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11)
2011-04-18 13:47:29
제 339차 아차산, 용마산 정기산행기
1. 일시 : 2011. 4. 17(일)
2. 곳 :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광나루역 1번 출구, 10시 집결>
3. 참가 : 병효(대장), 은수, 문수, 길래, 택술, 상국, 경남, 병욱(8명)
4. 화창한 날씨에 온갖 꽃 만개.
토요일 오후 남산예술원. 40세, 좀 늦은 나이였지만 4월의 신부는 활짝 웃었다. 맑은 날씨, 상쾌한 공기, 만개한 벚꽃, 좋은 사람들과의 오랜만의 만남, 모든 게 즐거웠다.
저녁에 산우회 블로그 들여다보니, 아차산·용마산 산행, 광나루역 10시, 참가신청 인원이 몇 명 안 된다.
거리엔 벚꽃이 하루가 다르게 핀다. 이번 주가 절정인 모양이다. 꽃구경이나 갈까? 며칠 전부터 몸이 시원찮은 마나님, 이 좋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무 데도 못 가겠단다. 집 지키고 있을테니 아이들 집에 가든지, 산에 가든지, 그 어디든 다녀오란다.
처음 가본 광나루역, 9시 30분에 1착으로 닿았다. 1번 출구, 나가보니 온통 등산객들로 거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40분경 오늘의 산행대장 마루대사가 커피 한 잔 들고 나타난다.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반긴다. 이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한 친구들. 아니 저기 오는 건, 얼마 전에 퇴직하고 정말 간만에 나타난, 전교 1등 갱남이, 너무 반갑다. 집이 바로 이 근처란다. 출석점호를 해보니, 오고있다는 택술이 까지 총 8명. 마루대사, 넉넉한 인품의 산행대장 체면은 섰다.
10시 15분, 사람들에 떠밀려 골목길을 돌고돌아 산행을 시작한다.
백목련은 벌써 떨어지기 시작하고 화사한 벚꽃에, 연분홍 진달래, 노란 개나리, 세상은 온통 꽃대궐이다.
부산 살다가 처음 경기도 올라와 구리시에 근무할 때, ‘아차산’이란 지명을 보고 ‘그 참, 산 이름도 요상하다?’하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다.
‘아차산’ 이름 유래를 물었다가 권박한테 한 소리 듣는다. ‘역사샘이란 기 그것도 모리고.... 니, 알면서 물어보는 기제?’
안내판에 ‘아’도 그렇고 ‘차’도 그런 게, 결국 이 근처에서 우뚝 솟은 산이란 건데, 은수가 그 옛날 고구려의 유명한 점쟁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알고 있던 이야긴데 여기 아차산과 연관이 있었다는 것은 처음 듣는다. 해박하고 자상한 은수, 늘 고마운 친구다.
‘음... 그러니까 상자 속의 죽은 쥐, 그 뱃속에 있던 것까지 알아 맞혔던... 그 얘기가 여기 아차산과 관련있다는 거네?’
아차산, 완만한 경사를 이룬 바위가 참 크다. 11시, 산은 낮고, 시간은 많다. 잠깐 막걸리로 목이나 축이고 가자며 자리를 잡고 20여분간 노니닥 거린다.
권박은 오늘 새로 가져온 전주산 막걸리를 내놓고 성분 분석과 함께 일장의 훈시를 한다.
“에.... 막걸리란...(중략).... 가만, 조용히 들어보라니까. 그러니께... 자꾸... 새로운 걸 가 와서 맛을 보고 비교해 봐야... (중략)... 그냥 장수막걸리로 만족하지 말란 말이다!”
모두들, “아이고, 잘 알았심다. 그나저나 좀 더 부아주소.”
아차산에서 용마산, 다시 아차산으로 회귀하고, 2번째 헬기장에서 망우산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길에서 홍어냄새를 맡은 뱅욱이가 껄떡댄(?) 덕분에 길래랑 내까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서 홍어회를 실컷 얻어먹고 일행을 찾아가니 진달래가 만개한 전망 좋은 자리를 잡아두었다. 즐겁게 식사를 한다. 얼마 전에 구한 더덕주를 가져갔는데 은수도 3년 숙성시킨 강원도 더덕주를 가져왔다. 더덕주에 진달래꽃을 띄우고 운치있게 한잔 한다.
진달래에 얽힌 이야기가 새(鳥)에 관한 이야기, 소쩍새, 접동새, 자규... 길래가 이야기를 끌어간다. 전교 1등 갱남이 입이 벌어지고, “어, 내보다 더 공부 잘하는 아~가 있었나? 아인데...”
갑자기, 왼손목이, 뭐가 허전하다.
악! 시계가 없다.
시계줄에 좀 문제가 있어서 얼마 전 순간접착제로 임시 처방을 해 뒀는데 그게 헐거워져 나도 모르게 풀어져, 어디 길에다 흘린 모양이다. 싸구려 시계도 아니고, 어디다 흘렸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의리의 사나이 뱅욱이가 같이 찾으러 가보잔다. 알고 보니 뱅욱이 본심은, 아까 그 홍어회 많이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아직 그 자리에 있으면 더 얻어올 욕심인 게 밝혀졌지만, 크크.
지난 달엔 안경 잃어먹고 아직 못 찾았는데, 이번에 또 시계까지 잃어버리면, 집안 분위기 별로 좋을 것 없는데, 전에 새구두를 짝짝이 신고 와서 찾지 못한 것도 마누라 아직 안 잊어먹었는데.... 아, 망우산에 와서 왜 이리 근심이 많노?
시계 잃어버리고 기가 죽은 내가 불쌍해보였는지 갱남이랑 뱅욱이가 자기네 집에 가면 시계 많다고 각자 하나씩 내게 손목시계를 준다고 한다. 크, 역시 산에 오는 친구들은 다 좋은 친구들이다.
식사를 하고, 바쁠 것도 없이 느긋하게 긴 능선을 지나간다. 망우리 공동묘지다. 한국근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우리가 책에서 보고 들어 아는 분들이 제법 많이 누워계신다.
진보당사건으로 억울하게 사형을 받은 조봉암선생의 묘를 지나, 만해한용운선생의 묘에 들러 참배를 하고 좀 쉰다. 날은 좋고, 꽃은 피어있고, 살아있는 우리들은 떠들며 즐겁고, 고인들은 말이 없으시다. 망우리, 이름 참 좋다.
망우리 묘소, 긴 길이 끝나고 이제 속세로 들어선다. 다들 처음 와보는 동네, 그냥 들어간 고기집인데 밑반찬이 감동을 준다. 즐겁게 마시다가, 뭐하려 그랬는지 잘 생각도 안 나는데 배낭을 열었다. 배낭이 하도 작아 겉옷 하나 넣은 걸 빼고 나니 배낭 바닥이 보인다.
근데, 저게 뭐냐? 악! 배낭바닥에 낯익은 시계가 길게 누워있다.
시계를 집어들고 “시계 찾았다!” 고함지르는 나를 본 친구들, 다들 혀를 있는대로 차고 또 찬다.
정신과 의사인 권박이 엄포를 놓는다.
“상국아, 니는 완전 치매를 넘어선 기라. 내가 전화만 하몬 니는 바로 잡히 간다이~ 정신과 병동에 격리 대상이다!”
문수가 아까 산에서 사진기를 돌려보고 처음엔 시계를 차고 있다가 갑자기 없어진 것으로 판독했었는데, 내가 일부러 배낭에 시계를 풀어놓지는 않았을 거고, 친구들이 추리를 해낸다.
유난히 작은 배낭, 더덕주를 꺼내려고 왼손을 넣어 꼼지락거리다가 배낭속의 겉옷에 시계가 걸려 풀어진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아까 갱남이랑 뱅욱이가 내한테 시계 준다 했는데, 시계 찾았다는 말에 공짜 시계, 두 개나 날아 가버린 걸 억울해하며 서로 실컷 웃다가, 갑자기 산행대장 병효가 엄숙하게, 시계도 찾았으니 나더러 산행기 쓸 것을 명한다. 그 참, 세상 희한하게 돌아간다.
병효가 술값을 다 쏘아버려 회비는 당구장, 2차 호프, 또 당구장. 집에 가려는데 돈이 좀 남았다고 이걸 다 쓰고 가야한다며 길래가 잡아당긴다. 겨우 뿌리치고 문수 차를 얻어 타고 집에 들어오니 10시 반. 은수랑 길래, 소주 한잔 하고 헤어졌다는 연락이 온다. 꽃구경 겸한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즐거운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