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세 번 성경 쓰기
“수녀님 어디 가세요. ....타실래요?”
나는 계양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신자세요?”
“네”.
타고 보니 지난번에도 뵌 듯 낯익은 형제님이셨다. 형제님은 퇴직 후 두 번째 직업으로 택시를 하고 계셨다. 적당한 이동 거리라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천주교 신자란 정체성으로 어제 오늘 만난 지기처럼 자연스럽게.
“세례명이...?”
“바오로입니다.”
“왜 사도 바오로를 하셨어요?”
“실은 제가 개신교 장로회를 먼저 다녔습니다. 교리를 한 3개월째 하는데 신약 성경 시험을 본다고 해요. 일등 하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일등은 못 하고 이등을 했습니다.”
‘헉, 교리 3개월 차 생도가 성경시험에서 2등을... 개신교는 쎄구나, 에효 천주교도 한 때 엄청 쎘는데.... 여러모로 열혈 바오로 사도를 똑 닮았구나. 사도도 하도 공부가 쎄고 깊어 펠릭스 총독에게 미친 사람 취급 받았는데. ’
“그런데 다니던 교회에서 실망스러운 일을 목격하고 발길을 끊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제천으로 발령이 났는데 계속 교회를 나가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들며 나며 꾸준히 성경을 읽었습니다. 집 주인이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왜 교회는 가지 않고 그렇게 성경만 읽느냐고 물으시더군요. 같이 교회와 성당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말하자면 상호 전교지요. 교회를 먼저 갔는데 그분은 들어가시지 않아요. 반칙이죠? 다음에 성당에 같이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미사 드리는 신부님을 보고 반했습니다. ‘정의 구현 사제단’으로 활동하시는 정말 멋진 분이었습니다. 거기서 세례를 받았고 세례 명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사도 바오로로 했습니다.”
“천주 교회에도 자세히 보면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은데, 천주교로 오시고 후회하지 않으셨어요? ”
“아니요, 본 집을 찾아왔는데 후회할 이유가 없지요?”
“아, 네!”
“입대 후 성경을 필사하기 시작했어요. 사도행전까지 쓰고 전역을 했어요. 그러면서 평생 서른세 번 필사하겠다고 작정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서른 세 살에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2023년 올해 스무 번째 쓰고 있습니다. 열세 번을 더 쓰면 서른세 번입니다.
‘서른세 번은 예수님이 공생활 후 돌아가셨을 때 연세시다. 필사의 빈도에도 신앙을 입히시다니.’.
“필사는 힘들어서 컴퓨터로 입력하고 있습니다. 팔목과 손가락에 염증이 왔어요.”
“쉬시는 날은 언제세요? 시간 되실 때 수녀원 놀러 오시면 차 한 잔 드릴게요?”
차를 핑계를 대고 범상치 않은 그분의 신앙 간증을 더 듣고 싶은 속심이었다.
“쉬는 주일에 미사 다녀오면, 바로 성서를 씁니다. 너무 재미있고 보람 있어 놀러 갈 사이가 없어요.” ‘밖에 놀러 다니지 않고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으니 돈 쓸 시간이 없어요. 하하하. 성경을 공부하며 입력하고 있으면 세상에서 젤로 재미있고 의미 있습니다.
’형제님의 저 마음 나도 조금은 알 수 있다. 그리고 참 좋은 몫을 은총으로 받으신 형제님께 감탄과 큰 배움이다. 저 지치지 않는 뜨거움과 항구함이라니.’
이십 년 전 2,000년대 희년에는 혼자서 일 년간 한국에 있는 모든 성지순례를 모두 다 순례할 계획을 세워 실천하며 수많은 체험을 했다고 한다. 가장 찰진 순례는 혼자 하는 것이다. 바오로 님은 성경 열공에 못지않게 성지순례 공부도 일품으로 하신 것이다. 참으로 대단하시다.
각 자의 자리에서 보석처럼 빛을 내며 하느님을 공경하고 찬미하는 분들을 뵈며 신선한 충격과 함께 감동이고 큰 배움이다. 좋은 분들을 만나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하며 수도자인 나? 분발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