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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산문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형산
[제185회 산행기]
월악산 靈峰을 올려다보며
서 동 익
안사람이 지방 출장중이라 도시락밥을 지을 쌀을 씻어 압력 밥솥에 앉혀놓고 돌아서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오래도록 형님으로 모셔온 L 씨다. 지나가는 걸음에 혹시나 하고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집에 있으니 반갑다며 무조건 나오란다. 소주나 한 잔 하자면서.
내일 인산문학회 회원님들과 같이 제천 월악산에 가야하기 때문에 오늘 술을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을 못해 어쩔 수 없이 형님과 같이 자정이 넘도록 소주 3병을 비우고 들어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긴장해서 그런지 새벽 4시쯤 요기가 느껴져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사람 대신 도시락도 싸야 하는데 다시 잠이 들어버리면 낭패다 싶어 찌뿌둥한 몸을 억지로 가누며 소변부터 보았다.
용변 후 맑은 공기를 한참 마시고 들어와도 입안에선 계속 술 냄새가 난다. 술 냄새와 찌뿌둥한 몸 컨디션을 가누기 위해 샤워를 하고 나와 압력밥솥에 불을 댕기는데 딸아이가 눈을 비비며 부엌 방으로 들어온다. 엄마가 지방 출장 중이므로 자신이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 산행 도시락을 싸주겠다고 휴대폰 모닝콜을 다섯 시에 맞춰놓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부리나케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오는데 아버지가 그새 일어나 밥을 짓고 등산 가방을 챙기는 모습이 놀랍다는 표정이다.
"어젯밤에 술 잡숫고 들어오시는 것 같던데 그런 몸으로 산에 가실 수 있겠어요?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니에요?"
"월악산은 옛날 한번 갔다온 산이니까 올라가다가 정 힘들면 나는 중간에서 쉬고 산행부장 보고 정상까지 다녀오라지 뭐."
딸아이는 그사이 도시락 반찬통에다 배추김치와 무채김치 그리고 깻잎장아찌와 새우젓을 조금 들어내어 국물이 흐르지 않도록 비닐 봉지에 넣어 야무지게 묶어 넣어준다. 김 두 봉지와 함께. 그리고는 전날 밤에 삶아놓은 돼지고기 살코기 한 덩이를 꺼내 도마 위에 올려놓고 얇게 저며 조그마한 도시락 반찬 통에 별도로 담아준다.
딸아이가 정성스럽게 싸준 도시락을 받아 등산배낭에 넣고 보니 임동숙 총무가 좋아하는 커피를 빠뜨렸다. 커피포트로 물을 끓여 보온통에다 부은 다음 커피와 설탕을 몇 술 떠 넣어 뚜껑을 닫은 후 시계를 보니까 06시다. 딸아이와 아들아이한테 "엄마도 없는데 집안 잘 챙겨라" 하고 일러놓고 534번 마을버스를 타고 신세계 백화점 옆 고속버스터미널로 나갔다. 조성범 산행부장이 먼저 와서 기다리다 반가운 얼굴로 다가온다.
산행부장을 따라 터미널 대합실로 들어서니까 김재덕 선생님과 임동숙 총무가 아들 윤정웅 군과 같이 먼저 와 있다. 반가운 마음으로 윤정웅 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는데 김재덕 선생님이 학교 후배 되시는 이 사장님 소식을 전해주며 오늘 부부간에 같이 월악산 산행에 동참하려고 했는데 부인되시는 분이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 이동현 사장님만 혼자 나왔다며 소개를 시켜주신다.
우리는 선 채로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한 뒤 악수를 했다. 그때 9월에 입회한 김문호 씨가 다가온다. 3일 전인 10월 2일 오후에 터미널에 나와 미리 어른 7명, 초등학생 1명 등 총 8장의 버스표를 예매해 두었는데 오늘도 한 명의 결석자가 생겨 또 위약금을 물면서 버스표 한 장을 반환해야만 한다. 나는 인산문학회의 이런 조직력을 안타까워하며 임동숙 총무한테 결석 회원님의 버스표를 반납하라고 미리 사놓았던 버스표 8장을 넘겨주고 승차를 해야 할 충주행 버스 플랫폼을 확인하러 대합실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고 내 몸뚱이 모양 무거워 보인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등산 가방을 메고 친한 사람 몇몇이 모여 산행을 떠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이 산행을 위하여 회장, 산행부장, 총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가? 산행을 해야 할 현지와 몇 차례 연락하여 산행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카페에 올려 전체 회원들에게 공시하고, 또 산행부장과 총무가 산에 가실 분은 미리 연락을 주셔야만 실수 없이 버스표를 예매할 수 있다고 이메일을 보내고........
그렇게 두어 차례씩 연락 후에 산행 참여 여부 답장을 받아 버스표를 예매했는데도 산행 날 아침에는 꼭 한두 명이 불과 2-3일 사이에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결석자가 생기고 그로 인해 번번이 위약금을 물면서 버스표를 반환해야 하는 이 단체 일부 성원들의 느슨한 모습이 도무지 내 생활 패턴과는 맞지 않고 피로하다. 그리고 그 바쁜 시간을 쪼개어 봉사하는 간부들 보기에 민망하다. 회장이란 자가 얼마나 부덕하면 회원들이 그렇게 결속력도 없고 자기 입으로 약속한 말을 그렇게 쉽게 번복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심한 자괴감까지 밀려온다.
산행을 마칠 때까지 비는 오지 말아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충주행 시외버스가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일행 7명은 버스표를 한 장씩 내밀어 검사를 맡은 뒤 승차했다. 충주행 직행버스는 07시 25분이 되자 어김없이 인천버스터미널을 출발했다.
얼마 후 버스는 군자톨게이트를 거쳐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일요일인데도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충주행 직행버스는 거침없이 달렸다. 08시 25분경 <이천 IC>를 빠져나가 35분경에 <가남정류소>, 50분경에 <장호원정류소> 등을 거쳐 09시 35분에 충주공용버스터미널에 일행 7명을 무사히 내려준다.
예정시간보다 50분이나 앞당겨 도착시켜 준 것이다. 우리는 해장국을 잘하는 공용터미널 대합실 식당가로 가서 따로국밥, 올갱이해장국, 돈까스 정식을 주문해 조반을 마친 뒤 월악산 등산의 시발점인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동창교매표소>까지 떠날 채비를 했다.
전화상으로는 송계리까지 들어가는데 3만 원은 주어야 택시 대절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택시기사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흥정을 하니까 25,000원까지 내려간다. 우리는 개인택시 두 대를 대절해 10시 10분경 송계리 동창교매표소로 향했다. 택시는 울긋불긋 가을이 익는 남한강변을 달려 10시 40분경에 동창교매표소 앞에 내려준다.
옛날 K 선생과 왔을 때는 매표를 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요사이는 입장료를 받지 않으니까 매표소 자체가 없다. 그냥 조그마한 다리 난간 기둥에 동창교(東窓橋)라고 새겨놓은 음각의 글씨가 옛날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는 택시비를 대당 5천 원씩 에누리한 돈으로 2,000원씩 주고 월악산 등산 기념 손수건을 단체로 구입해 목에 하나씩 걸고 10시 50분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월악산은 2001년 10월 인산문학회 제103회 산행계획표에 등산계획이 세워져 있었던 산이다. 그러나 그 날 갑자기 무슨 사정이 생겨 집행부가 출발 직전 관악산으로 산행계획을 변경해버린 통에 인산 회원들은 어쩔 수 없이 월악산 등산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게 산행 계획이 갑자기 변경되어버려, 후일 나는 인천문협 4인조 산행 팀들과 같이 월악산을 다녀온 터라 이번 산행이 초행은 아니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월악산은 만만한 산이 아니다. 옛날에는 동창교매표소 코스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계단식으로 정비가 되지 않아 올라가는 길이 너무나 가파르고 험악해 대다수 등산객들은 덕주사 코스를 이용해 영봉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덕주사 코스는 마애불까지는 그런대로 수월하게 올라가지만 마애불부터 960고지까지, 그리고 960고지에서 정산인 영봉까지 올라가는 코스가 무척 가파르고 위험한 험로가 많아 올라가는데만 장장 5시간 넘게 산행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런 기억 때문에 힘들었던 코스는 가능하면 내려오는 코스로 잡고 좀 가파르긴 해도 계단 정비가 비교적 잘되어 단 시간에 올라갈 수 있다는 동창교 코스로 등산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술에 찌든 내 몸뚱이가 인산 회원님들에게 짐이 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월악산에 관한 책을 한 권 내기 위해 카메라로 올라가는 코스와 내려오는 코스에 서 있는 이정표를 일일이 촬영하면서 등산을 하려니까 정상을 향해 빨리 올라가려는 분들의 산행을 망칠 것 같아 먼저 올라가라고 했다. 그리고는 뒤에서 카메라로 등산로 곳곳을 스케치하면서 송계삼거리-신륵사삼거리-보덕암삼거리를 거쳐 해발 1,057미터 지점까지 올라갔다.
그때 먼저 1,097미터 정상까지 올라가신 김재덕 선생님과 이동현 사장님, 그리고 임동숙 총무와 조성범 산행부장, 김문호 씨가 영봉에서 기념촬영까지 하고 내려오고 있었다. 사람이 많지 않고 지치지 않았으면 한 10분이면 올라갈 수 있는 거리지만 정상은 옛날에 와서 찍어놓은 사진도 있고 해서 평평한 나무 밑에 자리를 만들어 14시경에 오찬 도시락을 풀었다.
내가 싸온 백반도시락, 임동숙 총무가 싸온 김밥도시락, 김문호 씨가 싸온 유부초밥도시락과 과일과 맥주, 김재덕 선생님과 이동현 사장님이 싸온 칡술과 김밥도시락, 조성범 산행부장이 싸온 연잎술과 막걸리, 그리고 포항에서 온 어느 산행팀 여인이 준 참소주 반병 등이 펼쳐진 오찬 식단은 그 많은 땀과 숨이 넘어갈 듯한 가쁜 숨을 참으면서 올라온 산행의 노독을 말끔히 씻어주면서 또 새로운 분위기로 하산코스를 산행할 수 있게 힘을 충전시켜 주는 듯했다.
나는 김재덕 선생님과 산행부장이 따뤄주는 술을 받아 마시면서 잠시 월악산 영봉을 바라보았다. 문득 예순에 이승을 떠나신 선친의 얼굴이 떠오르며 선친보다 한 해 더 살게 해주신 신께 이 달디단 술 한 잔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끓어올랐다. 산신제나 기후제를 올리는 예날 선조들의 심정도 이러했을까? 이제는 아무리 바쁘고 피할 수 없는 자리라 해도 생활을 좀더 맑고 단순하게 꾸려나가면서 절제된 생활로 하루하루를 마감해 보고 싶은 생각이 불같이 끓어올랐다. 그리고 회갑의 나이가 넘도록 먹고 싶은 것 다 먹도록 해주시고 가고 싶은 곳 다 가게 해주시면서 아직도 좀더 일할 수 있는 건강까지 챙겨주신 신의 가호가 그렇게 뜨겁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복된 오찬을 마친 뒤, 우리는 15시 10분경에 덕주사 코스로 하산을 시작했다. 이 코스는 올라갈 때는 옹골지게 다섯 시간 이상의 산행시간을 요구하는 코스인데 마애불까지 약 2킬로미터 구간은 워낙 절벽을 타는 듯한 깎아지른 계단과 험로가 많아 내려갈 때도 3시간 이상을 소요하는 코스이다.
그러나 계단에 매달려 내려오는 듯한 험로의 계단 난간에서 내려다보는 능선의 스카이라인과 불뚝불뚝 치솟은 암릉의 용렬함, 그리고 조물주만이 만들 수 있는 자연의 기기묘묘한 절경은 자신도 모르게 산아래 계곡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불러올 만큼 잠시도 절경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암릉 구간이 많다.
대부분의 산들은 하산코스에서는 등산객들에게 새삼스럽게 식은땀을 흘리게 하지는 않는다. 내 경험으로는 설악산 <공용능선>이 내려갈 때도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면서 많은 땀을 흘리게 하지만 그 외 산들은 대개가 그냥 그렇게 편안히 내려오게 만든다. 그러나 월악산 덕주사 코스는 내려올 때도 사람의 혼을 빼면서 연방 식은땀을 줄줄 흐르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땀을 흘리며 내려온 구간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게 만들면서 또 월악산을 찾게 만드는 코스가 바로 월악산 덕주사 코스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렇게 짜릿하고 사지로 난간을 잡고 곡예를 하듯 산이 주는 환희와 고통을 함께 느끼며 하산해 18시 20분경 덕주사 입구에서 이만치 떨어져 있는 <월악산장>에 도착했다. 월악산장은 이 지방의 토속음식을 맛깔스럽게 만들어 주는 이름난 맛집 이름이다.
충주 공용버스터미널에서 인천으로 떠나는 마지막 버스가 19시 40분에 있는데 오전에 예약해 놓은 그 대절택시를 다시 불러 택시로 달려간다 해도 나갈 때는 차들이 도로에서 정체하는 시간이 있어서 좀 편히 앉아서 저녁을 먹을 시간이 없었다. 지난번 광주 무등산 등산 때도 마지막 버스 시간에 쫓겨 20분만에 저녁 식사를 마쳐야 했는데 이번에도 그 모양이다. 우리는 계획대로 방에 들어가 편안히 다리를 펴고 식사를 할 시간이 없어서 덕주계곡 옆에 차려놓은 야외식탁에 앉아 맥주 다섯 병과 막걸리 한 도가지, 그리고 도토리묵무침 한 접시와 두부 김치 한 접시를 시켜 목마름만 달랜 채 시간 맞춰 도착한 택시에 몸을 싣고 충주 공용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충주로 나가는 길이 많이 막히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597번 도로는 막히지 않았다. 게다가 택시 기사가 능숙하게 차를 잘 몰아주어서 우리는 무사히 19시 20분경에 충주공용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이제는 인천으로 돌아가는 걱정까지 놓아도 된다. 참으로 개운하고 기분 좋은 여행이다.
우리는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용변도 보고 옷매무새도 고치면서 플랫폼으로 나가 인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도로가 막히지 않고, 버스가 예정 시간인 22시에 인천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주었으면 우동 한 그릇을 먹더라도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기로 하고 <월악산장>에서 막걸리와 맥주로 갈증만 달랬는데 영동고속도로가 이 외로 많이 막혔다. 그 통에 버스운전기사가 지혜롭게 막히는 구간마다 일반 국도로 빠져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고, 막히지 않는 구간은 구름에 달 가듯 고속으로 버스를 빨리 몰아주어도 시외버스는 도착 예정시간보다 30분 늦게 인천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같이 마주 앉아 저녁을 먹고 헤어지고 싶었지만 너무 늦어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조금은 출출하고 섭섭했지만 다음 산행을 기대하면서 이별의 악수를 나누었다. 다음 11월 내장산 산행 때 서울 용산역 KTX 대합실에서 08시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