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간통에서의 흐릿한 생각

요즈음 바깥에는 찬바람 불고 하초가 쌀쌀 맞고 처량하니, 뜨끈한 목간통에서 몸 좀 녹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나는 시절입니다.   어디 좋은 사우나탕이나 찜질방 아시는데 있으면 연락 주세요. 함께 가서 추위를 벗겨 보자구요. 고구마나 날계란을 가져와 같이 쪄 먹으   면서 "삶은 고구마다" 아니면 "삶은 계란이다(≒Life is egg)" 따위로 자미난 이바구와 맛있는 간식도 나누자고요.      여러 현명하신 법우님께서 다 알고 계시듯 요즈음 목욕탕은 이전처럼 명절 대목 아니면 특별한 일 앞두고 오랜만에 들러 열심히 때나 벗   기고 가는 소임에 만족해하지 않습니다. 우리 법우님들 중 부지런하거나 깔끔한 성품을 가지신 분들이 거의 매일 들리는, 즉 장날마다 가   는 순례코스로 애호도가 많이 증진된 것입니다. 벌써 이름부터가 무슨 스파, 사우나, 헬스, 랜드, 대욕장, 찜질방 등으로 치장되어 때 벗기   기 뿐 아니라 식사와 체중 줄이기, 숙소대용, 건강유지와 휴식, 더 나아가 사교장으로까지 활용도의 폭이 넓게 전개되어 있습니다. 로마의   멸망이 목욕탕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만치 그 시절 욕탕 규모와 설비가 거창하고 호화로워, 비데 꼭지까지 순금으로 장식했다고는 하   나 우리들은 당시 정황을 상세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취미 아닌 취미생활로 시설 괜찮은 목욕탕에서의 텅 빈 서 너 시간을 흥감스러이 여   길 뿐, 기껏 만원 안쪽의 경비로 만족되는 청빈한 취미생활이 어찌 국가 존망에 까지 관여 하겠습니까. 하기야 요즘 목욕 설비의 다양함과   편의성이 꽤 놀라울 수준이긴 하지요.      간단하고 순박한 저의 모범적인 목욕탕 이용 내지 활용순서는 이러합니다. 옷과 양말까지 다 벗기. 사우나 안에서 열 받으며 모래시계 흘   긋거리기. 때 씻기. 한숨 주무시기. 다시 열 받기. 샤워하기. 몸무게 재기. 옷 입기. 이 때 속옷을 챙기지 못하는 수가 간혹 생기는데, 그것   은 천에 빵꾸가 나 있거나 째진 부분이 한 군데 이상이어서 입니다. 본디 제 빤쑤의 째진 곳은 한 군데여야 정상입니다. 저는 대구서문시   장이나, 칠성시장 등 재래시장 좌판에서 파는 4~6장에 1만원하는 "마데 인 중화인민공화국" 팬티를 주로 사 입습니다. 몸에 때가 많은 저   에게 아주 합당한 속옷입니다. 이러한 것은 30년 전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제품과 같아서 검정 고무줄이 허리부분을 조이게 하기 때문에,   배들레헴이 38인치 이상 되거나 히프가 기형적으로 발달한 호텐토트족 같은 사람에게 많은 편리함을 주는 탓입니다. 그러나 이 제품은 내   구성에 있어 영 신퉁방퉁 하지 않아 쉽게 째지고 구멍이 나 버리니, 양쯔강 짐 나르는 꾸리들이 팬티를 두 겹 세 겹 입는 이유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해서 종종 "카사노바 놀던 여자 버리듯" "이춘풍 동네 기생 차버리듯" 미련 없이 목욕탕 쓰레기통에 속옷을 던져버리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 차차! 얘기가 곁길로 나가 버렸네요. 참 ~! 생일 밥상 수가 쪼께 늘고부터는 주책도 노망에 가까워지는 것 같   습니다요. 자! 이제 다시 즐거운 목간통 이바구로 들아가 보입시더.      목간통에 손님이 많을 시에는 체중계에도 한 두 사람 줄서는 수가 있습니다. 이 때 어떤 지능지수 높지 못한 사람은 깨금발로 체중 실어   보고 한발로도 해 보고 꾹 누르면서도 해보고, 고개를 갸웃갸웃 하는 둥으로 뒷사람의 조바심을 일으키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거이   야 말로 영 되어먹지 못한 행태로써, 그깟 체중 일 이 백 그램 차이야 소변 무게에 지나지 않을 것인데도 그렇게 시시껍질하게 구는 것입   니 다. 주로 이러한 양반은 사우나 안에서 땀 흘리기에 온 공력을 집중하고 있는 사람 옆에서, 보건체조하기 제자리 뛰기를 하여 자기 땀   소금물을 사방에 튀기는가 하면, 탕 안에서 개헤엄 치거나 시체놀이를 하기도 하고 풍덩 뛰어 들기도 하며, 또한 눈치를 보아 소변조차 볼   것임에 틀림없는 목욕인 입니다. 혹 아무도 없으면 큰 것까지도... 헤 헤! 그러기야 ....!   렘브란트나 르노와르에서 표현되듯 풍만·부드러우면서 다소곳한 풍경의 "목욕하는 여인"따위를 어찌 남탕에서 기대 하겠습니까만, 탕 안   에서 털 없는 제3의 침판지가 무도하게 마구 활약하는 것은 참으로 보기 민망한 광경인 것입니다.      제가 겪은 한 경험입니다. 제 앞에서 어느 아저씨가 머리를 감고 계셨습니다. 그의 머리 방향은 제 반대쪽이었고, 그의 검정스레 쭈글스   러운 히프는 제 코 앞이었습니다. 불편하게도 그가 허리를 굽혀 머리칼에 비누칠하며 마구 샴푸 거품을 낼 때, 제 앞에 보이는 그의 반대   쪽은 어떤 출렁임으로 희안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겠습니까? 말 탄 김유신장군 동상에서 말 엉덩이 쪽을 본 일이 계시는지요. 대단하지   도 않는 광경에 감탄할 일 없으련만, 그래도 저는 아저씨의 굳센 무신경에 찬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자가 아니어서 천만다행   이랄까...뭐. 저는 생각하였습니다. “아! 예의란 자기를 위한 것이로구나.”      이러하게 탕 내에서 호호탕탕 방약무인하게 설치는 앞에 꼬랑대기 달린 제3의 침판지들에게 믿음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그것은 "모두가   벌거벗었으니 너나 내나 다 똑 같다. 그리고 내가 누군지 네가 어떻게 알겠느냐. 그래서 나는 방자하게 놀아도 된다."하는 믿음입니다. 짜   장 그 믿음이 틀린 것도 아니지요. 그러나 적어도 그 믿음이 허망하고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도 잘 알 고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허망하고 현실적이지 못한 믿음은, 인내와 이해를 필요로 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감마저 상실케 하여 이 세상에 대한 한없는 원망   과 미움만 키워 놓을 것 아니겠습니까? 확대되고 파급되어 재생산될 것 아닙니까? 해서 그것은 같은 목욕인에게 있어 퍽 안타깝고도 불행   한 일이 될 것입니다. 사족이지만 우리 법우님들은 남녀노소가 서로 뒤섞인 채 많은 활동을 하였어도, 또 곡차가 두뇌 용량을 초과하였어   도 장유유서와 남녀유별 의식을 제대로 잘 간직한 참으로 인간적인 예의를 가진 도반들이었지요. 세칭 구도자라는 명칭이 쉽사리 이루어   진 것이 아니기에, 또 쉽게 허물어 질 수도 없는 거시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목욕탕 흐릿한 증기를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는 처지가 아닌 줄   아는 까닭에서 이지요. 계속 추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건강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