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의 '창 밖은 오월인데'.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햇볕이 쨍하게 내리쬐며 이미 여름이 온 것만 같았던 석가탄신일, ‘오월도 끝물이구나’ 하며 피천득의 글 ‘오월’을 꺼내 읽어보았습니다. 마른 가지에서 여린 잎사귀들이 움트는 봄 기운에 감탄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창밖엔 녹음이 짙어지기 시작했죠.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라는 ‘오월’의 마지막 구절을 읽다 보니 1년 중 가장 좋은 계절과도 곧 이별하겠구나 싶어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창밖은 오월인데/너는 미적분을 풀고 있다/그림을 그리기에도 아까운 순간//라일락 향기 짙어 가는데/너는 아직 모르나보다/잎사귀 모양이 심장인 것을”
해마다 오월이면 이 시가 꼭 생각납니다. 역시나 피천득 선생이 쓴 ‘창밖은 오월인데’. 이 시가 떠오르는 건 대개 오월의 찬란함을 만끽하는 아름다운 순간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기도 아까운 순간”에 당직 근무라 사무실에 붙들려 있거나 밀린 일 때문에 집에 틀어박혀 있거나 하여 억울함을 느낄 때였죠. 그리하여 이 시의 소환 빈도와 오월의 복지 지수는 보통 반비례합니다. 늦깎이 학생으로 대학원에 다니던 친구의 카카오톡 대화명이 “창밖은 오월인데 너는 숙제를 하고 있다”인 걸 보고 안쓰러워하던 어느 봄날이 문득 기억나네요.
해마다 어떤 시기가 되면 떠오르는 말이나 글이 있습니까? 조병화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지요. “해마다 봄이 되면/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