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12월 1일부터 구제회를 조직합니다. 해방 후 북한의 공산치하에서 피난 월남한 동포들과 일본 및 만주 등 국외에서 귀환하여 이재민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이재민들의 궁핍한 생활을 구제하기 위하여 ‘기한동포구제회’를 조직하고 교우들의 성연으로 주거의 알선과 의류 및 식량 보급에 역량을 총 집결 합니다.
대종교의 6.25 당시의 각 시교당에 보낸 전문을 보면 ,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6월 28일 수도 서울이 적도에게 함몰되고 대구, 부산을 제외한 남한 전역이 괴뢰도당의 도량하는 마계로 화하여 수다한 인명이 장해되고 재산은 약탈을 당하니 국민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사필귀정이오 정의는 승리하는 법이다.//
국군의 충용과 국제연합군의 반격으로 동년 9월 28일에는 수도 서울이 탈환 수복되고 이어 38선을 넘어 북진하니 패주하던 적도는 궤멸되고 적도 평양을 함락한 국군은 진격을 계속하여 한만국경에 도달함으로써 북한 전역을 석권하였다.
이에 단애 종사는 동년 10월 20일 국방부의 위촉으로 선무공작반을 조직하고 동 반원으로 북한 동-서 양도의 순교와 시교를 겸하게 하여 전시 민심을 수습하고 사상을 선도하며 숭령전, 단군 삼성사와 백두산 천지등 국조성적을 재건 또는 중수하고 진종대도를 보급케 하였으나 전국의 급전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치 못하고 폐하였으나 6.25 역사상 대교의 참전 의의는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1950년 10월 20일 국방부 정훈국의 요청에 의하여 대종교 총본사를 1호 사회단체로 등록하고 선무반을 등록합니다.
#표어 1. 우리 대한민국은 헌신적 노력으로 민국을 부흥하자. 2. 우리 국군과 연군의 공비소탕전에 진심 협력하자. 3. 유엔의 도의적 원조를 충심으로 사의를 표하자. 4. 전재민의 구호와 전란지의 복구에 진력 실행하자. 5. 강역적 정치통일보다 민족적 정신통일이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