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옴] 성지답사를 다녀와서 ... 출처 http://k.daum.net/qna/file/view.html?boardid=FAJ&qid=33Du7&q=%B0%A8%B6%F7%B3%AA%B9%AB
8박 9일간의 짧다면 짧은 일정속에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여기에 틈틈이 적어 두었던 메모내용을 정리하면서 학우들에게도 동일한 감격이 되살아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01. 5. 8. (화) 첫째날 오늘일정개관 : 인천 국제공항(오전 10시 15분) 출발 -> 타쉬켄트 경유(오후 1시 30분) -> 타쉬켄트 출발(오후 5시 30분) ->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오후 8시 30분) -> 예루살렘(키카르 지온 호텔)(오후 10시 30분)
성지 탐방 첫날이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학교 동료들과 만나서 오전 10시 15분 우즈벡 항공을 타고 타쉬켄트로 출발했다. 드디어 8박 9일간의 성지답사 대장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비행기내에서 창문 너머로 멀리 바다가 보였다. 중국의 베이찡으로 보이는 넓은 중국대륙을 지나 외몽고 고비사막을 지나 중앙아시아로 가게되었는데 밑에 보이는 눈 덮인 산맥들이 인상적이었다. 오후 1시 30분이면 도착되는 일정이었는데 한국시각으로 오후 5시 40분에 도착했는데 알고 보니 시차가 우리나라와 4시간이 나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4시간이 늦기 때문에 약 7시간반 가량 걸린 것이다. 그리고 타쉬켄트 공항에서 4시간 가량 쉬었다. 그동안 일행 중에 외국인 집시로 보이는 패거리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한국인 청소년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며 영접. 전도캠프현장을 방불케 했다. 아이들은 나중에 이스라엘 가이드가 다니는 한인교회로 연결이 되었다. 알고 보니 집시일행들은 아랍계 유대인들이었는데 유대인 복음화가 세계복음화라는 사명아래 진지하게 복음을 증거 했지만 그들의 철저한 일신교(유대교) 사상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어쨌든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도록 여행을 떠나온 상황임에도 노는 입이라도 복음을 전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느껴졌다. 연결 편으로 텔아비브 벤 구리온 공항에 오후 8시 반에 도착했는데 2시간의 시차가 나서 5시간 가량 걸렸다. 편도 비행시간만 총 16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러고보니 두끼의 맛있는(?) 기내식을 먹었지! 이어서 관광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는데 이국적인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예수님이 태어나서 자라던 곳. 성경에 나오는 그 장소에 우리가 도착했다는 설레임으로 가슴이 뛰었다. 키카르 지온 호텔에 현지시각 오후 10시 30분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몇몇 극성(?) 학우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는지 그 주변 시가지를 1시간 가량 거닐면서 쇼핑을 했다. 히브리어로 된 간판들. 정통 랍비 차림의 사람들로 이스라엘임을 실감했다. 대체로 젊은이들이 많았고 모두 자유분방한 모습들이었다. 밤에 방황하는 청소년들은 여전했고 율법적이고 보수적인 나라에도 젊은이들의 가슴에는 봄(?)이 오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참고. 젊은이들의 표정 - 대체로 종교에 찌들고 눌린 모습, 우중충하고 칙칙함(옷모양,색깔) 액세서리, 기념품 가게 - 다윗 별, 손 모양 안에 많은 내용을 담은 목거리(악의 세력 을 막아주고, 보호하는데 사용, 부적 같음), 눈동자 모양등 뉴에이지 분위기
2001. 5. 9. (수) 둘째날 오늘 일정 개관 : 호텔 조식 후 출발(오전 8시) -> 유대광야(선한 사마리아 여관) -> 사해 엠보켓 지역 -> 네게브 사막 -> 홍해 에일랏 -> 타바국경 도착(오후 2시경) -> 시나이 반도 횡단 -> 이집트 카이로 도착후 조식(오후 10시 30분) -> 피라미드 호텔 투숙(오후 11시 30분) 오전에 조식을 하고 8시 30분 짐을 챙겨 예루살렘을 출발했다. 감람산을 지나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 예루살렘 벽들과 8개의 성문들을 지났다. 주위에 양들도 가끔씩 드문드문 보였다. 우리가 지나가는 West Bank(서 예루살렘) 지역은 이스라엘이 6일 전쟁당시 요르단에게서 탈환한 지역이라고 한다. 첫 목적지인 예수님이 시험받으셨던 유대광야로 갔다. 이곳은 눅 10:25-37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지역이고 예전엔 도피성이 있었던 지역이란다. 지형 특성상 최근에도 강도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라는데 ... 옆에 유목민(베두인)들 텐트가 보였다.
선한 사마리아 여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유대 광야로 들어가서 기념촬영을 했다. 벌써부터 일행들은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찬송을 부르며 척박한 광야에서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의 고난을 찬송했다. 이어서 여리고를 지났는데 여리고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고(B. C. 7000년경), 제일 낮은 도시(해수면 -270M)라고 한다. 지금은 팔레스틴 자치구로서 한때는 관광객들이 들어갔으나 카지노가 생긴 뒤로는 문제가 생겨 아쉽게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사해 바다 지역으로 갔는데 사해는 세계에서 제일 낮은 지역(해수면 -390M)이다. 이 물은 염도가 30%이상으로 질병치료에 탁월하고 머드팩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죽은 바다였으나 지금은 이스라엘 경제를 살리는 바다라고 한다. 지나다 보니 지형적으로 돌들이 무척 많았는데 “돌로 쳐죽여라”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우리 나라라면 나무가 많으니 “나무로 패 죽여라” 했을 것이다.
다윗이 사울을 살려줬던 ‘엔게디’지역도 지났다. ‘엔’은 샘이라는 말이고, ‘게디’는 염소새끼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유대최대 격전지였던 마사다 지역을 통과했다. 사해 남쪽 휴양지 엠보켓 지역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곳은 호텔이 밀집되어 있었고 관광개발지역이다. 유럽에서 온 장기 투숙객들이 치료를 목적으로 묵고있다는데 초만원이란다. 그리고 롯의 처 소금기둥이 있는 소돔 지역의 소금산을 지났다. 비에 소금 바위가 씻겨 허연 소금이 길에 덮여 있었다. 사해바다에선 여름이면 소금기둥들이 생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소금 공장을 지나 이스라엘 전 국토의 60%를 차지하는 네게브 사막 지대를 통과했는데 사막 한가운데 있는 울창한 키부츠가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네게브의 키부츠는 이스라엘 초대 건국위원회 의장인 벤 구리온에 의해서 개간되었다는데, 이 분은 국가의 대통령직 재임을 사양하고 네게브 사막에 들어와 일생을 바쳐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젊은이여 하나님이 주신 이 땅을 개간합시다.”) 오늘의 사막의 기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지금은 ‘네게브 사막의 아버지’라고 불려 진다고 한다.
홍해의 시작점으로 최남단인 이스라엘 최대 휴양지 에일랏(출애굽시 잠깐 진친 곳, 사막을 개간하여 가장 큰 휴양도시로 만듦, 80여 개 호텔, 면세점)을 지나 오후 2시경 타바국경에 도착했다. 이집트 가이드 고정미 선교사(강서로 교회 파송)님의 접대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타바 국경을 지나 시나이 반도를 횡단하여 바로 이집트 카이로로 가는 사막을 들어섰다. 멋있는 사막도 아닌 돌산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이 길을 쉽게 갈수는 없는터라 일행들이 나와서 장기자랑을 하면서 지루한 시간을 때웠다. 가이드 고 선교사님의 멘트가 간간이 이어졌는데 잠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집트 공무원들은 10시 출근 2시 퇴근한다는데 진짜 일할 시간 없고 게으르다. 둘째 문맹인이 전 국민의 50%로서 진짜 무식하다. 특히 경찰한테 잘못 걸리면 죽싸게 얻어터진다. 그러나 90%가 관광업으로 먹고살므로 외국인한테는 호의적(자국인 에 비해 무조건 10배)이란다. 관광경찰(있으나 마나한 사람)이 의무적이라서 안전을 위해 우리 차에도 탑승했다. 셋째 가량비에도 홍수나는 나라란다. 배수구 처리가 전혀 안돼 있기 때문이라고. 넷째 이들은 대부분 모슬렘이라서 일생에 반드시 5가지를 해야 된다고 한다. ① 하루 5번 정시기도 ② 선행 ③ 성지순례 ④ 신앙고백 ⑤ 라마단(회교금식기간 새벽 5기 ~ 오후 5시) 기간 준수. 그래서 그런지 이들은 남에게 손을 벌리는게 일상적이 되버렸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부자들을 찾아가서 손을 벌린다는데 ... “신이 네게 내린 축복에서 얼마를 얻어가는데 뭐가 대수냐? 이 돈이 네 꺼냐?” 라는 투란다. 여하튼 선조들의 과거의 유적(우상)들을 팔아먹고 사는 거지 근성이 베여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저녁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했다. 이집트 진입부터 이스라엘과는 분위기와 수준차이가 현저하게 났다. 모두를 배가 고팠는데 카이로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설렁탕을 먹고 피라미드 호텔에 도착해 12시가 되어서야 모두 취침했다.
2001. 5. 10. (목) 셋째날 오늘 일정 개관 : 호텔 조식 후 출발(오전 9시 10분) ->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 -> 예수님 피난교회 -> 점심(현지식) -> 피라미드 -> 스핑크스 -> 파피루스 전시장 -> 카이로 시내 쇼핑
아침에 알라신에게 예배하는지 이상한 북소리가 나서 눈을 떴다. 우상을 꺾는 기도를 하며 피라미드 호텔에서 밖을 내다보니 멀리 피라미드가 선명하게 보였다. 호텔 조식 후에 오전 9시 10분 호텔을 빠져나와 카이로 시내를 지나 기자지역을 갔다. 카이로 위성도시인데 지저분했고, 무허가 건물들이 난립해 있었다. 현재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다 하는데 한참 발전하고 있는 곳이였다. 카이로에 있는 두 대학이 유명하단다. 카이로 대학은 10만 명 넘는 세계에서 가장 학생이 많은데 정치적 부분에서 유명하고, 알아자르 대학은 700년대에 세워져 천년 넘은 학교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며 종교적 부분(종교법원)에서 유명한데 모슬렘으로 개종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으로 갔다. 1897년에 착공해서 1902년에 기공한 이곳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 3대 박물관(영국의 대영 박물관, 프랑스 루우불 박물관)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특히 고고학 계통의 세계적 박물관이라니 정말 기대가 되었다. 들어가면서부터 가히 압도적인 돌 조각품들이 가득했는데 1층은 왕조별로 전시해 놓았고, 2층은 한 왕(투탄카문왕: 10세에 등극 18세에 요절한 비운의 왕)의 유품으로만 전시해 놓았다. 모두 20만 여점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당시의 찬란했던 문화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었다. 황금 마스크가 전시된 방이 가장 인기가 높았는데 사람들로 초만원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된 유물들을 대충 관람했는데 부활과 생명을 중시하는 이집트인들의 사상을 느낄 수 있었다. 특별히 투탄카문의 무덤은 무덤 밑에 무덤이 있었기에 2000여년이 지나도록 숨겨져 있던 것이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카터에 의해 1922년 발굴되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파라오의 저주’로도 유명한데 그 발굴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전부 죽었기 때문. 그러나 진짜 이유인즉 무덤 위에 발라놓은 독가루와 발굴하면서 나온 엄청난 세균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란다.
재례시장을지나 카이로월드라는 3-4C의 거리에 있는 예수님 피난교회에 갔다. 현재 이곳에서 일주일에 두 번 예배(금, 일)를 드린단다. 원래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그리스 정교회(로마와 어깨를 나란히, 예수님의 인성보다 신성을 강조)였는데 451년 이단선고를 받고 그 이후 콥틱교회(자체교황 세우고 자체운영, 바실리카 양식)로 바뀌었다. 지금은 오래된 건물로 손상이 많이 되어서 유네스코에서 파견된 화가들이 복원하느라 분주했다. 교회 내부의 기둥 12개는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데 전부 대리석인데 하나만 화강암(유다기둥)으로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도 가룟유다는 증오의 대상으로 12그루 나무 심으면 하나는 죽인단다. 또 성화는 콥틱교회의 중요한 부분과 역할을 담당하는데 성자들이 기도를 상달해 준다고 하여 성화에 대도 기도한단다. 건물 윗천장은 방주모양으로 되어있었다. 정말 교회의 할 일을 잊지 말라는 의미 같았다. 항상 새소리 들리는데 새가 들어오도록 윗천장에 구멍이 나 있었다(언제나 누구나 들어오도록). 또 한국에 교회가 많은 것처럼 이집트에서는 슈퍼는 없어도 모스크는 반드시 있다고 한다. 모스크 특징은 24시간 항상 문열려 있어서 길을 가다가도 쉴 수 있고, 배고플 때도 부부 싸움한 후에도 항상 모스크에 간다고 한다. 한국의 굳게 닫혀진 교회문을 연상하면서 언제 누가 갈급하여도 올 수 있도록 24시간 교회문이 활짝 열려지기를 기도했다. 지하에는 예수님이 헤롯의 압정에서 피신한 교회라는 흔적(굴)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거의 카톨릭화되어 우상화 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카이로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유명한 기자의 피라미드로 향했다. 막상 사진으로 보던 피라미드를 대하니 규모가 엄청났다. 어떻게 저 많은 돌을 날라서 쌓았을까? 그것도 한 왕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 죽을 고생을 했을 노예들 그 중에 히브리 노예들의 탄식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큰 피라미드는 한 개에 최소 1.5ton 이상 되는 돌이 230~260만개로 쌓여져 높이는 146m, 210단, 아파트 40층에 해당된다니 기가 막혔다. 도굴꾼들이 파놓은 피라미드 내부에도 들어갔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수록 숨이 막히고 더웠다. 기대는 안 했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게 허탈했다. 그리고 낙타꾼들이 있는 언덕에서 학우들이 생전처음 낙타를 타보느라 분주했다.
스핑크스로 갔는데 피라미드로 가는 계곡신전(40일간 미이라 만드는 곳) 옆에 있었다. 몇 백미터의 창도(계곡신전에서 장재전까지의 길)를 따라 장재전(70일간 곡하던 곳)쪽에서 보니 피라미드의 위용이 더 실감나 보였다. 특히 스핑크스의 코가 날아간 것은 나폴레옹이 대포를 쏘아서 없어진 것인데 이유인즉 생명이 코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스핑크스에 줄무늬가 나있는 것은 나일강물이 들어왔다는 증거고, 저 큰 덩치(길이 73m, 머리 4m, 전체 7m)를 하나의 돌을 깎아 만들었다고 한다. 또 캄신바람에 여러 번 모래 위에 덮였다고 나왔다가 했다는데 스핑크스 발 앞에는 ‘꿈의 비석’있었다. 왜 꿈의 비석이냐 하면 전설에 의하면 아미노테 3세의 아들 투텝모세 4세가 차자라 왕이 못되는데 꿈에 스핑크스의 구호를 들어주어 왕이 되었다는 예기(출애굽시 장자재앙때 장자가 죽은 것으로 추정)다. 그리고 계곡신전안에 들어왔다. 멀리서 화강석을 깎아서 번호를 매겨 배로 운반해서 갖다 끼워 맞춰 지어졌다고 하니 그 당시의 건축술이 뛰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바닥은 빛이 조금만 들어와도 미이라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옥돌로 깔려 있었고, 지진 때문에 지붕은 무너져 없지만 벽면은 4000년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ㄷ자로 깎아 모서리를 지그재그로 끼어 맞췄기 때문이란다.
최초의 종이로 사용했던 파피루스 전시장으로 갔다. 파피루스는 나일강 범람시에만 자란다는데 지금은 가물어서 파피루스가 귀하다고 한다. 직접 파피루스를 만드는 장면도 재현해 보았다. 파피루스를 만드는데는 껍질을 벗겨내고 알맹이를 가늘게 잘라 엮어서 물기를 빼내고 프레스로 누른 뒤 그늘에 말려서 제조한다. 길에서 파는 파피루스는 옥수수 껍질로 만든 가짜가 대부분이다. 인상깊었던 것은 파피루스를 유명하게 만든 ‘사자의 서’로서 그림에 죽음의 신(아누비스신)앞의 저울로서 한쪽에는 심장 다른 한쪽에는 깃털이 있어 심장이 가벼울 때 천국에 간다한다. 또 알파벳을 밝혀낸 로제타스톤, 세상을 감싸고 있는 노트라 하늘신, 이집트 최고의 미인 네페르티티, 나일강 동편(천국)을 향한 인생나무 등이 그려진 그림등이었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저녁은 특별히 카이로 시내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설렁탕을 먹었다. 일행 중 몇몇은 팀을 이뤄 시간을 내 잠시 카이로 시내를 쇼핑갔는데 교통질서가 혼잡하기 그지없었다. 신호등도 없고 차선도 없이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건너가야 했는데 여기서 현지인과 외국인의 차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쇼핑을 마치고 밤 12시경 호텔로 돌아왔다.
2001. 5. 11. (금) 넷째날 오늘의 일정 개관 : 이집트 카이로 출발(오전 9시 15분) -> 수르 광야 통과 -> 수에즈 운하 통과 -> 마라의 샘(오후 1시 점심식사) -> 신 광야 지나 한만 파라온(오후 3시 10분) -> 시내 광야로 진입 -> 르비딤 골짜기 -> 시내산 마가랜드 호텔 도착(오후 6시)
아침 식사(어제 한국식당)를 하고 오전 9시 15분 카이로 피라미드 호텔을 출발했다. 출애굽 여정을 따라가는데 거꾸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일정이었다. 카이로 외곽에 멋진 주택가들이 보였는데 알고보니 무덤(납골식, 가족이 대대로 묻힘)이었다. 좋은 무덤에 들어가기 위해 사단의 노예가 되어 평생을 고생하는 이들이 불쌍하기만 했다. 지나가다 북한이 지어준 군사박물관이 보였다. 이집트 국경에서 군인들이 우리를 Nouth Korea에서 왔느냐고 물었던 것이 기억났다. 남한보다도 북한과 더 친밀하다는데 생각이 들었었다.
시나이 광야는 4가지 지형으로 구분되는데 수르광야(에담광야)는 평지, 신광야는 산과 언덕, 시내광야는 돌산, 바란광야는 돌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길이 4.5Km되는 수에즈 운하밑의 지하터널(홍해바다 밑)을 막 통과했다. 물보다 기름이 흔해서인지 둔덕 벽면에 먼지 안 날리도록 기름으로 덧 뿌려놓았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막의 신학대학에 들어온 것을 축하한다”는 멘트가 나왔다. 멘트가 계속되었다. “광야 40년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환경으로 내면 깊이 박혀있는 노예(거지)근성과 불신앙 빼내는 작업이에요. 구름 한점 없는 곳, 중간 중간에 오아시스가 있었지만 끝이 아니기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는 곳, 문제들로 가득찬 곳이지요. 시험을 통해서 그 사람을 알 수 있는데, 답은 이미 주셨는데 사용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는 답을 쓸 때 또 한 단계 올라가는 이치와 같겠죠?. 시험은 숨겨진 사명들, 계획들이 회복되어지고 찾아지며 발견되어지는 기회입니다.” 정말 주옥같은 멘트였다. 왜 하필이면 사막이었을까? 사막의 비밀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끝도 없는 곳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획도 없이 하나님께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불평이 나오면서도 순종하면서 가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다. 그러나 불평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곳이야말로 애굽에서의 40년 사상, 생각, 체질을 바꾸는데 최적지요 되어질 수밖에 없는 곳이다. 하나님과 나와의 단 둘이 1:1관계를 회복할 수밖에 없는 곳임을 눈으로 확인하는 기쁨을 누렸다. 오직했으랴! 우리는 에어컨 버스에 물통을 달고 다니면서도 한시간도 못돼서 원망과 불평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홍해변의 어느 휴게소에서 잠시쉰뒤 ‘마라의 샘’에 도착해서 오후 1시경 도시락(점심)을 먹었다. 짬을 내어 해변에서 축구(일명 마라의 축구대회)도 했다. 이로인해 현지 가이드와 운전수와 더 가까이 친해질 수 있었다. 현지가이드를 합숙에 데려오고자 기도했었다. 참고로 마라의 샘(출15:22-27)은 이스라엘이 수르광야로 들어가 3일길 동안 물이없어 불평하다 중간 정착지인 마라에서 발견한 쓴물로 인해 원망하다가 모세가 단물로 변화시킨 곳이다. 쓰디쓴 인생 문제의 근원을 치료하는 곳인 것이다. 오후 3시 10분 경에는 시나이 광야의 특이한 해변인 ‘함만 파라오’에 도착했다. 72도의 온천수가 흘러나왔는데 너무 뜨거워 발을 딜뻔하였다. 작렬하는 태양밑에 젊음을 감출수 없는지 몇 극성학우(?)들은 바다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시내광야에는 여기서 유일하게 자라는 싯딤 나무가 간혹 한 그루씩 띄엄띄엄 보였는데 뿌리를 깊이 내려 자란다고 한다. 이 나무는 볼품은 없으나 하나님이 필요하실 때 쓰임받은 유일한 나무로서 법궤(조각목, 싯딤나무를 조각내서 붙여서 만듦. 우리도 하나의 조각, 합력해서 세계복음화)를 만들 때 사용한 나무다.
‘르비딤 골짜기’에 멈췄다. 이곳은 출 17장에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을 얻은 곳이고, 아말렉과의 싸움(모세 손들고 아론과 훌이 붙들어 해가 지지 않음)에서 승리한 곳이다. 차가 멈추자 동네아이들이 몰려나왔다. 베두인들의 생활수준은 형편없어 보였다. 아이들은 과자를 달라며 졸랐고 거지근성이 베여있었다. 계속가다가 보니 주위에 시내산이 많았는데 우리가 갈 곳은 시내산 중에서도 해발 2280m의 모세봉이다.
오후 6시경 성 캐더린 수도원이 있는 시내산 밑 마가랜드 호텔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자마자 몇 열성학우(?)들과 호텔수영장에서 추위를 무릅쓰고 수영을 즐겼다. 내일 새벽의 시내산 등정을 위해 비교적 일찍 취침했다.
2001. 5. 12. (토) 다섯째날 오늘의 일정 개관 : 새벽 1시 30분 기상 -> 2시 30분 시내산 출발 ->모세봉 도착 및 예배(오전 4시) -> 하산(오전 6시) -> 조식후 출발(오전 8시) -> 바란광야 통과 중 모래언덕에서 휴식 -> 홍해해변에서 수영 -> 미에바 항구 부근(한국식당에서 점심식사) -> 타바국경 통과 -> 에일랏에서 휴식 -> 사해 롯의 처 소금기둥 -> 아라드 도착(마르고아 호텔)
새벽 1시 30분 모닝콜에 눈을 떴다. 2시 집결인데 약간 지체되어 2시 30분에 시내산으로 향했다. 중턱에서 만나기로 하고 낙타팀과 걷는 팀이 갈리었다. 낙타를 타는 것도 좋지만 모세가 걸어간 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중간에 중턱에서 만나 200m(300계단)의 난코스인 모세봉 고지에 함께 올랐다. 오전 4시경 모두 모세봉에 도착해서 시내산 등정 예배를 은혜롭게 드렸다. 날씨가 무척 쌀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준비해간 컵라면을 별미로 먹으면서 일출을 기다렸는데 해가 뜨자마자 주위의 사방이 붉은 색으로 꿈틀거리는 것이 생명이 용솟음치는 활력이 느껴졌다. 오전 6시경 하산해서 호텔로 돌아와 조식 후 오전 8시경 출발했다. 일정이 바쁜관계로 성캐드린 수도원은 가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안타까와하는 분들이 많았다.
바란광야(바위에 구멍이 나있음)를 통하던 중 모래언덕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모래썰매를 타기에 안성맞춤인지라 많은 학우들이 모래썰매를 탄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시내산등정때 몇 불량학우(?)들이 통제를 잘 안따라줘서 기분이 상했던 고 선교사님이 어느새 기분이 풀렸는지 지나가다 어느 홍해 해변에서 수영도 허락했다. 고 선교사님과 현지 가이드의 작별식이 잠시 있었다. 점심은 고 선교사님이 양육하고 있는 한국식당에서 특별메뉴(?)를 먹었다. 오후 3시 30분경 이집트 국경(고 선교사님과 작별인사)에 도착했고 걸어서 검문이 까다로운 타바국경(이스라엘)에서 첫날에 만났던 이스라엘 가이드 양부장님의 환대를 받았다.
이스라엘 최대의 휴양지 에일랏에서 잠시 쉰 뒤 네게브 사막을 지나 사해 지역의 롯의 처 소금기둥이 있는 소금산에서 잠시 암염을 채취했다. 중간 중간에 계속 찬송을 부르며 갔는데 이집트로 올때와는 영적분위기부터 완전 달랐다. 양부장님의 멘트를 들었다. 이스라엘의 GNP는 15,000불 정도로 선진국 수준. 이 척박한 땅에서 어떻게 돈을 버는가하면 이 나라의 주 수입원들은 다음과 같다. ① 1차 농산물 가공 - 사막한가운데 키부츠를 일궈 거기서 나오는 농산물(대추야자 열매, 가축 등)을 가공(쨈, 버터등)해서 수출하는데 유럽시장의 30% 이상을 담당 ② 군수물자 수출 ③ 관광수입 ④ 다이아몬드 가공업 ⑤ 사해 산업 ⑥ 하이테크 산업등이다.
엔게디 지역을 지나 오후 7시 최종지인 아라드(마르고아 호텔)에 도착했다. 이곳은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도시로서 ‘사막에 꽃이 피어 나리라’가 실감나는 곳이었다. 참고로 모든 호텔식당에는 음식 랍비가 따로 있어서 율법에 맞지 않은 음식을 먹지않나(고기와 우유는 같이 못 먹음) 감독하고 이방인의 음식이 그릇에 묻으면 부정하다하여 그 접시를 깨버린단다. 랍비가 째려보는 것 같아 거북한(?) 저녁 식사를 한 후 잠시 모임을 갖고 자유롭게 밖에 나가 바람(?)을 쐬고 들어와 다음 일정을 기약하고 취침했다.
【시내산 등정예배】 본문: 신 29:14-21 설교자 : 진종섭 목사님
<서론> 하나님의 언약 = 십계명, 율법 1) 주신 언약이 오늘날 우리와 함께 있는 자들과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은자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다(14,15절). 2) 우리는 구원 받아놓고도 타락한 본성 때문에 몸만 떠나왔지 영적으로는 많은 영향을 받는다. 3) 그러므로 이것 때문에 저주와 화가 임할 것을 경고한다(마지막 경고). 18절 ‘임하고 임하리라.’ 역설법. 그리고 계속하면 쓴뿌리, 독초가 나오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신분을 잃지 마라. (“너희는” - 신분회복) 출20:2 “나는 너를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신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 즉 우리는 영적 이스라엘로 행복자요 구원얻은 자이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라. 사랑하는 마음은 - 순종하며 순교하는 마음이다. 연인사이라도 사랑 떨어지면 귀찮아지듯이 사랑이 먼저 회복되야 한다.
3. 말씀이 곧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말씀 중심의 걸음을 걸어라. 말씀 붙드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 속에 들어가는 길이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하고 말씀을 꼭 붙들고 나아가야 한다. 말씀 붙든다는 것은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된다.
4.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한다.(쉽게 넘어질 수밖에 없기에 지속적으로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롬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 - 우리의 노력이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얻은 의’이다.
<결론> 몸은 관광 때문에 피곤하지만 영적으로는 다시는 시내산에 올라올 필요가 없다. 우리 인생이 더이상 시내산을 헤맬필요가 없게 된것이다. 남은 일정 팔복산, 갈보리산, 겟세마네동산, 골고다로 계속적으로 주님의 축복을 누리고, 일평생 걸음마다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서길 바란다.
2001. 5. 13. (일) 여섯째날 오늘의 일정 개관 : 아라드 마르고아 호텔 출발(오전 8시경) -> 맛사다 참관 -> 사해 수영 -> 엔게디 지역(점심식사) -> 쿰란 동굴 관람 -> 디베랴 도착 -> 갈릴리 선상예배 -> 디베랴 에덴호텔 투숙
주일 오전 6시 30분에 마르고아 호텔 로비에서 예배를 드렸다. 너무도 은혜롭고 감격스러운 예배였다. 조식후 오전 8시경 아라드 마르고아 호텔을 나와 제일 먼저 유대 최대 격전지인 ‘맛사다’에 갔다. 잠시 비디오를 시청한 뒤 맛사다(‘요새’란 뜻) 위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이 역사적인 장소는 천연적 요새로서 주후 70년경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이곳에 피신한 유대결사대가 로마 제10군단과 최후의 항쟁을 벌였던 곳이다. 결국 960명이 3년동안 마지막 으로 항쟁하다 로마군들이 7개월간에 걸쳐 토성을 쌓아 올라오자 포로로 잡혀가 노예가 되느니 차리리 제비뽑아 자결(967명, 어린이5,부녀자2)을 택한 곳이다. 이곳은 100년 곡식(헤롯대왕때 유사시 곡식, 무기저장)과 빗물받아 저장했던 수로가 있었고, 헤롯대왕의 궁전도 있었는데 그당시 화려했던 목욕탕(냉, 난방시설 완비)도 보였다. 이곳은 현재 이스라엘 군대가 충성을 맹세하는 신성한 곳이란다.
세계에서 제일 낮고 염도(30%)가 제일 높은 ‘사해바다’에 갔다. 성경에서 ‘염해’ ‘아라바해’ ‘동해’로도 불리운곳이다. 먼저 머드팩을 온 전신에 다 바르고 바다에 들어갔는데 물이 무척 짜서 코에 조금만 묻어도 따가웠다. 사해에서 나오는 유황온천에서 몸을 담그고 민물 수영을 한 뒤 엔게디 지역으로 갔다.
엔게디 지역은 삼상 24:1-15 다윗이 사울왕을 살려준 곳이고 아 1:14의 배경이기도 하다. 캄쉰 바람(50일간 부는 모래바람)이 조금씩 불어왔다. 사막의 폭포가 보였고 새빨간색 꽃이 활짝피고 노루들이 뛰노는 나무그늘 밑에서 도시락(점심)을 먹었다.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는(?)아름다운 곳이었다.
가장 오래된 사해사본이 발견된 쿰란동굴로 갔다. 사해사본은 구약성경이 전부 기록(에스더서만 빠짐, 이사야서는 전부보존)된 것으로 너무도 유명하다. 역시 비디오를 시청한 뒤 유적지를 관람했는데 특히 가장 많은 사본이 발견된 쿰란의 4번째 동굴에 갔으나 카쉼 바람이 강하게 불어 선명하게 볼 수는 없어 아쉬웠다. 계속적으로 버스를 타고 북쪽 갈릴리 지역으로 향했다. 북쪽으로 올라올수록 색깔이 푸르른게 땅이 비옥하게 느껴졌다. 멀리 사울을 장사했다는 길보아산(베샨지역)이 희미하게 보였다. 또 ‘위대한 탑’이란 뜻의 막달라(마리아의 고향)도 지났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던 요단강 세례 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요단강에 발을 담그고 갈릴리바다로 출발했다. 어떤 학우는 신성한 물(?)이라고 떠오기도. 갈릴리 지역은 지형이 현무암으로 되어있어 갈릴리 바다가 오래 전에 화산폭발로 생긴 담수호임을 알 수 있었다.
갈릴리 지역의 디베랴에 도착했다. 이곳은 헤롯 안티파스가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를 기념해 세웠고 미슈나가 편찬된 곳이고 4C 말에는 예루살렘 탈무드가 완성된 곳이다. 또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찾아오신 곳이다. 이어서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선상에서 의미 있는 예배를 드렸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물결이 치는 것이 마치 풍랑 이는 바다를 명해 잠잠히 시키셨던 장면이 연상되었다.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이 우리들을 세계복음화의 귀한 제자로 부르셨음을 확인하고 은혜의 감격을 맛보았다. 시간상 갈릴리에 있는 2개의 기념교회는 내일로 미루고 바다를 건너 디베랴 에덴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특히 그날저녁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마카비 농구팀이 유럽 챔피언컵에서 우승해서 지나가는 차마다 빵빵거렸고 밤거리는 축제 분위기였다. 그 날 밤도 디베랴 밤거리를 학우들과 거닐면서 아쉬운 일정을 위로했다.
【주일오전 새벽설교】 본문: 눅 2:41-51 설교자 : 진종섭 목사님 <서론> 이집트(애굽)는 복음을 잃어버린 화려했던 과거가 황폐해진 광야 같은 곳이다. 즉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안 되는 곳이다. 자원과 축복들을 내 팽개친 게 버려진 곳이 되버렸다. 그리고 이스라엘도 복음이 없이 우상화되고 무엇보다 예수가 없는 곳이다. 예수없는 허구를 가지고 하나님의 가장 거룩한 작업과 단어들을 쓰면서 하나님은 말씀은 온데간데없는 곳이 되버렸다. 동일하게 우리도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면 결국 우상화되어 망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1. 어쩌다가 예수를 잃어버렸는가?(43, 44절) ⑴ 주어진 형식(절기, 전례)과 시간 지키다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림. ⑵ 가장 거룩한 말씀을 말하면서도 진작 예수는 잃어버림. ⑶ 거룩한 모양내다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림. 참고. 설교는 내 것 아닌 남의 것을 하지 마라. 그러면서도 거룩한 척 하지 마라. ⑷ 하나님의 은혜와 감격을 잃어버린 가장
2. 어떤 자들이 잃어버리는가? ⑴ 제사장과 레위인 - 일 때문에 잃어버림 ⑵ 사마리아인 - 중요한 자리에서 잃어버림 - 중요한 일 때문에 뒤쳐지는 은혜의 불감증(황폐한 삶)에 걸려서는 안 된다. - 어린아이와 같은 심령으로 사탕하나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은혜의 풍성함을 잃어버리면 설탕트럭을 갖다줘도 불평이 나온다.
3. 주님의 은혜를 잃어버리면? ⑴ 방황하게 된다. - 근심, 염려 (48절) ⑵ 잃어버리는 것은 쉽지만 되찾는 것은 더 어렵다. ‘잃은 지는 하루 찾는데는 사흘 걸림’ - 더 많은 세월을 쓸데없는데 낭비하다가 보면 잃어버린 시간 되찾는데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되는 것이다. ⑶ 은혜 잃어버리면 많은 세월을 허비하게 되므로 은혜부터 회복해야 한다. - 아무리 거룩한 일을 해도 내재된 속사람은 근심상태일 뿐이다.
4. 어떻게 해야 잃은 것을 회복할 수 있을까? ⑴ 찾으면서(헬. ‘아나제테인’ - 계속적으로 찾는 모습)(45절) - 계속적으로 은혜를 사모한다는 의미. - 눅 15장 잃어버린 드라크마 ‘찾도록 찾는’과 같은 말. ⑵ 성전에서(예루살렘 - 장소)(49절) - 예루살렘(「예루」- 성, 도시, 「살렘」- 평화)은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로 우리의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 ⑶ ‘내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49절) - 우리의 삶의 모든 현장 속에 천국지점을 세워야 한다. 참고. 다윗의 고백 - 내 아버지 집의 문지기
<결론> 우리는 마치 천국의 보험 설계사와 동일하다. 이 보험은 영생보험인데 지점에서 고객을 많이 유치(전도)할수록 천국 본점으로 송금도 많이 하게 되어 승진(하늘 상급)도 하게되며 교회는 마치 이 둘 사이를 잇는 중간 관리인과 같다 하겠다. 이것은 우리의 역설의 모습이 아니던가? 따라서 우리 속의 내적 예루살렘을 잘 살펴야 될 것이다.
【갈릴리 선상예배】 본문: 눅 8:22-30 설교자 : 진종섭 목사님
<서론> 제자들을 주님이 부르시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아마 베드로는 장모 모시며 고기잡고 살았을 테고 마태는 돈 계산하며 살았을 것이다. 얼마나 무가치한 허무한 인생을 살다가 갈 뻔했을까? 그렇다면 과연 나는 주님의 제자로 부름 받지 않고 살았다면 무엇하며 살았을까? 1. 먼저 복음에 부름 받은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⑴ 주님은 더 똑똑한 사람도 많았지만 보잘것없는 갈릴리 출신(가룟유다는 제외)들을 부르셨다. ⑵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풍랑 속으로 밀어 넣으신다. (기적 후에는 반드시 문제를 주심) 왜 그랬을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람들의 환영, 인정, 칭찬으로부터 떼어놓고 분리시키시기 원하신다. 그런데 주님은 감사하게도 이런 역사로부터 떼어놓으시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는(오병이어 기적 보면서도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모름) 나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하셨다.
2. 왜 주님은 다 아시면서도 풍랑 이는 바다로 건너가게 하셨나? ⑴ 주님의 관심은 한 영혼(거라사 지방 귀신 들린 자)에게 있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관심이다. ⑵ 성지답사를 통해 한 영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기를 바란다. ⑶ 제자들의 관심(풍랑자체)과 예수님의 관심(한 영혼)은 달랐다. 예수님은 풍랑, 문제와도 그 다음에 있는 역사를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기를 원하신다.
3. 결국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다. “큰 일하신 것을 온 세대에 전파하니”(39절) 주님은 단 한번의 만남 속에서 온 거라사 지방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 제자를 세우셨다.
<결론> 우리의 걸음도 주님의 걸음처럼 한 영혼을 바라보며 지역과 시대를 살리는 제자를 세우는 발걸음이 되기를 소원한다.
2001. 5. 14. (월) 일곱째날 오늘의 일정 개관 : 에덴호텔 출발(오전 8시) -> 오병이어 기념교회 -> 베드로 수위권 교회 -> 가버나움 지역 관람 -> 팔복교회(팔복산) -> 가나 혼인 잔치 교회 -> 나사렛 수태고지 교회 잠깐 -> 므깃도 관람(이스르앨 평야지대) -> 갈멜산 -> 가이사랴 -> 욥바 -> 예루살렘 입성(키카르 지온 호텔)
오전 8시 조식후 에덴호텔 출발해서 제일먼저 갈릴리 지역 타브가의 오병이어 기념교회에 갔다. 로마 천주교에서 관리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예수님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축사하사 5000명을 먹이신 것을 기념하는 교회다. 교회안 바닥에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의 모자이크가 인상적이었다. 타브가는 ‘일곱개 샘’이라는 뜻으로 지금은 3개정도 남아있다고한다. 지금 갈릴리 호수의 물은 오염되어 벳산지역의 깨끗한 물을 끌어들여 식수로 사용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요 21:15-18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제자들(153마리, 베드로)에게 나타나셨다는 베드로 수위권 교회를 갔다. 천주교에서는 베드로를 1대 교황으로 보기 때문에 역대 교황들은 반드시 이스라엘에 오면 여기를 거쳐간다고 한다. 뜰에는 일곱 제자를 상징하는 하트모양의 돌기둥이 있었다.
다음으로 예수님이 가장 많은 이적을 베푸시고 공생애의 많은 기간을 보내셨던 가버나움 지역에 갔다. ‘카파’(마을) 나훔 - 나훔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마 8:14-19의 베드로의 집터(장모의 열병을 고치셨던 곳), 예수님 당시의 집,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셨던 곳, 백부장 하인 고치셨던 곳, 지붕 뚫고 중풍병자를 내리셨던 곳, 마 7:23-24 저주를 내리셨던 곳(고라신, 벳세다, 두로, 시돈), 마 9장에 ‘본 동네’가 되는 곳이다. 그리고 가버나움 회당을 참관했다. 여기는 남녀 기도 실이 따로 있었고, 2층은 어린이들 성경공부실로 이용되었단다. 이곳이 다른 회당과 차이가 있다면 검은 현무암(화산이 폭발한 지역, 예수님 당시의 돌)과 그 위에 4세기 이후의 돌이 놓여 있다는 점이다. 회당은 그 당시 도시의 중심지에 있었는데 그 이유는 율법에 안식일에 금했던 거리가 4km 안이었기 때문에 모든 도시의 사방에서 4Km 안쪽은 도시 중심밖에 없다. 안 뜰에 큰 연자맷돌이 보였고 올리브 기름 프레스기도 있었다. 올리브 기름은 감람유라고도 하는데 예전엔 등불, 성전의 등불, 상처치유, 미용에도 사용되었다. 이 기름은 짠 소금을 섭취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는데 석회질 희석 작용도 한다고 한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했던 장소인 팔복산의 팔복교회에 갔다. 건물이 전체적으로 팔각형으로 지어져 있었다. 건물을 짓는데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얼마의 돈을 냈다고 전해진다. 팔복산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묵상하며 마 5장의 산상수훈의 의미를 되새겼다.
요 2:1-11에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첫 번째 이적을 베푸셨던 장소인 가나혼인잔치교회에 갔다. 과거에는 결혼식후 연회를 1주일정도 행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하루나 이틀로 간편해졌다. 이스라엘의 연회문화는 밤문화인데 야외촬영은 오후 5시 정도에 하고 저녁 7-8시에는 랍비의 주례 하에 결혼식을 하고 새벽 2시까지 놀았다고 한다. 가나에 온 이상 그냥 갈 수 없었는지 물이 변한 포도주(?)를 사가는 학우들이 많았다.
버스를 타고 예수님이 어린 시절을 보내신 나사렛으로 갔다. 예수님 당시에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큰 도시로 바뀌어있었다. 이 지역은 아랍인과 유대인이 분쟁 없이 공존하는 유일한 지역이라는데 이 도시 어디에서 요셉이 목수일을 했으리라! 수태고지 교회(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말했던 곳)를 가보았으나 문이 닫혀 들어갈 수는 없었다. 교회 정문 위에 4제자의 모습이 보였다. 마태는 사자(약속된 메시야), 마가는 소(순종과 희생의 종), 누가는 인자(흠없는 인자), 요한은 독수리(성육신 하신 성자)로 예수님의 이미지를 묘사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최대 곡창지대인 이스르엘 평야(가장 크고 가장 비옥한 지대)를 가로질러 군사와 교통의 요충지 므깃도(계 16:16의 ‘아마겟돈’)에 도착했다. 이곳은 여선지 드보라가 활약했던 곳이고 애굽의 투텝모세 3세가 가나안지역 10개 하고도 안 바꾼다고 했을 정도로 탐을 냈던 곳이란다. 므깃도에 있는 유적지와 아합왕의 수로(깊이 40m, 길이 60m로 물을 지하로 끌어들였던 곳)를 관람했다. 므깃도에서 바로본 전망은 바로 앞에 이스르엘 평야가 펼쳐져 있고 멀리 좌중간에 기손강(마 17:1-8)을 끼고 다볼산(일명 ‘변화산’ 삿 4장의 드보라, 바락, 시스라 사건의 중심지)이 있고, 산 좌우로 나사렛과 수넴, 나인. 그 우측 옆에 모레산이 맨 우측에 길보아산이 보였다. 또 모레산과 길보아산 사이에 이세벨의 길을 따라 나봇과 아플라(엘리야 고향 ‘아벨므홀라’로 추정)가 보였다.
장소를 옮겨 왕상 18장에 엘리야가 바알선지자 850명과 대결했던 갈멜산에 도착했다. 이곳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지중 하나이다. 지나다보니 삼하 18:9-15 압살롬의 긴 머리카락이 걸렸던 상수리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전망대에 올라가 일행들이 함께 찬양을 부르며 엘리야에게 주셨던 갑절의 영감을 세계복음화때문에 부어 주시도록 기도했다.
갈멜산에서 내려와 텔아비브까지 이어진 샤론 평야를 지나 잠시 가이사랴항에 머물렀다. 이곳은 헤롯 아그립바1세(행 12:19, 충이 먹어 죽은 왕)가 가이사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해서 세운 도시다. 또 주후 6년경 로마총독부가 있던 장소로서 행 8:40 빌립, 행 9:30 바울, 행 10장 고넬료, 행 18:22, 22:8-16 바울의 2, 3차 여행, 행 23:23-27:1 바울재판이 있었던 장소였다. 일행들은 가이사랴항에 있는 아합왕의 수로를 관찰하고 지중해 바닷물에 잠시 발을 담군 뒤 텔아비브(現 이스라엘의 수도, ‘텔’은 언덕이라는 뜻)를 지나 욥바에 도착했다.
욥바(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간 곳)항은 베드로의 환상 중에 피장시몬의 집, 여제자 도르가(다비다)를 살렸던 집이 있었던 곳이고 솔로몬시대때는 백향목을 운반했던 항구였다. 욥바항에서 바라본 텔아비브 해변은 너무도 이국적이었고 지중해변 위에서 지는 석양은 잠시 감회에 젖게 만들었다. 다음 첫날 도착했던 길을 따라 벤구리온 공항을 지나 예루살렘에 입성. 첫날 묵은 키카르 지온 호텔에 도착해 내일의 마지막 여정을 못내 아쉬워하며 잠을 청했다.
2001. 5. 15. (화) 여덟째날 오늘의 일정 개관 : 새벽 4시 기상 -> 십자가의 길 -> 골고다 무덤 교회 -> 히브리 대학 -> 감람산 예수 승천 교회 -> 주기도문 교회 -> 눈물교회 -> 겟세마네 만국교회 -> 히스기야 수로 통과 -> 실로암 못 -> 다윗 성안 다윗의 무덤 -> 통곡의 벽(서벽) -> 선교사님 집에서 저녁식사 -> 벤 구리온 국제공항 출발(저녁 10시 45분) -> 타쉬켄트 공항(오전 5시 30분) -> 인천 국제 공항 도착(저녁 8시 30분)
새벽 4시에 기상했다. 십자가의 길을 가기 위해서다. 4시 30분에 십자가의 길 제 1지점에 도착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다가 잠시 머무셨던 장소마다 기념장소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14개 지점중 3곳에 예수님이 쓰러지셨던 장소가 있었다. 일행 모두 십자가를 한번씩 져보고 찬송을 부르며 그 길을 따라가 보았는데 은혜와 감격의 행진이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 주님의 십자가를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이면서 조용히 기도회를 가졌다. 꼭대기에 갈보리산 기념교회가 있었는데 6개 종파(콥틱교, 카톨릭교, 희랍정교, 아르메니안 교회, 시리아정교, 에치오피아교회)에서 공동관리를 하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정문 열쇠는 이슬람 측에서 소유하고 있었다. 콥틱교회의 분위기는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는 것이 우리나라 불교처럼 우상을 섬기는 짓거리 처럼 보였다. 십자가의 길(비아돌로로사)따라 골고다 언덕의 무덤교회에 갔다. 《참고로 「비아돌로로사」는 라틴어로 ‘슬픔의 길’ 이라는 뜻.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기까지의 십자가 수난의 길을 말함. 비아돌로로사는 옛길을 따라 14개 지점에 그림 또는 조각으로 표시해 놓고 그 날의 슬픈 현장을 생생하게 회상케 해 줌》 -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던 장소, 십자가가 세워진 장소, 시체를 내렸던 장소, 시체가 들어있던 무덤 장소(아리마대 요셉이 싼 무덤)가 있었다. 그 옆에 가슴에 비수가 꽂혀 비통에 젖어있는 마리아상(흉찍함)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호텔에 돌아와 식사를 한 뒤 특별히 히브리 대학에 갈 기회가 생겨 가 보았다. 세계 10대 대학 안에 들어가는 세계적인 대학이라는데, 대학의 분위기는 학구적이면서도 상당히 자유스러워 보였다. 전통 양식과 현대 양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건물 외부와 최신시설의 건물 내부는 시원깔끔했다.
감람산에 올라와서 예수님 승천 교회를 갔다. 아쉽게도 문이 일찍 닫혀버려 들어 갈 수는 없었다. 건물 위의 초승달 표시를 보아 회교도 소유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붕 위의 초승달 표시는 회교, 메노라(촛대) 표시는 유대교, 십자가는 기독교를 상징한다고 한다. 감사하게도 아랍인 휴일이라 일찍 닫힌 문을 어느 아랍인 관리가 문을 열어줘서 잠시라도 볼 수 있었던게 좋았다. 건물 내부에서 천장을 바라보노라니 행 1:9절에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특히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밟았다는 발자국 난 바윗돌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승천교회 바로 밑에는 전통 유대인 무덤들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감람산 동편이 최고 명당자리라고 하는데, 무덤에 입관은 여자는 죽은지 30일 후, 남자는 죽은지 40일 후에 한단다. 무덤 위에 돌이 많이 올려져 있을수록(인기도에 비례) 참배 객들이 많이 온 증거가 된다는데 우리나라의 성묘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기도문 교회에 갔다. 이 교회는 예수님 무덤교회와 베들레헴 탄생교회와 더불어 이스라엘 성지 3대 교회에 속한다. 현재 80개국 언어로 주기도문이 교회 내에 비치되어 있었고 프랑스 카르멜파 수도원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셨다는 지하 동굴도 보았다. 한편의 건물 벽에 한국어판 주기도문이 보였는데 카톨릭 부산교구에서 기증했다고 한다. 공동번역이라 그런지 어딘가 말이 어색하고 이상했다. 해발 830m 고지의 감람산은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계곡 건너편에 있는 산으로 참고로 이산은 감람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예루살렘 보다 약 90m가 높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예루살렘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예수님은 이 산을 자주 찾아와서 묵상을 하고 기도하며 주기도문을 가르치기도 하고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마 13:3)하기고 하셨으며 부활 후에는 승천하신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수님이 배신당하고 체포당한 겟세마네 동산은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는 이 곳 감람산의 서쪽 기슭이다.
멀리 예루살렘 성전 중앙에 황금돔이 보이는데 그곳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모리아산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다윗 성터였으나 제1성전(솔로몬 성전)과 제2성전(느헤미야 성전) 제 3성전(헤롯 성전)에서 지금은 회교사원(모하멧이 백마 타고 승천한 자리라 함)으로 변모해 버린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이 황금돔은 순금으로 입혀지기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소유권을 차지하려고 황금돔벽을 순금으로 입혀주겠다고 제안한 것을 요르단 후세인 국왕이 거절하고 자기 사비를 털어 다시 도금을 해서 현재는 요르단의 소유로 되어 있단다. 현재 여기는 유대인들이 들어가지 못하는데(?) 이유인즉 ‘지성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잘못 들어갔다가 죽을까봐서 이 곳을 지나가는 차량이든 비행기든 우회에서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지성소) 제일 가까운 곳이 서벽(일명 통곡의 벽)인데 이곳이 유대인들의 가장 큰 성지가 된 것이다.
눈물교회를 갔다. 이곳은 눅 19:41-44, 마 23:31-39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눈물을 흘리시며 우셨던 장소였단다. 참고는 주님께서는 예루살렘 감람산 뒤쪽 4Km 떨어진 베다니와 벳바게에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다. 실제 예수님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은 주후 70년 로마의 티토 장군에 의해 돌 위에 돌 하나 남겨지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었고 서쪽벽 일부만 그들의 힘과 위용의 상징으로 남겨놓았었다. 그 후 예루살렘성은 오토만 터어키의 지배 당시인 16세기에 슐레이만 대제가 쌓은 사방 1Km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눈물교회의 모양은 눈물을 본따서 지어졌다는데 지붕 네 귀퉁이에 예수님의 눈물을 상징하는 눈물항아리가 있고 정면의 돔형의 유리스텐드는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을 상징한다고 한다. 교회 건물 바로 옆에는 종료나무가 심기워져 있었다. 그리고 눈물교회 안에는 납골당이 있었는데 시체가 일년 지나서 썩으면 그 뼈를 추려서 납골당에 집어넣는단다.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이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납득이 되었다.
예수님이 자주 기도하셨던 겟세마네 동산과 만국교회에 갔다. 겟세마네란 헬라어로 “기름을 짜다”라는 뜻이다. 이곳은 마 26:36-56의 가룟유다가 배반의 키스를 하고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자른 곳이다. 현재 14개 나라의 기금으로 만국교회가 세워져있는데 정원에 있는 2000년 되었다는 감람나무가 그 당시의 일을 유일하게 목격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또 그 옆에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모습이 새겨져진 바위가 있어 이채로웠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한국인 선교사집에서 대접하는 점심식사를 먹었다. 신기하게도 이 집 선교사님 딸이 비행기에서 복음을 전해 영접한 4명의 여학생들 중의 한 명이었는데 하나님의 계획이 느껴졌다. 진종섭 목사님 내외분(Old 신혼부부)과 식사를 하면서 스승의날 축하행사와 동시에 조성욱전도사(New 신혼부부)커플을 위한 촬영식도 조촐하게 가졌다.
점심후 바로 히스기야 시대 때 성안으로 물을 끌어들여 기혼 샘에서부터 실로암 못까지의 530m 지하터널을 통과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물 속에 칠흙같이 어두운 터널을 학우들이 찬송하며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빠져 나왔는데 정말 신나는 경험이었다. 참고로 이곳에 세워진 실로암 비문은 현재 터키 이스탄불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이 곳은 솔로몬 왕이 기름 부음을 받은 장소이며 예수님 당시 소경이 눈을 뜬 장소이기도 하다. 바로 위에 다윗 성터가 보였다.
이어서 시온산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 기념교회를 갔는데 약간 늦게 도착해서 애석하게도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다윗 성안으로 들어가 다윗 왕의 무덤을 보고 난뒤 유대인 최대의 성지인 통곡의 벽(서벽)으로 향했다. 이 벽은 헤롯대왕 시대의 돌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그 당시의 건축 양식을 알 수 있어 중요하다고 한다. 벽 틈새마다 유대인들의 소원을 담은 쪽지들이 총총히 박혀있었다. 입구에서부터 남녀를 구분하여 들어가게 하는데 왼쪽과 오른쪽이 경계로 나뉘어져 있었다. 전통 유대 여성들은 머리, 무릎, 어깨를 가리게 되어 있는데 기도를 하고 모두 뒤로 걸어나오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또 머리에 카파를 쓰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었는데 카파를 쓰는 의미는 “내 머리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뜻으로 자신을 겸손히 낮춘다는 표시라고 한다. 검은 양복에 검은 모자를 쓴 사람들은 모두 ‘하시림’(종교인)으로 이들중에 랍비가 있었다. 머리와 수염을 깍지않고 기르고 다니는 사람들은 ‘나실인’들이다. 기도하는 사람 중에는 ‘탈리프’라는 하얀 천을 쓰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 서벽은 국가의 중요행사는 물론 기념일 14세(남)와 13세(여)의 학생들의 성인식, 모든 기념일 심지어는 군인들의 임관식까지 여기에 와서 의무적으로 하게 되어있었다. 서벽 안쪽 건물에 들어와 보니 도서관처럼 책장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모두 히브리어로 쓰여진 책(토라)들이었다. 소리내어 토라를 읽고 암송하는 사람. 의자를 흔들며 기도하는 사람. 중얼거리며 기도하는 사람. 벽에 키스하며 기도하는 사람 등 마치 자신들의 한을 풀 듯이 눈물을 글썽이며 간곡하게 기도하고 있는 모습들이 도전적이었다. 그러나 과연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한심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다만 이들의 진지한 태도(기도하는 모습, 토라 암송하는 모습)는 배울 만 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구약)을 붙들고 그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최선의 모습들이 육신적으로는 세계최고의 축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저력임을 엿볼 수 있었다. 따라서 언약 가진 영적 이스라엘로 부르신 우리들도 누림 이전에 잃어버린 하나님과의 진실된 관계부터 먼저 회복하고 육신적으로도 최선을 다해야 이들을 능가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아쉬운 일정을 모두마치고 점심을 대접받았던 선교사님 집에서 저녁 식사도 대접받고 곧바로 짐을 꾸려 벤 구리온 국제공항으로 서둘러 향했다. 비행기를 타고 5시간 뒤에 우즈벡의 타쉬켄트 공항에 도착했다(현지시각 오전 5시 30분). 4시간 정도 정신 없이 잠을 잔 후 7시간 뒤에 한국의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오후 8시 30분). 갑자기 숨이 탁 틔이는게 한국이 좋긴 좋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아쉬임이 베여왔다. 언제 또 다시 올 수 있을까? 꼭 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다. 여기에 와서 보고 배우고 느꼈던 모든 것을 하나도 놓치기가 싫었다. 모두에게 있어 가장 큰 수확이라면 성경을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렸다는 사실이 아닐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다. 이 여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해 오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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