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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상담 보고서
1. 상담 내용 소개
1) 첫 번째 상담 (2014년 11월 6일 21:45-22:50)
상담자 : 형, 안녕하세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내담자 : 그럭저럭 지내고 있지......
상담자 : 사역은 시작했습니까?
내담자 : 아니. 다음 달 말엔가 시작하려고 해.
상담자 : 오, 그렇네요. 사역을 시작하게 되면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릴 수 있어서 좋겠네요. 혹시 사역을 시작하게 되면 어떤 부분이 힘들 것 같으세요?
내담자 : 대인관계 면에서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이 돼. 내 성격이 좀 내성적이잖아......
상담자 : 인간관계 면에서는 특별히 잘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 그렇게 하면서 배워가는 것이죠......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내담자 : 별 문제 없는데...... 가끔 엄마에 대해서 불만이 생길 때가 있어.
상담자 : 그 불만을 말로 표현해볼 수 있겠습니까?
내담자 : (머리를 숙이면서) 엄마는 나를 너무 내성적인 성격으로 키우신 것 같아. 내가 어렸을 때, 운동도 하게 축구공 같은 걸 사줬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라는 생각이 들어...... 운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줬더라면 이렇게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겠는데......
상담자 : 어머니가 형을 소극적인 성격의 사람으로 키우셨다는 점에 대해 안타까워하시는군요...... 그래도 신앙으로는 잘 키우셨지 않습니까?
내담자 : 그래. 그건 고맙지. 나를 신앙으로 키워준 데 대해서는 감사하지. 그럼......
상담자 : 형은 지금 내성적인 성격이 외향적인 성격보다 더 열등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네요.
내담자 : 내가 보기에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면 손해를 많이 보는 것 같아. 외향적인 성격이면 무슨 일이든지 창의적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내성적인 성격은 이기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아.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담자 : 오, 그러면 형은 가끔 과거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고 생각되는 때도 있겠네요...... 그러나 제가 볼 때, 내성적인 사람은 완벽주의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담자 : 그럴 수 있지......
상담자 : 부모님한테 상처받은 경험은 있습니까?
내담자 : 있지. (잠시 생각하다가) 내가 어렸을 적에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중에 끼어들려고 했다가 어머니에서 꾸중을 들은 적 있어. “어린 게 웬 참견이야?”라고 하셨어...... (많이 침울한 표정) 내가 후에 알고 보니 자기 자녀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였더라고......
상담자 : ......
내담자 : 또 교육할 때에도 그래. 자녀에게 책을 보라고 교육하려면 자신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줘야 되지. 안 그렇나?
상담자 : 그렇죠. 그게 상처가 될 수 있겠네요......
내담자 : 어머니가 그런 걸 잘 몰라서 그렇게 키운 것이라고 생각이 돼.
상담자 : 그렇죠. 모든 게 어머니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저는 형이 어머니와의 관계가 친밀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내담자 : ...... 그래.
(뒤에 이어지는 상담 내용은 생략)
2) 두 번째 상담 (2014년 11월 13일 20:30-21:25)
상담자 : 형 요즘 과제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죠?
내담자 : 과제도 힘들고...... 그 외의 스트레스도 많아.
상담자 : 주로 어떤 스트레스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내담자 : 지금 신대원에 다니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주셨다고 믿으면서도 내가 과연 잘 선택한 것인지 의심이 들 때가 있어. 그럴 때는 많이 우울해져......
상담자 : 그러면 신학을 배우면서도 ‘내가 원하는 게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겠네요.
내담자 :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건 아니야. 그러나 나는 드럼이 더 좋아. 내가 사실 군악대에 있었거든. 고등학교 졸업하고 음악을 배우려는 생각도 해보았어. 학부 때 휴학을 하면서 음악을 배운 적도 있다...... (머리를 떨구며) 그런데 드럼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어느 한 가지라도 다른 사람보다 더 잘했으면 좋겠는데, 나는 잘 하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
상담자 : 자신이 잘 하는 게 없다는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 같네요.
내담자 : 그래. 내가 사실 우울증이 있어. 이전부터 있어왔는데, 병원에 가서 약물치료도 받아봤는데,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그만둔 적이 있어.
상담자 : ...... 우울증 때문에 상담을 받아본 적은 있나요?
내담자 : 아니. 네가 처음이야.
상담자 : 한 가지만이라도 남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것은 비교의식인 것 같은데, 제가 생각하기에 비교의식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것 같아요.
내담자 : 그래. 나도 알지만 잘 안 돼......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하다보면 저 친구는 잘 하는데, 나는 왜 안 될까, 나는 바보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상담자 : 형이 어렸을 때, 부모님이 다른 집 아이와 형을 비교하면서 형을 책망하며 상처 준 적이 있었나요?
내담자 : 그래. 특히 어머니가 심했었지...... 그런데 어머니들은 다 그런 게 아닌가?
상담자 : 형은 지금 자신이 어머니로부터 받은 상처와 관련하여 자신보다는 어머니를 두둔하고 있네요...... 형이 무엇인가를 잘 하는 행위 때문이 아니라, 자녀라는 신분 때문에 형은 인정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내담자 : ......
상담자 : 비교의식이라는 것은 사람을 엄청 비참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형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것 때문에 행복한 게 아니고, 형보다 못하는 사람들도 그것 때문에 열등감에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담자 : 그래. 그건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사실 나는 대학원 올라오는 시험에 한 번 만에 합격했지만 세 번 시험 쳐도 떨어지는 친구가 있었어. 그 친구가 나보다 못한다고 해서 열등감에 빠진다면 말이 안 되지......
상담자 : 저도 가끔 우울증에 빠질 때가 있는데, 너무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은 안 좋은 것 같아요......
내담자 : 그래. 그렇지......
상담자 :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내담자 : 일단 조그마한 것부터 시작하면서 자신감을 키워야 될 것 같아.
상담자 : 그래요.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형이 아무것도 하는 게 없을지라도 형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도 별로 잘 하는 게 없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담자 : (멋쩍게 웃으면서) 그래. 그게 사실 중요하지......
(뒤에 이어지는 상담 내용은 생략)
2. 상담 내용에 관한 성경적 해석
우리의 삶에서 인간관계만큼 어려운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관계 중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가족 간의 갈등 문제는 장기간에 거쳐 형성되는 것으로서 가족 내에서는 스스로 해결하기 힘들 정도이다. 조그마한 상처라고 해서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러한 상처들이 쌓여서 가족 사이를 가로막는 담이 형성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앞에서 필자가 다룬 두 차례의 상담도 이러한 갈등의 문제를 어느 정도 안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와 관련하여 어떻게 말씀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가?
우선 앞에 언급된 사례에서 내담자가 부모에 대해 가지는 불만에 대해 생각해볼 때, 우리는 내담자가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는 성경의 교훈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쉽게 정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이 말씀을 굳이 적용하자면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부모가 자녀의 있는 모습 그대로에 대해 감사하지 않으면서 자녀에게 일방적인 감사를 요구한다면 이는 어쩌면 부당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1-3절)을 언급함과 동시에 그 뒤에 곧바로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할 것(4절)을 함께 언급하였다. 이러한 상호적인 교훈은 부부관계는 물론이요, 종과 상전에게서조차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엡 6:5-9). 따라서 필자는 앞에서 언급된 상담 내용과 관련하여 자녀인 내담자와 내담자의 부모 양편 모두에게 성경적인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자녀인 내담자에 대해 볼 때, 부모가 자신을 내성적인 성격으로 키워주신 것에 대해 가지는 불만은 정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성격 형성에 있어서는 후천적인 요인뿐 아니라 선천적인 요인 역시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는 자였고(창 25:26) “악인은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한다”(시 58:3)고 했으니, 하나님께서 인간을 모태에서 나게 하실 때부터(혹은 창세전에) 이미 각 사람의 성격을 작정하신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항상 최선의 것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혹시 부모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이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에 대한 범법인 동시에 더 나아가서 우리를 존재에로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불평이요, 하나님의 작정에 대한 불만인 셈이다(잠 14:31 참고).
내담자는 “어머니가 나에게 운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줬더라면......” 라는 식으로 불만을 나타내는데, 이는 내담자가 삶을 지나치게 운명론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작정은 결코 우리를 운명론에 빠트리는 일이 없다. 하나님의 작정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한 자유로운 선택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행을 직접적으로 의도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우리가 불평할만한 이유는 없는 것이다. 정정숙은 분노를 이기는 방법과 관련하여 우리가 분노를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생각들을 자제해야 함을 언급하였다.
또 내담자는 내성적인 성격과 외향적인 성격을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을 폄하하고 있는데, 이는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성경 어디에서든지 외향적인 성격을 더 우월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상대적인 존재로 짓지 않으셨다. 따라서 A가 B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은 적절하지 않으며, A는 B와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7:17에서 언급하기를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고 하였다.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할 수 없는 일을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할 수 있으며, 또 그와 반대로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할 수 없는 일을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할 수 있으므로 서로가 협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내담자의 부모에게서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내담다의 부모가 말다툼을 할 때 끼어드는 자녀(내담자)에게 “어린 게 무슨 참견이야”라고 꾸중했던 것은 자녀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고 상처를 주는 것이 된다. 아이가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아이의 인격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눅 18:16)고 말씀하시면서 어린 아이들을 인격을 가진 청중으로 취급해주셨다. 따라서 가족의 말다툼에서 자녀의 참견을 무시하는 것은 자녀를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거부는 자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앞의 상담 사례에서 볼 때 내담자는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려있다. 이러한 우울증이 내담자의 신앙의 미성숙을 보여주는 척도라고 할 수는 없다. 하재성 교수님은 우울증에 대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주신 “슬픈 선물”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러므로 내담자에게 있어서 낮은 자존감은 내담자 자신이 극복해야만 할 난관인 셈이다. 우선 내담자는 자신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창조와 그리스도의 구속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한편 우리는 내담자의 부모가 내담자에게 비교의식으로 인해 자녀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트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고 말씀하셨다. 자녀의 자존감은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형성된다. 데이빗 칼슨은 언급하기를 “자녀의 자존감은 우리가 자신과 배우자와 자녀를 어떻게 존중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가정에서의 부모의 역할은 자녀교육에 있어서 중차대한 요소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상담 중 목회상담학적 진단이나 해석
앞에 언급된 상담 사례에 대하여 필자는 이미 성경적인 기준을 제시하였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는 실제로 내담자를 위해 어떻게 목회상담학적 진단이나 해석을 할 수 있느냐 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필자는 이에 답하기 위하여 일단 임종천 목사가 제시하고 있는 상담의 절차를 앞의 상담 사례에 적용해보겠다.
1) 옛것을 인정해야 한다.
a. 고통스러운 감정 : 어머니는 나에게 “어린 게 웬 참견이야”라고 꾸중하셨다. 다른 아이들과 나를 항상 비교하면서 내가 못한다고 나무라셨다.
b. 거짓 신념과 사고 : 내성적인 성격은 열등하다. 나는 별로 잘 하는 게 없다.
많은 경우 내담자들은 과거의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앞의 사례에서 내담자는 “어머니가 잘 몰라서 그렇게 키운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머니들은 다 그런 게 아닌가?” 등의 말로 과거의 고통스러운 감정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이러한 자기 위안으로는 어머니와의 신뢰관계가 회복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내담자는 여전히 어머니에 대한 불만이 일종의 잔재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정정숙은 분노를 이기는 방법과 관련하여 첫째로 신뢰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2) 옛신념과 사고에 대해 논박해야 한다.
a. 그것이 사실인가? 실제로 그런가? 아니다.
b. 그 이유는? 나는 다른 애들보다 더 잘한다는 이유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자녀라는 신분 때문에 사랑받아야 한다. 내 부모가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귀한 존재이다. 나에게도 분명히 나만의 은사가 있을 것이다.
c. 그것(비교의식)은 나의 성장이나 대인관계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다.
d. 그 이유는? 비교의식은 다른 사람의 기준에 나의 가치를 두기 때문에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 비교의식은 이제까지 나에게 낮은 자존감을 가져다주었다.
내담자는 반드시 불합리한 신념에 대해 논박해야 한다. 정정숙은 분노의 원인을 분별해야 하며, 불합리한 신념에 도전해야 한다고 언급한바 있다. 거짓 신념과 사고에 권위를 부여하거나 그러한 삶의 패턴에 순응하고 있는 한 치유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을 묶고 있는 옛신념과 사고에 도전하도록 적극적인 협조와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3) 새로운 신념과 사고를 인정해야 한다.
a. 내가 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b. 하나님께서는 내가 다른 애들보다 더 똑똑해서 나를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받아주신다. 내성적인 성격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c. 나는 하나님께 깊이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 나만의 은사를 주셨다.
내담자는 대개 옛신념과 사고에 습관되어 살아간다. 따라서 치유를 위해서는 일상에서 새로운 신념과 사고를 반복적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비록 처음에는 새로운 신념과 사고가 부자연스럽게 보이겠지만 새로운 신념과 사고가 습관이 될 때까지, 그리고 습관이 능력이 될 때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4) 옛것을 벗어 버리고 새것을 입어야 한다.
a. 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버린다. 그리고 낮은 자존감을 거부한다.
b.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신뢰하며, 부모를 사랑한다.
내담자가 부정적인 생각이나 느낌을 떨쳐버리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재성 교수님은 언급하기를 “일단 부정적인 생각이나 느낌에 사로잡히면 거기에서 빠져나오기는 정말 어렵다. 그런 불만과 짜증 속에 머무는 것이 묘한 안락감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담자는 옛것을 벗어 버리고 새것을 입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야 한다(빌 3:13-14 참고).
4. 상담 전체에 대한 상담자의 평가
필자는 본 상담을 통해 상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상담이란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필자의 내담자는 상담을 마치고 필자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다른 사람에게 이토록 자세하게 얘기해보기는 처음이었다고 하였다. 본 상담을 마친 후 필자는 과거 자신이 얼마나 다른 사람의 아픔을 외면하면서 살았었던가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맡기신 양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셨는데, 목사 후보생인 필자 자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관계 안에서 얼마나 무관심으로 일관된 삶을 살고 있었던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본 상담을 통하여 필자는 상담이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상담은 상담자 자신의 인생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상담자는 정답만 얘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본 상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특히 둘째 상담에서 상담자인 필자 자신이 내담자 앞에서 너무 아는 척 하고 정답만 얘기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필자는 내담자에게 “비교의식이라는 것은 사람을 엄청 비참하게 만듭니다.” 라고 말한 적 있는데, 내담자는 이 사실을 몰라서 우울증에 빠진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필자는 어떤 말을 해주어야 했을까...... 결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더욱 노력해서 훌륭한 목회적 상담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