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보다 배워야 할 게 더 많은 부모 노릇, 이제 교육이 필요합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주말에 지방 강의가 있어 내려갔다 오는데, 깜짝 놀랐어요. 전에는 주말만 되면 놀러가는 사람들로 꽉꽉 막히던 길이 뻥 뚫린 거예요. 생각해보니, 지금이 학기 초잖아요. 아이들은 새로운 생활, 새로운 교과 과목에 적응하느라 긴장 상태고, 엄마들은 또 엄마들대로 ‘우리 아이가 잘하고 있을까’ 걱정하느라 마음이 불안한 거죠. 그래서 3월이나 4월에 아픈 애들이 많다고 해요. 환절기인 탓도 있지만 심리적인 긴장이나 두려움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런 시기에 아이에게 부담을 주면 더 역효과가 날 뿐이에요. ‘잘해라’라는 식의 격려성 멘트도 자제하는 게 좋아요. 그저 지켜보는 게 최고죠.
자녀 교육이 아니라 부모 교육이 먼저라니, 부모를 교육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좀 낯설게 느껴지는데요. 맞아요. 아동교육학, 노인복지학 등등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은 많지만 성인 심리를 다루는 분야는 극히 적어요. 사실은 누구보다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인데 말이죠. 그래서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고, 고민이 많지만 조언을 구할 곳이 마땅히 없는 거예요. 제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 중에도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자녀 교육’에 대한 내용일 줄 알고 찾아왔다는 거죠. 부모 교육은 자녀를 잘 키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부모의 행복을 위한 교육이죠. 즉,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잘 키우고 나면 내가 즐겁고 행복해지는 거예요. 좋은 부모가 되기에 앞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요. 그런데 이런 중요한 점을 간과하는 젊은 부모가 많아요. 그런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부모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뭔가요? 옛날에는 멘토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많았어요. 이웃과의 교류도 활발하고 가족 수도 많았기 때문에 부모가 역할을 좀 못해도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들이 나눠서 해줄 수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요즘은 주로 아파트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생활해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가면 집 안에 엄마밖에 없잖아요. 아이에게 제공되는 정서적인 환경이 엄마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엄마마저도 아이와 잘 통하지 못하고 상호작용이 안 된다면 아이에게는 최악의 상황인 거죠. 그러면 아이는 자연히 사회성을 가질 수가 없게 돼요. 예를 들어 애가 물을 좀 엎질렀다고 엄마가 “왜 그랬어!”라는 식으로 화를 냈다고 쳐요. 이 아이는 자기가 남에게 받아들여진 경험이 없기 때문에 엄마에게서 보고 배운 방식 대로 남에게 행동을 해요. 친구가 살짝 쳤어도 정도 이상으로 화를 낸다거나 하는 식이죠. 초등학교에 강의를 가면 선생님들이 백이면 백, 이런 얘기를 해요. “요즘 애들이 친구들을 받아들이는 힘이 너무 약해요. 싫은 일하는 것을 못 참아요. 엄마에게 교육을 좀 시켜주세요.” 어떻게 보면 예전보다 훨씬 더 엄마 역할이 커져버린 거죠. 그렇기 때문에 부모 교육이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정서적 위험에 처한 아이들, 부모병에 걸려 신음하는 부모들, 처방전을 받아가세요
그렇다면 교육을 받은 부모가 얻어가는 게 뭐가 있을까요?자녀와 부모가 함께 행복해진다는 점이죠. 제가 걱정하는 건요, 한 5년 전부터 아이들 사이에 반항 장애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거예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어린이들의 약 30%가 교류 장애, 정서 장애, 학습 장애 등을 보이고 있어요. 사춘기 아이들이 반항하고 자기 생각을 갖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지만, 만약 초등학교도 못 들어간 유아가 부모의 말을 신뢰하지 않고 반항한다는 건 분명 비정상적인 현상이죠. 제대로 된 자녀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옛날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이 자녀 교육에 투자되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부모들은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하지만 방향을 잘못 잡고 노력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올바른 방향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부모 교육이 필요합니다. 엄마들이 이런 교육 기회를 찾아야만 바른 양육 태도를 가질 수 있고,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위험하지 않게 된다고 봐요.
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부모님들은 주로 어떤 고민을 안고 계시던가요? 대부분 공부에 대한 걱정이에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말이죠, 화두는 공부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바람이 따로 있어요. 궁극적인 바람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런 내용인데 정작 표현은 “공부 안 하니?”로 나타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갖고 온 고민은 공부로 해결될 문제도, 영어 유치원이 해결해줄 문제도 아닌 거죠. 그렇게 자신의 맘속에 숨어 있는 진짜 바람을 직시할 줄 알아야 해요. 부모 질환이란 게 있어요. 예를 들면 귀가 얇아서 남의 집 아들이 어떻다더라 하는 이야기에 금세 혹하는 ‘팔랑귀 증후군’이라든가, 육아는 아내에게 맡겨버리고 가정일은 외면하는 ‘현실도피성 증후군’요. 부모들이 흔히 겪는 심리적 증상에 나름 이름을 붙인 것이죠.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약을 먹듯이 이런 부모 질환도 처방을 받아 치료해야 하지 않을까요?
강사이기 전에 한 아이의 엄마로서 어려움을 느낄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아이를 낳으면 누구나 엄마가 돼요. 하지만 좋은 엄마는 못 돼요. 아이를 키우면서 그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나름 잘나가는 방송작가로 열심히 일했지만 너무 바쁜 엄마였죠.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적다 보니 애가 비뚤어지더라고요. 너무 자주 못 보니까 아이가 엄마를 낯설어하는, 이른바 분리 장애가 나타난 거죠. 이러다 애가 잘못될 수도 있겠다 싶어 가슴이 쿵 내려앉았어요. 엄마가 될 것이냐, 커리어를 지킬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 놓였죠. 그리고 결국 엄마 노릇에 최선을 다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리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공부도 시작했고요.
아이가 어떻게 달라졌나요?(그녀의 딸이 전교 회장까지 한다며 동석한 이성아 부장이 일러줬다) 다른 것보다도 지금 우리 딸이 중 3인데 학교를 너무 좋아해요. 방학이 끝날 때쯤엔 얼른 학교에 가고 싶다며 가방까지 미리 싸놓을 정도예요.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대요. 저는 그동안의 커리어를 포기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썼지만 모든 엄마에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요. 가족마다 상황이 다르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거든요. 방향만 제대로 정립한다면 맞벌이를 하면서도 충분히 아이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아이를 잘 키워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해요
만난 분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을 것 같아요. 이분이 처음 오셨을 때는 상당히 절망적인 상황이었죠.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어찌나 말썽을 피우는지 학교에서도 전학을 권고할 정도였대요. 제가 볼 때는 행동 장애에 ADHD도 있었던 것 같아요. 아빠는 바쁘다는 이유로 가정일에 나 몰라라 하고 엄마는 우울증까지 생겨서 그걸 고쳐보겠다고 저에게 찾아왔어요. 그런데 부모 교육을 받기 시작하더니 무섭게 변하기 시작했어요.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른바 ‘부모력(父母力)’이 생긴 거죠. 전에는 머릿속에 ‘도대체 애가 왜 이럴까?’라는 생각이 가득했다면 이제는 ‘얘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로 바뀌었어요. 심할 때는 70대를 때린 적도 있을 정도래요. 혼내고 야단치던 엄마가 자신의 힘든 점을 알아주고 도와주는 엄마로 바뀌었으니 아들도 당연히 변했겠죠? 지금은 과학 영재로 아주 똘똘하게 자라고 있고, 부부 관계도 좋아졌어요. 더 신기한 것은 엄마의 변화예요. 언젠가 제게 와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제야 살 만하네요.” 그전에는 죽을 만큼 힘들었다는 소리겠죠. 요즘은 자신이 배운 것을 나누고 싶다며 부모 교육 강사 과정을 밟고 있어요.
그렇게 행복해지는 엄마들을 만날 때 큰 보람을 느끼실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사람이 바뀌는 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참 가슴 뿌듯한 일이에요. 솔직히 어른이 돼서 머리가 굳어지면 습관이나 성격을 바꾸는 게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엄마가 1%만 바뀌어도 아이가 변하고 가족이 변해요. 한 번은 부모 질환에 대해 강의하는데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딱 제가 고민하던 내용이에요. 오늘 귀찮아서 하루 건너뛸까 생각했는데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그때 생각했죠. ‘오늘도 한 명을 구조했구나.’(웃음) 가끔은 정말 제 자신이 구급대원 같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가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어머니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남들보다 잘하는 아이보다 남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게 더 중요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우리 애가 학교 가서 환영받을 수 있을까? 담임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좋아할까?’ 이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답이 나와요. 바로 집단 규칙을 잘 지키고, 친구와 다툼이 없고, 수업 시간과 노는 시간을 구별하고,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는 아이가 아닐까요? 그런 준비를 우리 엄마들이 얼마만큼 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해요. 영어, 국어 등 학습 교육뿐만 아니라 마음의 준비를 몇 퍼센트나 하고 있는지 보셨으면 합니다. 아이들이 항상 잘하는 것은 아니에요.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는 내 아이잖아요. 기다릴 줄 아는 부모가 됐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