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클라베 사진
카톨릭 신자들은 교황을 일컬어 ‘어부의 신발을 물려받은 자’라고 한다. 이는 교황이 예수가 교회를 이끌어 가라고 한 베드로-어부였다고한다-를 잇는 자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종들의 종, 혹은 대제사장, 로마 주교등의 명칭도 존재한다. 물론 이는 실제적인 어떠한 직함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이름일 뿐이다.
교황을 말할 때 가장 손쉬운 설명은 세계 최대 규모의 종교단체 중 하나인 카톨릭 교회의 수장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많은 신자들의 정신적 지도자이며, 따라서 어떤 특정 국가의 수장보다도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한 지금, 차기 교황으로 누가 선출될 것인지에 세계인이 이목이 집중되어있다.

바닥에 입을 맞추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선출은 콘클라베라는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다. 콘클라베는 ‘열쇠를 잠그다’라는 의미를 가지고있다고 하는데 교황의 서거 후 15에서 20일 사이에 열린다. 선거권는 80세 미만의 추기경들에게만 주어지는데, 수가 최대 120명으로 제한돼 있다고 한다.
추기경들은 첫날 저녁에 1회를 제외하고는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씩 투표를 하게 된다. 투표는 비밀투표로 이루어지며 3분의 2 이상의 득표자가 나올때 까지 계속되고, 12일동안 투표해도 결과 나오지 않으면 절대 과반수로 규칙이 바뀌게 된다고 한다.
교황이 선출되면 추기경단의 단장이 선출된 사람에게 즉위를 수락할 것인지 묻고, 그에게 곧 즉위명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서거한 크라우코의 대주교 카루 보이티야는 선출당시 ‘요한 바오로 2세’라는 즉위명을 택했다-그후 외부 사람들에게 새로운 교황의 이름을 알리고, 새로운 교황은 바티칸 대성전의 발코니에서 전세계에 축복을 내린다.

교황의 장례 행렬.
카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교황의 서거를 애도하며,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를 약간 정리해서 올립니다.
첫댓글 콘클라베의 기원은 어떻게 되나요.
콘클라베의 열쇠를 잠그다라는 의미는 16세기 초 교황선거가 지연되자 비테르보시 당국이 자극을 주기 위해서 추기경들을 감금하고 빵과 물과 포도주만 공급하며 외부와 접촉이 차단된 상태에서 비밀투표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3세기에는 다른 주교들과 마찬가지로 교황도 그 지방의 성직자와 신자들에 의해 선출되었다. 그러나 4세기 들어 교황의 영향력이 확대됨에 따라 황제나 귀족들의 간섭이 심해지기 시작했고, 6세기 들어서 교황들은 그들의 당선을 황제에게 보고하고 그 승인을 얻어야만 했다.
9세기부터는 황제나 귀족이 교황을 임명하고 해임하는 등 교황권에 대한 침해가 극도에 달했다. 이러한 외부세력으로부터 교회 자유를 지키려는 노력은 니콜라오 2세 교황에 의해 가시화됐다. 니콜라오 2세 교황은 1059년 교황선거권을 추기경들에 국한하는 교황선거법을 제정해 자율적인 선거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후 1179년 제3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3분의 2라는 다수결 선출방식이 결정됐으나, 이 방식은 선거의 지연과 아울러 교황의 공석(空席) 기간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에 교황 선거의 안정성을 위해 「추기경단만의 선거권」과 「3분의 2 다수결」 외에 또 하나의 요소가 첨가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콘클라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