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까지 침묵을 지킨 이유 -문형진님 인터뷰 ❶
어머님이 지금 가고 있는 길에서 다시 되돌아올 수 있도록 (그동안) 전력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당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했어도 (식구들은)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3년이 지나면서 증거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님이 아버님으로부터 떠난 사실은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어리석은 상태로 있는 것을 바라는 자들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어리석은 자가 아닙니다. 사회학도 알고, 심리학, 군중 심리까지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공적생활'이 무엇인지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님께서는 저를 선택하고 또한 믿어주셨을 것입니다.
저희는 어리석은 자들이 아니고 충실하고 명예를 존중하는 자들입니다.
물질적인 부(富)는 인생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명예로운 사람에게는 재물은 자연히 따라올 것입니다. 부(富)만을 추구한다면 불명예를 당하고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지금의 가정연합이 그렇습니다. 돈, 자산, 권력은 추구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붕괴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바마 케어(Obama care)' 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심한 비난을 받고 모든 것을 잃었지만, 아버님을 놓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들,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만왕의 왕을 위해 일어서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일어나 우리와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조직이 아닌 신앙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이것저것 지시는 안 합니다.
각자가 자치단체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진정으로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들입니다.
돈에 대해서 어떻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저주 당하고 미움을 받아도 아버님을 위해 일어서는 진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명예로운 일입니다. 이러한 명예, 윤리,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선(善)의 추구를 중요시하는 'K타입(유전자)'의 사람들을 통해서 문명은 이루어집니다.
( K타입(유전자) : 2015.11.10 -형진님 설교 동영상 「피의 전쟁」 참고)
신앙생활을 중요시하고 '축복자녀'임을 귀하게 생각하는 K타입의 2세들도 많이 모여 있습니다.
물론 색다른, 특이한 사람들이 있어도 좋습니다 (웃음).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책임'은 그러한 미완성인 상태를 넘어서 죄인을 그리스도의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 되게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시고 새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자기애와 자기연민의 교회가 아닌 찬양으로 충만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세계적인 교회입니다. 그것이 문명을 바꾸고, 새로운 문명을 구축합니다.
그래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아버님의 왕권에 이끌려 왕권과 행동을 함께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계속 곁에서 지내다 보면 그 사람의 인간성을 알 수 있습니다.
천정궁에 있으면 너무 떨어져 있기 때문에 겉모습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같은 곳에서 살고 있다면 어떻게 생활을 하고, 어떤 사람이고, 아이들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모두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허영심과 자기애가 아니라, 위대한 것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2대왕으로서 아버님을 높이 올리고 아버님의 왕국을 건설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영어로 인터뷰하신 내용의 일본어 번역본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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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문선명) 곁에서 보낸 2년간의 교훈 - 문형진님 인터뷰 ❷
[리차드 팬서 회장] : “한국 협회에 계셨을 때는 다방면으로 매우 바쁘셨을 텐데요,
아버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그만두고 아버님 곁에서 생활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 기간이 어떠셨는지, 배우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형진님] 최고의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은혜로운 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전세계의 모든 교회, 세계선교본부, UPF (천주평화연합), 세계청년연합, 세계CARP 등 모든 책임을 저에게 맡겨 주신 때였습니다. 매우 큰 책임입니다.
바쁨에 얽매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거기에다 서울의 천복궁 책임자였습니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바빴습니다.
게다가 매일하는 훈련, 2시 반에 일어나서 하는 영적 훈련 등, 매일 매일 쉴 틈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바쁜 시기를 보냈습니다만,
'나는 힘든 일을 해내고 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있다'라고 착각하게 되는 유혹도 있습니다. 그럴 때 아버님께서 곁에서 생활하도록 부르셨습니다.
큰 변화죠. 일체의 일정이 없어졌습니다. 일정을 짤 수가 없었습니다. 외부에서 VIP가 저를 만나려고 해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말에는 가정연합의 가정들을 방문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외 모든 행사에 참여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을 따라가는 것이 최우선이었고, 아버님께서는 항상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미국에 가셨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갑자기 세계 순회를 하신다거나... 그 모든 일정에 동반했습니다. 낚시도 빠지지 않고 가셨습니다.
오늘 라스베이거스 미드호수에서 낚시를 하고, 다음 날에는 태평양에서 낚시를 하는 그런 식입니다. 모든 환경이 바뀐 것입니다.
저는 재능 있는 어부가 아니었기에 배에서 자주 명상을 하고 지냈습니다.
스케줄이 없는 일정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디든지 아버님께서 가시는 곳에 따라갔습니다.
처음에는 정신적으로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그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 하시고자하는 대로 아버님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자신의 일을 걱정하지 않고, 아버님과 함께 보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습니다.
그렇게 정하고 나서 정말 아버님과의 시간을 즐겼습니다.
저는 속내를 드러내고 아버님과 함께 종합 격투기를 관전했습니다.
제가 실제로 시범을 보여드린 적도 있습니다. 경호원을 조르기 기술로 항복을 받아 내거나 (웃음). 정말 아버님과 그런 친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버님께서 격투기를 좋아하시는 것은 놀라웠습니다.
저는 격투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숨겨 왔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는 전면적으로 받아주셨습니다. 아버님께서도 아주 좋아해 주신 것입니다.
어느 태풍이 부는 아침, 한국 남부의 작은 섬에 있었습니다만, 한국 정부는 모든 선박에게 출항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출항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은 방에서 종합 격투기를 아버님과 함께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해설하면서 함께 보았습니다만 깊은 부모와 자식의 정을 느꼈습니다.
배에서 아버님이 졸고 계실 때 선실로 모시고 단둘이 누웠습니다. 그 때의 사진도 있습니다.
아버님과 친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 귀중한 깨달음을 제공했습니다.
'종교와 종교적 순수성, 조건이나 수행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세상에 자신이 착한 사람임을 어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진정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다.' 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버님께서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종교인, 종교 지도자로서의 아버님을 초월한, 정말 친밀한 관계, 닿을 정도 실감 나는 기쁨, 사랑, 포옹을 느꼈습니다.
종합 격투기는 정말 참혹합니다. 제 안에서 하루에 몇 시간 씩이나 명상하는 종교인의 모습과 격투기와는 하나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이 해방된 것입니다. 아버님께서 완전히 받아주시는 것으로, 저도 격투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정말 멋진 날들이었습니다.
그러한 날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기간의 아버님과의 관계성을 통해, 아버님 성화 후에 생긴 기막힌 사건들과 어려운 시간들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어머님마저 우리를 외면하는 절망과 고독의 순간에도 그 때의 기억들이 힘을 계속 주었습니다.
이 2년간의 시간은 아버님께서 주신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않았으면 후계자, 상속자로서 '관계성'이나 '관계'가 아니고 '종교'를 계속 가르쳤을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전환이었습니다.
그것이 없었으면 더불어 사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사람, 그리스도가 아니라 '레버런 文 神學'을 강의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님의 큰 선물이며 은총의 기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