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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손 안의 우주, 김석환의 세계 스크랩 서안에서 낙양까지1
김석환 추천 0 조회 27 07.07.05 14: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오늘은 바쁘다. 사는 일로 바쁘다면 보람찰 일이지만 노는 일로 무지하게 바쁜 날이라 나한테 좀 미안하다. 하지만 그래도 바쁘다.


별로 잘 안 우는 내 전화가 울렸다. 헛! 전화도 고마운데 목소리도 예쁜 여자다.

“저 산악회 총문데요 이번 주 산악회는 인원이 안 차서 산에 못 가고요 대신 회장님이 골프장에 가자는데요. 가실 수 있나요?”

아니 무슨 낮도깨비 같은 소리?


사실 북경 올 때 나는 10년 정도 된 내 낚은 골프채를 가지고 올 것인가 말 것인가를 가지고 무지하게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결국 테니스 라켓만 비행기에 싣고 날라 왔다. 막상 와보니 별로 골프 칠 형편이 아니어서 별 필요를 못 느끼고 지내다 어느 날 숙소 근처에 골프 연습장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연습이라도 할 겸 골프채를 수소문하니 마침 산악회 회원 중에 한 사람이 자기 회사 창고에 굴러다니는 것이 하나 있으니 갔다 주겠다하여 정작 산은 한번도 같이 안 간 분한테 골프채를 얻었다.


하지만 정작 그 골프채를 쓸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숙소 근처의 골프장에도 채를 마땅히 가지고 갈 형편이 못 되고 가서도 어찌 해야 할지 도통 모르는지라 망설이던 중에 이곳 핑구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여기는 북경 변두리 시골이라지만 인구가 50만은 되기에 테니스장은 물론 골프 연습장이 당연히 있으려니 했더니 웬걸 골프장은 물론이거니와 테니스장도 코배기도 안 보이는 그런 아주 시골 중에 상 시골이다.


그러다 보니 베란다에 골프채 혼자 ‘널널한’ 공간을 차지하고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상황인데 이번 주 일요일에 골프장에 가자니 골프채 잡아 본 지가 일년인지 얼마인지 기억에 없지만 나는 내심 “옳구나!” 했다.  허지만 겉으로는 약간 시큰둥한 어조로 “가지요. 뭐”했다.

하지만 대답처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새벽같이 나가야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골프가 끝나면 나는 곧바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북경서역으로 가야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일단 골프채는 ‘왕징’까지만 가지고 가면 회장님 차로 골프장까지 날라 줄 것이고 골프 치고 나서도 차에다 골프채를 놓아두면 된단다. 그리고 마침 회장님하고 통화를 하니 끝나는 시간이 빠듯하지만 어찌 해 보겠다.


그래서 오늘은 무지하게 바쁘다.

새벽에 일어나 국수를 대충 끓어 먹고 골프채를 챙기고 일주일 여행 짐을 배낭에 넣어서 짊어진 채 ‘똑똑이’(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핑구 시내 중심의  ‘세기 광장’ 앞의 버스 정류장에 가서 북경시내 외곽 ‘왕징’ 근처의 ‘따산즈’를 지나는 시외버스를 탔다. 일요일이고 이른 시간이라 비교적 빠른 시간인 한 시간 사십 분을 달려 따산즈에 도착해서 다시 똑똑이를 타고 매번 일요일 산에 갈 때 마다 일행과 만나는 왕징 ‘산치’ 빵 가게 앞에 도착하니 약속 시간보다 오히려 10분은 빨리 도착해서인지 아무도 없다.


조금 얼쩡거리니 일행이 나타난다. 짐을 싣고 회장님의, 거의 집체만한(중국서는 그렇다.) 차를 타고 외곽 어딘가를 달려 도착하니 거기가 올림픽 때 시범경기장으로 쓸 지도 모른다는 ‘경도’ 골프장이다. 북경에는 골프장이 없다는 말은 옛말, 아니 일년 전의 말이란다. 북경 근처의 골프장이 한 40개는 되고 지금도 계속 건설 중이란다. 중국은 무엇이든지 ‘요이 땡!’하고 맘만 먹으면 그냥 일사천리다. 뚝딱하면 수십 층짜리 아파트고 번쩍하면 개미만 얼쩡거리는 넓고 넓은 아스팔트가 융단 깔리 듯 깔리는 나라다. 세계에서 제일 빨리 대 단위 주거 공간을 지었다고 해서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내가 사는 분당 아파트 단지의 기록은 중국에 의해 벌써 깨졌거나 곧 깨질 거다. 그것도 무지한 차이로 말이다.


암튼 그렇더라도 우리가 간 그 골프장은 그리 금방 만들어 진 곳은 아니고 그래도 지어 진  지가 꽤 되는지 수목이 비교적 울창하고 당연히 필드의 상태도 좋다. 다행히 우리는 원래 시작하기로 한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그 때부터 ‘티업’을 했다. 골프는 완전히 앞뒤로 서너 팀을 비우게 하고 친다는 ‘전 모시기’골프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고 그냥 사방 군데 골프 치는 사람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밖에 없다.


오랜 만에 치는 골프치고는 비교적 잘 맞았다. 특히 드라이버가 감이 좋았다. 칠 때마다 ‘허리역구리’에 붙어 다리는 오른 팔꿈치 느낌이 좋았고 팔 뿌려 치는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아이언이나 특히 솟게임은 그만 못 했다. 마음 같아서는 한 달만 이리 치면 ‘물 싱글’ 정도는 무난히 달성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렁저렁 호락호락하지 않은 공치기를 마감하고 계산을 하는데 회장님의 무슨 특별한 회원권 덕분으로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하나마나한 계산이다. 이래저래 꿩 먹고 알 먹고다.


그러고 나서 나의 기차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두르는 회장님의 배려로 인해 다들 더운 날씨에 흘린 땀도 제대로 못 씻고 돌아오는 차에 불이 나게 올랐다. 내가 기차를 타야하는 ‘북경서역’은 ‘북경역’과는 달리 차가 움직이는 동선에서 많이 벗어 난 곳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역 앞까지 데려다 주시고 총무는 맥주 두병과 김밥까지 챙겨주면서 여행을 잘 갔다 오란다. 먼 이국에서 안 지도 얼마 안 되는 분들한테 이런 눈물겨운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평소 느끼기 힘든 삶의 기쁨이다.


복잡한 서역에 도착하니 내가 너무 빨리 도착한 탓에 이번 여행의 동반자 겸 길라잡이이신 어 선생이 안 보인다. 드디어 기차 떠나기 삽 십 분전에 이층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반가운  만남을 가진 후 말로만 듣던 ‘잉워’라는 침대칸 기차에 올랐다. 캠핑 여행을 하면서 유럽을 돈 내 눈에 그것은 기차가 아니고 그냥 움직이는 호텔이나 다름이 없다.


어디를 가나 더럽기만 한 중국의 모습과는 달리 막 새로 만든 것같이 깨끗하고 무엇보다 두꺼운 이불이 있어 에어컨의 찬바람을 막아주기에 부족함이 없는데다가 내가 좋아 하는 나지막하면서 넓적한 커다란 베개가 있는 것이 그렇다. 거기다 타자마자 기차표를 다시 기내표로 바꿔줘서 개개인에 대한 완벽한 관리와 함께 각 칸마다 전담 복무원이 따로 있어서 도난 방지나 사람 들락거림이나 청소나 그 모든 것을 확실히 관리 해 줌이 그렇다.


더군다나 내릴 때도 미리 깨워 준다니 이게 호텔이 아니고 무엇이 호텔이겠는가? 거기다 덤으로 창가에는 둘이 앉아서 노닥일 수 있는 접이식 의자와 조그만 탁자까지 있으니 흙바닥에서 자면서 여행을 한 지가 불과 몇 달 전인 나를 생각하면 호텔로는 크기만 좀 작다뿐이지 나무랄 데가 없다.


이 기차를 타고 우리는 서안까지 장장 열 두 시간 정도를 가야 한다.

우리가 누워야 할 침대는 한 칸 여섯 개 침대 중 양쪽 이·층이다. 가격은 일층이 제일 비싸고 삼층이 제일 싸다. 가격만큼 위가 불편하고 높이가 좁다. 일 층은 높이도 높고 앉을 수도 있고 탁자도 옆에 있어서 편리한 반면 아침 10부터 저녁 5시까지는 이층, 삼층 사람들한테도 엉덩이를 쉬도록 해야 한단다. 말하자면 일 층은 낮 시간은 공용인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층과 삼층은 높이가 낮아서 누워서 잠자는 것 말고는 다른 용도가 없다.


6시 45분 출발 기차니 아무리 호텔 같다지만 잠자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하루나 이틀이 걸린다는 우루무치까지 가는 일층 두 아줌마들과 짧은 중국말을 나누다 컵 라면을 끓여 먹고는 서안 민박집에 새벽에 도착해서 연락하겠다고 전화하고 나서 어 선생과 나는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당연히 귀마개로 중무장을 하고 이미 선반은 중국인들에게 차에 들어오기 전에 뺏긴 상태라 배낭을 머리맡에 구겨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헐레벌떡 새벽같이 나와서 뙤약볕에서 거의 6시간을 쇠 머리통이 달린 회초리를 휘두른 끝이라서인지 나는 금방 잠에 빠져 들었다. 자는 중에 기차가 가끔씩 덜커덩거리는 느낌과 갑자기 당기는 느낌이 몇 번 든 것 빼고는 역시 호텔에서와 다름없는 깊은 잠을 잔 후 눈을 떴다.


그래도 중국 와서 다행인 것이 먹는 것하고 자는 것이다. 어느 식당이고 그저 눈치껏 잘만 골라서 시키면 배불리 먹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잠자리는 특별히 바퀴벌레가 얼굴을 기어 다니지 않는 한 귀마개 덕분에 잠을 잘 자니 여간 다행이 아니다. 이상하게 중국에서 아직 바퀴벌레를 본 적이 없는 것이 신기하다. 아마 바퀴벌레도 중국에서 요리를 해 먹는 다고 하더니 모두 잡아먹어서 억년을 버틴 중국의 바퀴벌레 종이 아예 씨가 말라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 덕에 난 중국 생활의 반 이상은 거저로 먹고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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