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 3:16)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뱀에 이어 여자에게 죄에 대한 처벌을 내리십니다.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여자가 받을 벌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 임신하는 고통
둘째, 해산하는 수고
셋째, 남편을 사모함
넷째, 남편의 다스림
우선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자들이 임신하는 고통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라 어쩔 수 없이 원어를 찾아봤습니다.
'임신하는 고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עִצָּבוֹן(엣쌔본) הֵרָיוֹן(헤라욘)로 한글성경 번역처럼 '임신하는 고통'이 아니라 그냥 '고통'과 '임신'이라는 독립된 두 단어가 있을 뿐입니다. 원어를 가장 정확하게 번역한 영어번역본은 KJV로서 "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즉 "내가 너의 고통과 너의 잉태를 크게 배가하리니" 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고통을 많이 많이 더한다는 말씀은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는데,
잉태를 많이 많이 더한다는 말씀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이를 많이 낳게 될 것이란 의미인지,
아이를 임신하는 기간이 길어질 것이란 의미인지, 명확치가 않습니다.
몇일동안 이 말씀을 이해해보려고 시간을 두고 살펴보았습니다만, 아직도 이해를 하지 못해 그냥 넘기기로 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 가운데 이 부분에 대한 빛 비춤이 있으시면 꼭 댓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여자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자의 해산의 고통은 경험해보지 못한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다만, 많은 여자분들이 그 고통은 죽음의 고통과 같다고 하시는 많은 증언을 고려할 때 여자가 범죄 후 해산의 고통이 크게 더해졌을 것이라고 이해됩니다.
세번째로는 여자가 남편을 원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네번째로 남편은 여자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두 가지 말씀은 사실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이 말씀과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진 말씀이 창세기 4장 7절에 나옵니다.
창세기 3:16b thy desire shall be to thy husband, and he shall rule over thee.
창세기 4:7b unto thee shall be his desire, and thou shalt rule over him.
창세기 3장에서는 여자의 원함이 남편에게 있고, 남편은 여자를 다스릴 것이다라는 말씀이고,
창세기 4장에서는 죄의 원함이 가인에게 있고, 가인은 죄를 다스릴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원함'이란 무슨 의미일까요?
'원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תְּשׁוּקָה(테슈카)인데 이는 '욕망, 갈망'의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여자는 남편을, 그리고 죄는 가인을, 도대체 무엇을 욕망하고 갈망하는 것일까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지배라고 생각합니다. 즉, 여자는 남편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고 싶어하고, 죄는 가인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편의 머리됨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머리 역할을 하고 싶어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인류 역사를 보면,
위대한(?) 남자 뒤에는 항상 여자가 있었습니다. 여자들의 배갯닛 송사가 역사를 만들어왔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이의가 있으신 분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들의 이런 욕망은 제대로 실현되지 않을 것인데, 이는 남편이 여자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인류 역사는 어찌보면 여자가 남자를 자기 손아귀에 넣고 싶은 욕망과 그를 거슬러 여자를 지배해온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 이래로 가부장적 제도가 전 세계적으로 성행한 것도 어찌보면 이런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원래 창조원리에 따르면,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하는 존재요, 남자의 청지기로서의 역할을 여자가 충실히 돕는 그런 평등한 관계였습니다. 돕는 자가 하위 개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죄 이후 이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순종)해야하는 위치로 변해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1:7~12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주 안에서는 남자(남편)든 여자(아내)든 동등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머리와 몸이라는 분명한 위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곧 죄입니다.
디모데전서 2:11~14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여자(아내)는 남자(남편)의 주관 아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육신을 입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아름다운 것이고, 주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2~28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골로새서 3:18~19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우리 몸이 구속되는 그날, 남자와 여자는 명실공히 동등한 위치를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을 소망합니다.
(솔직히 남편들도 아내들을 다스리고 싶지 않답니다. 힘들어요 ㅎㅎㅎ 머리 역할이 얼마나 힘든지 아시나요? 직장생활 해보면 알게 됩니다. 위로 올라갈 수록 힘들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