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 18장 25-27절, 짧은 두절에 죽기까지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용감한 수제자 베드로는 두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님은 그렇게 될 것을 알고 계셨고 그렇게 비겁한 베드로를 사랑하시고 사탄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청구하였으나 내주지 않고, 돌이킨 후에 훌륭한 사도가 되기를 기도해 주셨고 베드로는 그렇게 되었다.
주님을 부인하고 제자에서 어부로 돌아간 허탈한 베드로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주님은 베드로가 얼마나 회개하고 주님을 사랑하는지를 벌써 다 아시고 찾아주시고 새 능력을 주시고 다시 제자 삼아 주셨다.
베드로의 그 잘못은 새벽닭이 울 때마다 주님의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는 말씀이 생각이 나고 주님께 죄송하고 자신을 겸손하게 하는 좋은 약이 되었다. 주님은 나라와 민족,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지 않으셨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다.
우리에게는 모두 주님을 부인한 새벽닭의 울음소리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참으로 부끄러운 죄가, 비밀이 있어서 애통하고 회개하게 된다.
독일에서는 십자가 대신에 닭을 높이 달아놓은 교회도 많다고 한다. 해 아래, 세상에 살면서 회개할 것이 없는 사람은 아직 주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리라. 천하의 미물 닭도 대 사도를 회개시키는 부흥사인데 나는 울어서 누구를 회개 시킬 수가 있을까? 미국은 새가 노래한다고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새가 운다고 표현한다.
내가 울거나(기도) 노래하거나(찬송) 그것으로 누군가를 회개시키라고 하신다. 부모의 안타까운 눈물은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자녀들을 구원하는 도구가 된다. 탕자 어거스틴을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가 성 어거스틴으로 만들었다.
하나님 앞에서 우는 사람은 도울 힘이 없는 사람 앞에서는 울지 않는다.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항복하고 의지하고 기도 하는 사람은 그 숨이 코에 있는 연약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으므로 실망하지도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