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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4분기 우수작품상 선정
2018년도 2/4분기 우수작품상이 선정되어 발표합니다.
회원들의 많은 발표작 중에서, 선정된 작품입니다.
많이 축하해주세요.
선정되신 두 분께도 축하드립니다.
♣ 수상 작품 ♣
* 동시 부문: 「공룡 발자국」 (전병호 작, 『아동문예』 2018년 5.6월호)
* 동화 부문: 「노란 쪽지」 (이경순 작, 『새싹문학』 133호)
♣ 심사 위원 및 시상 계획 ♣
* 예심 위원: 최영재, 추필숙, 이성자, 이희갑
* 본심 위원: 김용희, 이 은
* 시상 내용: 상패와 기념품
* 시상식: 2019년 1월, 정기총회 시
♣ 심사 경위 ♣
2018년 2분기 우수작품상 심사는 <시와 동화 봄호>, <새싹문학 133호>, <아동문예 3 • 4월호>, <아동문예 5 • 6월호>, <아동문학평론 봄호>, <어린이와 문학 3월호>, <어린이와 문학 4월호>, <어린이와 문학 5월호>, <어린이책이야기 봄호>, <열린아동문학 봄호>, <월간문학 3월호>, <월간문학 4월호>, <월간문학 5월호>, <창비어린이 봄호>, <자유문학 봄호>에 실린 회원 작품을 심사 대상으로 하였다. 이번 분기부터는 <자유문학>을 심사 대상 잡지에 포함시키게 되었다.
2018년 2분기 동시 심사대상은 43명이었고, 동화는 13명이었다. 예심을 통해 동시 6편, 동화 6편이 본심에 올라오게 되었다. 동시와 동화 모두 중복추천은 없고, 동시에서 한 시인의 두 작품이 모두 본심에 올라와 경쟁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만큼 동시의 경쟁이 치열했다고 할 수 있다.
우수작품상 운영진은 심사위원 심사를 전적으로 존중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바쁘신 중에도 심사마감일 전에 결과를 보내주신 예심, 본심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정중히 감사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우수작품상 선정이 공정하게 우수작품을 뽑아 기쁨을 주는 상이 되도록 더욱더 노력하겠다.
♣ 심사평 ♣
[동시부문]
백악기 공룡을 마음껏 상상하는 즐거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6편이었습니다. 저마다 단순 명쾌하면서 시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발상의 새로움이 없는 흠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 중 상상의 감흥을 돋우는 전병호 시인의 「공룡 발자국」에 손을 들어주게 되었습니다.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중국 대륙과 연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반도는 거대한 호수지역으로 공룡의 서식지였다고 합니다. 그 증거가 상족암 주변 해안의 평평한 갯바위 곳곳에 선명히 남아 있는 공룡 발자국입니다. 그곳을 ‘한국의 쥬라기 공원’으로 일컫기도 합니다. 어느 날 그곳에 간 시적 화자가 큰 발자국과 작은 발자국을 보면서 엄마 공룡과 아기 공룡을 상상합니다. 1억 5천만 년 전 그때 무슨 일에선지 고성 바다로 들어간 공룡들이 지금까지 신발처럼 발자국만 남겨 놓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요. 그런 아쉬운 생각이 백악기 공룡을 마음껏 상상하는 즐거움을 선물해 주고 있지요.
- 심사위원 : 김용희
[동화부문]
다른 삶에 대한 관용이 소통의 시작
본심에 오른 작품 6편을 읽고 또 읽었다. 한 편을 정하고도 옳은 선택을 한 것인지 읽기를 반복했다. 거듭 읽을수록 더욱 빛이 나는 작품, 이경순 작가님의「노란 쪽지」를 우수작품상으로 선정했다.
요즘사람 슈슈가 바라보는 동네는 마치 시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간 듯 추억을 소환한다. 이웃을 제 집삼아 넘나드는 고양이처럼 소리마저 공유했던 시절. 이웃 간의 불편과 갈등은 있지만 거칠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조금만 너그럽게 바라보며 공감하고 작은 친절이라도 먼저 손 내밀면 소통이 시작된다. 배려와 소통이 결국에는 나 자신의 평정심을 되찾고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섬세한 묘사와 생동감 있는 전개, 긍정적 사유를 주는 작품이다. 숨겨진 재미 포인트가 많은 점 또한 좋았다.
- 심사위원 : 이 은
♣ 수상작 ♣
[동시부문]
공룡 발자국
- 상족암에서
전병호
쿵.
쿵.
쿵…
바위에 푹, 푹
엄마 공룡 발자국이 찍혔다.
콩.
콩.
콩…
아기 공룡도 따라
바다에 들어갔다.
1억 5천만 년 전이다.
아직 안 나왔다.
※ 상족암 – 경남 고성에 있는 공룡 유적지
• 수상 소감
내 마음의 바다에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쓴 작품을 다음 날 밤에는 버렸다. 그랬더니 시상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찾아 고쳐 썼다. 고쳐 쓴 작품을 다음날 읽어보니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버렸다. 이러기를 몇 번, 마침내 ‘아직 안 나왔다’는 이 구절을 얻고는 기쁜 마음으로 시를 마무리 지었다.
이제 내 마음의 바다에는 엄마 공룡과 아기 공룡이 산다. 나는 이 바다에서 많은 시를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렇게 쓴 내 시들이 독자인 어린이들을 상상의 바다로 데리고 와서 함께 신나게 놀았으면 좋겠다. 어린이들아, 이 바다로 와라, 엄마 공룡과 아기 공룡이 사는 이 바다가 얼마나 신나는데!
변화를 위한 시적 실험은 언제나 옳다. 실패로 끝나더라도 자기 복제를 하는 것보다는 백 배 천 배 낫다. 실패가 쌓이면 그것이 어느 날은 눈부신 꽃으로 피어날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예심과 결심에서 부족한 제 작품을 예쁘게 보고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 고맙습니다.
• 약력 / 전병호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당선했으며 1990년 ‘심상’에 시가 당선되었다. 동시집 『자전거 타는 아이』, 『백두산 돌은 따듯하다』, 『아, 명량대첩!』, 『봄으로 가는 버스』, 『들꽃 초등학교』외 3권과 『전병호 동시선집』을 펴냈으며 첫 시집 』금왕(金旺)을 찾아가며』가 곧 나올 예정이다. 세종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2017 아르코 유망작가에도 선정되었다.
[동화 부문]
노란 쪽지
이 경 순
슈슈는 우체통에 꽂힌 노란 쪽지를 봤다.
반으로 접힌 쪽지 겉에는 언제나처럼 '8-9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8-9’는 대문에 적혀있는 슈슈네 집 번지수다.
“뻔하지. 읽으나마.”
그러면서도 슈슈는 쪽지를 펼쳤다. 역시 딱 한 줄이다.
<제. 발. 편지 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시오? 우리 좀.>
슈슈의 눈이 잠깐 동그래졌다. '제'와 '발', 그리고 그 뒤에 찍힌 점 때문이었다.
다른 때는 없는 거였다. 그만큼 간절하단 뜻일 거다.
“허, 나야말로 제발이다. 나도 더는 못. 참. 아!”
슈슈는 쪽지를 움켜쥐고 옥상 철 계단을 쿵쿵 올라갔다.
곧장 오른쪽 이웃집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감나무 아래 놓인 평상을 살폈다. 예닐곱 살 가량의 여자 아이가 살다시피 하는 곳이다. 날마다 엉터리 노래로 슈슈를 괴롭히는 아이. 어제 분명 그 아이 손에 노란 종이가 들려있었다. 매일 슈슈의 우체통에 꽂히는 쪽지랑 색깔도 크기도 비슷했다.
‘그 꼬맹이 짓일 거야. 대뜸 호통부터 치자. 그럼 놀라서 자백할 거야.’
하지만 평상은 비어 있었다. 늘 활짝 열려있던 대문도 꽁꽁 닫힌 채였다.
텅 빈 듯 집이 조용했다. 마당가를 따라 핀 진분홍 과꽃만 바람 따라 한들거렸다. 그 위로 벌과 나비가 한가롭게 앉았다 날아오르기를 반복했다.
문득 복덕방 남자와 이 집을 보러 왔던 날이 떠올랐다.
여름 내 이사 갈 곳을 찾아다니느라 지쳐 있던 때였다. 딱히 어떤 집으로 가고 싶은 지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그저 조용한 곳, 누구의 간섭이 없는 곳이면 되었다. 그런데도 요 집은 요래서, 저 집은 저래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집도 마찬가지였다. 낡은 한옥들이 오밀조밀 모인데다 따개비마냥 바닥에 착 달라붙어서 답답했다.
“슈슈 씨, 이쪽으로! 장담하는데 보시면 바로 계약할 겁니다.”
복덕방 남자가 철 계단을 오르며 이가 훤히 보이도록 웃었다.
청록색 페인트칠이 된 계단은 가팔라서 그다지 오르고 싶지 않았다.
“일단 올라와 보시라니까. 나라면 이 옥상 하나만 보고 옵니다. 선생처럼 집을 작업실로 쓰실 분에게 딱 이죠. 장담하는데 여기 앉으면 가사가 술술 쓰일 겁니다.”
복덕방 남자의 옥상 찬사가 늘어졌다.
슈슈는 내키지 않았지만 약간의 호기심에 후끈 달아 있는 철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갔다.
직사각형 모양의 옥상은 회색 방수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지저분했다.
“칠이야 다시 하면 되죠. 자, 주위 풍경 좀 보시오.”
복덕방 남자가 지휘자처럼 허공을 향해 두 손을 경쾌하게 놀렸다. 무심코 그의 손끝을 따라가던 슈슈는 자신도 모르게 짧은 탄성을 토해냈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시야가 탁 트였다. 자잘한 건물들이 뻗어나간 끝에는 낮은 산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진초록의 산이었다. 앞산 끝자락에는 시가지를 향해 뻗은 도로와 회색건물들이 계곡물처럼 흘렀다.
“어때요, 마음에 쏙 들죠? 옥상은 이 집 뿐이라 지켜보는 눈도 없어요. 어, 저기 보는 눈이 하나 있긴 하군요.”
주변 한옥들을 향해 나풀대던 복덕방 남자의 손끝이 한 곳에 멎었다. 뒷집 지붕과 맞붙은 옥상 난간이었다.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꼿꼿이 앉아 감시하듯 이쪽을 보고 있었다.
슈슈는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다 뚫어지게 보는 그 눈길이 싫었다.
“저리 가!”
슈슈의 외침에도 고양이는 마치 그 공간의 주인인양 당당하게 앉아 슈슈를 지그시 봤다.
“오호, 터줏대감인가? 보통 녀석이 아닌 걸.”
복덕방 남자가 껄껄 웃었다.
슈슈는 얼굴을 찡그리며 녀석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잡힐 듯 가까워져서야 고양이는 느릿느릿 일어나 뒷집 지붕으로 훌쩍 건너뛰었다.
그제야 슈슈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남자 말대로 근처 집들은 모두 기와지붕이었다. 이 집만 양옥처럼 개조해서 옥상이 있었다. 정말 누구의 눈도 의식할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집들이 동남쪽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앞집은 뒤통수만 보였지만 오른쪽, 왼쪽, 뒤쪽 집은 마당까지 훤히 내려다 보였다. 특히 오른쪽 집 마당은 보는 순간 가슴이 환해졌다. 마당 가장자리를 따라 채송화며 맨드라미가 줄지어 피었고 반질반질 윤이 날 정도로 잘 가꿔져 있었다. 대문간에 버티고 선 감나무는 쭉 뻗어서 옥상에다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완벽해! 여기다 책상 하나만 놓으면 최고의 작업실이야.’
슈슈는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하게 웃었다.
“조용한 곳이라고 했죠?”
“그럼요. 중심가에서 떨어져 있는데다 보시는 것처럼 오래된 한옥이라 죄다 노인들만 살아서 아주 조용합니다. 장담하는데 명곡이 나올 겁니다.”
슈슈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계약했다.
하지만 이사 온 첫 날부터 슈슈의 기대는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콧노래를 부르며 짐정리를 할 때였다.
꽃밭에~앉아서 꼰니플 보네~고운 니픈 어디서 났슬까아~아름다운 꽃이여~이렇게 좋은날엔
어디선가 어린 여자 아이의 노랫소리가 슈슈의 귀로 파고들었다.
중년 여자들이 부를만한 노래였다. 꼬마가 어른 옷을 걸친 듯 어색하고 당황스러운데 리듬이며 박자도 엉망인, 그야말로 소음이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으니 밤낮으로 온갖 소리들이 고스란히 창을 넘어왔다. 텔레비전 소리, 고양이 울음소리, 기침소리까지! 특히 불쑥불쑥 몰아치는 뒷집 할아버지의 벼락같은 고함소리는 슈슈의 가슴을 널뛰게 했고, 왼쪽 이웃집의 대문은 수시로 ‘끼이익 끽’ 쇠 긁는 소리로 슈슈의 머릿속을 긁어댔다.
마치 한 집에 여러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사는 거 같았다.
“이건 아파트보다 더 심하잖아. 내가 미쳤지. 복덕방 놈 말만 듣고 덥석 계약하다니.”
슈슈는 복덕방으로 달려가 남자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대신 문이란 문은 죄다 꽁꽁 닫았다. 그러자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방안에서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공중도덕도 모릅니까? 제발 조용히 좀 하시오!’
옥상에 올라가 소리소리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슈슈에겐 그럴만한 용기가 없었다.
‘좋아!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슈슈는 다시 문이란 문은 죄다 열어젖혔다. 밤낮으로 천장이 꽝꽝 울리도록 오디오를 켰다. 하지만 귀가 따갑고 머리가 쿵쿵 울리는 건 슈슈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다 내가 먼저 쓰러지겠어. 그래, 한 집씩 조용히 공략하자.’
슈슈는 종이에「대문 좀 손보세요.」라고 적어서 왼쪽 옆집 우체통에 꽂아 두었다. 하지만 그 집 대문은 더 자주 ‘끼이익 끽’ 머릿속을 긁었다.
‘점잖게 하면 못 알아듣는 군. 망신 좀 당해 보라지.’
슈슈는「예의도 모르시오. 대문 좀 고치라고!」대문짝만하게 써서 그 집 대문에 딱 붙였다.
슈슈에게 노란 쪽지가 오기시작한 건 그 즈음이었다. 처음엔 대문 틈새에 끼워져 있었다.
<나조고로피지마>
슈슈는 그 쪽지를 힐끗 보고는 휴지통으로 던졌다.
그런데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그 자리에 같은 내용의 쪽지가 끼워졌다.
“누가 자꾸 이런 장난질을!”
슈슈는 쪽지를 쫙쫙 찢어서 다시 휴지통에 버렸다.
그러자 다음 날엔 우체통에 끼워졌다. 게다가 <나 조 고로피지 마>라고 글자 사이에 띄어쓰기도 되어 있었다. 장난을 이렇게 끈질기고 점잖게 할 리는 없었다.
그제야 슈슈는 쪽지를 자세히 봤다. 지렁이가 기어가듯 구불구불한데다 글자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글자에 들어간 힘도 고르지 않았다. 글자의 첫머리는 진했고 뒤쪽은 옅었다. 한 자 한 자 몹시 힘들게 쓴 게 틀림없었다.
‘어디 아픈 사람인가?’
슈슈는 눈동자를 데굴거렸다.
‘아니면, 힘없는 노인?’
슈슈는 자신의 추리가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마치 똑똑한 탐정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좀 더 생각에 골몰했다.
‘주변 사람 일거야. 멀리 산다면 날마다 와서 꽂아놓긴 힘들 테니까. 그런데 왜?’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더 이상의 추리는 어려웠다.
다음날 <나 좀 괴로피지 마>라는 새 쪽지를 받고서야 슈슈의 추리는 좀 더 나아갔다.
‘글을 모르는 사람이군. 아니면 아주 오랫동안 써 보지 않았던가. 가만, 괴롭히지 말라고? 누가, 내가?’
슈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역시 범인은 이웃의 누군가가 분명했다. 최근엔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괴롭힌 건 내가 아니라 지들이지. 만날 소리치고, 노래하고.’
슈슈는 그날부터 옥상을 오르내리며 범인 찾기에 골몰했다.
“이 좋은 옥상을! 작업은커녕 범인 알아내자고 계단이 닳도록 오르내리다니!”
슈슈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제. 발.’이라고 적힌 쪽지를 뚫어지게 봤다.
드르륵, 왼쪽 이웃집의 마루 미닫이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기 외출이군.”
슈슈는 손목시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옆집 할머니의 외출시간은 들쭉날쭉했지만 일주일에 세 번은 꼭 같은 시간에 움직였다.
“오늘은 나 혼자 갈 텡게, 넌 집이나 봐.”
할머니의 말소리에 슈슈는 고개를 갸웃했다. 혼자 사는 할머니라 대화할 사람이 없었다.
슈슈는 오른쪽 이웃 마당을 눈으로 휙 훑은 뒤 왼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툭 튀어나온 처마 뒤로 몸을 숨긴 채 마당을 엿봤다.
할머니 발치에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도대체 저 까망이 녀석의 주인은 누구야?’
슈슈는 뒷집 마당에 앉아 밥을 먹던 까망이를 떠올렸다. 어느 때는 오른쪽 집 마당에서 물을 마셨다. 앞집 지붕이나 왼쪽 집 대문 위, 슈슈네 옥상, 녀석의 거처는 수시로 바뀌었다.
“냐옹, 냐옹.”
고양이는 할머니를 올려다보며 꼭 무슨 말인가를 하듯 야옹거렸다.
“너도 가고 잡어? 그랴, 그럼 가야제. 가서 또 같이 공부 허자. 공부허는데 사람이믄 어떻고 고양이믄 워뗘.”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고양이를 안아 올렸다. 그 때 할머니의 어깨에 멘 천 가방 주둥이가 벌어지면서 속에 든 커다란 책이 눈에 들어왔다.
‘한글 교본?’
슈슈가 책 표지에 정신을 뺏긴 사이 할머니는 고양이를 안고 ‘끼이익 끽’ 대문을 열었다.
“날마다 뭔 종이가 척척 붙더만 요새는 와 안 붙을꼬? 나도 인자 쪼까 읽을 줄 아는 디.”
대문을 위아래로 훑어본 할머니가 고양이를 향해 벙싯 웃었다.
그때 팔에 안긴 고양이가 슈슈를 올려다봤다. 슈슈는 움찔해서 몸을 뒤로 젖혔다. 고양이는 기다란 좁은 골목을 지나 모퉁이를 꺾어 돌 때까지 슈슈를 지그시 봤다.
슈슈는 그 집 대문에 써 붙였던 무수한 종이들과 그때마다 옥상 난간에 앉아 슈슈를 지켜보던 고양이를 떠올렸다.
“글자도 모르는 분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슈슈는 입술을 깨물며 옷을 갈아입고 오랜만에 집을 나섰다.
딱 한 번 가 본 적이 있는 수선 집으로 향했다. 재봉털이 달달거리며 돌아가던 집. 거기 가면 맞춤한 기름을 얻을 수 있을 거였다.
기름 몇 방울을 얻어 수선 집을 나왔을 때였다.
“감나무 아저씨다!”
쨍하니 날아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휠체어를 탄 여자아이가 슈슈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연이야, 아는 분이니?”
휠체어 옆에 선 할머니가 아이와 슈슈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응, 옆집 옥상 아저씨. 감나무 뒤에서 만날 우리 집 훔쳐보잖아.”
아이의 말에 슈슈는 얼굴이 빨개졌다.
“아! 새로 이사 오신 분이군요. 우리 손녀가 시끄럽게 해서 많이 불편하지요? 며느리가 엄마 보고 싶을 때마다 노래를 부르라고 한 모양이에요.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라고 만날 그 노래만……. 죄송합니다. 찾아뵙고 양해를 구한다는 게 골목을 한참 돌아가야 하다 보니 자꾸 내일, 내일 미루게 되더라고요.”
“아, 아닙니다. 제가 더…….”
“연이 병원 다녀왔구나. 아니, 짱짱한 영감은 어디가고 혼자시우?”
저만치서 할머니 한 분이 다가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짱짱한 영감은 저기 가게에 잠깐 갔구먼.”
아이의 할머니가 벙시레 웃으며 말했다.
슈슈는 이때다 싶어 재빨리 꾸벅 인사를 했다.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아저씨가 말 걸어주길 바랬는데. 오늘까지만 기다리고 내일은 내가 먼저 걸라고 했어요.”
아이가 슈슈를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슈슈는 얼굴이 빨개져서 엉겁결에 손을 번쩍 들었다 내렸다. 그리고 뛰듯이 걸었다.
‘저 아이는 범인이 아냐. 그럼 대체 누굴까?’
슈슈는 ‘끼이익 끽’ 대문의 경첩에다 기름을 바르며 생각에 잠겼다.
할머니의 천가방 속에 있던 ‘한글 교본’이 떠올랐다.
‘힘도 없고, 글도 잘 모르고, 내가... 괴롭혔고.... 딱 이네.’
슈슈는 입술을 지그시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쪽지 끝에 ‘우리 좀.’이라고 적혔던 게 떠올랐다. ‘우리’라면 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슈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경첩에 꼼꼼히 기름칠을 했다.
“됐군! 이제 머리 긁는 소린 안 들어도 되겠어. 이렇게 간단히 해결되는 걸.”
슈슈는 가슴을 쫙 폈다. 뿌듯하니 기분이 좋았다. 마음에 드는 가사를 완성했을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
슈슈는 ‘8-9’라고 적힌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벌써부터 주문해서 거실에 그대로 방치해둔 야외용 탁자와 푹신한 의자를 옥상으로 옮겼다. 파라솔도 설치했다. 감나무 사이로 화사한 꽃밭이 보이는 곳이었다.
슈슈는 탁자 위에 노트북과 작사 노트를 펼쳐 놓고 의자에 앉았다.
아름다운 꽃이여~ 이러어케~ 좋은 날엔 그니임~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문 소리와 함께 오른쪽 마당에서 꼬마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슈슈는 휠체어에 앉아 활짝 웃던 아이를 떠올리며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좌우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다 두개의 눈과 딱 마주쳤다. 고양이가 옥상 난간에 꼿꼿이 앉아 슈슈를 보고 있었다.
“어, 저 녀석 언제 왔지? 글공부 많이 했냐?”
슈슈의 말에 고양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지그시 보기만 했다.
“까망아, 넌 범인이 누군지 알지?”
고양이가 가늘게 떤 눈을 두어 번 깜빡거렸다.
“오호, 안다고? 하긴, 알면 뭐하냐. 어차피 시작은 나였는데.”
고양이는 두어 번 더 눈을 끔뻑이더니 천천히 배를 깔고 길게 엎드렸다. 이내 앞발에 턱을 괴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런데 저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고함을 치실까? 귀가 잘... 이런,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
슈슈는 고개를 내저으며 뒷집에서 눈길을 돌렸다.
감나무 사이로 보이는 진분홍 과꽃이 저녁 햇살을 받아 눈부셨다. 담장 밖으로 고개를 쑥 내민 해바라기들은 수만 가닥의 샛노란 꽃잎을 찬란하게 팔랑거렸다.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
슈슈의 입에서 흥얼흥얼 노래가 흘러나왔다.
기쁨, 슬픔, 행복.... 여러 감정이 파도가 되어 슈슈의 가슴을 휘감았다.
마침내 슈슈는 펜을 들고 작사 노트에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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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 소감
글이 잘 풀리지 않아 비 예보에도 산책을 나섰다.
기어이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졌다. 집으로 종종걸음 치는데,
‘아! 지금 6월이지? 김원석 회장님께 전화 받았으면 좋겠다. ’
뜬금없이, 정말 불쑥 스친 생뚱맞은 생각에 어이없는 웃음을 날리며 빗속을 달렸다.
아마도 3년간 협회 일 보고나니 행사 일정이 머릿속에 자동 저장된 모양이었다.
그런데 1시간 후,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축하합니다. 새싹문학에 실린 선생님의 동화가 분기별 우수작품상에 선정되었습니다.”
김원석 회장님께서 진짜로 전화를 주신 것이다.
어라, 이럴 수가! 내게 마법이 생겼나? 정말 놀랍고 기묘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우수작품상 예심을 보거나, 수상작 발표 공지를 볼 때면 “나도 이런 작품상 받고 싶다!” 부러움에 중얼거리곤 했다. 하지만 바람은 늘 비켜갔고, 글쓰기는 나날이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출간된 책들은 하나같이 통통 튀는 상상력에 기발하고 신선하고, 재미까지 있어서 ‘내가 설 자리가 있을까?’ 위기감과 자괴감이 범벅되어 나락을 헤매는 날이 많았다.
“괜찮아. 그냥 나답게 쓰면 돼. 다 나름의 의미가 있는 거지. 아암!”
그때마다 스스로 등 토닥이며 벌떡 일어나 뚜벅뚜벅, 내 길을 걸었다.
그리고 오늘, 마법 같은 소식으로 나는 일순간 슈웅~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래! 지금처럼 나답게, 뚜벅뚜벅 걷는 거야. 멈추지만 않으면 돼!’
뜻밖의 기쁨으로 기운 불끈 주신 심사위원님들, 운영진 선생님들, 귀한 지면 내어주신 『새싹문학』에 깊이 감사드린다.
• 약력 / 이경순
경남 함양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은 서울 북한산 자락에 살고 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과 국문학을 전공했고, 1997년 장편동화 ‘찾아라, 고구려 고분 벽화’가 삼성문학상에 당선되면서 동화작가가 되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넌, 학교 끝나면 뭐해?』, 『녹색 일기장』, 『메주공주와 비밀의 천 년 간장』, 『호구와 천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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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장 김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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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병호 선생님! 이경순 선생님! 우수작품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작품상!
두 분 선생님♡
우수작품상 수상을 축하드려요!!!^^
앗, 선생님! 새벽까지 안 주무시고....
혹시 회보에 들어갈 회비 내역을.... 수고 많으셔요. 감사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축하해 주신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날마다 좋은 날 되시길 바랍니다~.
바쁘신 중에도 이쁘게 편집해서 올려주신 강인석 간사님께도 감사한 맘 전합니다.^^
반가운 소식이 올라와 있네요. 수상을 축하합니다.
전병호 선생님, 이경순 선생님!!! 듬뿍 축하드립니다
두 분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전병호 선생님, 이경순 선생님!
우수작품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전병호 회장님, 이경순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이 더운 여름날 시원하겠습니다^^*
축하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셔요~. ^^
전병호 선생님, 이경순 선생님~ 우수작품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좋은 작품 보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경순 작가님도 축하드려요.
우와~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도 듬뿍 축하드립니다. 무더위 건강 유의하셔요~.^^
전병호 선생님! 이경순 선생님! 우수작품상 수상을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정진아 선생님, 정선혜 선생님 감사합니다. 좋은 나날 되시길 바랍니다.^^
참 재미있고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