안 선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얘기도 되겠지만 서도요.
ㅇ 생각해보십시오. 광기는 있으되 사람이 정직하지 아니하고, 사람이 설 익었는데도 성실하지 아니하고, 아무 것도 모르면서 불신부터 하기 시작하고 그러면 어떡하란 겁니까. 뭘 갖고 진보를 시키겠습니까. 이건 진보를 거부하는 기본요건이잖아요. 공공도 글자 그대로 마음이 비었구나 이렇게 되니까 어리석다로 의역이 되겠죠.
ㅇ 邦의 공간적 영역을 어떻게 설정해야 합니까?(질문)
ㅇ 방이란 것이 한 토지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을 방이라 그럽니다. 같은 땅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 토지공동체죠. 國이란 것은 토지의 공동체이면서 하나의 국체(?)가 있는 거죠. 근데 방은 국체 자체는 없죠. 그러니까 지역사회 비슷하죠. 예를 들면 대한민국 그러면 국가지만 경상북도, 전라남도 그러면 이건 방이죠. 그러나 분명 그것 자체로써 공동체 아니겠습니까. 전라남도 토지는 전라남도 토지죠. 전라북도 토지는 전라북도 토지고. 거기에서 먹고 사는 사람은 거기의 邦人이죠. 지방 할 때도 이 방자 쓰죠.
ㅇ 仁以爲己任, 不亦重乎에서 重자가 不重則不威하고 연관 지을 수 있습니까? 근데 그 重의 의미가 같습니까? (질문)
ㅇ 예 같은 의미입니다. 원래 重이란 게 거듭이란 뜻 아닙니까. 무겁다는 의미가 한 겹 있으면 가볍고 두 겹 있으면 무겁고 세 겹 있으면 더 무겁고 그게 겹겹이란 의미 아닙니까. 그러니까 임무가 무겁다 하는 것은 임무의 종류, 임무의 겹이 여러 겹이라는 이야기죠. 쉽게 말하면 앞에 君子不重則不威 했을 때 공도자가 무겁지 아니하면 위엄이 없다 해서 너무 경박한 거죠. 한 겹밖에 없는 거죠. 不重이면. 아까 民不偸했는데 백성들은 투박하지 않게 된다 했는데 군자가 투박한 거죠. 한 껍데기 벗기고 나니까 속에 아무 것도 안 들어 있는 거예요 이게. 속살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군자란 것이 이런 정책을 내놓았으면 이 정책을 내기 위해서 자기 마음까지 끝까지 다하는 깊이와 겹이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겹이 없는 거예요. 그러면 不重이죠.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無重과 不重은 비슷하죠. 그게 무게가 없는 거죠. 마음이 안 실려 있으면 무게가 없는 거죠. 옛날에 누가 그렇게 물었죠. 하늘에 무게가 있습니까? 하늘에 무게가 있다. 하늘에 무게가 얼마나 있는가 하니, 참 많은 것들이 하늘에 겹으로 다 있다. 모든 보이는 하늘과 안 보이는 하늘 전부가 겹이라고 돼 있으니까 그런 옛날이 있으니까 당연히 하늘에 무게가 있는 것 아니냐.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무게라는 게 결국은 어떤 마음의 소재와 상당히 연관이 있는 거죠.
ㅇ 물질적인 무게도 마찬가지로 생각하면 됩니까? (질문)
ㅇ 그러면 서해진 선생은 위엄이 있을 수 없죠. 몸무게가 안 나가가지고.
제17절
子曰, 學如不及, 猶恐失之.
자왈, 학여불급, 유공실지.
ㅇ 子曰,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學如不及, 배우는 것은 ~~와 같이 할지니. 不及, 배우는 것은 아무리 배워도 다 못 배우는 것처럼 할지니. 이르지 못하는 것처럼, 불급한 것처럼 할지니 猶恐失之. 마치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그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할 것처럼 할지니라. 배움은 아무리 배워도 부족한 것이 있는 것처럼, 그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그런 자세로 할 것이니라. 해서 앞에 있던 狂而不直, 侗而不愿, 悾悾而不信 그런 것과 반대되는 모습이겠죠. 학여불급할지니,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할지니라.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제18절
子曰, 巍巍乎, 舜禹之有天下也, 而不與焉.
자왈, 외외호, 순우지유천하야, 이불예언.
ㅇ 子曰,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巍巍乎, 외라는 것은 크다는 뜻이니까 우리말로 보면 아! 아! 하는 뜻이 있겠죠. 아! 크다 이런 뜻이겠죠. 크구나 커.
ㅇ 舜禹之有天下也, 순과 우께서 천하를 갖고 계시며, 천하를 움직이고 계시며 이런 뜻이겠죠. 순과 우께서 온누리를 움직이고 계심이여. 그러면서도 무엇 때문에 크냐. 而不與焉. 그러나 직접적으로는 정사에 참여하지는 않으셨다. ‘참여하다’ 할 때는 ‘예’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로 읽습니다. 천하를 가지고 계시면서도 천하 정사에는 실질적으로 관여를 하지 않으셨다. 다만 그분이 스스로 있음으로 말미암아서 정사가 아닌 그분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그 밑에 또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분들이 또한 자기 할 몫을 다 하니까 저절로 돌아갔다.
ㅇ 바로 이게 배움의 끝은 이런 것. 제2장에서 북두성이 있으면 북두성은 가만 그 자리에 있어도 뭇 별들이 북두성을 중심으로 빙빙 돌아서 우주가 쉬지 않고 흘러가듯이 순과 우가 천하를 움직였던 것이 바로 이처럼 천하를 움직이고 계시면서도 사소한 천하 사에, 정사에 관여를 안 하셨다. 다만 스스로 살아가는 일만 하셨다. 그 아래 사람도 스스로 살아가는 일만 하셨다. 그러니까 자기 할 몫을 다 해버리니까 정사에 참여할 일이, 간여할 일이 없었던 거죠. 그러고 또 어떤 것이 크고 배울만한 것이냐.
제19절
子曰, 大哉. 堯之爲君也. 巍巍乎. 唯天爲大, 唯堯則之. 蕩蕩乎民無能名焉. 巍巍乎,
자왈, 대재. 요지위군야. 외외호. 유천위대, 유요칙지. 탕탕호민무능명언. 외외호,
其有成功也. 煥乎其有文章.
기유성공야. 환호기유문장.
ㅇ 子曰,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大哉. 堯之爲君也. 크구나 요님의 임금됨이여. 크구나 요의 임금 노릇함이여. 爲君하면 요의 임금 됨이라고 할 것인지 요가 임금 노릇한 것인지 이렇게 될 위자가 ‘되다’라는 뜻으로 읽어야 될 지, ‘하다’라는 뜻으로 읽어야 될 지 이럴 때는 복합적인 뜻으로 읽어야 될 겁니다. 크구나 요님께서 임금 노릇을 하셨을 그 모습이여.
ㅇ 巍巍乎. 정말 높고도 크구나. 大는 평지로써 덩어리가 크다 이런 뜻이고요. 부피가 크다 이런 뜻이고. 외외호의 크다는 의미는 높아서 크다. 예를 들어서 나무가 하늘 닿을 만큼 쑥 올라가 있다. 그러면 나무가 크긴 큰데 높다라는 의미가 더 많습니다. 크고 높다는 의미가 외외호가 되구요, 참 크구나.
ㅇ 唯天爲大, 오로지 이렇게 큰 것은, 오로지 한님만이 그렇게 큰 것인데 唯堯則之. 오로지 또한 요님만이 그것을 본받으셨구나(본받을 칙). 크구나 요님께서 임금 노릇 하심이여. 참으로 크고 높구나 오직 하늘만이 그렇게 크거늘, 오직 요님께서만 그것을 본받으셨도다. 앞에 순우를 얘기하시고 더 큰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ㅇ 蕩蕩乎, 아! 넓고도 넓구나. 펄펄 끓는 물이 파도를 치면서 온 누리를 누비는 모습을 탕탕이라 하니까요. 큰 바닷물이 넘치는 것도 탕탕이라 그러고요. 탕탕호, 참으로 넓구나. 民無能名焉. 너무나 넓어서 사람들은 이름 지을 수가 없었다. 요는 어떤 임금이라고 이름 지을 수도 없었다. 너무 넓어 버리니까 이것도 저것도 어느 것으로 이름 짓기에는 말이 담아낼 수가 없었다.
ㅇ 巍巍乎, 其有成功也. 참으로 높고 크구나. 그가 공을 이룸 이여. 요 임금께서 공을 이루심 이여. 그것이야말로 참 공이다. 참으로 크고 높구나 그이께서 공을 이루심 이여.
ㅇ 煥乎, 빛나는구나. 其有文章. 그이께서 남기신 유적이여. 문장이란 것은 우리가 보통 글 이렇게 보지만 사적 이런 것이겠죠. 그가 남긴 역사적 기록, 그로부터 말미암아 남은 역사적인 그와 관련된 기록 이런 것이죠.
ㅇ 그래서 한없이 큰 것을 추구합니다. 오로지 한님만이 그렇게 크시니 요님께서만 그것을 본받으셨다. 그렇게 될 때까지 공부하라는 것은 공부를 미치는 데가 없이 계속 한없이 가라는 것이다. 그렇게 이루기 전까지 늘 잃어버릴까 걱정하고, 그분께서 하신 모습은 참으로 넓어서 사람들이 이름할 수 있는 사소한 어떤 것이 아니었으니 공부 또한 그렇게 넓어서 이름할 수 없는 사소한 그런 작은 것이 아닌 큰 것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고. 높구나 그의 성공을 거둠 이여. 너무나 높아서 하늘까지 이르렀으니 끝없는 공을 이루셨으니 사람의 공부도 그것을 공과로 해서 나아갈 것이요. 빛나는구나 그의 문장이여. 그분께서 남기신 일이여. 참으로 빛나는구나. 공부란 것도 그렇게 스스로 빛을 낼 때까지 해야 될 것이다. 이런 얘기입니다.
제20절
舜有臣五人, 而天下治. 武王曰, 予有亂臣十人. 公子曰, 才難, 不其然乎.
순유신오인, 이천하치. 무왕왈, 여유난신십인. 공자왈, 재난, 불기연호.
唐虞之際, 於斯爲盛. 有婦人焉, 九人而已. 三分天下有其二, 以服事殷.
당우지제, 어사위성. 유부인언, 구인이이. 삼분천하유기이, 이복사은.
周之德, 其可謂至德也已矣.
주지덕, 기가위지덕야이의.
ㅇ 舜有臣五人, 而天下治. 요 임금의 후계자인 순 님께서는 다섯 명의 신하, 신하 다섯 명을 갖고 계셨다. 그런데 천하가 이치대로 다스려졌다. 武王曰, 무왕께서 말씀하시기를 予有亂臣十人. 또는 亂十人 이렇게 돼 있는데요. 그냥 난으로 해도 되고, 亂자 뒤에 臣자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있는 판본도 있고, 없는 판본도 있습니다. 무왕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난신 십 인을 갖고 있을 따름이다. 亂臣 이란 것은 어지러운 신하가 아니고 어지러움을 극복한 신하입니다. 어지러움을 극복할 수 있는 신하 열 사람이 내게는 있었다. 그래서 무질서함이 극복되었다. 즉 나에게는 무질서를 극복해준 열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주나라 무왕도 그렇게 치적을 이룬 거구요. 이 두 가지 구절을 놓고,
ㅇ 公子曰, 앞에 나오는 구절이 순을 다루고 무왕을 다룬 구절이다 보니까. 그 구절을 놓고는 마치 옛날 어른들께서 천부경을 놓고 스스로를 낮춰서 한 번 손 모으고 이야기를 하셨듯이 그래서 공자를 낮췄죠. 公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才難, 인재를 얻기는 어렵다. 인재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인재란 것은 여기서 인재를 얻는다는 뜻이죠. 인재를 얻기가 힘들다. 不其然乎. 其자와 乎자가 왔으니까 아마 ~~할 것이다 라는 뜻이죠. 인재를 얻기 힘든 것이 아마 이와 같지 않을까.
ㅇ 唐虞之際, 당이란 것은 요 임금의 이름이고요. 우라는 것은 순 임금의 이름 입니다. 당우지제 하면 요 임금과 순 임금의 때에 시절에, 당우의 시절에. 국제는 요거와 좀 다르긴 하지만 국제사회 할 때 제자도 시대란 얘기죠. 당우지제, 요 임금, 순 임금께서 계셨던 그 시절에는 於斯爲盛. 이처럼 사람들이, 인재들이 성했다. 인재를 얻기가 이렇게 어렵지 아니한가. 당우지제에도 이 정도로 성했을 뿐이다. 有婦人焉, 부인이란 것은 여기서 여성이란 뜻이 아니고요. 사람 중에서,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일러 말하는 또 하나의 통칭입니다. 그런데 이때 왜 有婦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계시니 하느님께서 지아비시고 세상일을 보시는 분이 땅의 일을 맡으니 땅의 일을 맡는 사람이 지어미가 되는 거죠. 그래서 부인이라 하면 흔히 여성을 이야기하는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여기는 여성 남성의 문제가 아니고 하느님의 짝이 되는 ~~한 사람들 이런 뜻이죠. 하느님의 배필이 될만한 사람들. 有婦人焉, 하느님의 배필이 될만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 숫자가 이레 저레 합해봤자 九人而已. 아홉밖에 안 됐더라.
ㅇ 요 임금, 순 임금 시절에도 요 임금이 네 명의 신하가 있었고, 순 임금이 다섯 명의 큰 신하가 있었고, 요 임금의 큰 신하는 네 명인데 회화, 회중 뭐 이렇게 나오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사기’에 보면 회화로 하여금 불을 맡게 하였고 회중으로 하여금 곡식을 맡게 하였고 이렇게 나옵니다. 회화라 할 때 회는 ‘해’씨죠. 우리 東夷계 이름들이죠. ‘해’라는 성을 가진 누구 이렇게 되죠. 회화하면 해 불, 회중하면 해 뭐 이런 식으로 될 텐데. 바로 네 명의 그런 신하가 있어서 일을 맡겼고 그 네 명의 신하가 일을 다 처리했죠. 회라는 자체가 해님의 짝 이런 뜻의 의미니까요. 요 임금이 네 명, 순 임금이 다섯 명 그렇게 있었다. 그들이 바로 하느님의 짝 될만한 부인이었다. 有婦人焉, 하느님의 짝 될만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아홉 명일 따름이다. 그렇게 그 시대에도 힘들었다. 그 다음에 주나라 임금 얘기를 합니다. 무왕 얘기를 합니다.
ㅇ 三分天下, 천하를 셋으로 쪼개고 있으면서, 천하를 셋으로 쪼개서 三分天下해서 有其二, 그 가운데 둘을 갖고 계셨으면서도 以服事殷. 엎드림으로써 복종함으로써 은나라를 섬기셨으나,
ㅇ 周之德, 주나라 초기의 그 진리스러움도 其可謂至德也已矣. 아마 지극한 진리스러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ㅇ 요즘으로 놓고 생각하면 국민 지지율이 60% 나오는데 나 대통령 안 해 할 사람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20 몇 %만 나와도 포기 안 하려고 그러는데.
ㅇ 三分天下有其二, 以服事殷. 천하를 셋으로 쪼개어 그 가운데 둘을 갖고 계시면서도 엎드려 은나라를 섬기셨으니 주나라의 진리스러움이야말로 아마 지극한 진리스러움이라 할만 할 것이다. 다 이 모습들이 공부할 때 추구할 점들이라고 말씀하신 거죠. 사회적인 면에서.
제21절
子曰, 禹吾無間然矣. 菲飮食, 而致孝乎鬼神, 惡衣服, 而致美乎黻冕,
자왈, 우오무간연의. 비음식, 이치효호귀신, 악의복, 이치미호불면,
卑宮室, 而盡力乎溝洫. 禹吾無間然矣.
비궁실, 이진력호구혁. 우오무간연의.
ㅇ 子曰,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禹吾無間然矣. 우 임금과 나는 無間然矣. 간연이란 것은 사이가 있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사이가 없다는 뜻이죠 여기는. 우 임금과 나와는 아무런 사이 즉, 차이점이나 서로 다른 점이 없을 것이다.
ㅇ 菲飮食, ‘비’라는 것은 약하게 또는 비루하게 음식을 아주 그다지 좋은 게 없이, 음식은 험하게 드시면서도 而致孝乎鬼神, 귀와 신을 섬기는데는, 귀와 신에게는 귀신에게는 효를 다 이루었고, 효를 다하고자 했고. 자기가 먹는 음식은 잘 먹지도 못하면서 귀신을 섬기는 데는 지극정성을 하려 했고.
ㅇ 惡衣服, 의복은 영 험하게 입으면서도 而致美乎黻冕, 불이나 면은 전부 다 冠입니다. 옛날에 면류관 할 때 ‘면’자고 불도 마찬가지로. 정확하게 ‘면’이라 하는 것은 모자고 ‘불’이란 것은 모자에 꽂는 깃입니다. 불면하면 우리 사모관대 생각하면 되죠. 사모관대에 사모가 있고 꼭지가 있지 않습니까. 꼭지를 불이라 하고 그 모자를 면이라 하니까. 고구려시대 때 옷을 생각하면 되죠. 모자를 생각하면 되죠. 둘레 쓴 것이 면이고, 띠 같은 것 두르고 거기다가 깃털을 꽂는데 그 깃털이 불이죠. 옷은 없는 형편인지 근검 하느라고 험하게 입으면서 오로지 그 모자에는 아름다움을 다하고자 했다. 왜냐 그 모자라는 건 질서를 의미하니까요. 내가 아무리 어렵게 입고 가진 것이 없고 해서 입을 옷은 없더라도 그 질서에 해당되는 것만은 지키려고 했다. 가장 아름답게 지키려고 하셨다.
ㅇ 卑宮室而盡力乎溝洫. 사는 집과 방은 천하게 보잘것없이 두면서도 구덩이 구, 구덩이 혁 다 구덩이죠. 구덩이를 파는 데는 힘을 다하셨다. 왜냐 궁실이란 데는 사는 데 불과하지만 그 구덩이를 판다 하는 것은, 보통 구혁이라 하면 관개시설을 말합니다. 고대사회에서 관개시설을 말하니까 이건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지요. 생명이 관련된 문제죠. 궁실은 비루하게 할지라도 사람들이 농업을 통해서 먹고 살 기반이 되는 관개시설에 대해서는 온 힘을 다 기울이셨다. 우 임금이 관개시설, 수리공사로 유명한 분 아닙니까.
ㅇ 그런 점에서 이 세 가지 점 등에서 禹吾無間然矣. 별 다른 점이 없다. 내가 하고자 하는 점이나 우 임금이 하고자 하는 점이나. 어떻게 보면 우 임금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스스로에게 비기고 요 임금, 순 임금께서는 스스로에게 안 비기셨죠.
ㅇ 해서 공부란 것은 계속 이 정도의 문제점이 얼핏 보면 우 임금과 비교해서 음식을 이렇게 하고 귀신을 모시는데 다하고 귀신을 모신다는 것은 전통을 지킨다는 거죠. 내가 음식을 못 먹더라도 지나간 시대를 갖다가 효라는 표현이 재미있잖습니까. 귀신에게 효를 다한다. 여기서는 귀신이란 게 결국에 천신이고 지신이고 선왕 신이니까 다 자기 조상 아니겠습니까. 효를 다하고 의복은 남루할지라도 사회질서와 관련되어 있는 위계질서를 상징하는 모자에 대해서는 아름다움을 다하고자 하고, 궁실은 비루할지라도 관개시설에는 힘을 다하고자 하는 정도의 일은 우리 일인데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현재 내가 이 정도에 가 있다고 공자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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