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morality (so called) has all the characters of a reaction; it is, in great part, a protest against Paganism.
(이른바) 기독교적 도덕률은 전적으로 반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대부분이 이교도의 신앙에 대한 반대이다.
Its ideal is negative rather than positive; passive rather than active; Innocence rather than Nobleness; Abstinence from Evil, rather than energetic Pursuit of Good: in its precepts (as has been well said) ‘thou shalt not’ predominates unduly over ‘thou shalt.’
그것의 이상은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이고 능동적이라기보다 수동적이며 고상함보다는 순진무구이며 선에 대한 정력적인 추구라기보다는 악의 자제이다. 그것의 규칙들에는 (잘 말해져 온 바와 같이) ‘~하지 말라’가 ‘~하라’가 과도하게 많다.
In its horror of sensuality, it made an idol of asceticism, which has been gradually compromised away into one of legality.
육체의 관능성에 대한 두려움에서 금욕주의라는 우상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점차 합법적인 것으로 절충되었다.
It holds out the hope of heaven and the threat of hell, as the appointed and appropriate motives to a virtuous life: in this falling far below the best of the ancients, and doing what lies in it to give to human morality an essentially selfish character, by disconnecting each man’s feelings of duty from the interests of his fellow-creatures, except so far as a self-interested inducement is offered to him for consulting them.
그것(=기독교 도덕률)은 하늘의 희망과 지옥의 위협을 덕 있는 삶의 약속된 적절한 동기로서 견지했다. 고대인들의 최고의 것들 훨씬 아래로 떨어져 거기에 놓인 것을 행하면서 자기 동료들을 고려할 때에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기적인 유인책이 그에게 제공되지 않는 한 자기 동료들의 이익으로부터 각 사람이 의무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단절시킴으로써 인간 도덕률에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성격을 주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대한 근본적인 사랑에서 그 사람을 도와주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가기 위해서 혹은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도와주고 관심을 가진다는 것.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에만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사람을 도와줌으로써 내가 천국에 가게 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그런 경우를 가리킨다.
It is essentially a doctrine of passive obedience; it inculcates submission to all authorities found established; who indeed are not to be actively obeyed when they command what religion forbids, but who are not to be resisted, far less rebelled against, for any amount of wrong to ourselves.
그것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순종의 교의이다. 그것은 모든 수립된 것으로 밝혀진 권위들에의 복종을 심어준다. 그리고 그들(=권위들)이 종교가 금하는 것을 명령할 때 정말로 능동적으로 복종을 받지 않게 되어 있지만 그들(=권위들)은 우리 자신들에게 있는 많은 해로움 때문에는 저항을 받지 않고 훨씬 덜 반대를 당하게 되어 있다.
이 종교적인 권위자들이 그 종교가 금하는 것을 명령할 때에는 복종하기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복종하지는 않고 마지못해 하는 식으로 복종한다. 나에게 해로움이 있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거나 저항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권위들에게 복종할 것을 주입 당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