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BC8세기부터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의 멸망인 1400년대까지 지속되어온 세계사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갖는 국가였습니다.
이러한 긴 역사 때문에 로마의 정치제도는 변화를 겪어야했습니다.
초기는 전설적 왕정기, 이후 공화정, 그리고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를 거쳐
제정기로 나뉩니다.
왕정기는 말 그대로 왕이 로마를 다스리던 시대였습니다. 왕정을 채택한 국가가 모두 그렇듯 로마 또한 왕은 군사, 정치, 제사의 여러 권능을 집중시켜 절대적이며 무제한적인 강력한 권한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원로원, 민회가 이것을 제약하여 동양의 중국의 왕권처럼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왕정기의 로마는 기본적으로 통치자 왕을 중심으로 하는 한편, 왕에게 여러 조언을 하는 식의 활동을 하는 원로원과 시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민회가 공존하는 형태였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시민은 파트리키, 플레브스로 나뉘었는데 이것이 어떻게 나뉘었는지는 정확히 알수없습니다. 아무튼 간에 파트리키들이 왕정을 몰락시키고 공화제를 수립하는데 그 중심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왕정 몰락 직후에는 로마가 공화정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였습니다. 왕이 갖고 있는 절대적 명령권을 갖는 자를 민회에서 뽑아 그 정원을 복수로 하여 서로 간섭, 견제하도록 하고, 또 임기도 1년으로 한정하여 독재자의 출현을 막는 등 명령권의 운용에 대한 제한체계가 공화제의 조직으로서 완성시켜나가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나서 로마는 공화정이 자리잡습니다. 공화정 초기에는 신분투쟁이 극심했는데 이유인즉 공화정을 수립한 파트리키와는달리 플레브스의 참정권은 보장되지 못했기 때문인죠. 이러한 가운데 플레브스층은 '12표법'을 공개하게 하여 법적 지식을 고위귀족들만 독점할수 없게하였고 리키니우스 섹스티우스법 제정이후에는 플레브스 또한 참정권이 확대되어 '집정관'(앞서 말하느 왕정시대 명령권을 제한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까지 역임할수 있게되죠.
그러나 기본적으로 로마의 고위관직은 소수가문에게 독점되었고 따라서 로마의 공화제는 부유층의 지배라고 볼수있었습니다.(평민층을 대변하는 민회가 결정기구였으나 고위관직을 독점하는 소수가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원로원이 실질적으로 민회를 이끌어 나갔기 때문입니다.)
이후 수백년간 로마는 공화정을 유지해나갑니다. 유능한 집정관도 배출되었고, 평민층과 귀족층의 신분대립도 여러차례 있었으나 로마 특유의 화합력으로 잘 극복해나갑니다. 이탈리아 통일이후에는 지중해 패권을 두고 북아프리카에 자리한 카르타고와 3차례의 전쟁을 승리로 장식하고 이 과정에서 전공을 세운 몇몇 인물들이 사병을 보유하여 로마 내란의 불씨를 만듭니다.
1차 내란은 술라와 마리우스의 대립, 2차내란은 그 유명한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대립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정의 기초였던 1,2차 삼두정치가 등장하고.. 카이사르사망이후 그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가 천천히...그리고확실히....로마를 제정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런데 사실 이 과정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이제부터 로마는 제정국가다'라고 선포한것은 아니었습니다. 옥타비아누스가 내란을 종식시키고 카이사르가 부분적으로 제정으로 돌렸던 것을 공화국으로 다시 바꾸자 원로원은 옥타비아누스를 강력지지하고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붙여줍니다. 명예가 따르자 자연히 권력이 따랐고 ....그 권력은 기존의 집정관은 물론, 이전의 왕정시대 때의 왕보다 강력했습니다. 후계자 세습은 자신의 양아버지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문의 티베리우스를 임명...이 때부터 본격적인 제정시대가 확립됩니다.
(사실, 로마의 공화정의 발전과 붕괴는 상당히 긴 이야기를 요하므로 생략했습니다.
로마 수백년의 역사를 이곳에 담기란 쉬운일이 아니죠^^)
제정시대 로마의 정치제도는 말그대로 황제가 중심이 되었습니다.(물론 , 이때에도 호민관제도나 원로원은 존재했습니다. ) 황제는 호민관 직권, 프로콘술 명령권, 콘술 명령권 등 공화제적 관직에 부수하는 권한을 종신토록 보유하고 전제국의 약 절반에 달하는 속주의 통치권을 장악하였죠. 즉, 기존의 공화정 시기 민회, 원로원, 집정관에게 분할되어있던 권력이 황제 개인에게 집중되었고, 임기 1년인 집정관과는 달리 종신이었죠. 이것이 공화정과 제정의 차이이며 제정 정치제도 이해의 핵심입니다.
이후 네로 황제까지 로마 제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고.. 5현제 시대가 도래... 제국은 확장되고 평화로워 '팍스로마나'라는 말이 탄생하게되었죠
그리고 나서... 군인황제 시대..등을 거치고 로마는 분열.... 게르만족 이동으로 서로마제국이 무너집니다. 동로마제국은 서로마제국보다 발전했기에 이후 1400년대 비잔틴제국이 무너질때까지 그 명맥을 유지합니다.
(한편, 서양 역사상 최대의 제국이었던 로마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중국'이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중국은 북쪽의 흉노를 걱정거리로 여기고 압박, 흉노는 이에 견디지 못하고 이동하며 훈족을 압박, 훈족은 다시 고트족을 압박, 이중 서고트족이 게르만족을 압박, 게르만족은 서로마제국으로 유입, ..마침내 게르만족 때문에 서로마제국 붕괴;;
억지인가요? ㅋ)
그러고보니 로마 제국의 역사를 써놓은 꼴이 되었군요.. 그래서 요약합니다.
로마의 정치제도는
왕정->공화정->제정을 그 기본틀로 합니다.
왕정은 잘 아실겁니다. 왕이 중심이 되어 정치를 행합니다. 다만, 우리가 알고있는 왕정과는 달리 원로원, 민회등에 의해 왕의 권한이 제한되었기에..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왕처럼 막강한 권한을 보유했던 것은 아닙니다.
공화정은 왕정 이후의 정치제도로서 2인의 집정관제도를 중심으로 합니다. 그리고 이들 2인의 집정관들을 보좌하는 원로원과.. 원로원, 집정관들의 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민회.. 공화정은 로마의 3개 정치제도중 권력 분립이 가장 잘 이루어져있던 제도입니다. .참고로 집정관의 임기는 1년이었고..재임은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공화정의 폐단을 직시한 카이사르(흔히들 말하는 시저)와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공화정은 서서히 붕괴하고 제정이 도래.. 제정도 잘 아시다시피 황제 1인에게 절대적 권력이 집중되어있던 정치제도입니다.
3개의 정치제도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통치자와 통치자를 보좌하는 원로원, 그리고 이들을 견제하던 평민집단 민회는 항상 존재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통치자의 권력의 크기를 보면 제정>왕정>공화정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