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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36회
버리미기재-곰넘이봉-촛대봉-불란치재-대야산-월영대-대야산주차장
20230604
1.위태로움 감행의 긴장과 극복의 환희
6월 4일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버리미기재에 다시 왔다. 지난 2023년 2월 5일 이곳에서 장성봉 산행을 위해 북진했었는데, 이번에는 대야산 방향으로 남진한다. 버리미기재는, 궁핍했던 지난 시절 손바닥만한 밭뙈기에 의지해 식구들을 '벌어 먹이던 곳', 보리농사를 지어먹던 궁벽한 ‘보리먹이 고개'라는 뜻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대야산 밀재 설명안내판에는 "밀재는 양봉으로 꿀을 채취하던 곳으로 우리말로는 '벌(꿀蜜)고개'인 샘이다. 밀재는 버리미기재와 그 어원이 같은 이름으로 '벌의 목 고개'라는 뜻이다." 이 설명대로라면 버리미기재의 뜻은 '양봉으로 꿀을 채취하던 고개'(벌의 목 고개)라는 뜻으로 이 지역에서 양봉이 주로 행해진 것을 바탕으로 지명이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5월 31일 이 구간을 산행한 뒤 3년만에 다시 버리미기재에서 대야산 산행을 감행한다. 버리미기재에서 백두대간 남북 양쪽 산행은 모두 비법정탐방로이다. 마음에 걸리고 불편하지만 백두대간 산행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규칙을 어긴다. "知足不辱(지족불욕) 知止不殆(지지불태) 만족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노자) 산행에서도 이것을 실천하기가 참으로 어렵구나. 욕되고 위태롭게 비법정탐방로 경계를 넘어 들어갔다. 6월의 산은 활엽수 참나무 푸른 잎들이 무성하다. 그 사이로 여름의 쨍쨍한 햇볕이 헤집고 들어오지만 녹음이 짙다. 산등성이에는 우산나물이 군락을 이루고 우산잎을 펼치고 있다. 산의 숲은 고요하고 산객들은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힘차게 내닫는다. 북쪽에는 장성봉 능선이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온다. 헬기장까지 가파른 산비탈을 힘겹게 올랐다.
675m 솔바위봉에서 남쪽 둔덕산 능선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마귀할미통시바위와 손녀마귀통시바위로부터 왼쪽 둔덕산으로 이어지는 푸른 숲의 능선이 흰구름 파란 하늘에 꼬불꼬불 선을 긋는 풍경이 아름답다. 그 오른쪽 바위지대에서는 북쪽 막장봉 능선, 북서쪽의 칠보산과 군자산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능선을 긋고 있다. 여름날 오전의 거칠 것 없는 선명한 풍경에 가슴이 활짝 열린다. 그런데 이 솔바위봉 아래 암릉 내리막 밧줄 구간에서 산우님이 낙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위험구간에서 밧줄을 잡지 않고 내려가다가 미끄러진 것, 부상한 산우님은 산행을 중지하고 하산하여 서울의 병원으로 이송되어 입원하였다. 경미하였으면 좋았겠지만 고관절에 금이 가는 사고였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척추 신경 계통에 이상이 없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 남은 대원들은 몇 차례 암릉 구간을 안전하게 통과하여 곰넘이봉에 올랐다.
곰넘이봉 가는 도중의 바위에서는 북쪽 장성봉 능선과 암릉을 드러낸 희양산이 분명하게 확인된다. 왜 산행하느냐, 왜 힘들게 높은 곳에 오르느냐고 질문 받을 때 풍경을 조망하기 위해서라고 응대한다. 전망 좋은 산봉에서 조망하는 즐거움은 산행 최고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장성봉과 희양산, 그곳을 넘어서 백화산, 조령산, 신선암봉을 가늠하며 가슴이 뛴다. 곰넘이봉에서는 남쪽 둔덕산 능선이 다시 한 번 그 모습을 내보이며 가슴을 달군다. 오른쪽 마귀할미통시바위와 손녀마귀통시바위를 거쳐 맨 왼쪽 둔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가슴을 부풀린다. 아름다운 능선이다. 저 능선은 한 번도 산행한 적이 없다. 어느 날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아니다, 의지적 결단에 의하여 저 능선 산행을 실천할 것이다.
곰넘이봉을 넘어 암릉 지대를 통과하는 도중의, 1.전망바위 2.미륵바위 3.그 아래 바위지대, 이 세 곳에서 북쪽과 남쪽의 산줄기 조망이 가슴을 활활 태운다. 그 중 압권은 남쪽에 우뚝 솟은 대야산 상대봉이다. 촛대봉에서 대야산 상대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가 오늘따라 더욱 선명하다. 저기 우뚝 솟은 대야산(大耶山) 상대봉 90도 암벽을 어떻게 오를 것인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상대봉 암벽을 곧바로 오를 수는 없다.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밧줄이 매여 있는 암릉 지역으로 이번 산행 최대의 위태로운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대야산 상대봉을 바라보며 마음의 준비를 다잡고 미륵바위 아래의 위험지대를 내려서서 불란치재로 향한다. 푸르른 낙엽활엽수 참나무 숲이 싱싱하다. 조금 전의 위태로운 마음은 어느새 날아가고 마음이 밝아진다. 불란치재에 이르렀다. 불란치재는 옛 기록에 불한령(弗寒嶺)으로 적혀 있는데, 대야산 허리에 위치하여 문경과 괴산을 잇는 고개로 우마차가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이 불란치재를 중심으로 선유동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시인묵객들이 많이 찾았다고 한다.
촛대봉 오름길에서 이번 산행의 두 번째 힘든 오르막 고행을 마쳤다. 해발 661m 촛대봉에 오른 뒤 암릉 위험 지대를 내려서서 촛대재에 이르렀다. 촛대재 동남쪽 내리막길은 대야산 동쪽 피아골로 이어지고 서남쪽으로 대야산 상대봉으로 오르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오르막길을 올라서 드디어 대야산 상대봉 오르는 직벽에 가까운 급경사 암릉 지대를 오르는 위험에 도전한다. 80m의 밧줄 구간, 올려보면 캄캄해지고 내려보면 오금이 저린다. 오, 위태롭다. 예전에도 이곳은 위태로웠던가? 세월이 흘러서 이곳의 위태로움을 잊은 것일까. 내 인생 네 번째로 이곳을 오른다. 밧줄에 의지하고, 대장님의 도움을 받아서 세 곳의 위태로운 구간을 모든 대원들이 무사히 통과했다. 모험의 감행과 성공의 짜릿함, 올라선 암봉에서 걸어온 산줄기와 최근에 산행한 백두대간 산봉들을 살피는 통쾌함에 가슴이 터질 듯하다. 올라선 암봉에서 왼쪽으로 우회하여 비법정탐방로에서 법정탐방로의 대야산 정상에 올라섰다. 저린 가슴이 아프게 환희했다. 다시 오를 수 있을까?
해발 930.7m 대야산 정상에서 표석과 함께 대야산 산행을 기념하였다. 대야산에 대하여 철종 시대의 대동지지[(大東地志(1861년 이후 추정)]에는 "大耶山 曦陽山南支上峯曰毘盧爲仙遊洞主山西距淸州華陽洞三十里(희양산남지상봉왈비로위선유동주산서거청주화양동삼십리)"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대야산은 희양산의 남쪽 갈래로 제일 높은 봉우리가 비로봉이고, 선유동의 주산이다. 서쪽의 청주 화양동이 30리다." 대야산(大耶山)의 최고봉을 일반적으로 상대봉이라고 부르는데 이 기록에서는 비로봉(毘盧峯)이라 이르고 있다. 대야산 비로봉(毘盧峯)에서 사방을 조망한다. 2주 전 5월 21일 조망할 때보다 시야거리가 더 멀고 투명하다.
북쪽을 조망한다. 희양산이 화강암 암반을 반짝이며 분명한 자태를 보인다. 그 왼쪽 뒤에 조령산과 신선암봉, 그 오른쪽 뒤에 주흘산이 살짝 보인다. 희양산 왼쪽 앞에 장성봉, 맨 왼쪽 뒤에 악휘봉, 그 왼쪽에 덕가산, 그 앞쪽으로 칠보산, 군자산이 모두 확인된다. 남쪽을 조망한다. 중앙에 청화산을 두고 그 앞 왼쪽은 조항산, 그 뒤 오른쪽은 칠형제봉 능선, 문장대와 속리산 천왕봉 암릉 능선, 그 오른쪽은 관음봉과 묘봉, 맨 오른쪽 뒤 뾰족한 도명산이 가늠된다. 남서쪽으로 2주 전에 중대봉을 거쳐 이곳에 올라온 산행을 더듬는다. 대야산 중대봉 능선이 정답다. 동쪽 아래는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선유동계곡, 저곳으로 하산할 것이다. 대야산 정상에서 사방을 조망하니 가슴이 뻥 뚫린다. 호연지기(浩然之氣)란 이런 감각일 것이다. 예전에 읽은 면암 선생의 '유한라산기' 글이 생각난다. <“바다를 본 자는 바다 이외의 물은 물로 보이지 않으며,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작게 보인다.”(맹자) "허공에 떠 바람을 다스리고(憑虛御風),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른다(羽化登仙)."(蘇東坡)>《최익현(崔益鉉, 1833~1907)의 '遊漢挐山記'에서》 오직 체험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기상과 정감을 길손 또한 느낀다.
백두대간 산줄기 네 번째 꼬리잇기는 대야산에 오름으로써 남쪽은 모두 이어졌다. 네 번째 잇기에서 북쪽의 충북 괴산 지름티재-희양산-이만봉-사다리재-이화령 구간이 끊어져 있다. 이 구간을 이으면 지리산에서 조령3관문까지 백두대간 산줄기 북행 꼬리잇기 네 번째는 단절없이 이어진다. 백두대간 산줄기 잇기를 통하여 무엇을 배우는가? 길손은 감히 말한다. 우리 국토의 역사와 지리를 알아가고 체험하는 길이라고. 그곳에 얽힌 겨레의 환희와 피 묻은 역사을 알고 싶다고. 신석정 시인의 '산은 알고 있다'를 아득한 그리움으로 읊는다. "(전략)산은 알고 있다.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고 그 기나긴 세월에 묻어간 모든 서럽고 빛나는 이야기를 너그러운 가슴에서 철철이 피고 지는 꽃들의 가냘픈 이야기보다도 더 역력히 알고 있다.// 산은 가슴 언저리에 그 어깨 언저리에 스며들던 더운 피와 그 피가 남기고 간 이야기와 그 이야기가 마련하는 역사와 그 역사가 이룩할 줄기찬 합창소리도 알고 있다. 산은 역력히 알고 있는 것이다.// (중략)그러기에 산은 우리들이 내일을 믿고 살아가듯 언제나 머언 하늘을 바라보고 가슴을 벌린 채 피 묻은 역사의 기록을 외우면서 손을 들어 우리들을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이여!/ 나도 알고 있다./ 네가 역력히 알고 있는 것을/ 나도 역력히 알고 있는 것이다."(신석정의 '산은 알고 있다'에서)
활짝 열린 마음이 풍선처럼 둥둥 떠올라 대야산 상대봉을 내려간다. 밀재와 월영대 갈림길에서 잠시 망설였다. 일정대로 밀재로 내려갈까? 2주 전 밀재로 내려갔으니, 지금까지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피아골로 내려가 보는 게 어떨까? 갈림길 옆 한적한 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더 생각해 보았다. 대야산 계곡은 대야산 정상 아래서 월영대로 내려가는 '피아골', 밀재에서 월영대로 내려가는 '다래골', 월영대에서 대하산 주차장 입구로 내려가는 '용추골', 이렇게 세 골짜기로 구분되며, '월영대-대야산 주차장 입구' 구간은 '선유동천 나들길' 2코스에 해당된다. 그래, 이번에는 피아골로 하산하자.
생애 처음으로 대야산 피아골로 내려가서 용추계곡과 만났다. 월영대 입구의 다래골에서 용추골의 선유동천 나들길을 따라 내려간다. 산행의 모든 어두운 것들을 용추골 맑은 물로 씻어내며 빠르게 걸었다. 대야산주차장 갈림목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아래로는 '선유동천 나들길' 1코스 선유구곡과 선유칠곡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대야산주차장은 위쪽 언덕으로 올라간다. 어떻게 예까지 왔는지 정신이 가물가물하다. 동쪽에 우뚝 솟은 둔덕산이 말한다. "그대여, 거기에 이르렀는가? 늘재, 밤티재, 속리산 문장대, 버리미기재, 장성봉, 곰넘이봉, 미륵바위봉, 대야산 중대봉을 휘젓는 그대를 나는 이곳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대의 구차한 변명들이 나를 아프게 한다. 그대여, 국토산하를 사랑하는 마음이 꼭 백두대간 산줄기 종주 산행에만 있을까?" 둔덕산의 소리가 가슴을 찌른다. "반드시 거기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국토 등줄기 전부를 두 발로 체험하고자 하는 바람이 간절한 자는 경계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기도 하지만, 가지 않아야 할 길을 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2.산행 과정
전체 산행 거리 : 8.75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6분
지방도 922호선 대야로 버리미기재(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에서 대야산 방향(왼쪽)으로 남진한다. 건너편은 장성봉 방향.
건너편은 백두대간 북쪽 장성봉 방향, 지난 2월 5일 버리미기재에서 장성봉 방향으로 북진했었다. 버리미기재는 궁핍했던 지난 시절 손바닥만한 밭뙈기에 의지해 식구들을 '벌어 먹이던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가파른 산비탈을 올라 무명봉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능선을 이어간다.
무명봉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가파른 비탈을 오르면 헬기장에 이른다.
이즈음이 제 철인지 우산나물이 즐비하다.
싯푸른 참나무숲 산 비탈을 오르면 일단 산행 초반의 어려움은 끝난다.
능선에서 북쪽 백두대간 장성봉 능선을 가늠한다.
능선에 올라서 진행하면 곧바로 큰 바위가 나타난다. 왼쪽으로 우회한다.
솔바위봉 아래의 바위지대가 몹시 위태롭다. 솔바위봉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앞의 산봉을 올라야 한다.
위의 해발 675m 솔바위봉에서 남쪽 둔덕산 능선을 조망한다.
솔바위봉 앞 숲 아래 위태로운 바위지대를 내려가는 곳에서 대원이 미끄러져 몹시 다쳤다.
바위지대에서 북쪽 막장봉 능선, 왼쪽은 군자산, 중앙 맨 뒤는 칠보산일 것이라 가늠한다.
위태로운 바위지대를 내려와서 올려보았다. 대원들 전체가 이곳을 내려오는데 20분 가까이 걸렸다.
위태로운 바위지대를 내려오면 곧바로 가파른 위험지대를 올라야 한다.
이번 산행의 위험지대를 통과해, 사고가 발생한 위태로운 바위지대를 뒤돌아보았다. 왼쪽 뒤는 장성봉인 듯.
밧줄을 잡고 우뚝 솟은 바위를 올라간다.
바위를 오르는 모습을 대원이 사진에 담았다.
바위에 올라서 북쪽 장성봉 능선을 조망한다.
왼쪽은 장성봉, 오른쪽 뒤 암릉을 드러낸 산이 희양산이다.
바위 아래의 좁은 공간을 통과해 위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왼쪽에 우회로가 있다.
소나무가 멋진 솔바위에서의 조망이 좋다.
이 바위 너머가 곰넘이봉 정상이다. 곰넘이봉 바위 모습이 예쁘다.
왼쪽 뒤에 둔덕산이 솟아 있다.
오른쪽 마귀할미통시바위와 손녀마귀통시바위를 거쳐 맨 왼쪽 둔덕산으로 이어진다.
저 산봉 왼쪽 아래에 미륵바위가 있다.
오른쪽 전망바위로 가서 조망한 뒤 되돌아온다.
오른쪽은 투구봉, 왼쪽은 군자산, 맨 뒤는 칠보산일 것이라고 가늠한다.
괴산군 청천면 관평리 일대가 펼쳐져 있고, 오른쪽 뒤는 칠보산, 그 왼쪽은 군자산일 것이라 가늠한다.
남쪽으로 대야산 상대봉을 조망한다. 솔가지 뒤에는 촛대봉이 있다. 솔가지봉 뒤쪽 아래가 불란치재일 것이다.
솔가지 뒤에 촛대봉, 오른쪽 뒤에 대야산 상대봉이 우뚝하다. 왼쪽 뒤의 능선은 둔덕산 능선이다.
미륵바위 아래에서 뒤돌아본다. 솔바위봉을 거쳐 걸어온 능선이 부드럽다. 그러나 위태한 곳들이 숨어 있다.
오른쪽 뒤에 둔덕산이 솟아 있고, 왼쪽 아래는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선유구곡길이며 하산 지점이라고 가늠한다. 중앙에서 오른쪽 위로 올라오는 길이 문경과 괴산을 잇는 불란치재길이며 맨 오른쪽 아래에 불란치재가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
왼쪽에 촛대봉을 거쳐 중앙의 대야산 상대봉 직벽의 암릉지대를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불란치재가 왼쪽 앞에 있을 것이다.
동쪽의 경북 문경과 서쪽의 충북 괴산을 잇는 고개이다. 불란치재는 옛 기록에 불한령(弗寒嶺)으로 적혀 있으며, 우마차가 다닐 정도의 길이 뚫려 있다. 불란치재 동쪽을 외선유동(外仙游洞), 서쪽을 선유동(仙游洞)이라 이르는 것 같다. 김창협의 한시는 외선유동으로 가는 길을 읊었다.
산속이라 수십 리 걸어가는 길(山行數十里) 지저귀는 새소리 끊이지 않네(鳥啼無時歇)
맑은 시내 버렸는데 다시 만나고(淸溪棄復得) 구름 깊어 헤어나기 어렵지마는(白雲深難出)
우거진 숲 꽃송이 곱게 피었고(旖旎長林花) 푸른 못에 잠긴 해 일렁거리니(搖漾淥潭日)
초연하게 남다른 감상을 하며(翳然寄孤賞) 산길 따라 읊조림 아니 멈추네(遵路吟不輟).
어부의 그물 멀어 고기 즐겁고(魚嬉網罟遠) 나무꾼 도끼 없어 나무들 늙어(木老斧斤絶)
여기서 사람 마음 느껍게 하니(卽此感人深) 무슨 수로 관복을 벗어 던지나(何由棄簪紱)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外仙游洞으로 향해 가며'<농암집 제 3권>
백두대간 산줄기 산행을 할 때 이런 비법정탐방로 여러 곳을 통과한다. 마음이 쓸쓸해진다.
바위를 우회하여 촛대봉으로 오른다.
촛대봉 아래쪽에서 북쪽을 조망한다. 오른쪽 투구봉 능선, 중앙은 칠보산, 그 왼쪽 군자산, 아래는 괴산 관평리 지역이다.
상대봉 정상에 감시카메라가 보인다. 산행은 오른쪽으로 돌아 직벽을 오른 뒤 정상 왼쪽으로 돌아서 오른다.
촛대봉 아래의 암릉 밧줄 구간을 내려간다.
촛대재를 지나서 대야산 비탈을 오르다 촛대봉을 뒤돌아보았다.
어쩔 수 없다. 경고판 위쪽으로 올라가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암릉 직벽을 오른다.
암릉지대 직벽 1차 밧줄 구간을 오른다.
1차 밧줄 구간을 올라와 숨을 고르며 북쪽을 조망한다. 중앙 맨 뒤에 악휘봉, 왼쪽 뒤에 칠보산이 가늠된다.
암릉지대 2번째 밧줄 구간을 위태롭게 오른다.
암릉지대 3번째 밧줄 구간을 오른다.
암릉지대 3번째 밧줄 구간을 조심스럽게 오른다.
직벽 암릉지대를 무사히 올라와서 잠시 북쪽을 조망한다. 맨 왼쪽이 칠보산, 중앙 뒤쪽에 덕가산 시루봉과 악휘봉, 맨 오른쪽은 장성봉이라고 가늠한다.
위와 같은 곳에서 조망한다. 버리미기재에서 산봉으로 올라와 통과한 능선이 바로 앞 촛대봉으로 이어지고 있다. 맨 왼쪽 위는 장성봉, 중앙의 화강암 암봉은 희양산, 왼쪽 뒤는 조령산일 것이라 추정한다.
위와 같은 곳에서 조망한다. 오른쪽에 둔덕산, 아래 계곡은 하산지점으로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선유구곡이라 가늠한다.
암릉직벽 지대를 올라와서 왼쪽으로 돌아 감시카메라가 있는 대야산 정상 상대봉으로 올라가며 조망한다. 왼쪽 뒤는 조항산, 그 뒤 능선은 시루봉 능선이다.
그곳에서 살짝 동쪽으로 조망하면, 왼쪽에 둔덕산, 중앙 오른쪽에 마귀통시할미바위, 그 오른쪽 뒤에 조항산이 보인다.
대야산 상대봉 정상 직전에서 다시 뒤돌아보면, 왼쪽 뒤에 악휘봉, 중앙에 장성봉, 그 오른쪽에 희양산, 중앙 맨 뒤에 조령산과 신선암봉, 그 오른쪽 뒤에 주흘산이 가늠된다.
2주가 지나서 대야산에 다시 왔다. 그때보다 날씨가 맑아 시야거리가 멀다.
문경의 명산 대야산은 백두대간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문경의 산들 중에서도 그 명성을 높이 사고 있는 명산이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에 속한 대야산은 대간 마루금을 경계로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와 접하고 있다. 내·외선유동을 거느리고 있는 대야산은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맞아 문경의 주흘산, 황장산, 희양산과 함께 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 100대 명산에 올라서 있다. 예로부터 명산으로 받들어 온 대야산은 여러 기록들에 ‘대야산(大耶山)’으로 적고 있으며 특히 철종 조의 대동지지[(大東地志(1861년 이후 추정)] 에는「大耶山 曦陽山南支上峯曰毘盧爲仙遊洞主山西距淸州華陽洞三十里(희양산남지상봉왈비로위선유동주산서거청주화양동삼십리: 대야산은 희양산의 남쪽 갈래로 제일 높은 봉우리가 비로봉이고, 선유동의 주산이다. 서쪽의 청주 화양동이 30리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대야산 정상을 ‘비로봉(毘盧峯)’으로 부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대한민국 구석구석)
네 번째로 대야산 정상에 섰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기약할 수 없다.
대야산에서의 조망은 사방이 활짝 열려 있다.
중앙에 청화산을 두고 그 앞 왼쪽은 조항산, 그 뒤 오른쪽은 문장대와 속리산 천왕봉 암릉 능선이다.
맨 오른쪽 뒤 뾰족한 도명산, 중앙 뒤쪽에 속리산 주능선 암릉과 묘봉, 왼쪽에 조항산, 그 오른쪽 뒤에 청화산이 보인다.
중앙 오른쪽에 대야산 중대봉, 그 왼쪽 맨 뒤에 도명산, 맨 왼쪽 뒤에 속리산 주능선 암릉과 묘봉을 가늠한다.
중앙에 희양산이 분명한 자태를 보이고 그 왼쪽 뒤에 조령산과 신선암봉, 그 오른쪽 뒤에 주흘산이 살짝 보인다. 희양산 왼쪽 앞에 장성봉, 맨 왼쪽 뒤에 악휘봉이 보인다.
왼쪽 뒤는 칠보산, 그 오른쪽 앞은 군자산인 듯. 감시카메라 뒤는 덕가산, 그오른쪽에 악휘봉, 오른쪽 앞에 장성봉, 맨 오른쪽 뒤에 조령산과 신선암봉이 확인된다.
뒤쪽으로 백두대간 희양산 능선이 이어진다.
대야산 아래 월영대와 밀재 갈림목에 이르렀다. 직진하면 중대봉 갈림목으로 올라가 밀재로 내려간다.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면 피아골을 통해 월영대로 내려간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피아골 계곡으로 하산하려고 한다.
피아골 갈림목에서 15분 동안 점심을 먹고 피아골로 하산한다.
피아골 계곡으로 내려가는 뎈에서 마귀할미통시바위 능선 끝 둔덕산을 조망한다.
피아골 급경사 지대에 뎈계단이 설치된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
해발 522m, 대야산 1.2km, 월영대 0.7km 지점의 이정목을 통과한다.
피아골이 용추골과 만나는 곳에 도착, 오른쪽은 월영대를 거쳐 밀재로 오르는 다래골이다. 왼쪽 대야산 주차장 방향으로 용추골을 따라 내려간다.
대야산에서 피아골을 따라 1.9km 내려와 용추골과 만났다. 용추계곡을 따라 2.3km 대야산주차장으로 향한다.
암수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오른 곳이라는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용추(龍湫) 양쪽 거대한 화강암 바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할 때, 용트림을 하다 남긴 용비늘 흔적이 신비롭게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용추(龍湫)의 장관이야 말로, 명소 중의 명소, 비경 중에 비경이 아닐 수 없다.
용비늘 흔적은 왼쪽에 있는 것일까?
대야산 용추계곡은 경북 문경시와 충북 괴산군의 경계에 있는 대야산 자락을 흐르는 계곡과 폭포이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암반 위를 사시사철 옥처럼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에는 무당소, 용추폭포, 월영대 등의 아름다운 비경이 숨어 있다. 특히 용추폭포는 2단 폭포로, 다른 폭포처럼 물이 높은 위치에서 시원스레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위쪽에 하트 모양의 깊게 파인 소(沼)가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이곳은 두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곳으로 폭포 양쪽의 바위에는 용이 승천할 때 떨어뜨렸다고 전하는 용의 비늘 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다. 소(沼)에서 머물던 푸른빛이 도는 맑은 물은 좁은 홈을 타고 아래 용소로 흘러내리며, 그 아래에는 용이 승천하기 전 알을 품었다고 하는 살짝 파인 웅덩이가 있다. 용추폭포 아래에 있는 무당소는 수심이 3m 정도로, 100여 년 전 물 긷던 새댁이 빠져 죽은 후 그를 위해 굿을 하던 무당마저 빠져 죽었다고 한다. 용추폭포 위의 넓은 암반을 지나 대야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20분 정도 오르면, 밤에 계곡의 맑은 물에 비친 달을 볼 수 있다는 월영대(月影臺)가 있다.(대한민국 구서구석)
용추 바로 아래에는 용추에서 흘러내린 물이 소(沼)를 이루어 물놀이하기에 좋다.
용추폭포 아래에 있는 무당소(巫堂沼)는 수심이 3m쯤 되는 정도로, 100여 년 전 물을 긷던 새댁이 빠져 죽은 후 그를 위해 굿을 하던 무당마저 빠져 죽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무당소(巫堂沼)의 물이 아주 맑고 투명하고 주위에는 산들이 둘러 있어서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무당소(巫堂沼)는 생각보다 깊지 않아서 물놀이하기가 좋을 것 같다. 비가 오면 수심이 깊어질 것이다.
용추계곡 서쪽을 내려오다가 동쪽으로 건너와 동쪽 지역을 내려오다가 다시 용추계곡을 건넌다.
대야산주차장은 위쪽으로, 오른쪽은 선유동천 나들길 제1코스로 선유구곡으로 내려가고, 왼쪽은 선유동천 나들길 제2코스로 용추계곡으로 올라간다.
선유구곡은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앞으로 흐르는 시내를 따라서 약 1.8km에 걸쳐 펼쳐진 구곡원림이다. 이 구곡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신선이 노닐 수 있을 정도로 경관이 아름다운 원림이다. 선유구곡 아홉 굽이에 새겨 놓은 이름을 살펴보면, 제1곡이 옥하대玉霞臺(현재 확인할 수 없음), 제2곡이 영사靈搓石, 제3곡이 활청담活淸潭, 제4곡이 세심대洗心臺, 제5곡이 관란담觀瀾潭, 제6곡이 탁청대濯淸臺, 제7곡이 영귀암詠歸巖, 제8곡이 난생뢰鸞笙瀨, 제9곡이 옥석대玉舃臺이다. 선유구곡과 선유칠곡이 연결된 '선유동천 나들길' 은 숲길 이용자 만족도 조사에서 전국 최고의 숲길로 선정되었다.
푸른 구름 조각조각 가을 그늘 이뤘는데(碧雲零落作秋陰) 날리는 샘물조차 돌 숲에 뿌려대네(唯有飛泉灑石林)
옥퉁소 불던 사람 떠나간 뒤부터는(一自吹簫人去後) 계화향기 차가워라 오늘에 이르렀네(桂花香冷到如今)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선유동'<완당전집 제 10권>
대야산장 오른쪽 길을 따라서 언덕을 넘어 대야산주차장으로 간다.
백두대간의 줄기인 대야산에서 용추계곡은 용이 계곡을 박차고 하늘로 오르면서 패인 곳이라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바위에 파여진 웅덩이와 물길이 아주 보기 좋으며, 맑은 물속으로 금방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오른쪽 계곡은 용추계곡, 왼쪽 계곡은 선유구곡 길이다.
언덕을 넘으면 대야산주차장이 있다.
대야산주차장으로 가는 언덕에서 뒤돌아서 둔덕산을 조망하였다.
언덕길에는 꿀풀꽃이 군락을 이루고 피어 있다.
선유동천 나들길은 1코스 4km, 2코스 4.4km, 총 8.4km 거리이다.
대야산주차장에서 선유동천 나들길 2코스 입구 용추계곡으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