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펌)

[고은희]

실개천이 흐르는 옥천 정지용 생가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세파에 찌들수록 애틋한 고향이 그리워진다. 고추를 내 놓고 멱을 감고, 숯검댕이를 묻혀가며 감자를 구워먹던 그 시절.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 가진 모든 것과 맞바꾸고 싶다. 그래서 고향 같은 땅을 찾는가 보다.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로 만인의 고향이 된 옥천. 그 곳엔 정말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있었다.

세파에 찌들수록 애틋한 고향이 그리워진다. 고추를 내 놓고 멱을 감고, 숯검댕이를 묻혀가며 감자를 구워먹던 그 시절.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 가진 모든 것과 맞바꾸고 싶다. 그래서 고향 같은 땅을 찾는가 보다.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로 만인의 고향이 된 옥천. 그 곳엔 정말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있었다.

고향. 그 애틋한 향수가 워낙 가슴 속 깊숙이 박혀 있어 추억마저 끄집어내기란 쉽지 않다. 고향이 그리워 다시 찾아도 높다란 건물이 차지하거나 근사한 펜션이 옛 집을 대신하고 있다면 내 향수는 이미 지나간 영화필름이나 다름없다.
토장국처럼 담백하고 질화로처럼 우직한 정에 흠뻑 취하고 싶은 자는 경부선 옥천 가는 기차에 올라타라. 손 때 묻은 기차표를 꼼지락거리면서 열차 안으로 와락 쏟아지는 햇볕을 마음껏 받아 보라. 대신 옥천에 도착해서는 화려한 것을 찾지 마라. 흙 내음에 감사할 줄 알고 파란 하늘에 고개 숙일 줄 아는 소박한 마음만 있으면 세상 어느 곳보다 행복한 곳이다.

정지용 생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정지용의 시 ‘향수’의 첫 소절을 흥얼거리다보면 어느덧 그 싯구가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음을 알게 된다. 진한 감동 때문일까 손가락 끝에 작은 울림을 전해진다. 얼룩배기 황소는 온데간데 없어도 지즐대는 실개천을 만나니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정지용은 1902년 옥천군 하계리(현 죽향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일제때만 해도 죽향리가 옥천의 중심지였지만 경부선 철도가 남쪽으로 비켜 가는 바람에 그나마 조용한 마을을 지킬 수 있었다. 죽향리 지주들이 땅을 팔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빌딩이 들어서고 차량이 홍수를 이루었다면 정지용의 주옥같은 시어들은 퇴색되었을지 모른다.

[정지용생가. 흙담 아래는 봉숭아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마당 한 켠에는 흙먼지를 잔뜩 머금고 있는 나무절구가 세월을 망각한 채 서 있었다. ]

사립문을 밀치고 생가에 들어섰다. 본채 부엌 옆에 ‘지용유적 제 1호. 명시 <향수>의 시인 정지용이 1902년 5월 15일(음력) 실개천가의 이 자리에서 태어났다. 원래 생가는 1974년에 허물어지고 새집이 들어섰다’라는 동판이 우릴 맞는다. 1996년 옥천군에서 허물어진 옛집을 없애고 본채와 행랑채, 돌담과 우물을 갖춘 초가집으로 단장해 놓았다.
우물물을 들이키며 바짝 정신을 차린 시인의 뒷모습도 그려본다. 헛간 앞쪽 구유와 지게와 멍석도 그의 <향수>처럼 초가집을 장식하고 있었다.
본채 안방에는 둥근 안경테를 두른 정지용의 초상화와 그의 시 <할아버지>가 걸려 있다. 할아버지를 그리는 따뜻한 시선 때문일까 방안에 온기가 가득 차 있다.
지용은 관례대로 12살에 결혼을 하였으며,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어린 아내를 고향에 남겨둔 채 서울로 올라가 타향생활을 하게 된다. 그때부터 지용의 마음속에 향수가 싹 텄을 것이다. 서울에서 한학을 공부하던 지용은 17세에 휘문고보에 입학했고 그 곳에서 시에 눈을 뜨게 된다. 학교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 휘문고보에서 영어선생으로 재임하면서 김영랑과 함께 ‘시문학’동인으로 활동했다. ‘진정한 한국의 현대시는 정지용의 시에서 비롯되었다’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한국문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6.25 이후 그의 행적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온갖 추측과 함께 오랫동안 ‘금지시인’으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만큼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시인은 없을 것이다. 이동원, 박인수가 그의 시에 노래까지 붙여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옥천 사람들의 자부심은 실로 대단하다. 시내 어디를 가든 정지용의 캐릭터 그림을 만날 수 있고, <향수>가 걸려 있는 시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정지용 문학관
2005년 5월 15일. 정지용 102회 생일을 맞아 그의 삶과 문학을 기리는 ‘정지용 문학관’이 생가 옆에 생겼다. 영상실, 문학전시실, 문학교실로 꾸며진 문학관은 그의 업적과

[손바닥이 스크린이 되어 주옥같은 시어가 흘러간다.]

시 세계에 흠뻑 빠질 수 있도록 짜임새 있게 꾸며졌다.
먼저 영상실에 들르는 것이 좋다. 지용의 삶과 문학 그리고 인간미 등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감상 하다보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시인인가를 자연스레 알게 된다. 문학전시실에서는 그가 살았던 시대상황과 현대시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시집의 초간본과 육필원고를 볼 수 있으며 앨범을 넘기듯 시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도 있다. 특히 주제별로 4구역(향수, 바다와 거리, 나무와 산, 산문과 동시)으로 나뉘어져 그의 시를 심도 있게 감상 할 수 있다.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은 직접 만져보고 듣고 시를 읊어볼 수 있도록 꾸며 놓은 문학체험장이다. 분위기 물씬 풍기는 카페에 들어선 것 같다. 촉감 좋은 나무의자 앉아 영상으로 제작된 향수를 감상해도 좋고 자신의 손을 스크린 삼아 시를 읽어 볼 수 있다. 손바닥으로 주옥같은 시어가 흘러간다.
이밖에 배경영상과 음악이 흐르는 곳에 직접 성우가 되어 정지용의 시를 낭독할 수 있는 시낭송실도 있으며, 듬직한 목소리를 가진 성우의 시낭송도 헤드폰을 통해 들어볼 수 있다.
문학교실은 각종 문학강좌, 시 토론, 세미나 등을 할 수 있는 활동공간이며 단체관람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과 기타 강좌가 준비되어 있다. 입구에는 밀랍인형이 있어 그 옆에 앉아 기념촬영을 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매년 5월이면 지용문학제가 이곳에서 성대하게 열린다. 정지용이 어린시절 다녔던 옥천보통학교(지금의 죽향초등학교) 옛날 교사도 둘러볼 만하다. 붉은 페인트를 칠한 목조건물이다. 현재 이곳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교실너머로 까까머리 정지용 시인을 상상해보면 좋을 듯싶다.

옥주 사마소
정지용 생가를 보고 그냥 떠나면 왠지 서운하다. 근처 사마소를 놓치면 곤란하다. 안내 푯말이 제대로 갖추지 않아 헤매기 십상이다. 옥천 사는 사람조차 사마소가 있는지 모른다. 골목을 수차례 들락날락하였는데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담벼락아래 손바닥만한 텃밭에서 상추를 가꾸고 있는 할머니께 도움을 청했다. 그 굽은 허리를 간신히 펴고 내 손목을 붙들고 사마소 건물까지 안내한다. 푸성귀처럼 풋풋한 그 마음씀씀이에 감격해 본다.
사마소는 학창시절 국사책에서 자주 접했던 단어다. 조선중기 지방 고을마다 생원과 진사들이 모여 친목과 학문, 정치 및 지방행정 등 자문을 논하던 곳이다. 그러나 그 힘이 커지면서 점차 압력단체로 발전하여 폐단이 컸기 때문에 선조 36년(1603년)에 없앴으나 지방에 따라 그 유습이 지속되어 왔다. 어쩌면 정지용의 문학적 뿌리는 사마소 툇마루에서 글을 읽었던 유생으로부터 나왔는지도 모른다.

[옥천향교. 공중에 매달려 있는 아궁이]

옥천향교
옥천향교 초입에 수백 년 된 아름드리나무가 서 있었다. 그 나무 아래서 마을의 촌로들이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엄청난 소나기가 내리는 것이었다. 마을의 어르신들이 혼비백산하여 집으로 뛰어간다.
나도 참 못된 사람이다. 집으로 달려가는 할머니를 붙들고 옥천향교의 위치를 물어본다. 충청도 사람들은 대개 그렇다. 말로 하기 힘들면 자신이 직접 안내해야 직성이 풀리나보다. 기어코 향교 홍살문 앞까지 나를 데려주고서야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하얗게 샌 머리에 빗물이 촉촉이 적셔 있었다. 옥천에서 만난 두 번째 향수다.
옛날엔 민가들이 감히 얼씬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홍살문 안쪽에 집들이 빽빽하다. 조선시대 엄격한 유학을 가르쳤던 학교일진대 사람냄새가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명륜당을 보면서 나를 신기하게 만들었던 것은 공중에 매달려 있는 아궁이다.
공중누각에 온돌이 들어선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앞쪽의 기둥은 높고 뒤쪽의 기둥은 낮다. 아래에서 열기가 위로 올라 갈 수 있는 구조다.
지금이야 고층건물에도 따뜻한 난방시설이 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혁신적 발상들이 아닐까? 지방인재 양성을 위한 옥천 사람들의 노력들이 가상하다.
글·사진 이종원 (객원기자)

꼼꼼! 여행파일
●맛집
<아리랑>
정지용 생가 근처에 고택을 개조한 아리랑이라는 식당이 있다. 고목과 석물들이 볼 만하다.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정식 1인분 2만원.
문의 _ 043-731-4430

<원조구읍할매묵집>
50년 전통의 묵집이다. 매일 장작불로 묵을 쑨다.
문의 _ 043-732-1853
●옥천 가는 법
.승용차 _ 서울 쮝 경부고속국도 쮝 옥천IC (2시간)
.버스 _ 서울 쮝 옥천 동서울종합터미널 2시간 소요
.기차 _ 서울 쮝 옥천 2시간 10분소요
.옥천군 홈페이지 _ www.oc.go.kr
.정지용문학관 _ 관람시간 9:00~18:00 월요일 휴관 입장료 없음/ 043-730-3588
·홈페이지 _ www.jiyong.or.kr
●주변여행지
옥천 5일장터, 청마리 탑신제당, 장계관광지

<여행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