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13릉 지하무덤
만리장성에서 다시 북경도심으로 들어와 정통 중국 요리점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명나라 200여 년에 걸친 13황제의 무덤이 있다는 명 13릉으로 이동했다. 팔달령 장성의 산기슭 들판의 평원에 있는 명대 13릉 입구 들어가는 길에 양쪽으로는 복숭아와 사과 과수원이 있다. 그런데 가로수 나무에게서 특이한 점을 보았다. 가로등을 세우지 않고 가로수 플라타나스 나무의 아랫부분에서 1m 정도까지 야광 흰물질을 발라 놓았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그 야광빛이 발하여 거리가 밝다는 것이다. 능 안의 잔디밭 울을 친 철조물에도 더러 그렇게 하얀 야광물질을 발라 놓은 것을 보았다. 전기를 아끼려는 목적이라면 나무의 희생이 너무 크다. 나무가 숨을 쉬지 못하는 피부껍질의 고통을 어찌할 것인가. 아무리 사람을 위한 것이라 해도, 행여 거리 풍경의 멋스러움을 위한 것이라 해도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가는 무덤은 명나라 13번째 만력 황제의 지하무덤으로 정릉이다. 정문인 대홍문을 들어서면 황제릉 앞에는 갑옷으로 무장한 12개의 석상과 사자, 낙타, 코끼리, 기린, 말, 등 동물석상이 늘어서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석상 장식물이 아니고 사후에도 황제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상징물이다. 북경에는 산이 많다. 1957년 홍수 때 비석이 떨어져 나와 그것을 보고 발견된 27m 지하궁전 무덤이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 묘는 난징(남경)에 있다. 그러나 이곳에 묻힌 13왕은 주원장의 후손들이다.
만력 황제는 22세에 즉위하여 48년 간 그 누구보다도 재위기간이 긴 황제다. 그는 황제로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정치에는 뜻이 없고 주색으로 세월을 보냈고 자신의 묘인 정릉을 만드는데만 열중했다. 그래서 중국에는 2개의 무자無字 흰비석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명나라 만력제 무자 흰비석이다. 또 하나는 아들을 몰아내고 황제에 오른 당나라 여황제 측천무후다. 측천무후와 만력제는 중국의 불명예스런 하얀 비석을 남긴 것이다. 높다란 만력제의 무자 흰비석이 부끄러운 혼으로 서 있다. 앞 뒤 그 어느 곳에도 글씨가 없다. 기록할만한 행적이 없어 이렇게 하얀 무자로 비석을 세운 것이라니 우리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역사의 산물이다.

명대 13릉 중 만력제 능 무비.48년 재위 중 한일이 하나도 없어 글씨가 없는 무비
이곳 만력황제 묘 정릉은 즉위 중 6년의 세월과 국비 2년분의 투자로 생시에 자기 무덤을 준비했다. 그 또한 부끄러운 역사다. 백성의 삶을 돌보아야할 황제가 사후의 개인 집을 짓느라 백성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무덤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큰 공원을 돌아 지하 계단으로 몇 층을 내려가니 대리석 궁전이 있다. 몇 칸의 방을 거치며 잘 보존되어 있는 붉은 휘장의 관도 만나고, 당시의 문화를 드러내며 전시된 도자기와 향로도 보았다. 그래도 유일하게 두 왕비와 합장한 무덤이다. 만력제는 본처와 후처가 있는데 그의 손자 효정과 효단이 두분 조모의 시신을 이곳으로 옮겨와 합장으로 모셨다. 지하무덤 끝부분의 삼각진 지붕문에 직사각형 조각의 대리석이 양쪽으로 박혀 있는데 그것을 빼어내면 나머지 12릉의 위치도 찾을 수 있다 한다. 이 능도 이곳에서 돌판 하나가 홍수에 빠져나와 지금의 지하무덤 위치가 적힌 것을 보고 찾아냈다. 홍수에 쓸려 내려온 도로의 아치형 굴문을 역사적 현장으로 보존하고 있다.
나머지 12개의 능은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 발굴 하다가 파손될까봐 손을 대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후손을 위해서라고 한다. 한번에 문화유산을 다 발굴하면 후손은 무엇을 먹고 살겠느냐는 안내원의 말에 놀랐다. 하얀 무비 앞에서 속살을 키우는 나라임을 보았다.

명대 13릉 중에서 우리가 들른 만력제 능. 관람 후 문인들 기념사진.명 13릉 정원에서

















북경 명 13릉 지하무덤-재등록(2017년 8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