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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들어온 책 2,877권.' 숫자판은 매장 입구 한복판에 있어 무심코 지나치지 못한다. 무얼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급기야는 나를 불러들인다. 매장엔 책장을 기웃거리는 사람이 보이고 계단형 좌석에 편한
자세로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보인다. 책은 모두 중고. 책을 기웃거리는 사람도 부담 없는 표정이고
책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부담 없는 표정이다.
중고서점이 있는 곳은 서면 대현지하상가. 지하상가 양방향 길에서 천우장 방향 길에 있다. 정식명칭은
`알라딘 중고서점 서면점.' 인터넷 서점업체인 알라딘이 서울 종로점에 이어 지난 1월 초 개업한 오프라인
서점이다. 중고서점이긴 해도 발간된 지 10년 이내 서적만 사고팔아 거의 새 책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책값은 절반 이하다. 실내 분위기가 산뜻하다. 조명이 밝고 공간배치가 시원시원하다. 북 카페에 들어온
기분이다.
책장은 4, 5단에서 7단까지. 책장 상단마다 코너명이 붙어 있다. 시선을 붙잡는 코너명이 있다. `방금
고객이 판 책', `오늘 들어온 책.' 기발하다. 나만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아닌 듯 매장에 들어온 사람이면
으레 여기 코너에 시선을 둔다. 책값은 역시 절반 이하. 샘터에서 나온 법정스님 `인도기행' 12,000원
짜리가 5,400원이고 부산 소설가 유연희의 소설집 `무저갱' 11,000원짜리가 4,000원이다. 둘 다 방금
들어온 책이다.
오늘 들어온 책도 마찬가지다. 26,000원 하는 `약초한방대백과'가 11,700원이고 9,000원 박완서 장편
소설 `그 남자네 집'이 3,600원이다. 마음에 쏙 드는 책이 보이더라도 한 번 더 둘러보는 느긋함이 필요
하다. 같은 책이라도 값이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미술책은 하나는 7,400원이고 다른
하나는 6,600원. 보존상태에 따라 구매가격이 달라지고 판매가격도 당연히 달라진다.
매장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여럿. 그중 하나가 입구 데스크 `중고도서 구매 안내판.' 집에서 잠자는
책과 음반을 갖고 오면 매장에서 현금으로 드린다는 문구와 함께 구매가격 산정방법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정가의 25%×책의 품질이 구매가격이다. 품질은 상중하로 나눠 최상 100%, 상 90%, 중 80%로
책정한다. 예를 들어 보존상태가 중에 해당하는 10,000원 중고도서를 팔 경우 10,000×25%×0.8 해서
구매가격은 2,000원이 된다.
좀 아깝겠단 생각은 든다. 10,000원짜리 책을 반의 반도 안 되는 가격에 내다파는 게 좀 아까운가.
그렇긴 하지만 안 보는 책이나 다 본 책이라면 자원절약과 지식의 나눔이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일이다. 싸게 판 만큼 어느 누군가는 싸게 살 수 있으니 공덕을 쌓는 좋은 일이기도 하다.
혹시 아는가. 지금 내가 판 이 책이 누군가의 삶에 자양분이 될는지. 누군가의 인생을 불끈 일으켜
세울는지.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미 사라진 책을 읽는다는 것.' 서점 정문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벽면에 쓰인
문구다. 스케일이 지나치게 크다는 반감은 들지만 몇 번 곱씹어 읽어보면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입구
벽면에선 유명작가들 얼굴과 작품 한 대목씩을 접하게 된다. 벽면 아래는 앞서 말한 계단형 좌석. 노인
층도 보이고 아이를 동반한 엄마도 보이고 일행이 있는 아가씨도 보인다. 책을 들여다보는 눈빛이 다들
맑아 보이고 선해 보인다.
중고서점에 들어와 있으니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사나흘씩 치르던 월말시험이나 기말시험을 마치는
날 꼭 들르던 보수동 책방골목. 귀한 시집을 찾아내고 잡지 창간호를 찾아내었을 때의 그 기쁨. 생각이
책방골목에 이르자 은근히 걱정이 된다. 온라인 서점이 오프라인에서 득세하면 부산문화의 아이콘
보수동이 문 닫는 건 아닐까. 서로의 영역을 넘보지 않으면서 가닿는 공동선!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
하면서 공동선에 가닿길 기대해 본다.
<A href="mailto:dgs1116@hanmail.net">dgs1116@hanmail.net</A>
첫댓글 저도 자주 이용하는곳 입니다^^
서면 대현 지하상가내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 저도 자주 가요
어제 책 몇권샀는데. 새책 한두권값밖아니더라구요. 행복했어요
책은 살때 행복. 읽을때행복, 다 읽었을때행복!
와우 정보 감사 합니다 전 갠적으로 책을 무척 좋아 하는데
너무 가격이 고가라 생활비 가 딸딸 할때가 있었죠..
ㅎㅎㅎ 자주 애용해야겠네요...
여기도 감사~~^^* 에 한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