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탐구] 변이음과 상보적 분포에 대하여_김슬옹
1. 하나의 음소가 환경에 따라 변화되어 실현될 때 그 음소를 변이음(변이음소)이라 한다. 이를테면 우리말에서 안울림 입술소리인 /p/는 울림 소리 사이에서 울림 입술소리인 /b/로 변이 된다. 곧 '부부'에서 첫 번째 비읍과 두 번째 비읍은 같은 문자로 되어 있어 같은 소리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다른 소리이다. 둘 다 입술소리이지만 첫 번째는 안울림소리(무성음)이고 두 번째는 울림소리(유성음)이다.
이 두 소리들은 모국어 화자들의 주관적 판단으로는 구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소리들 {[p][b]}은 한 소리로 묶을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소리의 묶음을 음소라 하고 한 음소로 묶인 여러 음성들을 그 음소의 변이음이라 한다.
2. 다른 소리이지만 다른 음소는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음소가 되려면 의미 차이를 가져와야 하는데 ‘바보’에서 두 비읍이 문자가 같은 이상 의미 차이를 가져올 리 만무하다. 곧 다른 음소가 되려면, '불/pul/ : 풀/phul/'에서의 /p/와 /ph/와 같이 뜻이 차이가 나는데 또는 서로 다른 형태소, 또는 낱말이 되는데 이바지해야 한다. 이렇듯 다른 음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같은 음소는 아니다. 그러니까 한 음소가 특정 환경에서 까멜레온처럼 살짝 변신을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옹달샘이 라식 수술로 안경을 벗었다고 해서 옹달샘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변이음이라 부른다. 그러니까 변이음은 음성과 다른 음소 중간에 존재하는 음소다.
음성 -변이음/한 음소 - 다른 음소
비읍/p/과 피읍/ph/은 다른 가족(음소)이지만, 한국어에서 /p/와 /b/는 같은 가족(음소)일 뿐 아니라 서로 상보적 관계를 맺고 있다. '상보적'이라는 말은 '배타적 분포'란 말과 같이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까 서로의 고유 자리를 지키며(배타적) 서로 도와 주는 (상보적) 관계라는 뜻이다. 배타적이라는 말은 /p/자리에 /b/가 올 수 없으며 /b/ 자리에 /p/가 올 수 없다는 뜻이다. 빨리 바꿔 발음해 보자. pabo를 bapo라고 발음할 수 없다. '가고'의 경우 'kago'를 'gako'로 발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로 밀어내니 배타적이다. 마치 엄마 역할(아기 낳기)을 아빠가 대신할 수 없고 아빠 역할을 엄마가 대신 할 수 없는 관계와 같다. 엄마가 아무리 힘들어 해도 아빠가 대신 아기를 낳을 수는 없다. 교대로 낳으면 어떨까 상상해 본 적은 있지만 정말 해괴한 상상이다. 엄마와 아빠의 이런 관계가 상보적 관계이며 배타적 관계이다. 그렇지만 같은 가족 아닌가.
3. 그렇다면 /p/와 /b/ 가운데 누가 더 큰 형인가. 누가 대표 음소이냐는 것이다. 엄마 아빠 사이에서는 아빠가 대표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라고 할 사람도 있지만 법적으로는 그렇다. 자 그럼 /p/와 /b/ 가운데 누구를 대표 음소로 삼아야 한다. 당연히 더 당당한 자를 대표로 뽑아야 한다. 환경에 덜 제약을 받는자가 대표다. 그렇다면 울림소리 사이에서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b/보다는 그렇지 않은 /p/가 대표가 되는 것이 옳다.
4. 이러한 변이음은 모국어 화자에게는 잘 인식되지 않는다. '바보'에서 첫번째 비읍 발음과 두번재 비읍 발음을 누가 다르다고 생각하겠는가.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이런 변이음소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pabo라고 구별해서 들을 필요도 없고 다른 문자를 빌려서 적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로마자 표기다.
5. 정확한 발음 원리와 음소 개념을 도입하면 당연히 로마자 표기도 pabo로 적어야 한다. 당연히 '부산'은 Pusan이다. 그러나 현행 로마자 표기는 babo, Busan이다. 이렇게 음소 법칙을 어기는 이유는 세 가지다. 하나는 로마자 표기는 단지 외국인만을 위한 표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외국인이더라도 로마자 표기는 영어 쓰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또 한 가지는 pabo로 적으면 '파보'라는 한글은 어떻게 적을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음소 표기로 하면 phabo가 되겠지만 역시 대중적 정서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파보, 파란'은 pabo, paran'으로 적고 '바보, 바란'은 'babo, baran'으로 적자고 약속을 정한 것이다.
로마자 표기와 음소 표기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2> 자유 변이음(수이적 변이음)에 대하여
변이음 가운데 같은 위치에서 나타나는 변이음으로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달리 구현되는 변이음이 있다. 이를테면 ‘갈비’는 누군가는 ‘[kalbi]’로 누군가는 ‘[kalßi]’로 발음할 수 있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때는 ‘[kalbi]’로 어떤 때는 [kalßi]로 발음할 수 있다. 이 때의 ‘/b/’와 ‘/β/’를 자유 변이음 또는 수이 변이음이라 한다. 당연히 모국어 화자들은 이런 차이를 잘 인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의미 변별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므로 한 음소/b/로 본다.
결국 변이음은 크게 보면 상보적 분포를 이루는 변이음과 그렇지 않은 자유변이음으로 나눌 수 있고 이들은 모두 한 음소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