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례 지 금산 보석사, 개덕사
출발시간 오천 읍사무소 6시 20분
인덕이마트앞 6시 30분
종합운동장앞 6시 40분
양 학 육 교 6시 45분
여성수영장사거리 7시
보석사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진락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조구가 창건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885년(헌강왕 11)에 조구가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 절 앞산에서 채굴한 금으로 불상을 주조하였기 때문에 절 이름을 보석사라고 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고종 때
명성황후가 중창하여 원당으로 삼았으며,
1912년부터는 31본산의 하나로서,
전라북도 일원의 33개 말사를 통괄하였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다포집 맞배지붕이며,
법당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관세음보살·문수보살의
좌상(坐像)을 모셨는데,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섬세하며, 상호가 원만하고 자비로워
조선시대 불상 중에서는 극치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진영각은 휴정·유정·영규의 영정을 모셨던 곳이나
최근에 영정을 도난당하였다.
또한 의병승장비는 공주의 청련암과 보석사에서 무예를 익힌 뒤
임진왜란 때 왜병과 싸우다가 전사한
승병장 영규의 순절비로서,
1839년 5월에 금산 군수가 절 입구에 세운 것이다.
영규가 순국한 내용을 적은 이 비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서 자획이 뭉개지고 땅에 묻혔던 것을 1945년 정요신이 찾아서 다시 세웠으며, 높이는 약 4m이다.
이 밖에도 절 입구에는 둘레 11m의 큰 은행나무가 있다.
조구가 제자 5인과 더불어 육바라밀을 상징하는 뜻에서
둥글게 여섯 그루를 심은 것이 하나로 합해졌다고 하며,
나라에 이변이 있을 때는 24시간을 운다고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이다.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유물로 남아 있는 삼층석탑이 고려석탑의 양식을 지니고 있어
절의 창건시기를 추정할 뿐이다.
옛 절터에서 고려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와편(기와조각)이 많이 출토되었다.
고려 말의 고승 취운당 부도 등 큼직한 청석부도가 많이 남아있다.
중서대사 터였던 성심사는 1947년 정대신행(鄭大信行) 보살이
개덕사(開德寺)라는 이름으로 개칭했다고 알려져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초기 서대산에 3개의 서대사(西臺寺)가 있었다고 한다.
산신각에는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준다는 영험한 여산신이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