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불멸의 이순신'을 보지 않은 나는 그 드라마에서 이순신의 마지막 장면이 어떠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이야기 듣고 보아온 책에 노량 바다에서 쫓겨 도망가는 왜구와 맞서 싸우다 적이 쏜 유탄에 맞아 숨을 거두면서 조카에게 유언으로 남겼다는 말은 알고 있다. 아마도 자신의 죽음이 부하에게 알려짐으로써 병사들이 동요할까봐 마지막까지 풍전등화의 조국을 구한 명장다운 명언이다.
'묻지마 관광' 요즘도 그런 형태의 관광이 있는지 모르겠다만 한 때는 있었다는 여행 풍속도였단다. 어느 역 광장을 집결지로 해서 당일치기로 회원을 모집해서 떠나는 여행상품이란다. 버스 한 대에 서로 모르는 남녀회원들을 급조해서 단풍놀이나 온천욕을 떠난다는 것이렷다. 물론 남녀의 쌍이 짝으로 맞아야 할 테고, 그렇고 그런 탈선이 예상됨직한 나들이 아닌가 싶다. 일터 안팎에서 쌓인 스트레스 해소하는 한 방편이라 할지라도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라 본다.
나는 혼자 가는 산행을 즐긴다. 언젠가 나만의 운치 있는 산행을 이렇게 남겨보았다.
일상이 지치면 혼자 산으로 가 보라.
시내버스를 타고 소답동에 내려보게나.
이른 아침이거든 장터에서 속을 풀고
옛 정보여상 터를 지나 암자로 오르게.
잠시 절 마당서 서성이며 숨을 고르고
산비탈을 다시 오르면 약수터가 나온다네.
그곳 샘물을 들이키면 속까지 찌릿해진다.
이어 고개 마루를 단숨에 내닫게나.
뒤돌아보면 한 눈에 들어오는 시가지
발아래 두고 천주산 허리를 가로지르게나.
거기까지는 오가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칠원 작대산 쪽으로 방향을 틀어보게나.
이후 산이 끝나도록 길이 끊기도록
인 적 없는 길을 하루종일 걸어보게나.
그렇다 사람은 외로울수록
사람이 더욱 그리워지는 법이다.
<혼자서 가라 전문>
이렇게 즐겨온 산행인데 드물게 세상사가 뜻 데로 안 된 경우도 있었다. 그 두 사례의 윤곽만 살짝 드러내어 보겠다.
전임지 학교에서 알고 지내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 교사 한 분이 있다. 성장환경이나 사고방식이 나와 비슷해 지금도 자주 만나고 가끔 산을 함께 다닌다. 사실 나는 혼자서 가는 산을 좋아하지만 이 분의 청이 있으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동행한다. 취나물은 어떤 것이고, 고사리는 어디에 많이 나는지도 알려주었다. 화살나무가 어떻게 생겼고, 이게 때죽나무 열매이고, 물봉선화는 이런 꽃이라고 주제넘게 아는 체했다.
그런데 이 분하고 다녀본 두 번의 특이한 산행이 있어 소개해 본다. 어느 일요일 아침 특별한 일 없으면 무슨 산 아래까지 나오라고 했다. 나는 으레 그렇듯이 두 사람만의 산행인 줄 알았다. 나가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자리 이름만 들면 모두 알만한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분과의 과분한 산행이었다. 출발지에 모이고 보니 그 어른말고 내가 평소 아는 사람도 있고 일부는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십여 명이 함께 떠난 단체 산행이었다. 그렇다고 서로간에 공적이든 사적이든 산행을 하면서 부담이 되는 얘기는 오가지 않았다.
하산하여 바로 해산하지 않더구나. 그 날 임시 총무를 맡은 분이 회비를 얼마씩 추렴했었다. 당일 산행의 구심점에 있는 그 어른이 회식 경비 정도야 책임질 수 있다지만 서로에게 마음 편하게 회비를 모은다고 했다. 산을 함께 오른 분들은 각자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저녁 회식 장소에 모였다. 통성명을 하고 서너 시간 땀을 함께 흘린지라 첫 자리라도 친근감을 느꼈다. 주인공의 옆자리에는 방석만 두고 비워두었더라.
나는 처음엔 신분을 의식해 가까이 가기가 어려워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이 그 어른께 다가가 반주를 한 잔씩 권하라고 비워 둔 자리란다. 나도 그 날 산행의 일행인지라 머뭇거리다가 빈 옆자리로 다가가서 술잔을 조금 채워드리고 되받았다. 그러면서 그 술잔을 따르던 내 마음 나도 모르겠더군. 우리 그림에선 '여백의 미'라 하여 빈자리가 화가와 관객이 만나는 자리가 있는데, 그 회식 자리의 빈 방석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또 한 번은 이런 산행이 있었다. 그 선배는 장유에서 오를 테니 나는 대방동에서 대암산을 올라 용제봉에서 서로 만나잔다. 나는 예정한 시각보다 조금 이르게 산을 올랐다. 김밥 두 줄과 막걸리 한 통도 배낭에 넣었다. 그날따라 운무는 자욱하고 습도가 높아 땀을 많이 흘렸다. 용제봉 가까워질 즈음 그 선배가 먼저 올라있다는 손전화가 왔다. 장유에서 오르면서 산길에서 만나 동행한 나의 교대 여자 동기생과 함께 있지 않은가.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반가웠다. 내가 가져간 막걸리와 동기가 가져온 고구마를 나누어 먹고 동기는 장유로 되돌아 내려갔다.
이어 선배는 어디에서 온 전화를 받아 한참 통화를 하고 끝내더니만 내가 온 대암산 쪽으로 하산하잔다. 선배는 그 길을 한 번도 다녀보지 않았다고 하기에 나도 동의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서 이야기하길 얼마쯤 가다보면 아는 사람을 만날 것이란다. 언젠가 봉림산에 올라 어디에 쉬면서 만나서 커피를 한 잔 얻어먹은 적이 있는 두 여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다. 사십대 후반으로 짐작되는 서로는 동창생인 듯했다. 나는 나이도 성도 알아둘 일 없었다. 그런데 선배는 두 여인들과 무학산을 한 번 더 다녀온 적이 있단다.
두 여인이 산에 가자는 연락이 왔어 나를 그곳으로 오르게 해 놓고 선배는 반대 방향에서 올라 중간 지점에서 접선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나는 약속한 시간보다 삼십 분 먼저 출발했다. 나는 그 날의 운무 가득한 산처럼 그런 앞뒤 사정을 몰랐다. 둘이서 대암산 쪽으로 얼마를 되돌아오자 묘령의 두 여인들이 정말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그곳에서 우리들을 한참 기다렸단다. 그 자리서 점심 자리를 펴기 곤란해 얼마를 더 걸어 소나무 그늘 아래 넷은 둘러앉았다. 익숙하지 않은 자리라 기분이 묘하고 어색하더구나.
우리는 이미 용제봉에서 김밥도 먹고 고구마도 먹고 막걸리도 비웠다. 두 여인이 준비한 밥에다 선배가 가져온 복분자 술을 곁들였다. 그 술은 지난 봄 내가 성주사 근처에서 딴 산딸기를 보내었더니만 술로 담아 가져온 것이란다. 두 여인은 우리 몫의 밥까지 예상해 넉넉히 준비해 왔었다. 묵은 김장 김치를 씻어 쌈을 만들고 된장을 준비했었다. 그리고 열무를 절여 붉은 고추를 갈아넣은 김치가 잘 익었다. 거기다가 고구마 줄기를 삶아 나물을 무친 것이더라. 세상에 내가 산에 올라 이런 호사스런 밥상을 받아보긴 처음이자 마지막일 테다.
넷은 내려오다 대암산 계곡에서 등산화 끈을 풀어 발을 담그고 땀을 식혔다. 하산을 해도 바로 해산하려는 기색이 아니었다. 선배는 맛있는 점심도 얻어먹었으니 그 고마움에 사례를 하려는 생각이었다. 이런 자리는 지갑이 얇은 내가 먼저 나서서는 안 된다. 도청 뒤 어느 농원의 국수집으로 이동했다. 점심밥은 산에서 잘 먹은지라 국수는 마음에 없었다. 선배는 산행 뒤풀이로 파전에 막걸리를 한 잔 샀다. 그사이 산 그림자가 내려와 도시의 우수를 덮을 시간까지 세상사는 얘기를 나누었다.
산을 좋아했던 어느 정치인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조심하라고 했던가. 내려올 때는 물론이고 내려와서도 조심해야할 상 싶다. 그렇다고 그 날도 앞으로도 우리 사이에 무슨 일탈을 꿈꿀 낭만도 있을 일 없을 테지만. 풀을 좋아하고, 꽃을 좋아하고, 나무를 좋아해서, 아예 산 자체를 껴안고 좋아하는 사람은 심성까지도 착하고 고운 사람들이다. 그래도 나는 바란다. 앞으로는 '묻지마 산행'이나 '이순신 산행'보다 늘 그랬듯이 혼자서 떠나련다. 발걸음 더 가볍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