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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우리말과 숫자의 생성시기
이 [진본 천부경)은 하나 둘 셋 … 열이다. 그렇다면 이 숫자들은 어떻게 만들어졌단 말인가?
청동기를 쓰던 환숫(桓雄) 때 그들은 말도 별로 없었지만 경제 개념도 없었을 것이니 숫자도 없어서 마치 신선들처럼 살았다고 했고, 하나, 둘, 셋 … 열' 이라는 것은 그저 환숫이 개국할 그 민족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하느님의 교훈' 일 뿐이라 했다. 그 교훈을 아침저녁으로 외다 보니 이것이 은허 갑골문, 그리고 소전, 대전을 쓰던 진시황 때나 가서야 숫자라는 개념이 생겼다고 했다. 그렇다면 열 이상 백까지의 숫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 글은 독자 토론란에 써놓았던 글인데 [진본 천부경) 신지녹도전자 하나 둘 셋 … 열을 읽기 전 상식적으로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여기에 삽입한다.
글쓴이는 [천부인 ㅇㅁㅿ]으로 만든 ㄱ, ㄴ, ㄷ … ㅎ의 뜻을 찾아 우리말의 뿌리를 조사해보고 그 이론을 무려 500쪽짜리 졸저로 펴낸 바 있다. 여기서 글쓴이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환웅 당시 20여 개 단어와 열밖에 안 되는 숫자밖에 없었다고 했는데 독자 고토회복님은 “그렇다면 그 적은 말과 숫자로 3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토착민을 교화하다니?" 라는 의문을 제시했다. 이 고토회복님의 의문과 질문은 당연하다. 이것은 글쓴이 카페에 쓰여 있는 글들을 모조리 읽어보아 전 윤곽을 추리해본 사람이 아니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글쓴이는 이에 “말이란 거짓말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이란 설명을 했으나 이것도 너무 고차원식 답변이고 이것이 또 현대인에게 먹혀들어가지 않을 것 같아 다시 정리하여 여기에 올린다.
[질문 요지] 1. 언어에 대한 질문
우선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만으로도 엄마는 아이의 뜻을 알아채는데, 그것은 큰 것이 작은 것을 품을 때는 그러합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에는 불가능하다고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환족이 바이칼 호수로부터 내려와서 웅족이나 범족을 교화할 때 환족은 웅족이나 범족의 원하는 바를 알아차릴 수가 있겠지만, 웅족이나 범족은 환족의 뜻을 알아차리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이런 웅족에게 20단어도 안 되는 말로 천부경의 의미를 납득시키기가 쉬웠을까요? 하나에서 열까지의 숫자는 그 의미가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설명해서 납득시키려면 다른 수단이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어떻게 그 의미를 전달하였는지가 무척 궁금합니다. 물론 말이 안 통하는 외지에 가서도 밥 얻어먹고 물마시면서 생존은 가능하겠지만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말을 알아들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것도 선진 문화 속에서 살아봤던 사람이나 가능하겠지요. 웅족에게 하늘의 의미나 천부경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어떤 방법이 구체적으로 사용되었는지가 정말로 궁금합니다. 먼저 공부하신 분들의 청량한 답변을 부탁해도 될까요?
[답변]
글쓴이는 [진본 천부경] 신지독도문 해독을 하면서 가장 먼저 읽는이드에게 부탁한 것이 그 신지독도문을 풀려면 현재 우리이 상식이 아닌 5~6천 년 전 원시조상의 입장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보자고 했다. 왜냐하면 현재 과학문명과 20만 어휘를 쓰는 우리의 상식으로 그들의 문화를 생각해본다는 것은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1. 그때 말이라고는 불과 20여 단어밖에 되지 않았다? 어떻게 아는가?
1) 언제부터 말이 만들어졌을까?
구석기인들 이전 인류는 지금 고릴라나 오랑우탄같이 그저 생식을 위하여 나오는 대로 본능적으로 소리 지르고 몸동작을 했을 것이고, 이는 짐승들같이 그 집단에서는 의사가 통했을 것이다. 이는 지금 미국 개나닭이 한국 개나 닭들과 통역이 없어도 의사가 통하는 것과 같다. 또 각자 다른 짐승들끼리도 일단은 공통된 의사가 있을 것인데, 바로 외적이 쳐들어올 때나 먹이를 취할 때 위협하는 소리일 것이다.
즉 돌을 이용할 줄 알았던 인류의 조상 구석기인들의 언어는 그저 본능적인 소리였겠지만 이것이 체계있게는 다듬어졌을 것이다. 이것을 [창세기]로 인용하면 바벨탑 이전의 인간들이 모두 의사가 통했다는 비유로 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선악과의 지혜가 생긴 인간들, 즉 신석기인들은 본능적 의사표시 이외에 새로운 의사표시를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이 신의 섭리, 즉 자연의 섭리에 인간의 지혜가 덧붙여져 좀 더 발전된 생활을 해보려 했던 것에서 말이 창조되었던 것이고, 여기서부터 부족들의 말이 각자 갈라지게 된다. 즉 신의 섭리를 넘보던 인간의 바벨탑은 무너지고, 각 부족이 각자 만들었던 각자의 말들은 서로 헷갈리게 된다고 본다.
2) 우리말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대략 6천 년 전 신석기 문명이 끝나고 청동기 문명이 시작될 무렵 지금 바이칼 호 부근에 살던 환한 부족이라는 북방계 몽골리언 무리의 지도자이셨던 우리 하느님은 본능적이거나 무의식이 아닌 의식으로 처음 말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처음 만든 말이 하늘과 '땅'과 '사람' 을 말하는 ㅇㅁ△의 아래 이점 발음이니 이는 아마사, 어머서, 오모소, 우무수, 으므스, 이미시 등이나 그 중간음이 되고 또 말하는 사람이나 지방마다 그 발음이 달라져 중세어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지방의 방언이 다 그렇기도 하다.
세종께서 우리 민족이 쓰던 말을 죽일 수가 없어 아래아점으로 남계둔 것인데 지금은 그 세종보다 더 잘난 한글학자들에 의하여 없어졌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혀가 굳어 그 아래아점 발음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없게 되었고 혹 촌로가 말하더라도 귀가 멀어 정확히 들을 수도 없다.
글쓴이는 아래아짐 발음부터 말이라고 하고 싶다. 왜냐하면 먼저 본능적으로 나오는 소리를 모두 말이라고 한다면 짐승들도 모두 말을 하고, 갓 태어난 아기들도 말을 한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말의 뿌리를 추적해보면 신기하게도 다른 나라 말들과 다르게 하늘과 땅과 사람이라는 [천부인 ㅇㅁㅿ ]의 철학적인 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3) 우리 처음 말은 몇 마디 되지 않았다.
이 증거는 지금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보면 알 수 있다. 즉 '눈(目)' 도눈 이고, 눈(雪)'도 '눈' 이고, 달(月)'도 '달' 이며, ‘음달', '양달' 할 때의 땅도 '달이다. 또 우리 한민족이라는 '한' 속에는 무려 20여 개의 뜻이 있으므로 그때는 이 '한' 한 마디만 하면 지금 20가지의 뜻을 말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 '눈' 이나 '한' 등도 세종이 모음을 완전히 만들었으니 지금과 같이 '눈' 이라 쓰고 눈으로 발음하지만, ‘검둥이', 감둥이' 또 파릇파릇, 퍼릇퍼릇, 포릇포릇, 푸릇푸릇 같이 모음이 혼동됐고 모음의 글자까지 완전치 못했던 원시한글에서는 '눈' 을 어떻게 적고 말했을 것 같은가? '' 자는 이 책과 동시 출판하는 [천부인 ㅇㅁㅿ]의 비밀에서 자세히 설명했는데 그 속에는 '누워 있다'는 뜻이 들어 있고, 그래서 도 ㄴ이고 독도 비와는 달리 흘러내리지 않으니 ㄴ이라 했다. 그러니까 결국 ㄴ자 하나 써놓고 '누리, 눈(目), 눈(雪), 누나, 누에' 등 모두를 말했다는 말이다.
또 하늘의 달(月), 음달, 양달 할 때의 달, 딸(女), 이 달이 진화하여 우리의 약방의 감초격 '이' 가 붙어 된 말로 '달이) 다리(脚)', '달이 〉다리(橋)'도 이와 같이 ㄷ만 써놓으면 된다. 이것은 우리 뿌리 말을 조사해보면 엄청 많은 것이 동음이의(同音異義)이지만 실은 같은 말이었다. 이것이 우리 뿌리 말이니 그때 도대체 우리말이 몇 마디나 되었을까? 그러고도 그들이 어떻게 생활했을까 하는 걱정은 현대의 20만 어휘를 쓰는 우리 생각이고 애기가 앙앙대는 울음소리 하나만 듣고도 엄마는 요놈이 배가 고픈지 쉬를 했는지 밖에 나가고 싶다는 말인지 다 알아듣는다고 했고, 엄마의 대꾸하는 말이래야. '응' 한 마디만 하고도 볼기짝을 두들겨주며 그 녀석 소원만 들어주면 된다. 즉, 여러 말이 필요 없는 것 같다고 했다.
4) 그 적은 말로 어떻게 토착민을 교화했을까?
(1) 일본군이 우리나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 등 외국을 정복할 때 뭐사상과 문학작품을 가르치는 것은 차치하고 그들은 그 외국말을 다 배울 필요가 없다. 그저 총 하나로 위협하면 그들은 죽지 않으려고 다 알고 따라온다. 그리고 약삭빠른 놈은 일본말을 배운다.
(2) 부처가 2천5백여 년전 인도 각지를 돌아다니며 설법을 할 때 각 지방의 인도인들이 그 말이 통일돼 있었을 것 같은가? 또 부처는 각 지방의 방언을 다 배운 다음 그들을 가르쳤을 것 같은가? 부처는 자기가 쓰던 범어로 설법했고 그들은 어떡하든 알아들으려 했을 것이다.
(3) 원시 조상들은 지금 선악과 이전의 인간 같은 신선들일 것이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좋게 말한 것이고 나쁜 표현을 쓴다면 마치 짐승과 같았으리라고 본다. 짐승이라니까 조상을 매우 불손하게 보는 것 같은데 이번 남아시아 쓰나미 사건 때도 짐승들은 죽지 않았고 그 짐승의 행동을 보고 따라간 섬에서는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즉, 짐승은 창의력은 없을망정 자연의 섭리와 통한다. 이 짐승이 무리를 통솔하는 행동을 보자. 사자건 코끼리건 침팬지, 고릴라, 들소건 반드시 지도자가 있고,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수십 수백 수천의 무리를 잘도 통솔한다.
(4) 5~6천 년전 환숫이 곰족이나 호족을 교화시킬 때 지금 정치가들처럼 달변과 거짓말로 그 토착민들을 통치했을 것 같은가? 환숫은 그저 그 무리와 함께 진심으로 그 토착민을 위한 행동만 하면 그들은 다 알아듣고 곰족같이 따라올 놈은 따라오고 호족처럼 도망갈 놈은 도망간다.
(5) 지금 金文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금문이란 일종의 그림으로 뜻을 남긴 것인데 이는 당시 부족한 말이나 글자를 보강하는 수단으로도 쓰였을 것이다. 즉 말이 통하지 않으면 그림을 그려 썼는데 이 그림은 다른 민족도 이해하는 데 쉬웠으므로 중국인들이 이 금문, 갑골문 등의 글자를 가져다가 자기네 말에 맞추어 진시황 때 대전(大篆), 소전(小篆) 그리고 예서(詩書), 해서(楷書)를 걸쳐 지금 한자로 정착시켰던 것을, 우리는 삼국 초에나 역수입해서 쓰고 있다고 했다.
[숫자에 대한 고토회복님의 질문 요지]
첫째, 환웅이 신천지를 찾아 움직일 때 이미 3,000명의 인원이 움직였다.고 하는데, 그럼 그 수를 그 당시 사람들이 세지 못하였는데 어찌 후세 사람들이 알 수 있을까?
둘째, 14세 단군 때의 인구가 1억8천만 명이라고 하는데 그 수를 헤아리려면 이미 억 이상을 표시하는 단어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등등〈환단고기)를 읽어보다 보니 우리 님의 말대로라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생겨난다. 환웅이 17대를 전하고 단군이 47대를 전한다면 그 숫자까지는 셀 수 있는 단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정치를 하면서 즉, 많은 사람을 이끌려면 20개 정도의 단어로는 생존은 가능할지 몰라도 통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아님 〈환단고기〉에 실린 글이 정확하지 않고 가필을 한 것인가? 무척 궁금하다.
[답변]1. 지금 우리가 아는 하나 둘 셋 … 열은 처음엔 숫자가 아니었다.
인류는 언제부터 숫자를 사용해왔을까? 몇만 년, 몇십만 년 전 구석기시대 원시인들도 숫자를 사용했을까? 선악과 이전의 신선 같은 사람들한테는 요즘 같은 경제논리가 필요 없었을 테니 따라서 숫자도 없었다.고 본다. 즉, 생식에 필요한 행위만 하는 사람들한테는 숫자가 필요 없다. 지금 아프리카 등 문명을 모르는 오지인들은 숫자가 열밖에 없다. 손가락 수대로 수를 세다가 더 이상 많으면 그냥 '많다' 라고 하는 부족이 많다.
예를 들면 지금 아프리카 왈피리 족은 숫자가 셋밖에 없다. 여기 추장은 아내가 아홉인데도 아내가 얼마냐고 물으면 '많다' 라고 한다. 또 자녀가 20여 명이 되는데도 몇 명이냐고 물으면 그냥 '많다' 라고 한다. 왜 그런가는 그 부족에는 숫자가 셋밖에 없기 때문에 셋이 넘으면 무조건 '많다' 이다.
인류의 발달사로 볼 때 인류의 문명은 신석기가 끝나고 청동기 문명이 시작되면서부터 인류의 문명도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지금 우리 환족의 갈래 중 하나로 보고 있는 수메르의 쐐기문자도 알고 보면 숫자가 아닌 데서 나왔다. 그들은 애초 숫자를 표시하고 싶었을 때는 진흙으로 삼각뿔 모양을 만든다. 그리고 이 삼각뿔이 몇 개가 되면 이것을 큰 진흙단지에 넣고 그 위를 봉했다. 그러면 나중에 누군가가 그 속에 얼마의 삼각뿔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 단지에 삼각뿔의 모양을 역시 삼각뿔로 찍어놓았다. 이것이 쐐기 문자가 되었다. | 글쓴이는 환웅께서 천부경을 받아가지고 내려오셔서 그것을 아침저녁으로 외우다 보니 그것이 우리의 숫자가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숫자는 '열' 밖에 되질 않는다. 그렇다면 더 이상 큰 숫자는 뭐라고 했을까?
먼저 오지 인들처럼 우리도 '온' 이라 했고, 이 '온'은 지금 '온갖', '온 세상' 등에 쓰여지고 있다. 이 온은 천여 년이 흐른 다음 단군 가륵 때 가서야 이 된 것으로 보이며, 또 천여 년이 흘러서야 '즈문(千)' 이 생겼을 것이고, 또 몇천 년이 흘러서야 '먼(萬)'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즈문' 이란 우리말 '저믄, 즉 '저믄날' 할 때 아득해서 보이지 않는 것처럼 까마득한 수를 말한 것으로 보이며, 萬을 '골백' 이라 하는 분도 있지만, 골백은 곱백, 즉 백 곱하기 백이라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한자다. '먼 이 萬이라는 것은 〈월인천강지곡〉에 萬이 '먼'으로 나오기 때문이며, 이는 너무나 먼 숫자, 즉 요즘 우리에서 필요 없는 천문학에서나 쓰는 경, 해 이상의 숫자 등과 같기 때문으로 본다. (6.25 전후까지만 해도 '조' 라는 숫자는 쓰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복잡한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인류의 발달과 함께라고 보는데, 그래서 환웅 때는 하나 둘 셋 … 열도 숫자가 아니었다고 보고 또 그 증거는 금문에도 있지만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숫자 하나, 둘, 셋 …열다음 열하나, 열둘 … 열아홉 다음이 '스물'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님의 질문 3천 명의 무리, 14세 단군 때 인구가 1억 8천이라는 말은 꼭 〈환단고기>의 한웅이 17대를 전했고 단군이 47대를 전했으며 그 재위연도나 수명까지 정확하게 써놓아 진실인 것같이 한 것은 옛 사람들이 전해 오는 말이나 삼국시대까지 죽간에 써지던 말에서 힌트를 얻고 필사가의 의견을 덧붙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글쓴이는 다음과 같이 각국에서 숫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추정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