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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소설과예술 원문보기 글쓴이: 그림자와뒷모습까지
바이러스
김서련
그녀는 몇 개월간 집요하게 해골을 그림의 소재로 삼고 있다. 그 많은 그림 소재들 중에 왜 하필이면 인간의 두개골(skull)일까. 그녀의 방에서 맨 처음 그것을 봤을 때 단순히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조품인 줄 알았다. 아무렇지 않게 만지작거리다가 그것이 진짜 해골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섬뜩한 기운이 내 몸을 휘감았다. 나는 해골을 얼른 그 자리에 놓았다. 인류학을 전공한 그녀의 친구가 아프가니스탄 여행 중에 선사시대의 무덤이 모여 있는 한 마을을 지나다가 우연히 발견하여 터번 속에 숨겨서 세관원을 통과했다는 해골은 의과대학 학생들을 위해 화학 약품으로 처리한 표본처럼 보였다. 뜨거운 햇살에 탈색되어 희고 투명했다. 꽉 들어찼던 몸의 기억들이 모조리 빠져나간 해골의 뻥 뚫린 눈과 코, 귓구멍 안에서 희미한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사실은 늙고 병든 환자들로 채워진 요양원에 떠돌아다니는 오래 삭힌 듯한 죽음의 숨결인데,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나다를까, 그녀는 이젤 앞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해골이 스케치되어 있는 캔버스 밑에는 서너 번은 고친 듯 지우개 가루가 흩어져 있다. 인기척을 내며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자 그녀가 뒤돌아본다. 웃으려고 하다가 만 얼굴 표정이 어색해 보인다. 아침은 먹었어요? 프러시안 블루와 에메랄드 그린 색연필의 심을 접시에 문지르는 그녀의 섬세한 손놀림에 시선을 던지며 묻는다. 그래,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단조로운 그녀의 대답에 쓰디쓴 물이 내 혓바닥에 고인다. 간이 탁자 위에 놓인 72색 색연필과 팔레트, 연질 지우개, 파란색 통 안에 들은 제소를 내려다보며 오늘은 수채 색연필인가, 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심을 갈아서 물에 풀거나 심에 물을 묻혀 팔레트에 직접 문지르면 수채 그림물감과 똑같은 상태가 되는 색연필은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재료이다. 연필, 먹, 수채화 물감, 색연필, 카본을 압축시켜 만든 콩테 등으로 그린 해골 그림들이 벽에 걸려 있거나 바닥에 세워져 있는, 원장의 특별한 배려로 주어진 일반 병실 두 개만 한 방을 둘러본다. 해골을 소재로 그린 것인데도 재료와 색채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해골이 처음의 느낌과는 달리 친숙하게 느껴진다. 서랍장 위에는 소화제인 빨간색 알약과 신경안정제인 리튬과 변비약인 흰색 알약 두 개가 투명한 비닐 봉투 안에 얌전하게 들어 있다. 정말 이럴 거냐고, 약은 꼭 먹어야 한다고 목소리에 잔뜩 힘을 실어 말한다. 저녁에 먹는 약에는 수면제가 들어 있다. 아냐. 그래도 잠은 좀 잤어. 잠을 설친 표정이 역력한 그녀는 여전히 눈길을 그림에 던진 채 일부러 밝게 꾸민 듯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녀의 말투 이면에는 분명 삶에 지친 영혼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약을 그녀의 손바닥에 올려놓으면서 어서 먹으라고 재촉한다. 약을 입안에 한꺼번에 털어넣은 뒤 냉수를 쭉 들이마시는 그녀의 행동이 자연스럽고 담담하다. 내 예상을 벗어난 그녀의 행동에 한순간 실망한다. 나는 대체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그녀가 요양원에 들어온 것은 일 년 전이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으로 입원비가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한 이곳은 돈 없고 갈 데 없는 노인들이 줄을 서 있어서 아무나 들어올 수 없었다. 입원한 환자들도 대부분 65세가 넘은 노인들로 뇌졸중으로 팔다리가 불편하거나 경미한 치매를 앓고 있었다. 이런 곳에 54세인 그녀가 입원한 것은 예외적인 일이었다. 십 년 넘게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해 온 그녀가 어떻게 해서 요양원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누군가 힘을 쓴 것은 분명했다.
아무튼 나는 서류에 적힌 주소와 이름을 보고서야 그녀가 한 동네에 살던 언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울에 위치한 대학에 들어간 이후 한번도 고향에 내려온 적이 없는 그녀가 예전에 살았던 집의 주소를 기입한 게 의아했지만 무슨 이유가 있거니 하고 넘겼다. 그녀를 첫눈에 알아보지 못한 것은 삼십 년이란 세월이 지난 탓도 있겠지만 그녀가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그녀는 전교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은 재원인데다 뛰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맑고 투명한 피부와 단아한 콧날, 잘 익은 자두처럼 붉고 도톰한 입술, 촉촉하게 물기가 어려 있던 커다란 눈을 가진 그녀는 피부가 새까매서 아프리카 깜둥이,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내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세월의 탓으로 돌리기엔 그녀의 얼굴은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누렇게 뜬 피부와 광대뼈가 드러난 얼굴, 앙상한 쇄골, 축 늘어진 가슴, 비썩 마른 몸에서 예전의 그녀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굳이 그때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 부분을 찾아내자면 바로 가늘고 긴 목선이었다. 주름살이 처지긴 했지만 어깨에서 타고 올라간 선은 여전히 섬세하고 생동감이 돌았다.
그녀는 스케치북에 정착시킨 에메랄드 그린 색이 건조해지기를 기다려 그 위에 다시 레몬색으로 덧칠한다. 물에 적신 붓으로 다시 한 번 더 덧칠하자 색이 물에 서서히 녹으면서 바탕색이 투명하게 비친다. 해골의 뻥 뚫린 눈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이 조용히 흘러나와 그녀의 내장, 뼈, 혈관에 스며드는 것 같다. 칼 뤼베르크의 말에 의하면 색이 눈과 피부를 통해 몸에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이며 몸 전체가 빛의 수용체이래. 그래서 에스키모 여자들이 달이 어두운 동안에는 월경도 하지 않고 따라서 임신도 하지 않지만 빛이 강한 남쪽 열대 지방의 여자들은 일 년 내내 임신을 잘 한대. 언젠가 색채는 빛이 산출해 내는 것으로 빛이 물체 표면에 닿아, 일부는 흡수되고 일부는 반사 또는 여과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물체는 고유의 색을 갖게 되고 그것이 그대로 우리에게 지각되는 것이 실재의 색이라고 설명해주면서 그녀가 덧붙인 말이 떠오른다. 놀랍게도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누렇게 뜬 그녀의 얼굴에 혈색이 감돌고 머리카락에는 윤기가 흐르고 가슴에 살이 붙어 오목해진다. 입을 헤 벌리고 물로 색의 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그녀를 떨리는 가슴으로 쳐다본다. 그녀가 붓으로 터치할 때마다 가뭄에 수분이 증발한 나뭇가지처럼 말라비틀어진 그녀의 몸에 물기가 스며들고 그녀의 마음에 고여 있는 어둔 그림자가 밀려나오는 것 같다. 푸르고 붉은 빛이 어려 있는 그녀의 몸을 안으면 그 빛이 내게로 전이될까. 마른 가슴을 열어젖히고 거기다가 붓질을 해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이 서서히 밀려오는 것을 두려워하며 나는 고개를 돌린다.
간호사실 유리창으로 뿌연 빛이 스며든다. 푸릇푸릇한 잎사귀를 단 나무들이 검은 비구름이 내려온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 사무실 한 쪽에서 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휴대 전화를 붙들고 있다. 엄마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지 알지? 그래, 그러니까 할머니 말 잘 듣고 있어. 간헐적으로 들리는 통화내용으로 봐서 아마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와 통화중인 모양이다. 저릿저릿해지는 마음을 움켜쥐고 한 달 스케줄이 빽빽하게 짜여져 있는 달력만 뚫어지게 들여다본다. 내일은 자꾸만 눈이 침침해진다는 환자를 데리고 안과에 가야 하고 다음날에는 치과, 그 다음날은, 의사가 오는 날이니까 그동안의 상담일지를 정리해 놓아야 한다. 그런 식으로 일하다 보면 일 주일이 금방 지나가고 한 달은 더 빨리 지나간다. 5월인가 하면 어느새 6월이고 12월이다. 그렇게 흘러 보낸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순간 툭, 하고 터진 석류알처럼 순식간에, 아이가 강렬하게 그립다. 아까 미스 윤의 전화 통화를 들을 때부터 간신히 눌러왔던 그리움의 봇물이 툭 터져 버린 것이다.
좀더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불현듯 중얼거린다. 좀더 잘해 주었더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지루하게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중학교 2학년이던 아이는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5년이란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그때의 일이 생생하다.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전의 조짐과 일을 당했을 때의 상황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앞과 뒤를 연관시킨다. 아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어떻게 말해야 했고, 아이가 이런 행동을 했을 때, 저렇게 반응했어야 했는데……. 수 년째 반복해 온 일은 언제나 절망과 후회와 죄의식으로 직행한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날 불러놓고 말했다. 너무 내성적이라서 친구를 사귀지 못하니 부모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나는 시간이 지나가면 나아질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겼다.
왜 그랬을까.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후회해도 할 수 없지만 나는 또 후회한다. 그 당시, 나는 선박회사에 입사하여 승선 생활을 시작한 지 10년만에 선장으로 진급한 남편이 배에서 내리는 바람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3만톤급 배의 선장으로 미국에서 인광석을 선적하고 파나마 운하를 경유하여 호주의 남서부 에스페란스 항으로 들어가던 중 해도에 기재되지 않은 암초에 걸려서 배가 좌초한 뒤 남편은 배를 그만 타겠다고 선언했다. 도대체 이유가 뭐예요? 막막한 심정으로 남편에게 물었다.
그 사고는 이등항해사가 항로고지에 기재된 암초를 개정하지 않았던 데서 기인한 거야. 그럼에도 소송이 2년 6개월간 계속 되고 있어. 법에 관해 이렇다할 조언을 구할 선배 선장도 없어. 한국이나 일본의 선박이나 해운관행에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도 한국이나 일본의 선장을 제쳐두고 영국과 호주의 선장 출신들만이 참석해. 모든 게 다 법에 무지한 탓이야. 좀 늦은 감은 있지만 법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해상법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
단호하고 자신에 차 있는 남편의 말에 퇴직금으로 당분간 생활비와 아이 교육비는 충당할 수 있겠지만 그 돈이 떨어진 다음에는 어떻게 하냐고, 아파트를 사느라 융자받은 돈은 어떻게 갚을 거냐고 물었다. 법률사무소에서 해기전문인(marine specialist)으로 일하면 돼. 해기전문인? 생소한 단어였다. 법률사무소에서 시니어 변호사를 도와 해상 클레임이나 해난사고와 관련된 소송을 진행하고 해기관련 문제에 자문을 하는 전문인을 말하는 거야. 착잡한 심정으로 쳐다보는 내게 그는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영어실력과 배를 탄 경험, 선장자격증, 법학석사 정도의 학위를 갖추면 법률사무소에 취직할 수 있으니까. 다행히도 항해사, 선장 생활을 할 때 정기용선, 항해용선 계약서나 선하증권 등에 관심을 가지고 참고 서적을 찾아보면서 공부했는데, 그것 덕분에 공부하기가 훨씬 쉬워. 나중에 취직할 때 선장 경력도 많은 도움이 될 거야.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나와 아이는 뒷전에 둔 채 공부에만 전념했다. 갈수록 불만이 쌓였으나 학교 자모회에 참석하고 숙제를 점검하고 간식을 해 먹이고 문화센터에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는 것으로 풀었다. 아이의 학업 성적이 부진했지만 나중에 철이 들면 열심히 공부를 하겠지, 하고 자위했다. 그것보다 가족과 단절한 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남편과의 갈등 때문에 미처 아이한테 관심을 가지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아이가 부진한 학업 성적과 내성적인 성격으로 친구들한테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이가 반친구들이 괴롭혀서 학교를 못 다니겠다며 전학시켜 달라니, 아프다는 핑계로 학교를 결석하는 등 몇 번이나 신호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럴 때도 있다면서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거였다. 아이가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은 이혼을 들먹거리며 남편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그 전날, 아이는 친구들로부터 구타를 당했었다.
컴퓨터에서 환자들의 상담 내용이 이름순으로 정리되어 있는 파일을 불러낸다. 정미숙이란 이름에 커서를 갖다대며 그동안 수집한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본다. 이번 달 안으로 그녀에 대한 사례보고서를 끝내고 보고해야 하는데 해골에 집착하는 것 이외에 별다르게 적용할 내용이 없다.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멀쩡하다. 마우스를 두 번 클릭하자 사례보고서의 초고가 모니터 화면에 나타난다.
- 우울증에 대한 사례보고서
작성자: 신아영 환자: 정미숙
날짜:2004년 6월 17일
1. 증상
정미숙 씨의 하루 일과는 해골을 그림으로써 시작된다. 그림을 그리는 재료는 다양하나 주로 수채 색연필을 많이 사용한다. 색이 정해지면 다양한 방법으로 채색함. 그녀가 내게 설명해 준 방법은 다음과 같다. 해칭-일정한 방향으로 반복된 터치로 긋는 평행선이 기본이지만 선의 방향을 바꿔 교차시키는 크로스 해칭도 있음. 점묘, 자나 템플릿 등 용기 사용, 덧칠, 바림-일종의 그러데이션으로 형태나 색의 점차적인 변화를 의미, 밑그림을 끝내고 채색할 때 더럽히고 싶지 않은 부분에 테이프나 필름을 붙여서 커버하는 마스킹, 스크래치, 제소 등등. 이렇게 해서 완성된 그림은 벽에 걸거나 상자에 넣어 보관한다.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일 주일에 한 번 하는 미술 프로그램에도 참가하고 음악 치료도 받고 모래 놀이도 함. 혈압과 혈당은 정상. 불면증이 있으나 수면제를 먹지 않음. 다른 환자들과 교류관계는 거의 없다.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완강하게 반대함. 지난 10년간 여러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아 왔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2. 정보
A. 어린 시절: 할머니와 단 둘이 자람. 집 바로 앞에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었고, 겨울이면 창문이 덜컹거려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밖으로 나가 산을 바라보곤 했다. 짐승들이 우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지만 무서워하지 않음. 구름 사이로 흘러가는 달을 보며 엄마를 그리워했다. 새벽 무렵, 부옇게 날이 밝아오는 하늘을 볼 때마다 오늘은 엄마가 자신을 데리러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림을 그리기 좋아하는 그녀는 종일 신문지나 광고지, 혹은 못 쓰게 된 노트나 스케치북에 엄마 얼굴이나 사물들을 그림. 정자나무와 돌, 계곡에 흐르는 물, 곤충, 벌레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함.
B. 청소년기: 할머니가 죽고 난 뒤 엄마와 함께 살기 시작함. 버스회사 사장과 재혼했다가 이혼한 엄마는 그녀와 살기 위해 시내에 집을 얻음. 소읍에서 국밥집을 운영한 엄마는 그녀를 가게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함. 그녀는 단 한 번 가게에 나감. 멀끔하게 생긴 남자와 술을 마시고 있던 그녀의 엄마는 그녀를 매몰차게 야단을 침. 엄마에게 남자가 필요하다고 처음으로 인식.
그녀의 엄마가 며칠씩 집을 비우고 안 들어올 때마다 그녀는 엄마가 사라질까봐 두려워함. 거의 공포감을 느낄 정도임. 몹시 변덕스러운 성격의 그녀 엄마는 하루에 수십 번도 더 기분이 변함. 그녀에게 대하는 태도도 그때마다 달라짐. 그녀의 엄마가 재혼한 뒤 그녀는 할머니 집에서 혼자 삼.
이십 대: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녀는 서울에 위치한 대학에 4년 장학금을 받고 들어감.
자판을 두드리던 손길을 멈춘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같은 소읍에 살았던 탓으로 그럭저럭 꿰어 맞출 수 있지만 이십 대부터 별로 쓸거리가 없다. 그녀가 대학에 들어간 뒤로 간간이 들은 소식은 신뢰할 수 없다.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그녀의 방으로 향한다. 그녀의 입을 통해 정보를 제공받는 게 최선책인데, 그녀는 지나간 일에 대해선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어떻게 한다? 골똘히 생각해도 별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며칠 전처럼 어설프게 입을 열려고 시도했다간 그녀의 경계심만 더 강화할 뿐이다. 그래도 일단 부딪쳐 볼 수밖에 없다며 그녀의 방으로 들어간다. 언니, 점심 먹었어요? 이젤 앞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곰살맞게 말을 붙인다. 그녀는 대꾸 없이 그림을 꿰뚫기라도 하겠다는 듯 쳐다본다. 한 쪽 구석에 놓인 뚜껑도 열지 않은 밥그릇에 슬쩍 눈길을 던지며 그녀에게로 다가간다. 언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살그머니 손을 얹은 어깨 너머로 그림을 바라본다. 멀리서 볼 때 다정한 한 쌍의 연인 같은 해골이 가까이서 보니 한 개의 해골이다. 움푹 들어간 해골의 눈에는 녹색빛이 고여 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착시 현상이 나타나는지 신기해하며, 해골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오래 본 탓일까. 해골의 눈에 고여 있던 녹색빛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녹색빛으로 물든 그녀와 나, 터무니없는 망상이겠지만 전생에 우리는 사이 좋은 자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든다. 5년 전 아들이 죽은 후로 처음으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진다는데 모두들 괜찮겠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미술 치료사 P가 걱정스럽게 말한다. 미팅이 끝나는 대로 바로 집에 가 봐야겠어. 집안의 문이란 문은 다 열어놓고 왔거든. 미리 와서 차를 마시고 있던 누군가 냉큼 말을 받아친다. 이런 날엔 집에서 부침개나 해 먹어야 하는데. 무선 주전자의 전원 스위치를 누른 뒤 녹차 봉지를 뜯는 P가 주위를 돌아보며 배시시 웃는다. 비가 오거나 날이 우중충한 날이면 이웃집 여자들이랑 부침개를 해 먹으면서 수다 떨던 시절이 그녀의 웃음에 매달려 나온다. 돌이켜보면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아이의 얼굴이 검은 구름을 뚫고 나온 햇살처럼 빛나던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아영 씨는 요즘 뭘 해 먹어? 누군가의 질문에 갑자기 사람들의 눈길이 내게로 집중된다. 어정쩡하게 미소를 지으며 날 위해 요리를 해 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농담조로 말하자 모두들 어쩜, 그럴 수도 있냐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은다. 하루 세 끼를 밖에서 해결하는 남편, 아침은 생식으로 때우고 저녁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먹는 내 처지를 그들은 부러워한다.
원하는 대로, 외국인이 운영하는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게 된 남편의 일상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싱싱하게 돌아갔다. 아이가 죽은 뒤부터, 하루 이틀씩 집을 비우는 것은 보통이고 꽤 오래 집을 비우는 출장도 자주 갔다. 아이를 구타한 학생들은 학교의 방침에 따라 처벌을 받았지만 직접적으로 가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인 조치는 취할 수 없었다. 남편은 그것으로 손을 놓았다. 당신, 정말 그럴 거야? 아이가 죽었어. 그것도 자살했어. 그런데 이렇게 가만히 있을 거야? 뭔가 해야되는 것 아냐? 하다 못해 청소년을 위한 학부모 모임에라도 참석하든지. 나는 펄펄 뛰었다. 아이가 자살했는데도 쉽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당한다고 다 자살하는 것도 아냐. 그건 정신적인 장애 때문에 벌어진 거야. 그가 다른 시간대에 태어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분노에 찬 눈빛으로 남편을 쏘아보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바다 위를 항해하는 것과 같은 거야. 항해를 하다보면 위험에 더러 부딪치기도 해. 아이는 항해를 하다가 암초에 좌초해 버린 거야. 아이는 죽었어. 그것은 아무리 우리가 후회해도 다시 살아오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니 사는 수밖에. 살아갈 수밖에 없잖아. 남편은 자궁암으로 죽어가던 그의 엄마가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그를 외면할 때처럼 냉정하게 자신의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처음에는 아이를 잃은 슬픔을 내게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증발하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신뢰였다. 남편과 나를 끈끈하게 엮고 있던 신뢰, 그것이 일시에 떨어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한동안 화장실에 갈 힘도 없어 기어갈 정도로 무기력한 일상에 빠져 있었다. 그런 나를 구해준 사람은 결혼하기 전,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같이 근무했던 동료였다. 그녀의 추천으로 요양원에 취직한 나는 아득바득 일에만 열중했다.
좀 늦었죠?
원예치료사가 허둥대며 안으로 들어온다.
덕분에, 실컷 수다도 떨고 좋았어요.
P의 말에, 웃음소리가 주위에 퍼진다. 나는 얼른 화제를 돌린다.
다 왔으니까. 시작하도록 하죠. 오늘은 정미숙 씨죠?
화요일, 미술치료 시간에 정미숙 씨에게 수면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음영 소묘를 시켰어요. 그림의 윤곽을 풀어지게 하는 방법을 통하여 편안함을 느낄 수 있거든요. 렘브란트의 소묘를 따라 그리게 했어요. 처음에는 검은색으로, 다음에는 다른 색을 사용하여 묘사하게 했는데 곧잘 따라 하더군요. 그래서 해골 대신 풍경화를 그려보면 어떠냐고 슬쩍 말을 꺼냈죠. 그랬더니…….
P가 갑자기 말문을 닫는다.
그랬더니?
누군가 조급하게 묻는다.
날더러 이상한 선생이래요. 그런 편견을 가지고 무슨 그림을 가르치냐고 다그치는데, 말문이 막혀 혼났어요. 그녀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거든요.
화초를 키우는 것은 어때요?
나는 눈길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묻는다.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한 번은 앞마당에 피어 있는 장미를 싹 무시하고 지나치더군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냥 싫대요.
그래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음악 치료도 별 효과를 얻지 못했어요. 지난 시간에 음악을 들으면서 호흡 연습과 긴장 완화 연습으로 치료를 했어요. 호흡 조절을 위한 음악으로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베토벤의 ‘로망스’를 택했어요. 앉은 자세에서 10분 동안 호흡을 하고 그 다음에 몸을 풀고, 그 다음에 몸의 느낌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정미숙 씨는 그 치료 자체를 거부해요. 마음에 빗장 문을 단단히 내지르고 있는 것 같아요.
펜으로 그들의 말을 기록하다가 멈칫 손길을 멈춘다. 대화 내용을 정리해서 깔끔하게 썼는데, 내용들을 하나도 알아볼 수 없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글자를 헝클어놓은 것 같다. 도움이 필요해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뭐라구요? P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수초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정미숙 씨는 도움이 필요해요. 우리는 언제나 도와줄 준비를 갖추고 있어요. 문제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녀의 태도에 있어요.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도 그래요. 대체 어떤 사람들이죠? 남편과 아이들은 왜 면회를 오지 않는 거죠? 그녀가 목소리를 높인다.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쉰다. 다행히도 P는 내 말을 다르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그녀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어요. 남편이 받더군요. 우울증 환자한테는 무엇보다 가족의 관심이 중요하다면서 한 번 오기를 권했죠. 침묵만 지키더군요. 그러더니 정미숙 때문에 자신의 생활을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하더군요. 냉정한 목소리였어요. 아이들은 할머니와 고모가 살고 있는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보냈대요. 가족들은 그녀가 요양원에 있는 줄도 모른대요.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을까봐 말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말하는 도중 내내 나는 그녀의 남편에게 적의를 느낀다. 그나 남편이나 똑같은 부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의 남편은 우울증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라서 그런 것인지 몰라요. 옛날과 달리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울증 환자를 잘 이해하지 못해요. 마음에 병이 들 수도 있다는 것, 그것도 질병의 일종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든요. 원예치료사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미숙 씨는 다양한 색으로 해골을 그린다는 거죠. 그것은 죽음에 대한 욕구를 순화시키는 한 방법으로 해석할 수도 있어요. 거기다가 다양한 색채로 그린다는 것은 죽음을 그만큼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거죠. 인간의 감정에 직접 호소하여 정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눈으로 직접 보지 않더라도 각각의 색이 지니는 에너지 정보로 각각의 고유한 생체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으니까,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P의 말에 일순 조용해진다.
아무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죠. 앞으로 상태가 좋아질 것 같아요. 희망을 가져도 되겠어요. 그럼, 오늘 미팅은 이것으로 마치죠. 그리고 오늘은 모두들 좀 빨리 퇴근하죠. 강한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진다니까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두들 서둘러 나간다.
바람에 날아가는 우산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윤의 모습이 창으로 들어온다.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는 담이 비바람 속으로 사라진다. 바람이 좀 잠잠해지면 퇴근할 속셈으로 식당으로 발길을 돌린다. 점심을 거른 탓인지 뱃속이 출출하다. 수돗물을 틀어 놓고 수북하게 쌓아 놓은 그릇들을 씻고 있는 아줌마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아이에게 즐겨 만들어 준 파스타 재료들을 찾기 위해 냉장고를 뒤적거린다. 야채칸에 다른 재료와 섞여 있는 파스타와 미니 옥수수, 양상추, 빨간 강낭콩을 발견하고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고스란히 남겨진 그녀의 점심이 떠올라 재료를 넉넉히 꺼낸다. 파스타에 소금을 넣어 삶아 식히고 식초와 설탕, 소금으로 만든 소스를 한 숟가락 떠서 혀 안에 밀어 넣어 맛을 본다. 새콤달콤한 게 제법 맛이 우러난다. 미니 옥수수와 양상추를 도마에 올려놓고 식칼로 먹기 좋게 자른다. 마지막으로 모두 섞은 재료에 소스에 올리브유를 넣어 흔든 뒤 뿌린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음식이 완성된다.
파스타 샐러드를 담은 접시를 손에 들고 그녀의 방을 들여다본다. 그림이 걸린 벽을, 좀 더 멀리 마찬가지로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두개골과 완성된 그림이 올려져 있는 이젤을 바라본다. 눈을 감은 채 침대 머리맡을 기대고 앉아 있던 그녀가 힐끗 내게로 고개를 돌린다. 웬일이냐고 묻지 않는다. 파스타를 좀 만들어 왔어요. 같이 먹어요. 마침 출출하던 참인데 잘 됐네. 그녀는 서랍장에서 와인과 유리잔을 꺼낸다. 요양원에서 술의 반입은 금물이다. 와인을 마시면 잠이 잘 와. 처음엔 한두 잔 했는데 요즘 주량이 꽤 늘었어. 안 돼요, 술과 약은 독약과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오늘만은 특별히 봐 줄게요. 애교를 떨며 말하자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우울한 날씨 탓에 몸이 잔뜩 무거웠지만 그녀의 미소가 너무 생생하게 머릿속에 박힌다. 깊이 숨어 있는 무의식 속에서 간절히 원했던 것처럼. 그 미소는 그녀의 숨은 진실인 것일까. 그녀가 요양원에 들어왔을 때부터 어쩌면 나는 이런 날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웃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오래 되어 고즈넉해진 외로움 같은 게 떠돈다. 가족들에게 소외당한 그녀에게 외로움은 해골 속의 가볍고 조용한 숨결처럼 그녀의 몸 안에 고여 있을 것이다. 그림에 몰입하는 그녀의 손길에서 나는 그것을 보았다. 그녀에게 자꾸만 마음이 가는 것도 아마도 그것 때문이지 싶다. 이것 한 번 먹어봐요.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그녀의 입에다 넣어 준다. 어때요? 내 솜씨가. 괜찮죠? 언제 이런 것을 다 배웠어? 맛이 그만인데. 그녀는 아이처럼 입맛을 다신다. 물어볼까, 말까 두 번 정도 망설이다가 기회는 이때다 싶어 불쑥 묻는다. 언니의 라이프 스토리를 듣고 싶은데. 라이프 스토리? 그런 것 없어.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살았어. 간단 명료한 그녀의 대답에 할말을 잊어버린다. 너는 어때? 느닷없는 질문이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 왜 갑자기 그런 말을……. 널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그런 느낌이 들어. 괜찮은 거야? 따뜻한 그녀의 말투에 아무에게도 털어 내지 못한 슬픔이 가슴 밑바닥에서 차 오른다. 슬그머니 일어나서 천천히 창 쪽으로 다가간다. 유리창에 빗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나뭇잎들이 세찬 비바람에 흩날린다.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 저리 나부끼는 나뭇잎들. 창문을 열자 비바람이 일시에 밀려들어온다. 그 바람에 창 옆 선반에 놓여 있던 해골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퍽. 떨어지는 해골에서 오래되어 석회질로 변해버린 뇌들이 빠져 나오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어린 시절, 이십 대, 삼십 대의 기억들이 뇌의 주름에서 기어 나와 뒤범벅이 된다.
병실을 나선다. 집으로 가야 하는데 선뜻 내키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게 죽기보다 더 싫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오늘 같은 날에는 더군다나. 한달 예정으로 출장을 간 남편은 보름째 무소식이다. 건물 앞에서 한참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것을 보고 있다가 일단 요양원은 벗어나자 싶어 주차장으로 향한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좁은 골목길을 간신히 벗어나자 시내로 뻗어 있는 사차선 도로가 눈앞에 나타난다. 강한 바람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우산이 뒤집어지고 가로수가 뽑히고, 간판이 떨어진다. 이런 비바람을 뚫고 운전할 자신이 없어 요양원으로 다시 차를 돌린다. 되돌아가는 것도 만만치 않다. 도로에 널려 있는 장애물 때문에 브레이크를 계속 밟자 속도계의 눈금이 제로로 내려간다. 제로라 우리의 삶도 결국은 제로가 되겠지. 열한 시가 훨씬 넘어서야 불 꺼진 병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요양원에 도착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건물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번쩍, 두 조각난 하늘로부터 빛줄기가 뻗어 나오면서 수십 개의 조각으로 하늘을 수 놓는다. 찰나적인 아름다움이다. ‘찰나적’이라는 말끝을 잡고 밑도끝도없는 문장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찰나적인 죽음, 찰나적인 생, 찰나적인 사랑, 찰나적인 공포, 찰나적인 분노, 찰나적인…, 찰나적인……, 찰나적인, 찰나적인,….
병실 중간에 오픈 되어 있는 치료사실은 텅 비어 있다. 모두들 어디로 간 것일까. 간호사실로 향하던 걸음을 문득 멈춘다. 그녀와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이 발목을 잡는다. 어떻게 한다? 혼란스럽다.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어준다면.... 내 안에서 뭔가가 필사적으로 외친다. 빨려 들어가듯 그녀의 방으로 들어간다. 창에 일렁거리는 가로등 빛에 의지하여 침대 옆으로 걸어간다. 잠든 그녀의 옆에 한참 서 있다가 침실 옆 의자에 몸을 눕힌다. 피곤하다. 주기적으로 쩍 갈라진 하늘에서 번개가 발악하듯 기어 나온다. 오늘밤만은 외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막 잠이 들려는 순간 그녀가 벌떡 일어난다. 너, 여기서 뭐하는 거야? 얼음장 같은 그녀의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싸늘하게 등돌리던 남편처럼, 차디찬 시체로 변한 아이의 몸처럼, 그녀는 그렇게 소리친다. 번쩍, 섬광처럼 지나간 빛줄기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낮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차가우면서도 무표정한, 생판 모르는 자의 얼굴빛이 그러할까. 아니 그러했다. 갑자기 구역질이 일어나고 내 몸에서 벌레들이 꿈틀거리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꾸물꾸물. 내 눈에서, 내 입에서, 내 귀에서, 내 코에서, 내 자궁에서 벌레들이 끊임없이 기어 나온다. 내 몸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벌레들이 살았단 말인가. 해골에서 흘러나온 흰빛들이 수천 개의 유성처럼 흐른다. 빛이 사라지자 해골에서 벌레들이 꾸역꾸역 나온다. 방안은 벌레투성이다. 벽에도 천장에서 그림에도 벌레들이 기어다닌다. 눈앞에 거대한 벌레 한 마리가 입을 쩍 벌린다. 마치 한 입에 날 삼켜버리겠다는 듯이. 지진으로 갈라진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스르르, 벌레 쪽으로 미끄러진다. 발버둥을 치며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잡아 그것을 때린다. 떨어져라. 떨어져라. 기력이 다 떨어지자 의식이 가물거린다. 거대한 벌레가 얼핏 그녀의 얼굴 같기도 하고 내 얼굴 같기도 하고 남편 얼굴 같기도 하다. 아무튼 거대한 벌레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내 모습이 먼 풍경처럼 내려다보인다. 검은 수채화물감이 풀어진 그림 속에 갇힌 듯 내 행동이 정지된다. 아무 것도 느낄 수 없고,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 그저 의식이 사라지는 느낌만 인식할 뿐이다.
눈을 뜨지 않는다. 정말 잠에 깼는지 아니면 꿈 속에서 잠을 깼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 잠에서 깨어나 일상 생활을 했는데도 나중에 그것이 꿈으로 밝혀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아직 자고 있어. 나는 눈을 뜨지 않고 속으로 판단한다. 집안은 퀴퀴한 냄새로 가득차 있다. 음식 쓰레기에서 싹이 파릇파릇 나 있다. 그게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에서 난 싹일 거라고만 짐작한다. 싹은 조금씩 자리를 넓혀가더니 순식간에 마당을 잠식한다. 초록색 식물은 벽을 타고 집안에 번지기 시작한다. 방과 부엌, 목욕탕, 뒷베란다, 마루와 마당까지 뻗어나간다. 텅 빈 집에 번지고 있는 것은, 맹렬한 기세로 물건들을 휘감고 자라나는, 근원적인 힘으로부터 거침없이 뻗어 가는 덩굴 식물뿐이다.
장면이 바뀐다. 이젠 종일 비가 내리고 있다. 습기에 녹아든 악취가 집안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코를 자꾸 틀어막다가 아예 휴지를 똘똘 말아 콧구멍을 막아버린다.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짐승들이 집안을 돌아다니는 것 같다. 밖으로 나간다. 혹시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집안을 구석구석 뒤진다. 심지어 싱크대 서랍까지 살핀다. 대문 앞에는 신문이 아무렇게 겹쳐져 있다. 내 귀에서 피고름이 나온다. 소리를 잘 듣기 위해 후벼파서다. 잠이 줄어든 만큼 신경이 예민해진다. 아주 미미한 소리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다. 몸 속에 숨어 있던 기억이, 단단한 껍질에 갇혀 있던 기억이 시간의 두터운 층을 뚫는다. 가능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간들. 나는 온힘을 다해 시간들을, 그 속에 든 기억들을 누른다.
다시 장면이 바뀐다. 나는 누군가를 찾으러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낯선 땅에 도착한 나는 사람들에게 입에 맴도는 지명을 말한다. 막상 그 동네에 도착하고 보니 끝간 데 없이 호수가 펼쳐져 있다. 집 한 채도 없다. 나무 한 그루도 없다.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란 땅과 나를 송두리째 집어삼킬 듯한 검푸른 물뿐이다. 나는 호수 주위를 따라 걷는다. 키보다 훨씬 웃자란 잡초를 헤치고 바람이 뒹구는대로 물결이 금빛으로 흔들린다. 거대한 동물의 뱃속 같은 어두운 색깔의 땅이 눈앞에 나타난다. 무심코 한 발을 딛자 거칠고 딱딱한 것이 발바닥에서 느껴지고 순간적으로 땅이 꿈틀거린다.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상황 파악도 하기 전에, 나는 땅 속 깊이 떨어진다. 물이 질척거리는 땅 밑에서 뭔가가 내 발을 꽉 붙들고 잡아당긴다.
잠에서 깨어나려고 나는 발버둥을 친다. 누군가 내 어깨를 마구 흔든다. 정신 차리세요. 말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뜬다. 꿈을 꾸셨나 보네요. 윤이 지그시 날 내려다본다. 주위를 둘러본다. 대체 어떻게 된 거죠? 기억이 안 나세요. 그녀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다. 의사가 방으로 들어온다. 대체 무슨 일이죠? 의사가 착잡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정말 하나도 기억 안 나세요? 어젯밤에 신아영 씨가 정미숙 씨의 방에서…… 그의 말을 중간에서 가로챈다. 그래서요? 잠시 생각하는 눈빛으로 의사는 손에 든 차트를 들여다본다. 다행히 의식을 잃고 쓰러진 정미숙씨가 조금 전에 깨어났습니다. 하지만 말을 하지 못합니다. 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죠? 호기심 어린 의사의 눈길을 외면한다. 무슨 일이라뇨?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겠어요. 나는 입안에 맴도는 말을 삼키며 눈을 감는다.
* * *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는 김혜민은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발작 증세를 일으켜 요양원에 입원한 신아영 씨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올 하반기에 낼 학위 논문으로 신아영의 임상 병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 주위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성실하게 환자를 돌보던 신아영이 자신이 돌보던 환자 정미숙을 죽이려고 했는지가 그녀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모두들 잠든 밤늦은 시각, 그녀가 두드리는 노트북 소리만이 적막을 깨뜨린다.
- 우울증에 대한 사례 보고서
치료자: 김혜민 환자: 신아영
날짜: 2005년 1월 30일
증상 : 요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신아영 씨는 비바람이 몰아치던 밤에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킴. 집에 가다가 요양원에 되돌아온 그녀는 정미숙 씨에게 주려고 파스타 요리를 만듦. 정미숙과 그것을 먹은 뒤 퇴근함. 그리고 모두들 잠든 시각, 환자들은 공포에 질린 그녀의 비명 소리를 들었으나 너무 소름이 끼쳐 감히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그 일은 정미숙 씨의 방에서 일어났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정미숙 씨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음. 정신과 의사는 신아영 씨의 증상을 우울증에 의한 환각 증세라고 진단을 내림. 정신과 진료를 거부한 그녀는 요양원에 입원하여 매일 벌레를 그림. 거미를 닮았지만 그녀는 거미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의 남편은 매달 돈을 부쳐줄 뿐 한 번도 면회오지 않았다. 그날 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정보 : 공무원인 아버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평범하게 자람. 무남독녀이나 친구 관계는 원만한 편이었음. 학교 성적은 중상 정도였음. 아이가 죽은 뒤 남편과의 사이가 완전히 단절됨. 그녀가 초등학교 다닐 때 그녀의 부모는 한 집에서 각방을 쓰며 별거 상태에 들어감.
그때 김혜민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해서 자판기를 두드리던 손길을 멈춘다. 목을 길게 빼고 복도를 살펴보았으나 아무도 없다. 다시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본다. 신아영에게 일어난 주요한 사건 및 외상적 사건들에 대해 쓰려고 하는데, 또 이상한 기미를 느낀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서너 개의 미등만 켜 놓은 복도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정신을 차린 뒤 다시 일에 몰두한다. 신아영에게 벌어진 일들을 편집하여 스토리를 만든다. 별거하는 부모 사이에서 오도카니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섬세하게 복원된다.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정보들을 응시하며 여백 사이에 숨겨진 연결고리를 찾는다. 명상하듯 그것에만 몰입한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시야가 흐려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노트북에서 뭔가 꾸물꾸물 기어나온다. 그것을 보는 순간, 그녀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