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사신이 올 날이 다가오자..
방송일: 2003514 조회수 : 7449번 읽음
동영상 : 줄거리:
S # 1․대궐의 일각
숙종이 최상앙과 나란히 걷는다.
최상앙의 설명이 장중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숙종의 모습도 당당하다.
입궐하던 김덕원이 멈칫 서면서 무의식적으로 기둥 뒤로 숨는다.
덕 원 “……!”
이런 광경을 MONTAGE 하면서
해 설 “숙종이 판내시부사 최상앙을 약천 남구만에게 보냈다는 풍설은 대신들을 경악케 하고도 남았다. 남인 조정을 경 영하고 있던 숙종이 서인을 대표하는 원로에게 사자를 보냈다는 사실…, 그것은 바로 환국을 예고하는 쪽으로 회자될 수밖에 없었다.”
S # 2․전각의 모퉁이
김덕원이 허둥지둥 모퉁이를 돌아 나온다.
젊은 관원들과 상궁 나인들 허리를 굽힌다.
덕 원 “……!”
대단히 심각하다.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빠르게 빈청의 돌계단을 오른다.
S # 3․빈청 (안)
권대운, 목내선, 민암 등이 심각하다.
김덕원이 들어와 앉으며,
덕 원 “말씀들 들으셨습니까. 전하께서 약천에게 밀지를 보내 셨다지를 않습니까.”
대 운 “방금 우리도 그 일을 논의하고 있었어요.”
덕 원 “지금이 어디 그렇게 한간한 때이오이까. 약천에게 영의 정을 제수한다면, 그게 바로 환국이지, 환국이 어디 따로 있오이까!”
민 암 “(타이르듯) 우상대감. 상께서 약천에게 밀지를 보낸 것 이 아니라, 판내시부사를 보내셨답니다.”
덕 원 “허어, 흰말 궁둥이나, 백말 엉덩이나 다를 게 무에 있어 요. 약천이 영의정으로 복귀하면, 우리는 또다시 귀양살 이를 해야 한다니까요!”
대 운 “자, 자, 차근차근 정해갑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 다는 것이오이까.”
내 선 “주상전하의 면대를 청하고, 그 연유를 따져보아야지 요.”
민 암 “이것들 보세요. 주상 전하께서 어떤 분이십니까. 신료들 을 관장하시는 수완은 가위 하늘의 경지에 계시는 분인 데, 섣불리 대들었다가는 밑천도 못 찾아요.”
내 선 “그렇다고 이 엄청난 일을 처분만 기다린대서야 말이 됩 니까. 그것이 바로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에요.”
덕 원 “동감입니다. 배알을 청해서라도 신료들이 건재하다는 것을 알려드려야 한다니까요.”
대 운 “(민암에게) 어쩌시렵니까. 우리가 주상전하의 배알을 청 하면 병판께서도 동참하시겠습니까.”
민 암 “물론 동참은 할 것이나, 좀 더 신중을 기하자는 것이지 요.”
덕 원 “여기서 더 신중을 기한다면 정권을 내놓게 된다니까 요!”
대 운 “……!”
고민이 아닐 수 없다.
S # 4․동온돌 (안)
숙 종 “……!”
아찔한 용안이다.
민종도가 (시청자에게 설명하듯)진언한다.
종 도 “전하, 역대의 일을 상고해 본다면…, 대국의 사신이 연 경을 떠나면, 정사나 부사의 가솔들에 가자(加資)를 하는 것이 통례옵고….”
숙 종 “하면, 이번에도 청나라 사신에 조선 사람이 끼어 있다 는 말씀이요.”
종 도 “지난 해에 다녀간 바가 있는 내시 정강이 부사로 온 다하옵니다.”
숙 종 “그 못된 자가, 또…!”
종 도 “그러하옵니다.”
숙 종 “지난 해에도 그자의 가솔들에게 가자를 했고, 그 아비 가 산다는 집을 고래 등과도 같은 기와집으로 고쳐 주었 는데, 이제와서 가자할 것이 무에 있으며, 집 또한 고칠 것이 무에 있는가.”
종 도 “전하, 심히 부끄럽고, 어색한 일이오나 중전책봉의 고명 을 받지 못한 처지라 저들의 예우를 소홀히 할 수 없음 을 통촉하소서.”
S # 5․강가
거창한 청나라 사신 행렬이 오고 있다.
정사는 청나라(편발) 사람이요, 부사는 조선인 정강(鄭 剛)이다.
부사 정강의 거들먹거림을 묘사하면서…,.
해 설 “그랬다. 중국에서 조선으로 파견되는 사신 중에는 반드 시 조선인이 끼어있었고, 모든 수모와 약탈은 그 조선인 에 의해 자행되는 것이 관례였다. 이 때의 사신 중에서 부사가 조선인 정강이었고, 그 악독함은 이미 알려져 있 었다.”
S # 6․동온돌 (안)
숙 종 “……!”
치욕적인 고민에 빠졌다.
종 도 “전하, 이번에는 중전마마 책봉에 관한 고명과 관련이 있사온지라, 저들의 요구 또한 엄청날 것이라고 사료되 옵니다.”
숙 종 “예조판서는 배알도, 쓸개도 없는가.”
종 도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외교는 국력이 하는 것임을 유념하소서.”
숙 종 “통한에 사무치오. 어찌 한 나라의 군왕이 이웃나라의 사신에게 허리를 굽히고, 뇌물을 주는 일을 신하와 더불 어 논한다는 말인가!”
종 도 “전하, 신 예조판서가 불민한 탓이옵니다. 용서하소서,”
숙 종 “……!”
상한 자존심…, 대답도 하기 싫다.
종 도 “전하, 전례를 따라 주시옵고, 동평군 항을 저들에게 보 내 저들이 요구할 것이 무엇인지 미리 탐지하게 하소 서.”
숙 종 “……!”
탕, 연상을 내려친다. 대단한 노여움이다.
종 도 “……(기어들어가고 싶다),”
숙 종 “아뢴대로 시행하라. 시행은 하되…, 힘없는 나라의 대 신된 것이 얼마나 통분한 것이지를 알라. 또한 이를 윤 허해야 하는 과인의 치욕이 하늘을 찌르고 있음도 유념 하라!”
종 도 “예, 전하. 흐흐흐!”
숙 종 “밖에 누구 있더냐.”
상앙 E “대령해 있사옵니다.”
숙 종 “활터로 갈 것이니라. 강궁을 차비하라!”
S # 7․대궐의 활터
쉬익…, 날라 온 화살이 과녁 중앙에 박힌다.
숙 종 “……!”
이글이글 노기가 있는 끓는 용안.
다시 화살을 재우며, 시위를 힘껏 당긴다.
쏜다, 과녁에 명중한다.
S # 8․동평군의 방 (안)
민종도의 앞에 동평군이 앉았다.
종 도 “나를 이리로 보내면서 전하께오서는 사장으로 나가셨습 니다.”
동 평 “사장으로요?”
종 도 “나는 아직 전하께서 그렇게 비통해하시는 모습을 본 일이 없어요. 전하께서 쏘시는 화살이 누굴 겨냥했다고 보시오이까”
동 평 “모두 제가 불민한 탓입니다.”
종 도 “(사이 두었다가) 청나라의 사신이 평양에 당도할 쯤, 동 평군께서도 떠나셔야 합니다.”
동 평 “……!”
기가 꽉 막힐 것이다.
종 도 “알아요. 동평군의 심정은 알고도 남습니다만…, 저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오랍시는 어명입니 다.”
동 평 “하오시면, 정강 그 자의 척분들에게 이번에도 가자를 하신답니까.”
종 도 “당연하질 않소이까. 그렇게 하질 않고서는 저들의 성화 를 견디어내기 어렵질 않습니까.”
동 평 “……!”
분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S # 9․다시 활터
숙종이 분노의 시위를 당긴다.
숙 종 “……!”
만월같은 활, 시위를 놓는다.
탕! 다시 적중하는 화살!
숙 종 “……!”
이때, 최상앙이 급히 달려왔다.
상 앙 “전하. 영의정을 비롯한 대신들이 면대를 청하옵니다!”
숙종은 전통에서 화살을 집어 다시 과녁을 향한다.
숙 종 “상선이 약천을 찾아간 일 때문일 테지….”
상 앙 “망극하옵니다, 전하.”
숙 종 “가자!”
숙종은 활을 내관에게 던지듯 안기고 돌아선다.
S # 10․편전 (안)
권대운, 목내선, 김덕원, 민암, 목창명 등이 앉아 있다.
상기된 중신들의 면면들!
이내관E “주상전하 듭시오!”
모두들 일어선다.
숙종은 활터의 옷, 그대로 들어와 옥좌에 앉는다.
숙 종 “앉으시오.”
모두들 그 자리에 앉는다.
숙 종 “(흥분하지 않고) 다급한 일이라기에 사장에서 달려오는 길이오. 무슨 일인지 어서 고하세요.”
민 암 “……!”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 운 “(용기를 내어) 전하, 신 등은 전하께오서 판내시부사를 약천에게 보낸 일을 몹시 해괴히 여기고 있사옵니다.”
숙 종 “(오히려 웃으며)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경들이 내가 하는 일을 염탐하고 있었질 않소!”
내 선 “…(잘못 걸렸나)….”
숙 종 “정무룰 바로 살펴야 할 신료들이, 임금이 하는 일을 염 탐하다니, 대체 이게 어느 나라의 법도라는 말씀이오!”
대 운 “전하, 이것은 염탐이 아니오라…,”
숙 종 “(몰아치듯) 아니면…, 염탐을 하지 않고서야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가 있는가. 판내시부사는 앞으로 나서라.” 상 앙 “예, 전하.”
신료들의 앞으로 나와 선다.
숙 종 “판내시부사는 무슨 일로 약천의 집에 다녀왔는지, 신료 들에게 말하라.”
상 앙 “전하, 신은 약천의 집에 다녀 온 일이 없사옵니다. 통촉 하소서.”
민 암 “……(드디어 걸려들었구나).”
대 운 “…(놀랐지만) 판부사는 말을 바로 하시게. 본 사람이 있 질 않은가.”
상 상 “(아주 태연히) 대감, 본 사람이 누구인지, 시생과 대질 하게 해 주신다면, 모든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날 것으로 아옵니다.”
내 선 “……!”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숙 종 “……!”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돌고 있다.
중신들은 난감하기 그지없다.
숙 종 “들으라.”
일 동 “예, 전하.”
숙 종 “공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사사로운 일에 마음을 두지 말 라. 공직에 있으면서 패거리의 이해에 매달리지 말라. 조 정의 모든 힘을 모아 압록강을 건넜다는 청나라 사신들 의 행태에 마음을 모으라!”
일 동 “예, 전하.”
숙종은 조용히 일어서서 편전을 나간다.
신료들의 탄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S # 11․회현방 자근아기의 집 대문 앞
김춘택이 천천히 다가와 선다.
춘 택 “……?”
두리번거리며, 안쪽을 살핀다.
자근아기가 빨래 함지를 이고 돌아온다.
자 근 “오셨습니까.”
춘 택 “아, 예. 지난번에 당부드렸던 일이 궁금해서요.”
자 근 “예. 알아두었습니까.”
춘 택 “(어떤 환희) 아, 예. 최 무수리의 사가가 틀림없답니 까?”
자 근 “그러합니다. 홀아버지도 틀림없구요.”
춘 택 “바쁘지 않으시면, 지금 좀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자 근 “혼자 사는 년인데, 바쁠게 무에 있겠습니까. 잠시만 기 다리세요.”
자근아기는 빨래함지를 안에다 들여놓고, 다시 나온다.
자 근 “가시죠.”
춘 택 “고맙습니다.”
김춘택은 자근아기의 뒤를 따른다.
S # 12․근처의 길
자근아기와 김춘택이 걷고 있다.
춘 택 “……!”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것이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이윽고, 자근아기가 걸음을 멈추며 초가집 한 채를 가리 킨다.
자 근 “저깁니다.”
춘 택 “고맙습니다. 사례는 따로 들러서 하겠습니다.”
자근아기는 끄덕여 보이고 비켜선다.
김춘택이 천천히 초가집 마당으로 들어선다.
S # 13․최효원의 집 마당
김춘택이 조심스럽게 들어서면서 두리번거린다.
춘 택 “계십니까. 주인장 계십니까.”
효원 E “누구왔소…?”
춘 택 “아, 예. 지나가는 과객입니다.”
초라한 모습의 최효원(최무수리 아버지)이 나온다.
최 씨 “무슨 일이신지요?”
춘 택 “잠시 안으로 드시지요. 소상한 말씀은 안에서 드리겠습 니다. 어서요.”
최효원을 밀듯이 안으로 들어간다.
자 근 “……!”
몸을 숨긴 채 김춘택의 동태를 지켜보고 있다.
S # 14․최효원의 방 (안)
가난에 찌든 볼품없는 방이다.
효 원 “……!”
영문 모르는 판국이다.
춘 택 “(방을 휘둘러보고) 혹시 아실지 모릅니다만…, 저는 김 춘택이라고, 돌아가신 광산부원군의 장손자가 됩니다.”
효 원 “모르지요. 저와 같은 무지렁이가 뭘 알겠습니까.”
춘 택 “겸사의 말씀이시지요. 따님께서 중궁전 항아님이 아니 십니까.”
효 원 “……(그걸 어떻게 아나)!”
춘 택 “폐비마마를 위해 죽을 고비를 넘긴, 정말로 착하고 충 직한 항아님이라고 들었습니다.”
효 원 “그거야, 뭐…. 몸이나 성해야 할 텐데,…후우.”
춘 택 “저어 …, 항아님을 여기 사가로 불러낼 수는 없겠는 지…, 항아님이 여기로 나오시면 제가 꼭 좀 만나서….”
효 원 “(겁나서) 만나시다니요, 그 아일 만나서 무엇을 하게 요?”
춘 택 “ 함부로 입에 담을 말은 아닙니다만…, 안국방에 나와 계시는 폐비마마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서요.”
효 원 “폐비시면…?”
춘 택 “그렇지요. 폐비마마께서 전하실 말씀이 계시다기에…,”
효 원 “무슨 일을 하시려고 그러시는지는 모르나…, 우리 아이 는 빼고 하시지요. 지난 번에도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아직은 어린 나이라 너무 불쌍하지를 않습니까.”
춘 택 “언제까지 이렇게 누추하게 사시렵니까. 모두가 항아님 을 위한 일이요, 또 어르신을 위한 일이라니까요.”
효 원 “모릅니다, 우린 무식하게 살아서 그런지. 그런 거 잘 모 릅니다.”
생활고에 찌든 전형적인 저항 같은 것이 있다.
춘 택 “……!”
S # 15․폐비의 방 (안)
조씨와 민진후가 왔다.
진 후 “중전마마. 대국에서 오는 사신이 압록강을 건넜다는 전 언이옵니다.”
폐 비 “……(무슨 말인가)?”
진 후 “지난번, 동평군이 책봉주청사로 연경까지 가서 헛걸음 을 치질 않았사옵니까. 이번에 오는 사신들은 반드시 마 마를 만나고자 할 것이옵니다. 실로 천우신조가 아닐 수 없사옵니다.”
조 씨 “마마, 천우신조다마다요. 청나라 사신을 만나서 그간의 사정을 말한다면…, 마마께서는 기필코 복위하시게 되질 않겠습니까.”
폐 비 “청나라의 내정간섭으로 제가 복위를 하면…, 나라꼴은 뭐가 되고요.”
조 씨 “마마…!”
폐 비 “저들의 도움으로 제가 복위되면, 주상전하의 체모는 뭐 가 되고요.”
진 후 “마마. 마마의 복위는 하늘의 뜻인지라, 이젠 그 누구도 왈가왈부 못합니다. 오직 하늘의 뜻임을 유념하소서.”
폐 비 “……!”
조 씨 “그렇지요. 국론이 무르익어 가는데, 이렇게 때맞추어 사 신이 오다니요. 이게 하늘의 뜻이 아니고 무엇입니 까.”
폐 비 “…….”
S # 16․동온돌의 복도
권상궁이 급히 다가왔다.
권상궁 “중전마마의 급한 전언이옵니다.”
상 앙 “지금은 아니 되네. 의논이 끝나시면 고해 올릴 테니까, 중궁에 가서 기다리시게.”
권상궁 “그것이 아니옵고….”
상 앙 “허어. 진노해 계시다니까!”
권상궁 “……!”
왜 자꾸 일이 꼬이나.
S # 17․동온돌 (안)
권대운, 목내선, 김덕원, 민암, 민종도 등이 앉았다.
숙 종 “대체 그게 무슨 소리요. 또 다시 역관들이 패거리를 짓 다니요.”
종 도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청나라의 사신들이 오고 있사온 지라, 역관들이 힘을 모아서….”
숙 종 “(노여움) 그건 파렴치야. 나라의 사정이 어려운 때라면, 당연히 식자들이 나서서 국론을 하나로 모아야 할 것 인데…, 청나라 사신을 눈앞에 두고 역관들이 나서서 과인과 힘을 겨루겠대서야 나라꼴이 제대로 되겠는가!”
대 운 “그러하옵니다. 대국의 눈치를 살피는 것들이 모여서 태 업을 도모하는 것은…."
숙 종 “내가 역관의 여식으로 중전을 삼은 바가 있거늘…, 저 들이 감히 적전에서 분열을 꾀하다니!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가.”
일 동 “망극하옵니다.”
숙 종 “더 이상 역관들의 방자한 짓거리를 두고 볼 수가 없 소! 태업에 동조한 역관의 무리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라!”
종 도 “전하, 신 예조판서 민종도 아뢰옵니다.”
숙 종 “무엇이오!”
종 도 “역관들의 죄가 비록 크고 무거우나, 청나라 사신들의 입경을 앞두고 있사온지라….”
숙 종 “당치않은 소리! 통변할 역관이 없다면 필담으로 하면 될 것이 아닌가. 또 태업에 참가하지 않는 역관도 있을 터인즉…!”
종 도 “하오나, 전하….”
숙 종 “(단호이) 잡아들이라. 좌우포청에 명하여 국익을 해치려 는 자, 모조리 잡아들여서 엄중 문초하라!”
종 도 “예, 전하.”
몸을 숙이며 방을 나간다.
잠시, 군신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숙 종 “(어조 낮추며) 저들이 국모의 책봉을 허락하지 않는 연 유가 무엇인가! 그것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트집이라 는 것을 그대들은 정녕 모른다는 말인가! 그대들이 한 나라의 신하된 도리로 어찌 군왕에게 이같은 수 모를 겪게 할 수가 있는가!”
일 동 “망극하옵니다, 전하.”
숙 종 “(노기를 누르면서) 병판! 이 나라 조선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저들과 대적할 만한 병력이 있습니까, 재 정이 있습니까. (답답하지만) 혹시라도 불행한 일이 있다 면, 조정은 어디로 가야 하겠소?”
민 암 “전하. 그런 불행한 일이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오나…, 만에 하나라도 피난을 가야할 지경이면, 강화부만한 곳 이 없는 줄로 아옵니다.”
숙 종 “강화부의 성벽 방비는 어떠한가?”
민 암 “예, 강화부에 있는 돈대는 모두 마흔여덟이온데, 전면 과 후면 모두 그 방비가 부족함이 없사오나, 부성이 아 직 축성되지 않은 줄로 아옵니다!”
숙 종 “강화부가 아무리 천연의 요충지라 해도 부성이 없다면, 불안하지 않을 수 없으니, 부성 또한 서둘러 수축함이 옳을 것이오!”
민 암 “지당하신 분부시옵니다, 전하!”
숙 종 “우상이 몸소 강화부에 달려가서 그 형세를 살피고 돌아 오시오.”
덕 원 “분부 명심하여 거행하겠사옵니다.”
숙 종 “또한, 전란의 확대에 대비하여 문경과 풍기, 두 고을의
군병을 각각 그곳의 영장에게 예속시키지 말고 별도로 독진을 설치하게 하여…, 문경의 군병은 오로지 조령만 지키고, 풍기의 군병은 오로지 죽령만 지키게 하여 전란이 있을 때 방어하는 계책으로 삼아야 할 것이오!”
일 동 “예, 전하!”
숙 종 “옛사람의 말에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 하고, 안락 할 때에 위태함을 생각한다 하였으니…, 평소에 군사를 훈련하는 것이야말로 나라의 급선무라고 하였소! 오늘도 생각하고, 내일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조금 도 잊고 소홀히 하지 않으면 나라를 보전하는 도리에 마 땅할 것이니…, 경들은 과인의 뜻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 서 한치의 소홀함도 없이 시행토록 하시오!”
일 동 “분부 명심하여 거행하겠사옵니다, 전하!”
S # 18․도성의 길
의금부의 장졸들이 역관(작은 갓)들을 포박해 온다.
거리의 행인들 그 서슬에 길 양옆으로 쫙 갈라선다.
S # 19․어느 역관의 집 마당
사대부 집 못지않게 크고 화려하다.
대문이 깨어질 듯 열리고 나졸들이 밀려든다.
나장과 장교들 뒤따르면 가노들 혼비백산 달아난다.
S # 20․역관의 사랑방 (안)
중인 복색의 역관들이 십여 명 둘러앉았다.
벼락같이 부서지는 문!
놀란 역관들 질겁을 하는데, 나졸들이 뛰어든다.
나 장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포박하라!”
순간, 방 안은 달아나려는 자, 포박하려는 자로 일대 아수라장이 된다.
S # 21․다시 도성의 길
역관들이 끌려가고 있다.
다른 골목에서도 포박된 역관들이 나온다.
S # 22․중궁전 (안)
놀란 장옥정의 얼굴이 빈 공간으로 쑥 올라온다.
옥 정 “무슨 소리야. 역관들을 잡아들이다니, 청나라의 사신이 오고 있는 마당인데, 역관들을 잡아들이다니. 어김없는 사실이렷다!”
그 앞에 권상궁이 앉아 있다.
권상궁 “그러하옵니다, 중전마마. 대역의 중죄로 다스리라는 어 명이 계셨다하옵니다.”
옥 정 “어서 가서. 오라버니를 들라 이르게. 지금 당장!”
권상궁 “예, 마마.”
권상궁은 일어서 나간다.
옥 정 “……!”
뭔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든다.
S # 23․장희재의 집 마당
관복을 입은 장희재가 온다.
업동이가 급히 다가선다.
업 동 “입궐하시는 길이시옵니까?”
희 재 “자비를 놓으라고 일렀지 않았더냐! 서둘러라.”
해놓고 내당 쪽으로 간다.
업 동 “예…!”
S # 24․윤씨의 방 (안)
윤씨가 거울을 보고 머리를 매만진다.
희재 E “어머님, 소자이옵니다.”
윤 씨 “(거울을 내려놓으며) 오, 들게나.”
장희재가 들어와 앉는다.
윤 씨 “입궐하는 길이던가?”
희 재 “예, 어머님.”
윤 씨 “중전마마 뵙거든 나도 일간 입궐하여 문안 여쭙겠다고 말씀드리게.”
희 재 “예, 험! 어머니…, 오늘은 새 아기를 데리고 안국방에나
한번 다녀오시지요.”
윤 씨 “안국방이면…, 폐비께서 계신 곳이 아닌가?”
희 재 “홍참판이 살던 집이라기에 모르는 척하고 한 채 장만 해 두었습니다. 아주 괜찮은 집입니다.”
윤 씨 “여기저기에 집만 사모아서 뭣에 쓸려구…?”
희 재 “허허허 그래도 논밭 다음에는 집이지요. 게다가 천하의 양반들이 모여 사는 안국방이 아닙니까.”
윤 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벌써 집이 몇 채야. 고래등 같 은 집채가 열 채도 더 되질 않은가.”
희 재 “어머니, 때로는 폐비의 사가도 살펴야 하고…, 그래서 사두었으니까, 마실 삼아서 한번 다녀오시라니까요.”
윤 씨 “알았네. 그렇게 함세.”
업동 E “나으리 마님! 잠시 나와 보시오소서!”
희 재 “웬 소란이냐!”
S # 25․장희재의 집 마당
업동이가 서 있고, 달려 온 함역관이 가쁜 숨을 몰아쉰다.
장희재가 느긋하게 다가선다.
희 재 “아침부터 웬 소란…, (역관을 보고)아니, 자넨 함역관 아니신가!”
함역관 “나으리! 역관이란 역관들이 모조리 끌려가고 있사옵니 다.”
희 재 “무슨 소리야, 그게! 역관들이 끌려가다니! 대체 어느 못 된 것들의 역관들을 끌고 가!”
함역관 “금부와 포청의 나졸들이라 하오이다!”
희 재 “(험악하게 일그러진다) 허어, 이런 못된 것들이 있나. 어서 앞장서게!”
함역관 “(울면서)예, 나으리!”
뒤돌아서 달린다.
장희재가 따른다.
S # 26․대궐의 일각
장희재가 빠른 걸음으로 가고 있다.
희 재 “(달리면서) 이 쳐죽일 놈들…, 내 명도 없이 내금위가 움직이다니. 내 이놈들을 그냥 두나 보아라!”
어디서 달려왔는가, 민장도가 만류하듯 장희재를 막아선 다.
장 도 “내금위장! 이 사람, 내금위장!”
희 재 “물러서시오. 화급을 다투는 일이라니까!”
장 도 “글세. 나 좀 보자니까!”
민장도는 장희재를 잡아끌고 건물의 모퉁이로 돌아간 다.
S # 27․빈청 (안)
민암, 민종도, 목창명이 앉아 있다.
종 도 “숙부님! 지금은 역관을 죄줄 수가 없어요. 저들이 모두 청나라 사신들과 안면이 있다니까요.”
민 암 “그러니 어찌하는가. 주상전하의 엄명이 계셨질 않은가.”
종 도 “방면을 해야지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방면을 해야 한 다니까요. 이 사실이 청나라 사신들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창 명 “그러하오이다, 대감! 잡아들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질
않소이까!”
민 암 “이거야 원. 이게 벌써 몇번째야!”
종 도 “숙부님께서 나서 주셔야 합니다. 누구도 전하의 앞에서 입을 열지 못하는 때가 아닙니까.”
민 암 “…끄음…!”
희재 E “내금위장이외다!”
장희재가 흥분해서 들어섰다.
민 암 “(심히 마땅치 않다) 쯧쯧쯧…!”
희 재 “대체 나도 모르게 내금위의 장졸을 부리는 까닭이 무엇 이오이까. 더구나 지금이 어느 땐데 역관들을 잡아들여 요!”
창 명 “이보시오, 내금위장! 역관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면서 태업을 하고 나섰는데…, 조정에서 구경만 하고 있대서 야 말이 되오이까!”
희 재 “허허어! 역관의 따님이 국모의 자리에 계시는데, 저들이 무엇이 답답해서 태업을 해요.”
종 도 “어찌되었거나, 청나라 사신이 코앞에 와 있지를 않는가. 병판께서 따로 전하를 배알하여 용서를 구할 것이니까. 내금위장은 잠자코 계시도록 하게.”
희 재 “헛. 나서지 말라!”
민 암 “그만 물러가시게. 여기서도 그 일을 의논하고 있었던 참일세.”
희 재 “헛. 대감들에게 맡겨 두느니 내가 나서지요. 내가 주상 전하를 배알하여 저들을 모두 풀어줄 것이니, 염려들 놓으세요!”
민 암 “저렇게 원, 내금위장이 국사에 나서는 법도 있다던가. 소임이 무엇인지 알아야 타이르든 말든 하지. 끔, 자 어 서 계속들 합시다!”
창 명 “예,”
희 재 “엥이, 쯧쯧쯧.”
달아나듯 방을 나간다.
S # 28․평양으로 가는 길
세 필의 말이 질풍노도와 같이 달린다.
동 평 “……!”
S # 29․다른 길
동평군의 일행이 줄기차게 달리고 있다.
S # 30․청나라 사신의 객관 밖 (밤)
중국식 등촉이 휘황하다!
청나라 병사들의 내왕이 있고,
동평군이 통사의 인도를 받으면서 들어선다.
통 사 “대인께 아룁니다.”
정강 E “무슨 일이냐.”
통 사 “조선 왕실에서 보낸 동평군 항이 당도했습니다.”
문이 열리고, 부사 정강이 나온다.
정 강 “(이중인격) 허허허, 동평군. 이게 얼마만이오이까.”
동 평 “(그래도 숙여야지) 그간 무량하셨소이까.”
정 강 “아, 허허허. 나야 조선조정에서 돌봐 주지 않으면, 허수 아비나 다름이 없지요. 허허허. 듭시다. 들자니까.”
동평군을 끌다시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S # 31․객관 (밤)
탁자에 술상이 차려져 있다.
정강이 동평군을 의자에 앉히면서,
정 강 “마침 잘 오셨질 않소. 혼자 마시기가 답답해서 기생이 나 하나 부를까 했지요. 허허허, 평양이 본시 색향이니 까. 자, 잔 받으시오.”
동 평 “잔을 받기 전에 한 가지 여쭈어 볼게 있소이다.”
정 강 “동평군과 할 얘기가 왜 한 가지 뿐인가. 자, 먼저 마시 면서 만리장성을 풀어야지. 자, 자….”
동평군이 잔을 들면, 정강이 따른다.
정 강 “자, 자, 단숨에 비워서 앞날의 일을 약속합시다.”
두 사람은 시원하게 마신다.
정 강 “동평군께서 입을 열기 전에 내가 먼저 물어볼 말이 있 어요.”
동 평 “말씀하시오.”
정 강 “(조금씩 교만해 진다) 내 고향 해주에 있는 내 집의 수 리는 끝났소이까.”
동 평 “(자존심 상하지만…) 그런 것으로 압니다.”
정 강 “오, 오. 그래야지. 그렇고 말고. 하면, 내 대소가의 종속 들에게 가자도 했는가.”
동 평 “(정말 미치겠다)……!”
정 강 “(방자하다) 내 외숙부에게 가선대부의 첩지가 내렸느냐 고, 묻질 않았소!”
동 평 “그리 내린 것으로 알고 있소.”
정 강 “그렇지. 그래야 얘기가 되지.”
거창하게 술잔을 비운다.
정 강 “그리고, 내 처남은 어찌 되었는가?”
동 평 “공의 외숙부가 가선대부로 가자되었는데, 처남을 그냥 두었겠소이까.”
정 강 “아, 아. 내 얘기는 제대로 예우를 했느냐, 이거지.”
동 평 “(비아냥거리듯)그야 당연하지를 않소. 조선 조정이 그대 정강의 집안을 예우하기 위해 발칵 뒤집혔다고 해야 마 음이 놓겠소이까!”
정 강 “허허허, 그래야 얘기가 되지, 허허허. 자, 듭시다.”
다시 술잔을 비우며 거들먹거린다.
동 평 “(더럽지만) 이젠 내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정 강 “아, 허허허. 뭐가 그리 급하신가. 아직 도성으로 가자면 몇 밤을 더 자야 하는데….”
동 평 “그렇지가 않지요. 아시는대로 우리 조선은 힘 없고 가 난한 나라가 아니오. 그러나 청나라 사신이 다녀갈 때 마다 뜯기는 것이 너무 과하고 많아서 이젠 왕실의 내탕 금까지 동이 났을 지경이오.”
정 강 “허허허. 그러니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걸 미리 좀 알려 달라?”
동 평 “그렇지요. 그것만이라도 귀띔을 해 준다면, 준비하는데 소홀함이 없겠다는 것이오이다.”
정 강 “아, 아. 오늘은 술이나 한 잔 합시다. 그 얘기는 내일 해도 되고, 모레 해도 될 것이오. 허허허. 기방을 구르면 서 하면 더욱 좋질 않겠는가. 응, 허허허, 자, 자 마 시자니까.”
술병을 들고 너스레를 떤다.
동 평 “……!”
아, 죽이고 싶다. 정말 죽여 없애고 싶을 것이다.
S # 32․숙안공주의 방 (밤)
책을 보고 있는 숙안공주!
숙 안 “……!”
홍치상의 생각이 나는가.
고개를 들어 허공에 한숨을 날린다.
치상 E “공주마마, 진후옵니다.”
숙 안 “오, 그래. 어서 들게.”
갓, 도포 차림의 민진후가 늠름하게 들어와 앉는다.
진 후 “좀 늦었사옵니다.”
숙 안 “백우로부터는 아무 전언도 없고…?”
진 후 “회현방에 있는 최무수리의 사가를 용케 알아냈다고 들 었습니다.”
숙 안 “오, 그것참 반가운 소식이 아닌가. 그래 최무수리의 홀 로 사는 아버지도 만났다고 하던가?”
진 후 “그런 것으로 아옵니다.”
숙 안 “하면, 궐 안에 있는 무수리 아이에게도 연통이 되었구?” 진 후 “다만 한 가지….
숙 안 “그 한가지라는 게 뭔데…?”
진 후 “최무수리의 아버지가 쉽사리 응하지 않는다 하옵니다.”
숙 안 “……(실망감).”
진 후 “하오나, 아직은 낙담할 일이 아닌 줄로 아옵니다.”
숙 안 “아니라니?”
진 후 “오늘 아침에도 무슨 일이 있어도 성사시키겠다는 결기 를 보였사옵니다. 너무 심려치마오소서.”
숙 안 “그래야지. 하늘의 뜻이 우리에게 있는데, 아니될 일이 없을 것일세.”
진 후 “고맙사옵니다. 공주마마 …!”
숙 안 “ …후우!”
한숨은 쉬지만, 염원은 식질 않는다.
S # 33․최효원의 방 (밤)
조촐한 술상이 마련되었다.
김춘택이 최효원의 술잔에 술을 채운다.
자근아기도 앉아 있다.
춘 택 “어르신, 약조를 해주시지요. 중전마마께서 복위하셔야 하는 것은 자식이 어버이를 찾는 일이라고 하질 않았습 니까.”
효 원 “(목축이고) 그 어린 것이 해낼 수가 있을지….”
춘 택 “따님에게 주상전하의 성은이 내려지신다면…, 어르신께 서도 이렇게 사시지는 않을 것이 아닙니까.”
자 근 “그렇지요. 그 요상한 장녀를 보세요. 역관의 딸이면서도 있는 호사, 없는 호사를 다 누리고 있지를 않습니까. 이 댁 항아님이라 하여 아니될 것도 없지요.”
춘 택 “어르신, 그러니 항아님더러 궐 밖으로 한번 다녀가라 하시고…, 꼭 저를 한번 만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효 원 “(결단을 내리듯) 후우. 그렇게 한번 해 보지요.”
춘 택 “고맙습니다. 어르신….”
효 원 “그렇기는 한데, 그 아이가 나오게 되면…,”
자 근 “저에게 연락을 주시면, 선비님에게는 제가 알리겠어요”
춘 택 “그렇지요. 그렇게 하면 될 것으로 압니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최 씨 “…….”
걱정이 되어선가, 술잔을 비운다.
S # 34․최무수리의 방 (밤)
작은 소반에 정한수가 놓였다.
최무수리“……!”
두 손을 모아 빌고, 또 빈다.
최무수리E“천지신명께 고하옵니다. 우리 불쌍하신 폐비마마를 하루속히 복위하게 해 주시옵고, 온 백성들이 원하는 바 를 이루어지게 해주소서.”
일어나서 절을 한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린다.
자 선 “네, 이년! 대체 뭘 하는 짓이냐!”
최무수리“(당황하지만, 애원하듯)사가의 아버님이…, 사가의 아 버님이 병환 중에 계신데….”
자 선 “흥,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네 년이 밤마다 폐비를 위해 서 기도드리는 짓거리를…!”
최무수리“(애원하듯) 무슨 소리야, 폐비마마라니…, 사가의 아버 님이 편찮으시다는 데두…!”
자 선 “죽일 년. 넌 이제 죽었어!”
쾅! 문을 닫는다.;
최무수리“(절망감)……!”
스르르, 무릎이 꺾인다.
S # 35․중궁전 (밤)
옥 정 “저렇게 요망한 것이 있나. 어김없는 사실이렷다!”
자 선 “그러하옵니다. 지난 번에는 밖에서 하더니, 이번에는 아 주 거처에다 상을 차렸사옵니다.”
자선이 고해바치고 있고, 권상궁이 근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옥 정 “이런 배은망덕이 있나. 내 그 동안 그 미천한 것을 중 궁에 두고 보살폈거늘, 권상궁은 당장 가서 그 못된 것 을 끌어오렷다!”
권상궁 “중전마마. 야심한 시각이옵니다. 밝은 날 불러서 책망 하소서.”
옥 정 “……!”
그렇기도 하다.
권상궁 “마마. 불연이면 쇤네에게 그 아이를 맡겨 주시던가요.”
옥 정 “권상궁이 맡아서 어찌 하려구…!”
권상궁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젠 마마께서 친히 사소한 일 에 나서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이옵니다. 때가 어수선 하지를 아니하옵니까.”
옥 정 “알겠네. 그 못된 것이 폐비의 복위를 빌었다면 용서받 지 못할 대죄를 지었음이 아닌가.”
권상궁 “그러하옵니다, 중전마마.”
옥 정 “이 점 명심하고, 단단히 다스리도록 하게!”
권상궁 “명심하여 거행하겠사옵니다.”
옥 정 “……!”
권상궁과 자선은 뒷걸음치며 물러간다.
S # 36․최무수리의 방 밖 (밤)
최무수리가 정한수 소반을 들고 밖으로 나온다.
동시에 등불을 들은 자선과 권상궁이 들어선다.
최무수리“(너무 놀라서)……!”
스르르 힘이 풀리면서 들었던 상이 떨어진다.
권상궁 “저, 저, 저렇게 경박한 것이…(황급히 방으로 들어가면 서)따라 오너라!”
최무수리는 자선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방으로 들어간다.
자 선 “……!”
고소하다는 생각이 든다.
S # 37․최무수리의 방 (밤)
권상궁 “(뜻밖으로 자상하다) 무슨 소리야, 그게. 사가의 아버 님이 편찮으시다니?”
최무수리“어머님도 아니계시온데…, 쇤네가 입궁한 뒤로는 진지 도 제대로 못 드신다고 들었사옵니다….”
권상궁 “하면, 입궐한 뒤에 사가에는 몇 번이나 다녀왔느냐.”
최무수리“재작년에 한 번 다녀왔을 뿐이옵니다.”
권상궁 “……!”
그간의 정황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겠다.
최무수리“(내친김이다)마마님, 사가에 한번 다녀오게 해 주오소 서. 홀로 계시는 아버님을 뵙고 싶사옵니다.”
권상궁 “……!”
끄덕이고 있지만, 망설여진다.
최무수리 “마마님, 쇤네의 소청을 어여삐 거두어 주신다면, 그 은 혜는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애원이다) 마마님, 이 불 효여식에게 대은을 내려주소서. 이렇게 간청하옵니다”
허리를 숙여 보인다.
권상궁 “(한숨쉬고) 오냐, 내 중전마마께 진언드려 볼 것이니라. 허나, 행실 각별히 조심하렷다.”
최무수리“감읍, 감읍하옵니다, 마마님.”
권상궁 “……!”
혹시나 해서 방안을 휘 둘러본다.
S # 38․서울로 가는 길(밤)
세 필의 기마가 달린다.
동 평 “…이랴…!”
동평군이 몹시 서둘고 있다.
S # 39․민암의 방 밖 (밤)
민암의 방에서 민장도가 나온다.
뭔가 수심이 가득하다.
동평군(평양에서의 복장)이 황급히 들어선다.
장 도 “아니, 평양에 가시질 않으셨습니까.”
동 평 “(급하다) 병판대감 계시는가!”
장 도 “예, 그렇기는 합니다만….”
동 평 “화급을 다투는 일일세. 어서 고하시게.”
장 도 “예, 아버님, 동평군 나으리, 드셨사옵니다.”
S # 40․민암의 방 (밤)
읽고 있던 책장을 덮는다.
민 암 “듭시라 여쭈어라.”
동평군과 민장도가 들어와 앉는다.
민 암 “평양에서 오는 길인 듯하네만….”
동 평 “워낙 다급한 일이라, 곧장 이리로 달려왔습니다.”
민 암 “(극도의 긴장)다급한 일이면 청나라 사신은 만나 보셨 는가?”
동 평 “(분하고 분해서) 시생, 태어나서 이 같은 수모를 당한 일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장 도 “수모라니요! 대체 저들이 무엇을 어찌 했기에요!”
민 암 “고정하고 소상히 말씀하시게. 그야말로 국운이 걸린 일이 아닌가.”
동 평 “이번에 부사로 온 정강이라는 놈의 방자하고 교만한 것 이야 대감께서도 익히 아시는 일이 아니옵니까.”
민 암 “알다마다! 그자에게 당한 것이 어디 한두 번이어야 지.”
장 도 “나으리, 그자가 이번에는…. 뭘 또?”
동 평 “(결기를 다지며)대감, 저자들이 중전마마책봉을 빙자하 여 요구하는 것이 실로 엄청나오이다!”
민 암 “엄청나다니! 대체 무엇을 요구한다던가!”
동 평 “조총 3천정입니다.”
민 암 “아, 아니 뭐야! 조총 3천정…!”
장 도 “헛, 저자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충격과 경악하는 놀라움을 잠시 묘사하고 나서.
동 평 “(기막히게 설명해 주셔야 합니다) 대감, 조총 3천정이라 니요. 나라의 방비를 맡은 대감이 아니십니까. 이 나라의 군대들이 조총을 구경한 일이 있답니까. 또 이 나라의 국력이 조총 3천정을 마련할 수가 있다고 보시오이까. 이 나라의 땅덩이를 팔지 않고서는 마련할 수가 없는 데…, 저들이 중전마마의 책봉을 빌미로 조총 3천정을 요구하는 것은 외교가 아니라 강탈이기에 하는 소립니 다.”
민 암 “……끔!”
주먹은 쥘 일이로되, 할말은 없다.
동 평 “우리 조선이 지난 수백 년 동안에 걸쳐 저들에게 당한 일이 얼맙니까. 중전을 책봉하고, 세자를 책립할 때마다 수많은 뇌물을 주고서야 가까스로 고명을 받아오곤 했는 데, 이번에는 조총 3천정입니다. 이게 강탈이 아니고 무 엇입니까!”
민 암 “동평군이나 나나 이런 일에 통분해야 하는 것은 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탓이 아니겠는가. 국력을 키우지 못한 죄 를 받고 있는 것일세.”
장 도 “아버님, 탄식으로 해결 될 일이 아니질 않습니까.”
민 암 “그러니 어찌하느냐. 조총 3천정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왕권조차도 유지하기 어렵기에 하는 소리가 아니냐.”
동 평 “하오시면, 병판대감께서는 조총 3천정을 마련하시겠다 는 것이오이까!”
민 암 “그러니 어찌하는가. 조선의 왕실이 살아 남자면 그 길 이 최선이 아닌가.”
장 도 “아버님, 주상전하께서 진노할 것이옵니다. 이 일은 아버 님께서 나서실 일이 아니옵니다.”
동 평 “아니라니, 병조판서가 나서지 않는다면 누가 나선다는 것인가.”
장 도 “허어, 참. 주상전하께서 어떤 분이신데 저들에게 조총 3 천정을 강탈당해요. 또 이 일은 병조의 일이 아니라, 예 조에서 관장할 일이 아닙니까.”
동 평 “그렇기도 하나...”
민 암 “좌랑은 어서 가서 예조판서를 모셔 오너라.”
장 도 “예,”
방을 나간다.
민 암 “…끄음…!”
동 평 “……!”
정녕 대책이 없다는 말인가.
S # 40․장희재의 방 밖 (밤)
사복을 한 장희재가 나온다.
숙 정 “(따라 나오며)나으리, 야심한 시각이옵니다.”
희 재 “자네가 나설 일이 아닐세.”
숙 정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희 재 “글쎄 염려 말라니까. 다녀올 것이니라.”
다급하게 중문 쪽으로 사라진다.
숙 정 “……!”
또 무슨 일인가, 걱정이 앞선다.
S # 41․어느 곳 (밤)
장희재가 주위를 살피며 다가왔다.
양충근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희 재 “어찌되었는가!”
충 근 “오늘은 아예 끝장을 낼 것입니다, 나으리.”
희 재 “말로만 끝장, 끝장 할 게 아니라 진짜로 끝장을 내야 지!”
충 근 “글세, 구경만 하시라니까요! (한 쪽을 가리킨다) 자, 보
십시오!”
희 재 “보긴 뭘 봐!”
장희재의 시선에 복면의 사내들이 허리를 숙인다.
희 재 “(대실망) 아니, 이번에도 겨우 저런 꼴로 담을 넘겠다는 것이더냐!”
충 근 “나으리…, 그게 아니옵고….”
희 재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런 칠칠치 못한 것들…같으니라 구!”
하면서 복면의 사내들에게 다가서려다 뒤가 이상하다.
장희재가 홱 돌아보면,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의 형상이 달려든다!
귀 신 “으악…!”
희 재 “어이쿠…!”
놀란 장희재가 뒤로 엉덩방아를 찧는다.
귀신의 형상이 재주를 넘으며 장희재에게로 달려든다.
희 재 “아, 아이구. 왜들…!”
기겁하여 주저앉은 채로 물러선다.
장희재의 머리 위를 넘어 사라지는 귀신의 형상!
희 재 “(십년감수다) 후우…!”
양충근이 나선다.
충 근 “허허허. 어떻습니까, 나으리…!”
희 재 “응, 허허허. 그래, 그래 저 정도면 됐다.”
S # 42․밤 하늘
구름 사이로 달이 흐른다.
O․L
S # 43․폐비의 방 (밤)
폐비가 잠이 들었다.
폐 비 “(문득 눈을 뜬다)……!”
쉭, 쉭하는 담장 넘는 소리가 들린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S # 44․폐비의 사가 담장 (밤)
바람같이 담장을 뛰어넘는 검은 물체!
물론 귀신도 포함되었다.
이들은 재빨리 폐비의 거처로 달려간다.
S # 45․폐비의 방 (밤)
소 리 “아악…!”
폐 비 “…웬 것들이냐!”
폐비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친다.
동시에 방문이 요동치듯 흔들린다.
뒤이어 방문을 뚫고 쑥 들어오는 손!
아찔하게 놀라는 폐비,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방문을 뚫은 손이 걸어 잠근 고리를 세차게 더듬는다.
폐 비 “(안간힘을 다해) 이 무슨 해괴한 짓이야! 당장 물러서지 못하겠느냐!”
고리가 떨어져나가고 벌컥! 문이 열린다.
달려드는 귀신 형상!
폐 비 “아악!”
비명을 지르며 스르르 무너진다.
몸을 돌려 사라지는 귀신 형상!
S # 46․폐비의 사가 마당 (밤)
등불을 든 한상궁과 보배가 울부짖으며 달려온다.
한상궁 “마마. 중전마마!”
방안에서 귀신의 형상이 후닥닥 뛰어나온다.
한상궁 “으악!”
보배는 등불을 던지고 주져앉는다.
나뒹구는 등불이 불타오른다.
S # 47․폐비의 방 (밤)
폐비가 혼절한 채 쓰러져 있다.
한상궁과 보배가 달려든다.
한상궁 “중전마마, (안아서 흔들며)중전마마. 한상궁이옵니다. 눈을 뜨오소서. (보배에게)뭘 하고 있느냐. 어서 물 떠 오지 않구!”
보 배 “예, 마마님!”
보배가 방을 나가는 순간, 자지러질 듯한 보배의 비명소 리가 들린다.
한상궁은 재빨리 문고리를 다시 건다.
세차게 움직이는 장짓문!
한상궁 “……!”
뒷걸음치듯 폐비에게로 다가오는 데,
폐 비 “……!”
혼절에서 돌아온다.
폐 비 “……!”
흐느적흐느적 몸을 일으킨다.
한상궁 “중전마마, 중전마마…”
폐비는 허적허적 문가로 간다.
폐 비 “(넋이 나갔다)……!”
한상궁 “(말린다) 중전마마. 고정하오소서. 나가시면 아니 되옵 니다.”
이윽고 페비는 문고리를 열고 장짓문을 민다.
S # 48․폐비의 사가 마당 (밤)
보배가 냉수 소반을 들고 온다.
등불은 아직도 불타고 있고.
방안에서 폐비가 나온다.
한상궁 “(다가서며)중전마마. 밤이 깊사옵니다. 어서 안으로…!” 폐 비 “……!”
주위를 살피며 사방을 살핀다.
지붕 위에 있던 귀신의 형상이 폐비의 가슴팍을 향해 날라온다.
한상궁 “중전마마…!”
폐비를 안고 쓰러진다.
한상궁의 등판을 밟으면서 다시 날아오르는 귀신의 형 상!
폐 비 “(중얼중얼)웨... 웬 놈이냐. 웬 놈이더냐.”
그대로 다시 혼절한다.
길게 O․L
S # 49․동평군의 방 (밤)
동평군이 앉아있다.
동 평 “……!”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조용히 방문이 열리며 신씨가 꿀물사발이 놓인 소반을 들고 들어와서 가까이에 앉는다.
신 씨 “이 사람아, 몸도 좀 생각을 해야지. 꿀물이라도 들게나.”
동 평 “으후우…”
신 씨 “어차피 종사의 일이 아닌가. 조정에 세분 정승이 계시 고, 여섯 분의 판서가 계시질 않은가.”
동 평 “이번 일은 소자의 잘못에서 기인된 것이옵니다. 지난 번 청나라에 가서 일을 그르친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 다.”
신 씨 “황제폐하께서는 지방에 가시고 아니 계셨다면서? 또 예 부상서가 만나지 않겠다면 그만이지, 힘없고 작은 나라 에서 무슨 수로 당해. 말 그대로 되놈이라지 않았는가.”
동 평 “그때 뇌물을 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서요.”
신 씨 “……!”
동 평 “그때 저는 나라에 힘이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오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냥 오기로라도 밀고 나가면 길이 있 을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게 바로 세상 을 바로 볼 줄 몰랐던 우물 안의 개구리였습니다.”
신 씨 “……!”
알고도 남을 일이다.
동 평 “어머님. 혹여 소자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다 하더라도 심기를 굳건히 하세요.”
신 씨 “전하께 대죄를 청할 생각인가?”
동 평 “그렇습니다. 대죄가 계실 것으로 믿습니다.”
신 씨 “……!”
눈물겨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S # 50․폐비의 사가 마당 (다음날)
난장판이 된 마당!
떨어진 문짝과 온갖 집기들이 나뒹군다.
한상궁이 삼월과 보배 등을 지시하며 치운다.
S # 51․폐비의 방 (안)
수척해진 폐비의 앞에 조씨가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다.
조 씨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 장희잰가 하는 장녀의 오래비 가 저지른 소행일 것인데도, 그 못된 놈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니요! 마마, 더욱더욱 조심하셔야 하옵니다.”
폐 비 “여기서 더 어려운 일이 있으려구요. 이젠 더 겪을 일도 없지를 않겠습니까.”
조 씨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광해조 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질 않습니까.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고, 마치 귀신이 나타나는 양 갖가지 해괴한 놀음을 했었지요. 지난밤의 일은 잊어버리세요! 죽을 작정을 했다면 모를까 살아서 환궁을 하시려면 이보다 더한 고초가 있어도 참아야 하 질 않겠습니까.”
폐 비 “……!”
그래도 기대를 해 본다.
조 씨 “최무수리의 아버지가 항아님을 불러내겠다고 약조를 하셨답니다.”
폐 비 “그러다가 미행이라도 붙으면 어쩌려고요. 중궁전에는 간특하고 요상한 아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 씨 “너무 걱정할 일이 아닐 것으로 압니다. 최무수리도 마 마의 복위를 학수고대하고 있다질 않습니까. 마마, 조금 만 더 기다립시다. 조금만 더 기다리노라면….”
폐 비 “……!”
O․L
S # 52․길
청나라 사신 행렬이 오고 있다.
정 강 “……!”
말에 탄 정강의 거들먹거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해 설 “마침내 조선인 부사 정강을 앞세운 청나라 사신 행렬이 임진강을 건넜다는 파발이 당도한다. 힘없고 가난한 나 라 조선 조정의 목을 조이는 행렬이나 다름이 없었다.”
S # 53․대궐의 일각
동평군이 입궐했으나, 걱정이 태산이다.
동 평 “……!”
대체 이 일을 어찌해야 하는가.
S # 54․빈청 (안)
권대운, 목내선, 김덕원, 민암, 민종도 등이 침통하게 앉았다.
종 도 “대충은 들어서 알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만…, 저들에게 조총 3천정을 강탈당하느냐, 아니면 저들로 하여금 폐비를 만나게 하느냐….”
대 운 “그 무슨 얼토당토 않는 소리오! 저들에게 폐비를 만나 게 해서 어쩌자는 것이야. 다시 폐비를 복위하게 하자는 것이오!”
종 도 “영상대감, 영상대감께서 이끌고 있는 이 나라 조정이 조총 3천정을 마련할 수 있는 재원이 있다고 보시오이 까!”
대 운 “엇흠…!”
할말이 없다.
내 선 “막아야지요. 저들이 폐비를 만나는 일이 있어서는 결단 코 아니될 것이오이다!”
종 도 “그러기 위해서는…, 조총 3천 정부터 마련해야 되질 않 습니까.”
내 선 “병판께서는 왜 말이 없소이까. 조총에 관한 일이면 병 조의 일이 아니오이까.”
민 암 “외교는 예조에서 관장을 해야지요, 지금이 어디 전시랍 니까.”
덕 원 “전쟁까지도 각오해야지요. 저들에게 조총 3천정을 들려 준다면 그 조총을 어디에 쓴답니까. 우리의 조선 변방을 어지럽힐 것이기에 하는 소리에요.”
대 운 “자, 자, 거기까지 앞지를 것 없지를 않소이까. 우선 주 상전하께 고해 올린 연후에….”
민 암 “아니됩니다. 조정의 확고한 의지가 없고서는 전하께 상주할 수가 없는 일이에요.”
대 운 “이렇게 원. 이 엄청난 일을 우리가 정할 수가 있는가. 이 일이야 말로 전하께서 결단을 내리실 일이지! 험.”
종 도 “……!”
민암에게 도움을 청하는 시선이다.
민 암 “……!”
지금으로서는 대책이 없을 것이다.
S # 51․중궁전의 복도
동평군이 왔다.
권상궁이 놀랍다는 시선으로 맞는다.
권상궁 “어서 납시오소서.”
동 평 “(심기가 편치 않다) 고하시게.”
권상궁 “예, 중전마마, 동평군 드셨사옵니다.”
S # 52․중궁전 (안)
옥 정 “어서 듭시라 여쭙게.”
들어서는 동평군을 마땅치않게 본다.
동평군이 들어와 반절하듯 앉는다.
옥 정 “평양에 가서 청나라 사신들을 만나고 오셨다면서요!” 동 평 “그, 그러하옵니다,”
옥 정 “한데…, 그 무례한 것들이 폐비를 만나겠다고 했다면서 요?”
동 평 “그렇게 단정한 것이 아니옵고…,”
옥 정 “하면 저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씀입니까!”
동 평 “저들이 요구하는 것은 조총 3천 정이옵니다.”
옥 정 “……!”
입이 딱 벌어진다.
동 편 “중전마마. 모든 것이 제가 미천한 탓이옵니다.”
옥 정 “동평군이 미천하시다니요?”
동 평 “제가 지난 번 주청사로 연경에 갔을 때, 마마의 고명을 받아오지 못한 것이 이런 일을 불러 온 줄로 아옵니다.” 옥 정 “그래서 어쩌실 작정입니까. 조총 3천정을 마련해서 저 들에게 준다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 이 아닙니까.”
동 평 “이를 말씀이옵니까.”
옥 정 “하면, 조총 3천정을 마련하면 되는 일이지. 폐비의 일을 거론하는 연유가 무엇이란 말씀이오.”
동 평 “……!”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옥 정 “왜 대답을 못하십니까!”
동 평 “마마, 지금 이 나라에는 조총 3천정을 마련할 재원이 없사옵니다!”
순간, 장옥정은 세차게 연상을 내려친다.
동 평 “……!”
각오하고 있었던 일이다.
옥 정 “조총 3천정을 마련하지 못해서 중전을 버리겠다는 것입 니까!”
동 평 “아니옵니다. 그것이 아니옵고.”
옥 정 “어리석은 것들…! 사신 하나를 주무르지 못하고 국록만
축내고 있다니. 그러구도 이 나라의 종친이라 하겠습니까!”
동 평 “모든 중벌을 달게 받겠사옵니다.”
옥 정 “동평군은 꼼짝말고 대죄하고 있으라…!”
벌떡 몸을 일으키며 중궁전을 나간다.
동 평 “……!”
권상궁E “마마, 중전마마…!”
S # 53․대궐의 일각
장옥정의 일행이 급하게 걷고 있다.
옥 정 “……!”
분노가 이글거린다.
장희재가 달려 왔다.
희 재 “중전마마, 고정하소서.”
옥 정 “전하와 의논을 해야지요. 편전으로 가는 길입니다.”
희 재 “편전에는 아니되옵니다.”
옥 정 “아니되다니요. 저 못된 청나라의 사신들이 폐비를 만 나겠다는 마당인데 아니되다니요!”
희 재 “그, 그건, 다음에 있을 일이 아니옵니까. 지금 당장은...”
옥 정 “오라버니, 물러서세요. 당장…!”
희 재 “아니 되옵니다. 전하께서 역관들을 만나고 계십니다.”
옥 정 “역관을…?”
희 재 “역관들에게 맡겨서라도 일을 수월하게 풀어 가실 의향 이신 것으로 압니다.”
옥 정 “……!”
희 재 “오늘 하루만이라도 기다려 보시는 것이 도립니다. 제발 좀 절 믿으시고요.”
옥 정 “……!”
이글이글 분통이 끓는다.
S # 54․편전 (안)
함역관을 비롯한 역관들(5명 정도)이 부복했다.
숙종은 의욕에 찬 어조로 지시한다.
숙 종 “역관들은 들으라!”
일 동 “예, 전하.”
숙 종 “이제 정승들이 모화관으로 나아가 대국의 사신들과 만 나게 될 터인데…, 아직 중전책봉의 고명이 없는 때인지 라…, 나라의 명운과도 상관이 있을 것이니라. 따라서 너 희 역관들은 사신들의 영접에 추호라도 소홀한 점이 있 어서는 아니 될 것이니라.”
일 동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숙 종 “또한 역대 왕조에 역관의 여식이 국모의 자리에 있었 던 때가 있었더냐? 과인이 너희들 역관의 핏줄을 이같 이 소중히 여기고 있다면, 너희들 모두는 목숨을 버 려서라도 종사의 어려움을 함께 풀어가야 할 것이니라. 알아듣겠느냐.”
함역관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숙 종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자면, 어렵지 않은 일이 없을 것이다만, 성심을 다해 책무에 임한다면 하늘도 외면하지 않을 것이야.”
함역관 “소임을 다할 것이옵니다, 전하…”
숙 종 “내 다시 한번 당부하거니와 설혹 정승들의 대답에 미 흡한 것이 있다면…, 너희들 스스로 통변을 통하여 하 자를 줄일 것이며, 또 국익을 위한 일이라면, 너희 뜻이 반영된다 해도 과인은 책망하지 않을 것이니 이 또한 명심하여 거행하렷다.”
일 동 “명심하여 거행하겠사옵니다.”
숙 종 “어려운 때니라. 역관들의 소임을 충실히 다하라.”
일 동 “예.”
S # 55․도성의 길
한 채의 가마가 간다.
숙안공주의 집 청지기가 인도했다.
S # 56․폐비의 사가 대문 밖
가마가 와서 내려지고 안에서 숙안공주가 내린다.
보자기(사씨남정기)를 들었다.
청지기가 대문을 두드린다.
숙 안 “……!”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한상궁과 보배가 대문을 연다.
숙 안 “(몹시 상기된 얼굴이다) 어서 인도하시게!”
한상궁 “예, 공주마마.”
숙안공주는 한상궁을 따라 급히 간다.
S # 57․폐비의 방 (밖)
숙안공주가 한상궁의 인도로 왔다.
한상궁 “중전마마, 숙안공주께서 드셨사옵니다!”
폐비 E “어서 뫼시게!”
채 대답이 끝나기 전에 숙안공주는 안으로 들어간다.
S # 58․폐비의 방 (안)
폐비가 일어서려는데, 숙안공주가 들어온다.
숙 안 “마마. 그냥 앉으소서.”
폐 비 “송구하옵니다.”
할 수 없이 앉는다.
숙 안 “(앉으며) 마마, 청국의 사신이 벽제를 지났다고 하옵는 데, 마마와의 면대를 청할 것이라 하옵니다!”
폐 비 “사가의 어머님께서도 그런 말씀이 계셨사옵니다.”
숙 안 “알고 계셨다니 다행입니다. 고진감래라더니 이제야 복 위의 날을 맞으시게 되었질 않습니까.”
폐 비 “국운과도 상관이 있는 일이라, 조심스럽고 걱정이 앞설 따름이옵니다.”
숙 안 “그렇게 심약해서는 아니 됩니다. 이제 더 떳떳해 지셔 야지요. 장다리는 한철이요, 미나리는 사철이라는 노래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진 않습니까. (폐비의 얼굴에) 주상을 이르기를 철을 잊은 호랑나비라고 한다질 않습니 까.”
폐 비 “아무리 그렇기로….”
숙안공주는 보자기를 끌러 소설책을 폐비의 연상에 올 려놓는다.
숙 안 “서포 대감께서 쓰신 이야기책입니다.”
폐 비 “사씨남정기…”
숙 안 “저도 밤새워 읽었습니다만…, 분통이 터지고 눈물이 나 와서 견딜 길이 없었사옵니다만…, 얘기가 끝나면서는 천천세를 부를 만큼 속이 다 후련해졌습니다. 마치 마 마께서 복위하는 듯해서요. 목석이 아닌 다음에는 제 마 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옵니다. 읽어보세요. 읽어보시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 것이옵니다.”
폐 비 “예. 고맙습니다.”
살며시 ‘사씨남정기’를 가슴에 안아 본다.
숙 안 “그리고 청나라의 사신들을 만나면 무슨 말씀부터 할 것 인지도 잘 생각해 두셔야 하옵니다.”
폐 비 “……!”
수긍하는 기색이다.
S # 59․장희재의 집 마당
자비가 놓여 있고, 장희재가 무복차림으로 나온다.
윤씨와 숙정이 등 식솔들이 내당 쪽에서 급히 온다.
윤 씨 “청나라 사신이 입궐한다더니 모화관으로 가시는가?”
희 재 “그 뇌물만 밝히는 되놈들의 버릇을 가르쳐야지요.”
숙 정 “청나라 사신들의 일이면 예조에 맡겨 두셔야지요.”
희 재 “예조? 그것들이 뭘 안다구. 몸 사리느라 입도 벙끗 못 하는 것들이야!”
윤 씨 “아니면, 동평군에게 맡기던지…?”
희 재 “이 일은 동평군이 망쳐놓았어요.”
숙 정 “나으리, 아닐 것이옵니다.”
희 재 “이 사람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지난 번 연경으로 갔을 때 황제의 고명을 받아 왔어야지. 일이 거기서 뒤 틀리기 시작했노라고 중전마마 면전에서 대죄하고 있어. 알겠어, 이 사람아!”
숙 정 “……!”
윤 씨 “용서하시겠다는 분부는 아니 계셨구?”
희 재 “윤허고 자시고가 어디 있어요. 여기서 일이 잘못되면 세상만사 끝장이라니까요.”
장희재는 난폭하게 자비에 올라앉으며,
희 재 “가자!”
자비가 들리는데, 민장도가 뛰어 들어온다.
장 도 “이 사람 내금위장. 나 좀 나 좀 보세.”
자비가 내려지고 장희재가 내린다.
장 도 “자, 자, 나 좀 보자니까.”
장희재를 끌고 모퉁이를 돌아간다.
S # 60․다른 일각
민장도가 장희재를 끌고 왔다.
장 도 “어서 중궁전으로 가서 동평군을 풀어달라고 해야지.”
희 재 “동평군은 일을 그르친 만큼의 응징을 받아야 합니다!” 장 도 “이렇게 뭘 모를 수가 있나. 청나라 사신이 도성으로 들 어오고 있는데, 그들의 영접과 협의를 동평군에게 맡겨 야지, 정승들이 무슨 수로 그들의 오만을 당해!”
희 재 “……!”
장 도 “동평군이 평양까지 다녀오시질 않았나. 또 정강이라는 그 못된 놈과도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고,”
희 재 “동평군이 맡아서 되는 일이 없는데….”
장 도 “허어,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지를 않나. 동평군이 풀어야 하네. 이 일은 동평군이 풀 수밖에 없어. 그리 알고 어서 중궁전으로 가세. 아, 어서…!”
희 재 “이거야 원….”
못이기는 셈치고 간다.
민장도가 급히 따른다.
S # 61․모화관 근처
청나라의 행렬이 오고 있다.
정사와 부사 정강은 여전히 오만하다.
정 강 “……!”
자막이 뜬다.
- 숙종 17년 (1691년) 4월.
해 설 “급기야 숙종 17년 4월…, 조총 3천정의 상납을 강요하 는 청나라의 사신이 도성에 들어왔고, 조선 조정은 전전 긍긍,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외교상 의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