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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1996)
드라마 | 한국 | 101 분 | 개봉 1996.04.05
장선우
이정현(소녀), 문성근(장), 이영란(엄마), 추상미(우리들), 설경구(우리들)... 더보기
국내 청소년 관람불가
당신에게 자석처럼 다가오는 소녀!
풀벌레가 윙윙거리는 어느날. 강변을 지나가던 인부 장은 뙤약볕 속에서 강 건너편을 그리운듯 바라보던 이상한 소녀와 만난다. 그녀가 무턱대고 인부 장을 오빠라 부르며 따라온다. 그리고는 장이 사는 창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이때부터 둘은 함께 생활한다. 그러나 장에게 지극한 무관심과 경계심을 보이는 소녀. 깨어지지 않는 침묵과 초점 잃은 시선, 무언가 무서운 일을 겪었던 것처럼 망가진 소녀의 몸은 장을 분노 속으로 빠트린다. 찌르듯 파고 들어오는 소녀의 악몽에서 도망치고 싶은 장은 강박관념으로 소녀를 학대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어느덧 무중력 상태와 같은 열병에 빠진다. 기차 뒷켠에 서있던 우리들은 소녀를 찾아 떠난다.
의문사 당한 친구의 기일을 맞아, 그 가족을 찾아갔지만 소녀의 어머니는 이미 죽고 하나 남은 혈육인 그녀 역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소녀를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마치 순례자처럼 황폐한 들판에서 소녀를 발견했던 용달차 임씨, 시장 한구석에서 조그만 선술집을 운영하는 옥포댁, 죽은 어린 연인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김상태...소녀를 찾아 나섰지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소녀가 남긴 흔적뿐이다. 어느날 술에 취한채 소녀를 학대하던 장은 그녀의 비극 속으로 서서히 빨려들어간다. 주변에서 도는 오월광주의 소문은 장이 소녀의 망가진 몸에서 그녀의 과거를 짐작케 하기도 하지만...목욕을 시켜 주기도 하고 양치질을 시켜주기도 하고 장은 그녀와 동화되고자 한다. 어느날 소녀가 홀로 무덤가를 헤맨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의 뒤를 추적하던 장은 무덤 앞에서 진실을 고백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죽어가는 엄마를 뿌리친 채 무더웠던 80년 오월! 악몽의 도시를 빠져나왔던 소녀의 슬픔과 한은 그녀의 내면 속에 깊이 응어리진 채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녀를 가족에게 보내야겠다고 결심하는 장. 잠자는 소녀의 머리맡에서 카메라 후레쉬가 터진다. 우리들은 허탈하게 돌아온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다시 돌아온 친구의 기일을 맞이하여 하숙방에 모인다. 이때, 우리들중 하나가 미친듯 달려들어 온다. 신문에 소녀의 가족을 찾는다는 심인 광고가 실린 것이다. 마지막 희망을 품고, 우리들은 장의 숙소로 향하는데.
< 꽃잎 - 김추자 >
첫 장면부터 이 영화는 상당히 자극적이다. 이전부터 이정현 씨가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미친 여자아이 역을 했었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한 남자를 맹목적으로 졸졸 따라가는 위험해 보이는 장면과 이어지는 성폭행 장면은 충분히 자극적이라 할 수 있다. 5.18을 배경으로 한, 그 배경마저도 자극적인 영화. 꽃잎은 보통 깨끗하고 순수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여기서는 다르다. 감독이 그리는 꽃잎은, 시들어 지고도 짓밟혀 찢겨진 꽃잎이다. 군화에 짓이겨져 망가진, 어린 소녀이다.
미친 여자아이
영화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그렇지만 원작인 최윤의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에서 보면 알 수 있듯, 소녀는 본래 조금 모자란 아이이다. 문학이나 영화에서 이러한 사람은 주로 약자에 해당되고, 실제로 이 여자아이 또한 시대의 아픔을 혼자 몸으로 전부 받아내는 사회적 약자에 속하며 의미를 확대하면 민주항쟁 당시 쓰러지고 죽어간 수많은 민중들이기도 하다.
오빠를 찾아 헤매는 것은 죽음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기에 눈 앞에서 죽은 엄마 대신 의지할 곳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라 볼 수 있겠고, 옷이 너덜너덜해지고 머리가 헝클어지도록 두는 것과 자학행위는 그 날 엄마의 죽음 앞에서 자기가 행했던 행동에 대한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소중하게 안고 다니는 보따리는 그런 죄책감에 근거해 그 날을 절대 잊지 않기 위한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과거의 기억을 잊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는 배경으로 확대되었을 때 5.18 민주항쟁의 잊을 수 없는 역사와도 결부된다.
남자
원작을 보게 되면서야 눈치챈 사실이지만, 여자아이가 남자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오빠"라고 불렀던 이유는 그와 그녀의 오빠가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그녀를 무자비한 폭력으로 성적 도구로만 대하지만 그녀가 자학하는 것을 보게 된 이후 연민을 느끼고 잘 보살펴 주게 된다. 자신이 행하지 않는 폭력이기에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보며 자신이 준 상처보다 더 큰 어떤 것을 그는 보았던 것이 아닐까.
그녀에게서는 반응이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폭행하면서도 아무런 쾌감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더욱 화만 나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반응하는 것은 그 자신이다. 그녀의 존재 유무에 대해, 반응하는 것은 그 하나뿐이다.
남자는 여자아이를 집에 데려온 이후 외출시마다 문을 잠근다. 영화 초반부 남자는 여자아이에게 폭행요소였고 이를 또 한 번 확대된 의미로 해석해 보면, 감금은 곧 비밀로 만드는 것이다. 5.18 당시 광주의 상황은 전국에 축소 보도되었고 시 내의 모든 전화선은 끊어진 상태였다고 들었다. 그가 그녀를 두고 문을 잠근 것은, 그렇게도 해석될 수 있다.
오빠의 친구들
영화는 여자아이와 오빠의 친구들, 두 시점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여자아이는 그 날의 기억 이후 계속해서 이곳 저곳을 떠돌고 오빠의 친구들은 그녀가 지나간 자리를 되짚으며 쉴새없이 그녀를 찾는다. 너무 심하게 변해 버린, 애초부터 약간 모자람이 있었던 아이를 사진 한 장만으로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실제로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들은 그녀를 찾지 못한다. 끝내 찾지 못했다는 것은 앞으로도 여자아이가 계속해서 떠돌아 다닐 것임을 의미하고, 그런 점에서 어두운 과거로 남아 있는 그 날과 연관되며,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임을 의미한다.
원작에서는 그들이 그녀를 찾으려 하는 진짜 이유에 대한 의문이 드러나 있다. 실제로 생각해 볼 의문이었다. 그녀가 악착같이 보따리를 들고 다니듯 끔찍하기 그지없는 기억의 결정체가 된 소녀를 곁에 두고 자학하기 위해서일까, 친구의 가족에 대한 예의로써의 사람찾기일까. 혹은 젊은 청년의 방황 속 잠시 잡고 있는 지푸라기일까.
애니메이션
독특한 표현 기법이 쓰였다는 것은 예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고, 그것이 애니메이션이라는 말도 들어 알고 있었다. 다만 직접 보기는 처음 봤는데, 요즘 영화야 기술이 좋고 다들 흔히 쓰기 때문에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지만, 꽤나 오래 된 영화라는 점에 미루어 보았을 때 발상면에서 훌륭하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여자아이가 느끼는 공포감을 거대한 벌레로 표현한 점이나, 캐릭터를 반투명하게 만들어 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게 하는 방식은 색연필화 느낌의 그림들과 더불어 여자아이의 캐릭터를 더 사실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한몫한다.
김추자의 "꽃잎"
초반부 단발머리의 여자아이가 춤을 추면서 부르는 노래는 김추자의 "꽃잎"이다.
꽃잎이 지고 또 질 때면
그 날이 또 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네
꽃잎이 여자아이를 의미한다고 대입했을 때 "그 날"은 민주항쟁이고 견디지 못하던 그녀는 미치게 된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그 이전의 상황이었는데도 억지로나마 연결이 되는 것은, 그녀의 예전 밝은 모습이 후반부에 다시 나오며 씁쓸함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음향적 장치일까, 노래의 제목이 "꽃잎"인 것은 그저 우연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