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군의 민담과 전설이야기(동화)
2. 구억말(월산리) 재산이 많았던 장씨 일가
구억말 부자 장씨 일가는 조선조 때 국가에 집단행동으로 반항한 범죄에 연관이 되었습니다. 충남 보령에 신변의 위험으로부터 몸을 피신하여 충청지역에 여러 곳에 살게 되었습니다.
구억말 부자 장씨 일가가 예산군 삽교읍 월산리에 자리를 정하고 머물러 산 것은 400여년 이전입니다.
본래 부자 장씨 일가는 양반이었습니다. 양반에서 평민으로 떨어진 이후 소금, 젓 장수나 등짐장수 등이 사용하던 작은 지게, 대오리로 얽어서 만든 갓 등을 팔았습니다. 그러 던 중 왕실에서 초상을 당하자 갓을 판매하여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조선 사람이 부러워할 정도로 장씨 일가는 큰 부자였습니다. 큰 부를 축적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부자 장씨 일가는 평민 신분 때문에 양반들에게 많은 행패를 당했습니다. 한양에 가서 억울함을 임금에게 전달하려고 마음을 크게 먹었습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임금을 만나보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부자 장씨 일가는 신하들이 잘 다니는 숙박시설에 묵으면서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런 세월은 3년이나 지났습니다.
벼슬하고 있는 김구래의 도움을 받아 부자 장씨 일가는 임금을 맞이하려 다시 예산에 내려왔습니다.
“ 며칠 후면 임금께서 생신 날 인데 그 날 크게 진상을 하여보라!”라는 김구례의 말을 듣고는 부자 장씨 일가는 검은 암소50마리를 준비하여 한양에 다시 올라갔습니다. 가지고 간 소 들의 소 울음소리를 임금님은 듣고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부자 장씨 일가에게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 충청도 사는 장 아무개가 임금께 진상을 드리는 것입니다.” 신하가 말했습니다.
임금은“장 아무개 들라 해라!”하여 부자 장씨 일가는 임금님을 가까이에서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이름은 무엇이냐!”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충청도 예산에서 왔습니다. 본은 인동장가입니다. 임금을 만나려고 3년 동안을 기다렸습니다.”라는 말은 들은 임금은 다시 물었습니다.
“네 소원은 무엇이냐!”임금이 물었습니다.
부자 장씨 일가는“양반이 될 수 있게 공정증서를 내려 주세요!”라며 임금에게 간절하게 청하였습니다.
임금은 부자 장씨에게“예산에 내려가서 예산군수라 해라!”명을 내렸습니다.
그 후 벼슬을 하면서 부자 장씨 일가는 12대문과 99칸의 기와집 지었습니다. 수십만 평의 농지를 소유한 조선시대 상류층의 갑부가 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아버지 남연군의 가야사의 금탑자리 묘 자리로 가기 전에 이곳 부자 장씨 일가에 들렀습니다. 식사대접을 받았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부자 장씨 일가는 궁궐에 초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위엄 있고 분에 넘치는 대접과 연이은 벼슬을 받아 부자 장씨 일가와 장씨 자녀는 신분 상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자 장씨 일가는 예산현감으로 있을 때 많은 부정적인 현상이나 해로운 일을 바로 잡는 등 선정을 주민들에게 베풀었습니다. 그런 덕분에 예산 주민들이 부자장시 일가의 선행과 덕을 영원히 잊지 말자라는 비석을 여러 곳에 세웠습니다.
부자 장씨 일가와 부자는 효행하여 조정으로부터 효자를 기리기 위해 월산리 마을에 정문을 세웠습니다. 광시면 신흥리 입구에 양데에 걸린 부자간의 정려문도 세워졌습니다. 부자 장씨 일가의 재력은 대단하여 8대에 걸쳐 이어졌습니다.
현재 삽교읍 월산리 부자 장씨 일가의 정려문은 색깔이 바래 있습니다. 정려문 건립기 내용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광시면 신흥리 부자 효자 정려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훌륭하게 자란 후손이 조상님의 은덕과 정려 등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곳 예산군 삽교읍 월산리 마을은 그동안 예산군으로부터 경지정리와 기계화경작로의 사업을 받아 콘크리트 포장되어 있습니다. 작년에 이 월산리 마을에 대대로 수호나무였던 회화나무는 숨을 쉬지 못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주민으로부터 보호를 받아 기사회생하여 살아났습니다.
회화나무를 문 앞에 심어두면 잡귀신의 접근을 막아주어 평안하게 살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학자수’로 궁궐과 서원, 송장이나 유골을 묻고 표시한 곳과 이름난 양반 마을의 지킴이 나무로 여겨왔습니다. 열약한 환경 속에 힘들게 버티다가 살아났습니다. 삽교읍 월산리 마을 주민들로부터 오랜 세월동안 함께한 회화나무를 다시 보게 되어 기뻐했습니다. 뿌리 부분 바짝 포장된 콘크리트는 오래된 회화나무의 숨구멍을 막고 있었습니다. 회화나무가 말라 죽으려는 사이에도 살려고 새순을 틔우며 강인함을 보여주었습니다.
현재 구억말 부자 장씨 일가의 큰 기와집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가옥은 쓰려져 풀이 자라 있습니다. 재산이 많았던 장씨 일가의 화려했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첫댓글 예산군 봉산면지역의 한양조씨 대종가도 이와 마찮가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