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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인간의 야심
역대하 18:1-3
1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이 극하였고 아합으로 더불어 연혼하였더라
2 두어해 후에 저가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아합에게 나아갔더니 아합이 저와 종자를 위하여 우양을 많이 잡고 함께 가서 길르앗 라못치기를 권하더라
3 이스라엘 왕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시겠느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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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
다윗의 처음 길로 행했더니만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에게
부귀와 영광이 차고넘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사 왕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하나님과 함께 해서
하나님의 신앙심대로 잘 살았는데,
끝에 가서 도리어
하나님의 선지자를 옥에 가두고
백성들을 학대하고
결국에는 심한 병이 들어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던 선배들이
처음에는 잘 믿다가
나중에가서는 아주 전락해 버리고 마는
그래서 자기 힘과 이성과 지혜와 노고로
원상태로 회복해 보려고 하는
부질없는 불신앙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한, 둘이 아니라
계속 연이어 터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의 공통점입니다.
그러니깐 처음 예수 믿을 때만
예수님이 힘주시고
나머지는 우리 힘으로
신앙생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 하루라도
성령의 은사와 주님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의 신앙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되어있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자기 힘으로 신앙생활 유지하려고
무수한 기도와 헌신을 해봤자
그 기도와 헌신이 또 나에게 올무가 되고 맙니다.
내가 이만큼 기도하고
대단한 헌신도 했는데
왜 하나님은 왜 내가 원하는대로
이루어 주시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만 믿기 위해서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도리어 주님을 믿기는커녕
주님을 못 믿을 분으로
점점 더 밀어붙이는
그런 결과를 낳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잘 하다가
갑자기 차갑게 식어져서
모든 것에 나자빠지는 그런 경우를
우리 주위에서 많이 보게됩니다.
또 반면에 수년동안 교회에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산다는 것 자체가 죄인인 것을 깨달아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는
텅 빈 마음으로 주께 돌아오는 사람들도
많이 보게됩니다.
그런 것을 볼 때에
신앙이라는 것은
어떤 절차나 형식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바람같이 부는 성령께서 임의로 불어서
임의로 인도하는 자,
주의 기적으로 매일같이
연속적으로 기적이 이루어질 때만
신앙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인간의 손에서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계속 유지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 지난 시간에 아사 왕을 이야기하면서
그 여호사밧은 이제
그러한 전처를 밟지 않겠지 하는
기대를 가득 품고
워낙 인간 같은 인간이 없으니깐
"여호사밧 당신만큼은
제발 신앙생활 제대로 좀 해주소서"라는
생각을 성경을 보면서 갖게 됩니다.
여호사밧이 17장 3절,4절에 보면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 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부친이 하나님께 구하며
그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좇지 아니하였음이라"
이렇게 나올 때에
"야! 여호사밧은 이제 인간 되었다
여호사밧은 아마 끝까지 신앙생활 잘 할거다 "
이렇게 모두 짐작을 했었습니다.
여호사밧이 이렇게 말씀대로 잘하니까
17장 10절에
"여호와께서 유다 사면 열국에 두려움을 주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매" 라고 합니다.
나라에 전쟁이 없으면
모든 생산적인 일에 전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태평성대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에 여호사밧이 왕이 되어 있을 때에
전쟁이 없었던 것은
여호와께서 싸우지 못하게 말리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전쟁사를 훑어보면
특징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기도 변변치 못하고
적들을 이길 만한 힘도 전혀 없습니다.
적들은 장대 같은데
이스라엘은 메뚜기 같습니다.
늘 그랬습니다.
그런데 특징은
이스라엘이 숫자 작다고 얕잡아보고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먼저 공격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다 계산해 넣으신 일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백성들이 미약하게 보이는데서
성급하게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냥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
"저건 우리의 밥이다"해서
겁없이 그냥 쳐들어오는 거예요.
쳐들어오게 되면
쳐들어오는 수십만의 적들과
보잘 것 없는 자신들의 힘을 비교해 보면서 "하나님이여 도와주소서"
이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적들의 강함을 보시는 게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겸손함을 보시고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그 쳐들어오는 적들을
형편없이 작살을 내서 쫓아내 버립니다.
그래서 다시 이스라엘은
태평성대를 이루게 됩니다.
허나 그게 끝이 아닙니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이렇게 권태로울 정도로
일이 잘 돌아가니까
슬슬 과거에 자기를 도와준 하나님을 버리고
이제는 자신들이 알아서
잘 살아 왔는 양 여기며
자기에다 힘주면서 살아갑니다.
그때 다시 이스라엘보다 훨씬 강한 적들이
난데없이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또 압제를 합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이 견디며
나름대로 아부도 하고
아양을 떨어보고
정치적으로 잘 해보려고 하다가
결국 못 견뎌서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다시 구원자를 보내 가지고
이스라엘의 적들을 쫓아내고,
이렇게 열 번, 스물 번
계속 되풀이되는 것이
바로 여호수아요 사사기 입니다.
그것이 사무엘상, 사무엘하,
역대상, 역대하로 계속 이어집니다.
지난 시간에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계명을 지키고 율례를 지키며
전적으로 하나님 믿는 그 편안한 마음,
하나님을 믿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얘기했습니다.
걱정근심이 다 달아나 버리고
언제 걱정 근심이 있었나 할 정도로
두려움 없이
그저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이 희열과 기쁨과 환희에 잠겨서
매사를 감사하면서 살아야 되지요.
그런데 이러한 일이 지속되니까
17장 12,13절에
"여호사밧이 점점 강대하여
유다에 견고한 채와 국고성을 건축하고
유다 각 성에 역사를 많이 하고
또 예루살렘에 크게 용맹한 군사를 두었으니"...
이것은 뭐냐하면
이제 여호사밧에게
하나님께서 얼마나 잘해 주셨는지
본문에 부귀영광이 극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합으로 더불어
연혼하였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제 슬슬 자기 조상 솔로몬 짝이
나는 겁니다.
풍부하고 잘 될 때에
조심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때를 틈타
어떻케던 넘어트리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버리고
이제는 신앙도 아닌 인간들과 조약을 맺고
주변에 있는 인간들의 힘을 의지하면서,
이제는 하나님 없이 독자적으로
독립해서 살고 싶다는 거예요.
하나님이란 귀찮은 존재를 떼어버리고
하나님 없이 내 힘으로 편하고 부담 없이
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슬슬 마음속에 들어온 겁니다.
왜냐하면 있는 걸로 풍족하고
혹시 적들이 쳐들어와도
각종 보물과 재물을 줘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남는 것이 많으니까 말입니다.
자... 태평과 교만이 더욱 더 심해지니까
그 다음부터는 적들이 쳐들어온 게 아니고
아예 자기가 지금 갖고있는 힘을
한번 과시해 보려고 하고
시험 해보려는 거예요.
내가 가진 힘이 어느 정도로 센가
한번 시험을 해보려고 하는 겁니다.
어떤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자기가 하나님 말씀대로
목회를 잘하고
자기가 하나님의 종으로써
목사로 충실히 일했기 때문에
이만 이만한 복받을 자격이 되지 않느냐는
이런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례들을 무시하면 되겠느냐 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옵니다.
그런 때 이 주장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내가 이렇게 훌륭한 목사,
목회자라고 주장하시는데
그렇게 교만해 하는 그 순간에도
진짜 주님만 섬기고 주님만 바라보면서
이름도 빛도 없이 어렵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있는걸
당신은 왜 모르느냐" 는 반박합니다.
좀 풍족해지고 교인들이 모이면
다 내가 잘했기 때문에
이만큼 되었다고 하는 그 순간에도,
정말 아무 것도 없이
오직 주님 구원해 준 것만 감사해서,
자기목숨 내어놓는 그러면서
변변치 못하게 어렵게 살고 있는
그런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점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건방을 떨면서 교만하게
자신의 목회 능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자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보통 사람이나 교회에서
자기역사, 자기시간을 따로 갖겠다는 이 말은
지금 현재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무시하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 역사가 저렇게 찬란하고
나의 과거가 저렇게 찬란하니
나라는 인간은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여기는 자는 아직도 자기역사, 자기과거를 품고
그것을 쥐고 사는 자이고
이런 자는 지금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을
차버리는 셈이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네 인생은
하나님께서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거저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저 받은 인생을 가지고
마치 나 스스로 보상 받을만한
가치 있는 삶으로 내가 알아서
일부로 전환시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내가 이만큼 가치 있는 인간이니까
이 정도 보상쯤은 받아도 괜찮쵸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너는 댓가 없이 내가 공짜로 준 인생이야
나의 십자가 피로 공짜로 준 인생인데
그 공짜로 받은 인생을
자기영광을 위해서 전환을 시키려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심리가 본문에 나옵니다.
본문에서 여호사밧이 은, 금이 증식되고
영광이 풍부한 것은
하나님께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 왕은
이건 내가 잘해서 내 공로로 얻은
영광과 복이기 때문에
이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만히 있는 이방나라를 쳐서
자기가 얼마나 세고 대단한지를
시험해보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건방진 여호사밧이 죽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여호사밧을 얼마나 추겨 올렸습니까?
하나님 믿는다고
편안하게 걱정 없이 용감하게
하나님말씀만 사랑하는 사람을 봤느냐고
그렇게 추켜 올렸건만,
그래서 하나님께서 부귀와 영광을 줬더니만
이제는 그 부귀와 영광이
내가 잘 나서 얻은 내 노고와
내 진력한 뜻에 의해 주어진 것처럼
오해하고 이것 가지고
새로 어떤 생산에 나서는
자기영광, 자기과시에 나서는
이러한 오류를
또다시 범하고 있는 겁니다.
원래는 이스라엘은 전쟁을 하든,
무엇을 하든 간에
항상 여호와의 지시를 받아야됩니다.
왜냐하면 그 전쟁은
여호와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자기 십자가 피의 공로로
자기가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냅니다.
그러면 전도를 누가 합니까?
보내신 자가 아니면 또 다른 누구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시하고 명령하실 겁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주의 명령과 지시를 받아서
이것은 내 사명이 아니고
주님의 사명이라 여기고
묵묵히 수행하면 될 터인데
현실을 돌아보고
자기 마음에 안 차니까
그만 욕심이 생겨서
그 다음부터는 내가 가진 힘으로
뭔가 해보겠다는 거예요.
주께서 지금도 쉬지도 않고,
졸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며
우리와 함께 동행한다는 말은
곧 네 인생, 네 한발자국 한발자욱이
너의 역사가 되고
너의 전통이 되고
너의 시간이 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어제 저녁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주여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셨군요
저는 십자가만 바라봅니다."
그렇게 이야기할 거예요.
그런데 십자가에 죽으신 일이
이천 년 전 일이니까
이젠 듣기도 싫은
옛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습니다.
시간이라는 게 없습니다.
매일 십자가 앞에서
오늘 아침에 십자가 터졌다 생각하시고
우리는 그 앞에서
"주여 나는 부족합니다
주님만 의지합니다." 는 심정으로
매일같이 십자가 앞에
서 있어야 됩니다.
이걸 갈라디아서 2장에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그 2000년이라는 긴 시간을
나의 역사와 나의 시간으로 채워버립니다.
그러시면 안됩니다.
어제 밤에 주께서 돌아 가셨다든지
두 시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셨다면
그때부터 이 시간은
주님의 시간이지 나의 시간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나의 시간,
찬란한 역사,
화려한 과거사를 가지고
2000년 동안이나 이어져 온
십자가의 공로의 역사는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은
더 이상 주님이 필요치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여전히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있었고
늘 우리에게 지시를 하심을 믿습니다.
여러분, 나의 직업이 마음에 안 듭니까?
그러지 마세요.
주께서 주신 직업입니다.
현재 나의 처지가 마음에 안 듭니까?
주께서 십자가 지시고 주신 처지입니다.
매일 주신 상황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명 감당하라고 주신
현장입니다.
바로 여호사밧은
이것을 놓쳤습니다.
끝으로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17장 11절에
"블레셋 중에서는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리며
은으로 공을 바쳤고
아라비아 사람도 짐승 떼
곧 숫양 칠천칠백과 숫염소 칠천칠백을
드렸더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아라비아 사람도 여호사밧에게 바치고
블레셋 사람도 여호사밧에게 바치니까
여호사밧이 완전히 돛대가 되어서
자기가 힘을 가졌으니
이 모든 재물을 얻게 되었다고
착각을 한 거예요.
만약 우리가 지금 당장 한 푼도 없는
거지가 되었다면
누구를 의지하게 됩니까
"주여 굶겨 죽이든지 살리든지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이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이럴 때
자기 역사가 없어지고
자기과거도 사라지는 거예요.
우리에게 많은 돈이 주어졌을 때,
그것은 하나님 의지하느냐
돈을 의지하느냐
시험하시려고 주시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받은
사명만 있으면 족합니다.
더 이상은 필요치 않습니다.
내가 무얼 할꼬 이것만 생각하시고
내가 이만큼 가졌다는 생각,
그런 생각은 잊어버리는 게 좋습니다.
우리는 잘 될 때, 풍부할 때, 힘있을 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