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시 율곡로3139번길 24 (죽헌동)
오죽헌 안채이며 추사 김정희 글씨라함
오죽헌의 수호목인 (율곡송)
오죽헌을 지켜주는 수호목인 (600년된 배롱나무)
해설자님의 말씀에 귀를 맡긴 많은 아줌씨들!!!!.
역시 주부들은 신사임당의 산실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1536년 율곡선생이 잉태된 방이며 대청마루에 걸쳐 벽에는 (율곡제)에서
입상한 작품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의 손길 얘들이 행운이 따른다고!! 금돈 (모조품)을 오죽위에 놓고 기념촬영
오죽헌은 母子 화페 인물 탄생지다.
2009년 6월 오만원권 지폐가 시중에 나오기 며칠전 우리는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자운서원)에 이율곡, 신사임당 묘소가 있는곳을 찿았었다.
당시에는 공사중이라 제한구역이 많아서 아쉬움이 많았는데...
어제각 앞에 갈래갈래 소나무
이율곡 동상
**조선 시대의 학자․정치가(1536~1584). 이름은 이(珥)이며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
석담(石潭), 우재(愚齋)이고,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1564년에는 생원시(生員試),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모두 장원하여 호조 좌랑(戶曹佐郞)에
초임되었다. 이후 동부승지(同副承旨), 우부승지(右副承旨), 병조 참지(兵曹參知),
대사간(大司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거쳐 이조, 형조, 병조 판서(判書),
우참찬(右參贊)을 역임했다. 학문으로는 이기론(理氣論)에 있어서 기(氣)의 독자성을
중시하는 이론을 주장하였다. 이황(李滉)과 더불어 조선 시대 유학의 쌍벽을 이루는
학자로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연원을 열었다. 저서로는 《성학집요(聖學輯要)》,
《격몽요결(擊蒙要訣)》, 《율곡전서(栗谷全書)》 등이 있다**(백과사전에서....
학자중에 생졸년을 잊지 않는 자가 개인적으로 바로 율곡 선생님이다.
이유중 하나가 조선시대 문장가 우리 派조 (나해봉)께서 탄생하신 해에 이이께서
운명 하셨기때문이다. 어찌보면 代를 이어놓지 않았나!!!!(후손주)
1632년 남간공께서 단순히 경포대만 보고 가셨겠는가.!!!
600년된 베롱나무는 알고 있으리
문헌집에는 현재로서는 기록이 없지만 경포호수가 조선시대에는 이곳
오죽헌까지 12km가 되었다 한다. 분명 오죽헌을 들렸을 것으로 생각이든다.
지금의 경포호수가 4km이지만 이곳까지 복원공사중이라고 한다.
첫댓글 저도 대나무 밑에서 태어났지만 대나무가 검은 오죽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때 동네 할머니들이 담배를 끼워 빨던 (곰방대)가 오죽인가 봅니다.
도로가나 오죽헌 앞뒤가 모두 황새 뒷다리처럼 가느다란 오죽이였습니다.
동서울에서 강릉터미널까지 3시간 소요, 바로 앞에서 시내버스 10분 소요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