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4.
고구마 모종 심는 날
잡초에 대한 두려움이 엄청나다. 파종을 앞두고 매번 누구나 다 검은색 비닐로 멀칭을 한다. 감자도 쌈채소도 이랑을 만들고 두둑에 비닐을 덮었다. 잡초를 막겠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덤으로 수분의 증발을 더디게 하는 목적도 있다. 물 주기할 때 바닥 흙이 튀는 것을 방지하고 그 흙에 포함된 세균이나 벌레의 피해도 막기 위함이라고 들었다.
“고랑에 부직포 깔 분들 손들어 주십시오.” 초등학생 발표하듯이 오른팔을 높이 번쩍 들었다. 검은색 비닐 멀칭은 두 번이나 해봤으니 호기심 많은 나로서는 당연히 부직포 작업이지. 사실은 잘 모른다. 고랑에 까는 부직포와 이랑을 덮는 비닐이 서로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전혀 모른다. 안 해본 작업을 선택한 것뿐인데 갑자기 두려워진다. 부직포를 선택한 쪽 인원수가 상대적으로 너무 적기 때문이다.
고구마 모종 한 묶음 받았다. 고구마 줄기에 5~6개 잎이 달린 싱싱한 모종이다. 멀칭을 선택한 사람들은 꼬질대를 이용해서 고구마 순을 이랑에 쑥 밀어 넣어버린다. 일이 아주 쉬워 보인다. 반면에 부직포를 선택한 몇몇은 이랑 윗부분을 흩어 고구마 모종을 누이는 방식으로 심는다. 30명가량의 교육생이 한 이랑씩 골라잡아서 순식간에 파종을 마쳤다. 허리가 아프다. 농사일은 노동이지 운동이 아니라는 말을 충분히 이해하겠다.
하일은 고향 동네의 별칭이다. 백부님께서 평생토록 땅을 일구며 살았고 조상 대대로 논과 밭에 의지해서 살은 땅이다. 서산으로 해 지는 저녁 무렵 대청마루에 앉거나 툇마루 아래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우면 하늘이 아름다웠다. 푸름이 아직 가시지 않은 옅은 회색 하늘에 둥근달이 걸리면 동화책 속에 들어앉은 착각을 했다. 서산 능선을 따라 붉은 노을이 걸리는 날은 신기한 자연 현상에 넋을 잃고 쳐다봤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고구마 소쿠리 정도는 되어야 눈을 뗄 수 있는 멋진 날이 자주 반복되었다.
수확은 언제나 풍요롭다. 고구마를 수확하는 날이다. 땅속에서 벌건 고구마가 보일라치면 먼저 주우려고 뛰어다녔다. 어린 나도 그랬고, 30년이 지나 내 아이들도 뛰어다니며 고구마를 주웠다.
고구마 모종 심기를 끝내고 나서 밭 옆길에 털퍼덕 주저앉는다. 고구마 모종 심기로 부산떠는 가운데 하루가 저물고 있다. 구례 형제봉 서쪽 언저리에 해가 걸렸다. 어릴 때 보던 하일 동네 야트막한 산으로 떨어지는 낙조와는 다르다. 그때는 어마어마하게 컸으며 지금처럼 저 멀리 있지 않았다. 또 대청마루에서 할머니 다리를 베고 누워 보는 게 아니라서 더 많이 다르다. 하지만 땅거미가 번지는 저녁 무렵은 늘 좋다. 호미질 한 번에 네댓 개씩 나오는 고구마를 기대하며 호미를 씻는다.
첫댓글 하일엔 나의 아버지 오빠의 백부가 없다 능선을 따라 붉게 노을이 물들면 허리펴고 실눈뜨고 자세히 봐봐
그기 계실거야 손은 흔들지말고 그냥 씩 미소지으면 좋아하실거야
미치겠다. 너도 수필대학 다녀야겠다. 모두 다 수필대학 등록하고 다 같이 배우자.
스토리가 막 만들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