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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부마에서 해방된 이의 체험담
부마자였던 이 사람의 케이스는 내가 다룬 것은 아니지만 드물게도 확실한 부마상태를 표현해주고 있다. 아무리 전문적인 구마사라 할지라도 부마자들이 느끼고 있는 것을 피부로 직접 느낄 수는 없는 일이다. 반 정도의 부마상태를 드러낼 수는 있지만, 당사자가 느끼는 진짜 고통은 숨겨진 상태이므로 이 체험담을 쓴 이는 이를 표현하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느낀 것을 써보려고 했던 것이 G.G.M의 노력이었다.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했던 노력, 특히 자신과 같이 부마상태에 빠져있는 다른 이들을 위해 이 글을 쓰게 된다.
모든 것은 16살 때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 나는 행복하고 민첩하며 무엇보다도 쾌활한 소년이었다. 어려운 일이 생겨 나를 힘들게 할 때마다 어디에 있든지 간에 나에게 어떤 소리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린 이렇게 할건데 넌 어떻게 생각해?” “우리는 저기 갈건대 넌?” 이런 목소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리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았다. 바다에 근접한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바다, 해돋이, 들판 등은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나를 명랑하게 만들어주곤 하였다. 16살 이후 나는 로마로 이주하면서 성당을 떠났고, 거대한 대도시가 젊은이에 줄 수 있는 모든 것들, 산골 소년이 바라본 대도시라고나 할까? 즉 어마어마한 대도시의 모습은 내가 살고 있던 도시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약을 알게 되었고, 부랑자들, 도둑들, 창녀들 등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런 모든 “소음들”을 배우는데 정신없었고, 내가 지녔던 평화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구역질나고, 가공되었으며 지나치게 새로운 차원의 삶을 즐기기 시작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상당히 엄격하여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셨고, 늘 나를 구역질나는 놈이라고 했다. 이런 아버지의 미움과 모든 학대가 일찌감치 스프링처럼 나를 길거리로 튕겨 나가게 만들어 버렸다. 집을 뛰쳐나온 나는 배고픔과 추위, 새우잠, 악행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새 알게 되었다. 다루기 쉬운 여자들을 사귀었으며, 감당하기 힘든 남자친구들을 사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안에서는 이런 질문이 일었다. “왜 사는 거지? 왜 길거리를 배회하는 거냐고? 나는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노동을 위한 힘이 넘쳐나고 웃을 수 있는 힘이 있는데?”
그 당시 나는 선행보다는 악행에 더 의지하는 한 여자를 사귀고 있었다. 마녀들이나 주술사들에 대해 즐겨 말하고, 충격적이고 놀라운 예언의 글들을 무진장 써대는 여자였다. 그 당시 난 그 여자가 참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세상과 삶에 대한 인간 이상의 것들에 대한 예언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쓴 예언에 대한 모든 노트필기들은 한결같이 악의에 찬 저주로 가득해 왠지 집에 두는 것조차 두려운 나머지 내 앞에서 모두 태워버리라고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난 그녀를 심하게 증오하고 있었으면서도 그런 악의 구렁텅이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갖은 방법을 다 시도하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나를 오히려 조롱했고 내가 주장하는 선행에 대해 야비한 비웃음을 흩날리는 여자였다.
난 고향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 또 다른 여자를 사귀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첫 여자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여자였고, 몇 년 동안 좌절 속에서 보내야 했다. 내가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들로부터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으며 불행이 겹치기 시작하였다. 알 수 없는 어둠이 나를 가리고 서 있었고 어느 새인지 미소는 사라지고, 언제든지 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처럼 눈물이 앞을 가리곤 했다. 낙심한 상태가 된 내 안에서는 “왜 사는 거냐? 내가 누구지? 이 세상에 인간은 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들이 수없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에서 주위의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보일 수가 없었고, 오로지 내 마음 안에서는 처절한 절망으로 가득 찬 가느다란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나의 하느님, 전 이제 끝장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제가 당신 앞에 있나이다.” 그 목소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내 여자 친구는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고, 회개하여 영성체를 영하게 된 사건은 영원히 기억에 남을만한 사건이 되었다.
나 또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인가 루르드 성모상의 행렬이 거행되고 있는 성당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나에게 성모상 옮기는 일을 도와달라고 해 상당한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이에 응하여 성모상을 옮기는 행렬에 참가한 것이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그 성당에서 영성체를 모셨고, 고해사제의 넉넉한 이해심과 인자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성당을 나오면서 “아, 드디어 해냈구나. 이제서 내가 올바른 길로 돌아왔구나.”라는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러면서도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정말 올바른 길로 들어선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 뒤 몇 주일이 지나서 1981년부터 지금까지 성모님께서 발현하시는 메주고리예에 관해 알게 되었고 즉시 내 여자 친구와 함께 그곳으로 향하게 되었는데, 도저히 표현 불가능한 느낌, 어쩌면 탕자가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우리들은 완전한 모습으로 성당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고, 삶을 바꾸고 우리들 자신보다 더욱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내 여자 친구는 수도회의 수녀가 되었으며, 나는 사제성소를 생각하게 되었다. 삶은 이게 끝장이 아니라 정말 살 가치가 무한하다는, 삶에 대한 의욕이 주는 기쁨을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누군가”가 이런 우리들의 모습에 불만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몇 년 뒤 다시 메주고리예를 방문하게 되었고 로마로 돌아오면서 알 수 없는 어둠, 내가 하느님을 발견하기 전에 나를 엄습했던 그 어둠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몇 주 사이에 이런 내 상태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아버지를 힘들게 만들었고, 내가 겪는 고통과 불안 상태가 모두 사람이 겪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런 어둔 생활은 내 현실로 자리 잡아 갔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고통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식은땀과 고열, 탈진상태가 되어 더 이상 먹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 음식을 떠 넣어줄 정도가 되었다. 이런 육체적인 고통이 무엇인가에 의해 온다는 것을 은연중 느끼게 되었다. 실제로 이런 모든 사건들에 대한 내 느낌은 이상한 것이었다. 아마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즉, 엄청난 좌절의 나락을 경험해야 했고, 몇 달 동안 누워있었던 내 침대 방에서만 느껴지는 어둠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가능성들이 희미한 어둠에 가려져 가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보이지 않는 칼에 의해 살해된 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그 칼자루를 거머쥐고, 나를 증오하면서 꼭 나를 죽여버리고야 말겠다는 적개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듯 했다. 도저히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여러 달이 지난 뒤, 거의 정신병자가 된 나는 더 이상의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나를 정신병원에 감금하고자 하였다. 내가 하는 말을 도저히 내가 이해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는데, 이미 나는 현실에 살고 있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이 엄청난 고통으로 엄습해 왔다. 현실과 내가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내 육신은 여기에 있지만, 영혼은 어딘가 빛이라고는 단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는 곳, 희망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사경을 헤매며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모른 채, 몇 달이 흘러갔다. 친구들과 친척들을 잃을 수밖에 없었으며 가족들의 이해심도 흘러간지 오래였다. 세상밖에 있는 나, 이해 받지 못하는 나, 이해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었던 나, 내 속을 아는 나로서는 도저히 원하는 것들을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없었다. 끊임없는 울부짖음과 하소연으로 하느님께 매달리고 있었으면서도 이제 하느님은 거의 잊은 상태가 되어 갔으며, 그분은 멀리 계신 것만 같았다. 그분과의 거리는 킬로미터라는 거리로 계산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아예 그분에 대한 부정이었다. 즉, 내가 옳고 하느님은 부정적인 존재였다. 결국 나는 병원을 찾기로 했는데, 벌써 몇 달 채 심한 고열로 인해 내 육체는 말이 아닌 상태였기 때문에 병원에 가면 좀 나아질까 싶었고, 또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로마에 있는 그 어떤 병원도 발열증세만을 가지고 나를 입원시키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서 3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먼 지역의 병원에 20여 일간 입원해 할 수 있는 검사는 모두 받았다. 그러나 전혀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서를 들고 퇴원해야 했으며, 더 큰 충격은 운동선수가 질투할 정도의 건강한 체력을 지녔다는 진단서가 나왔다는 사실이다. 팔팔 뛰는 새끼 망둥이처럼 건강한 나였지만, 진단서 첨부 난에는 발열증세와 썩은 송장처럼 퉁퉁 부은 얼굴에 대해서는 의학적으로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내 얼굴은 말 그대로 백지장이었다. 병원에서 막 퇴원했을 때 이런 모든 증세들이 약간 호전되는 듯싶다가 엄청난 돌발증세를 맞아 반복되는 구토와 함께 인간으로서 당할 수 있는 모든 육체적인 고통에 내맡겨지게 되었다. 결국 어딘지도 알 수 없는 도시에서 배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흔들거리는 다리는 혼자 걷는 듯 했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여 대는 두 팔, 모든 육신 전체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였다. 아무리 근육에 명령신호를 보내도 내 맘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한 마디로 그 느낌은 공포자체였다. 정말, 아무도 이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 하나면 충분했다.
이런 상태도 모자란 듯, 다시 그 무서운 어둠이 나를 엄습하였는데, 그것은 영혼에서부터 시작하여 내 온 육신을 점유하기 시작하였다. 환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만 보였다. 이제 고통은 하늘 끝까지 치솟아 울부짖기 시작했고, 화염에 쌓인 사람 마냥 땅바닥을 뒹굴어대며 성모님께 하소연하면서 “엄마, 엄마, 제발 … 나 좀 살려주세요. … 어머니 제발 이렇게 애원합니다. 죽어 가는 저에게 엄마, 제발 은총을 베푸소서!” 하였다. 고통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지긋지긋한 고통은 나를 폭발시키고도 남아 방향감각을 잃게 했고, 벽에 기대어 주춤대며 기어가다시피 하여 어떤 공중전화 박스가 있는 곳까지 가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한 친구에게 겨우겨우 전화박스 유리문에 머리를 되받아 치는 방법으로 전화번호를 누를 수 있었고, 그 친구의 목소리가 전화를 통해 흘러나왔다. 도저히 전화번호를 누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기능들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나를 로마로 이송해갔다. 로마에 도착하기 전, 어떤 외부에서 오는 교훈처럼 그 동안 내가 지옥을 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옥을 느꼈거나 거기에 살았던 것이 아니라 멀리에서 지옥을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 경험은 메주고리예서 내 삶을 변화시킨 경험보다도 훨씬 더 내 삶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이런 모든 상황에 대해 여전히 어떤 초월적인 작용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단지, 부적응, 강압적인 아버지, 유년기의 충격, 감정적 쇼크와 그 외 다른 여러 가지 것들로써 왜 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를 멋지게 설명해주는 정신적인 것들에서 비롯된 이유들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5년간이나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자가 진단을 내렸던 것이고, 내가 당하는 고통에 대한 스케마를 멋지게 만들어 냈던 것이다.
충고자의 어머니 축일에 성모님께 기도하였고, 한 수도회 사제분이 나에게 충고해주기를 주교님으로부터 신임을 받는 사제로 성령기도회 지도 신부님으로, 분별의 은사를 받은 분께 전화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그 사제에게 전화를 드렸을 때, “8개월 전에 누군가에 의해 자네가 심장이상과 정신병으로 죽게 해달라는 악마를 이용한 주문을 건 과일을 먹였군.” 그 소리에 나는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 사제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내 안에서는 희망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이런 희망의 느낌과 함께 사제가 설명해준 8개월 전에 내가 먹었다는 그 과일 모양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맞아요. 신부님, 신부님께서 맞추신 바로 그 과일을 먹었어요!” 뿐만 아니라 그 과일을 나에게 권했을 당시 왠지 모르게 본능적으로 그 과일을 주는 그 사람에 대한 어떤 알 수 없는 느낌에 의해 과일을 받아먹고 싶지 않게 했던 것까지 기억하게 했다. 모든 것이 줄줄이 연결되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신부님의 충고대로 축복기도(구마기도)를 받기로 했다.
구마사제를 찾기 시작했는데, 많은 주교들과 사제들이 이런 나를 비웃었고 수치심을 느끼게 했지만 이런 모든 조롱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아모르트(Amorth) 신부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내가 교회 내에서 본 것은 사제들 스스로가 교회의 한 부분(구마. 역주)을 파괴시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모르트 신부님을 만났던 날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나는 특별한 축복기도(구마 예식)가 무엇인지도 거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단지 미사가 끝난 뒤 사제들이 파견 강복을 내리듯이 성호를 그어주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나에게 다가온 신부님께서는 내 어깨에 영대를 갖다 대고 한 손은 내 머리 위에 얹은 뒤, 라틴어로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신선한 이슬 한 방울, 아니 차가운 물방울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거의 일 년 만에 처음으로 발열 증세가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신부님은 계속 기도하시는 중이셨다. 조금씩 내 안에서 살아야겠다는 희망과 대낮의 그 빛이 되돌아오기 시작했으며, 참새 떼의 지저귐이 이제 더 이상 까마귀 떼의 소리로 들리지 않았으며, 외부의 잡음들이 더 이상 강박관념에서 오는 소리들이 아니라 단순한 소음들임을 느낄 수 있었다. 구마 이전에는 아주 작은 소음에도 난 미칠 지경이었다.
아모르트 신부님께서는 나에게 다시 한 번 오라고 하시며 나를 내 보냈는데, 정말 크게 웃고 싶을 정도로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야, 살았다! 모든 게 끝났다!”라고 소리치고 노래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정말 그랬다. 누군가 나를 증오하여 보내오고 있는 분노와 파괴는 나의 실패를 맛본 자학증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모든 것들이 사실이었다는 것들을 강하게 느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연신 “그래, 사실이었구나, 모든 것이 사실이었어.” 라고 중얼거렸다. 여러 번에 걸친 구마기도를 통해 삼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정상으로 돌아 왔고, 우리들의 두려움이나 우리들의 힘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행복감을 맛보고 있다.
소위 말하는 불행, 악, 슬픔과 분노, 신경 경직, 신경쇠약, 불면증, 맘대로 흔들대는 다리, 정신분열증에 대한 공포, 혹은 간질(실제로 나는 여러 번에 걸쳐 정신을 잃은 적이 있음), 그 외 많은 질병 등, 이런 모든 것들의 희생자였던 나였지만, 아주 간단한 구마기도 소리에 이런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렸다. 삼 년 동안 여러 번에 걸친 시험과 시험을 거쳐 자동적으로 내 안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 있다. 악마는 우리가 믿는 것보다도 훨씬 교활하여 갖은 수단을 동원한 뒤 모습을 감추고 들어앉아, 우리들이 이런 저런 질병에 걸린 것이라고 착각하게끔 유도하지만, 결국 악마 자체는 발생되는 모든 악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이런 교활한 악마도 성수채를 들고 서 있는 사제 앞에서는 벌벌 떤다는 것을 내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런 내 경험을 글로 쓰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내가 지겹게 경험한 것들이 불행하게도 우리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드리고 성찰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결론적으로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이런 엄청난 시련을 나를 위해 마련하시고, 그 고통을 통한 많은 결실들을 즐기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내 영혼은 정말 깨끗하다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 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특별히 내 주위의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더 이상 회의적인 사람으로 살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셨다고만 생각했는데, 실상 당신을 만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나를 작업하시고 계셨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내 글을 통해 나처럼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버리신 것처럼 보일지라도, 또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는 하느님이심으로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하고 싶다.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런 속에서 우리를 시험하신다. 중요한 것은 몇 년이 걸리더라도 인내하라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하느님께서 구마기도를 통해 주시고자 하는 엄청난 효과는 구마사제나 부마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이런 강렬함은 구마기도를 실행하는데 있다기보다 먼저 부마자의 강한 회개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영하는 것은 대 구마예식과 같은 효과를 지니고 있다. 특별히 잘 준비된 고해성사를 통해 내가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즉시 위에 나열한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며 영성체를 영함으로써 이런 것이 존재했었나싶을 정도로 새로운 달콤함을 느꼈다.
또 이런 모든 고통이 오기 몇 년 전에, 나는 고해성사를 보고 성체를 영하곤 하였지만 고통을 당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고귀함을 볼 수가 없었다. 이를 통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내가 면역 되었는지이다. 특별히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하느님께서는 고해실 문 앞에 서 계시고, 우리가 자주 아무 생각 없이 영하는 성체 안에 계심을 말해주고 싶다.
믿음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한테 일어났던 것처럼 “누군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강제적으로 끌려가기 전에 먼저 믿으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탄의 증오의 대상이 된 사람들, 그래서 자기 스스로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자신을 죽이고, 이웃을 살해하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몇 마디하고 싶다. 신앙을 잃지 말고, 희망을 버리지 말라. 절대로 폭력에 의지하지 말고 악마가 제시하는 것들에 귀 기울이지 말기를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악마의 목적은 질병을 제공하거나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악마의 진짜 의도는 우리들의 고통의 그 이상의 것인 즉, 우리들의 영혼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으로써 “그래, 악, 네가 이겼다. 나는 악에 놀아나는 인형에 불과하고 하느님은 더 이상 나를 해방할 힘을 잃어 버렸다.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 하느님이라면 정말, 당신 자녀들을 잊은 분이다.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고, 하느님보다 훨씬 강한 것이 악이로구나.”라고 탄식할 우리들을 교활하게 기다리는 악마다. 이렇게 된다면 진짜 악이 승리하게 되고 결국 악은 우리들의 눈을 가려 모든 신앙을 잃게 만들어 승복하게 만든다.
“우리는 철저히 신앙을 고수해야 한다.” 라는 의지를 지녀야 한다. 이런 원의 앞에 악마는 절대로 아무 짓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악마나 하느님에 의한 의지가 아니라 바로 우리 각자의 의지에 달려 있다. 오로지 우리들의 의지를 통해서만이 승리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의지를 지닌 피조물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들의 믿음을 파괴하려는 사람 앞에서 분명한 대답을 해야 할 것이며 믿음을 지녀야 한다. 성 바오로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모든 피조물과 하늘과 땅과 땅 밑까지 무릎을 꿇나이다.” 하였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다. 정말 우리가 확신을 갖고 믿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다가온 악과 악에 의한 주문들, 혹은 저주들은 몇 년 동안 아무런 호전 증세 없이 우리를 쥐고 흔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악을 신봉하고 더 이상 출구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을 위해 분명히 증언할 수 있는 것은 많은 구마기도들을 통해 이런 악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을 두려워 할 필요 없이 우리에게 십자가를 주시는 하느님을 찬양해야 한다. 왜냐하면 밤이 지나고 나면 밝은 대낮이 돌아오듯, 십자가의 고통 뒤에 항상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이렇게 창조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속임수를 쓰는 분이 아니시며 겟세마니에까지 예수님을 동반하고 그분의 고통에 동참하여 그분과 함께 부활하도록 우리들을 선택하셨다.
티 없으신 성모님께 이 모든 내 체험을 봉헌하고 싶다. 이 체험 글이 고통당하는 나의 형제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악마의 도구로 사용하여 나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빠트려 희생시킨 모든 사람들에게 환한 미소와 하느님의 축복, 용서와 사랑을 보내는 바이다. 나의 이런 고통을 통해서 내가 놀라우신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았듯이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빛을 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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