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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검위에 피운 "찬란한 민심의 꽃"
부녀자들 주먹밥 나르며 시위대 동참 [해방공간]단 한건의 은행털이도 없어
전기끊겨 금남로는 암흑, 시민들 최후 연락망 공중전화지켜…[고립된 섬] 인심이 천심으로
80년 5월20일 밤 내내, 광주시민들은 잠을 이루지 않는다.
잠들기는 커녕, 남자들은 금남로·충장로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파도처럼 밀려가 우우우 철썩철썩 부딪친다.
3공수 7공수 11공수의 M16 총뿌리와 탱크를 향하여. 집안의 여자들은 대문 밖에까지 나가, 밤하늘을 짖으며 날아가는 무수한 실제의 총탄과 예광탄을 바라보며 몸서리친다.
MBC방송국 신안동KBS방송국 광주세무서 신역앞 파출소가 불타던 5월20일 그날밤.
도청앞에 마치 [이방인들]처럼 탱크를 앞세우고 버티어선 계엄공수부대를 향하여 시민들은 굽히지 않고 밀어붙인다.
[우리의 젊은이들을 더이상 죽이지 말라]등의 소리를 외치며 [애국가] [선구자] [울밑에 선 봉선화]를 울부짖듯 노래부르며 어깨동무, 어깨동무하면서 밀려간다.
어깨맞대고 계엄군 대항
계림동 파출소 및 조선대 아래 농장다리 부근에서도, 역시 총성이 울려퍼지던 그날밤.
전남도청 앞에 거대한 장벽처럼 (혹은 밀림의 한 복판에서 뛰쳐나온 서양 중세기의 병사들같은) 위협자세로 버티어선 공수부대, 그들이 마침내 시위에 참여한 10여대의 버스와 2백여대의 영업용택시들을 일시에 (우당탕, 우당탕!) 최루탄과 몽둥이로 짖이겨 버리지만, 그들 공수부대와 시민들과의 격렬한 공방전은 밤이 가는줄 모르고 여전히 계속된다.
그러나 광주항쟁의 최고절정(물론 [피의 수요일]로 명명되는 5월21일을 포함하여)을 이룬 5월20일 그날밤.
당시를 목격한 사람들은 광주시민공동체의 아름다웠던 순간, 순간들을 기억에서 차마 뿌리치지 못한다.
일찍이 그 어떤 세계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너무나도 처참했지만 그러나 아름다웠던 그 순간순간들…. 가령 20일 밤 12시께, 광주제일고등학교 앞 (현대한교육보험 광주 지사 빌딩) 모습의 경우도 그렇다.
금남로1가에서부터 공수부대의 군홧발과 방망이에 밀린 시민들중 일부 흥분한 시위대들, 그들이 홧김에 공중전화 박스를 두들겨 부스려 한다. 그 어떤 울분슬픔들이 폭발한 것이다. 그러자 광주제일고 근처에 모인 대부분의 시위군중들은 만류한다. 심지어 엉엉 울면서 [공중전화 박스를 부수지 말라. 이것은 광주시민들의 소중한 재산이다. 마지막 남은 통화수단이다]라고 외친다. 또 그무렵, 근처 한 민간인 집에 들어가 그 집 역시 부숴버리겠다고 아우성치는 젊은 시위대를, 역시 만류 시킨다. [어이 젊은이들, 져집의 주인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듣자하니 저집 주인이 공수부대 수색조의 윽박지름에 못이겨, 쫓기는 대학생들이 어디로 도망갔다고 말한 모양인데, 우리는 그 사정을 이해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어찌보면 우리 시민들 모두가 저들 계엄공수부대한테 함께 당하고만 있는 현실이 아닌가?]
장면을 전남여고 옆 [광주전신전화국]쪽으로 옮겨본다.
MBC방송국이 불타고 있을 때, 시민들이 노동청쪽에서부터 공수의 탱크에 압살될 듯 밀리고 있을 때, 성난 시위대들은 전남여고 옆 광주전신전화국도 불태우려 한다.
그러나 역시 시민들의 지혜가 한 목소리로 힘모아진다. [전신전화국을 태워서는 안된다. 우리 시민들의 유일한 통화채널 박스다. 저것을 태워버리면 우리 시민들은 무슨 수단으로 서로간의 안부를 전하고, 긴급상황을 전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하여 역시 광주전신전화국은 어디 흠집 한번 나지않고 항쟁이 끝날때까지 시민들을 위한 엄청난 정보사령탑으로 존재한다.
물론 광주전신전화국 정문, 그리고 1·2·3층 마다에는 21일 오후부터 (3시무렵) 그 가냘픈 M1소총 (공수부대의 M16자동소총에 비하면 실로 가날프다)을 어깨에 걸머쥔, 이른바 그 [광주시민군]들이 임무를 다한다.
시민들 사이의 통화를 차단하기 위해 행여 그 어떤 계엄세력들이 폭파할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당시 광주시내 전역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급박한 상황속에서도 시내통화 수단만은 끝끝내 지키려했던 당시의 광주시민들….
남녀노소 모두 금남로로
장면을 또 금남로1가 광주일보 빌딩쪽으로 옮겨 본다.
당시 광주일보빌딩에는 오늘날처럼, 외환은행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아니 글쎄 놀랍게도 항쟁기간중에 미화 1달러도 도난당하지 않는다.
5월23일의 경우 바로 그 자리에서 시민군들이 총기를 수합하고 있었는데, 더구나나 외환은행1층부분은 거의 반쯤셔터가 올라간 채로 열려있었는데, 한화 단 1천원도 빠져나가지를 않았으니, 당시 광주시민들의 시민들끼리의 질서의식 (혹은 어떤 거대한 운명과 폭력앞에 놓였을때 발휘되는 그런 시민공동체의식)은 눈물겹다 못해 찬연하다.
그리고 눈부시다.
장면을 또 금남로1가부터 5가까지, 그리고 충장로 방향으로 옮긴다.
20일 밤9시 부터 완전히 정전돼버린 (시민들은 계엄군측이 전원스위치를 내렸다고 말한다) 금남로와 충장로일대. 그러나 그어둠과 계엄군들이 내뿜어 내는 죽임과 공포의 도가니속에서도, 반만년 우리역사상 일찍이 볼수 없었던 [인심과 민심이 천심] 곧 [아름다운 세상의 한 전형적 모습들]이 되풀이된다. 아니 글쎄, 충장로 가게들의 경우 실로 엄청난 감동이 재현된다.
80년도 당시 시가평당 5천만원을 넘어서는 자리에 임대가게를 빌려 장사하는 그 상인들이, 어디서 그 나누어가짐 (베풂)을 배웠는지 최루탄과 몽둥이에 쫓기는 시민들에게 수건 빵 우유 비누 치약 음료수 냉수 등을 거의 돈을 받지않고 선사하지를 않는가. [우리 시민들 모두가 죄다 죽을판에 놓였는데, 우리 중장로·금남로 상인들이라고 해서 앉아서 돈을 벌수는 없습니다.자, 자아! 담배를 피우시는 사람든 담배를, 최루가스에는 치약이 좋으니까 눈밑과 코에 바르고, 어차피 공수를 향해 시민들이 밤을 새워야할 판이니까 여기 이 빵덩어리도 받으시고….] 실로 20일밤의 모습은 항쟁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된다.
뿐이랴.용봉동 신안동 계림동 양동 학동 대인동 월산동…. 광주전역에 사는 어머니들은 이웃끼리 서로 힘을 모아 김밥을 무수히 만들어내어 리어카로 옮기는 작업을 계속한다.
밤잠을 자지 않고 싸우는 젊은 아들딸들을 위해, 또는 남정네들을 위해.
또 그뿐이랴.일신방직과 전남방직에서 실타래를 돌리는 여공아가씨들도 임동회사앞 도로에 뛰어나와, 금남로로 금남로로 향하는 시위대 차량들에 빵과 사이다 등 각종 음료수를 안 타까운 눈초리로, 그러나 [우리는 하나다!]라는 각오서린 눈초리로 던져준다.
바로 그 모습을 보고 전홍준교수 (조선대 교수·법의학)는 마치 위대한 즉응시인처럼 큰목소리로 감동의 순간순간들을 요약한다.
[광주시민들의 저 모습은 데모군중의 모습이 아니야, 저 모습이야 말로 우리가 살아생전 다시는 볼수 없는 [찬란한 시민예술]의 한 전형이 아니고 또다른 무엇이겠는가? 적어도 시민들에게는 강도행위 따위가 없고, 오히려 질서를 스스로 창출해 가는 저 모습은 분명히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예술행위다.]
강같은 평화의 물결
전홍준교수의 말에 김창규목사 (충북 청주수 빛고을교회·김목사는 광주항쟁의 전국적 연대를 위해 노력하다가 한때 대전교도소에 투옥됨), 이기형 (71·서울거주·시인), 김승균 (장준하, 부완혁씨에 이어 70년대에 [사상계]편집당, 현 일월서각대표), 그리고 [찢어진 깃폭]이란 글로 전세계에 80년 5월의 [광주]를 알린 김건남씨 (당시 가명으로는 [김문]·투옥됨·현 서울거주) 역시 서슴지않고 동감한다. 광주항쟁에 있어서 최고의 미덕으로 회자되는, 즉 시민공공으로 회자되는, 즉 시민공동체의식의 찬연함을 두고 김건남씨는 그의 저서 [찢어진 깃폭]에서 이렇게 온몸으로 예찬한다.
80년 5월, 빛고을 광주시민들을. 그중 일부를 옮긴다. [여기는 광주, 여기는 금남로. 언어가 필요없는 세계, 너와 내가 따로 없는곳. 모든 것을 초월한는 순수하고도 뜨거운 사랑만이 샘솟아 넘치고 강같은 평화만이 넘치는 거리. 너와 나의 가슴과 가슴들이 하나로 모아져 마침내 피로 언약하는 역사의 마당이다. 이토록 가슴 뭉클하게 사람을 사랑해보지 못한 나는 사랑의 의미가 진정 무엇인가를 처음 눈뜬 단초가 바로 광주에서 출발한다. 저녁노을이 곱게 번지듯이 광주땅에 번지어 가는 사랑의 절정에 서서, 나는 도저히 뜨겁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수가 없구나.]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읽엇습니다
잊져서는 안될 우리의 불행한 현대사 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 그게, 다 5.18광주민주항쟁 결과물 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