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卽)하다’의 용법>
나비가 꽃에 즉해 있다.
불교 공부를 하다가 보면, ‘즉(卽)하다’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용법도 다양해서 주로 부사로 쓰이지만
때로는 형용사. 명사. 접속사 등으로 쓰일 때도 있고,
더러 동사로 쓰일 때도 있다.
그런 복잡한 쓰임을 대충 정리해봤다.
당나라시대 대주 혜해(大珠慧海) 선사의 저서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즉색즉공(卽色卽空)하고 즉범즉성(卽凡卽聖)이 시돈오부(是頓悟否)아
―색에 즉하고 공에 즉하며, 범부에 즉하고 성인에 즉함이 돈오입니까?”
여기서 ‘즉(卽)하다’라는 말은 (다른 게 아니라) 곧, 바로 그것,
그러할 때는, 하나가 돼 있음, … 그런 뜻이다.
따라서 윗글의 의미는, “색 그대로이면서 공이고,
(다른 게 아니라)바로 범부이면서 곧 성인이면,
이게 크게 깨친 사람들의 일입니까?” 그렇게 된다.
이외에 많은 쓰임이 있으니, 실제 쓰임에 따라
그 의미가 아래와 같이 다양하다.
곧, 곧 바로, (다른 게 아니라) 곧,
이제, 당장, 지금,
그대로, 그것 그대로,
그러할 때는, 그렇게 될 때는,
서로 딱 들어맞다. ~과 하나가 된 상태.
바로 그것, 바로 그것이 더 말할 나위 없이
어떤 사실에 의거하다.
가깝다, 가까이 하다. 이와 같다.
대체로 이런 의미들인데,
더러 앞에서 뒤에 오는 낱말의 의미를 제한하거나 강조하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즉(卽)’이 접속사일 때는 인과관계라기보다는
지금, 가깝다, 이와 같다 등의 뜻을 가지는 글자로
앞에서 말한 것을 반복하거나 풀이해서 설명해야할 필요가 있는
표현에 쓰인다. 이와 같이 그 의미나 용법이 다양하다.
그 실제를 검토해 보자.
① 두 가지가 하나로 융합하는 ‘즉(卽)’은 물과 물결처럼
한 물건의 체(體) 그대로가 다른 물건인 뜻으로 말하는 ‘즉’이다.
두 현상이 있는 그 자체로 완전히 같은 관계 등을 나타낸다.
• 예컨대, “즉생즉공(卽色卽空)”의 경우,
색에 즉하고 공에 즉하다는 말인데, 뜻은 “색 그대로 공”이란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 ‘즉(卽)’은 ‘그대로’란 뜻이다.
•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에서
‘즉(卽)’. 가령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고 물질이 변해
에너지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물이 곧 얼음이고 물질이 곧 에너지임을 설명하거나 증명하는 것이다.
이럴 때 ‘즉(卽)’ 역시 ‘그대로’라는 뜻이다. 따라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색 그대로 공이고, 공 그대로 색이란 뜻이다.
이와 같이 ‘즉하다’라는 말은 서로 다른 두 현상이 실제로는
불이(不二)ㆍ불리(不離)의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는 말,
곧 다른 두 현상이지만 서로 뗄 수 없는 관계, 모습은 다르지만
본질이 같은 관계, 즉 두 현상이 있는 그 자체로
완전히 같은 관계 등을 나타낸다.
‘색즉시공(色卽是空)’에서 ‘색(色)’이란 모양을 뜻하며, 곧 차별을 뜻한다.
‘즉(卽)’은 떨어지지 않음(不離)을 의미하고, ‘공(空)’은 변치 않음을 말한다.
부언하면 차별이 있는 것, 곧 가지가지로 변해가는 것을 떠나지 않고,
그 가운데를 일관해 있는 변치 않는 이치를 추구한다는 것이
곧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색은 유한한 무엇인가를 말하고,
공은 무한한 무엇인가를 일컫는다.
• “심즉불(心卽佛)”은 “마음(心)이 부처(佛)에 즉하다”란 말로서,
마음이 곧 부처란 뜻이다.
따라서 여기서 ‘즉(卽)’ 역시 ‘곧 그대로’란 뜻이다.
• “즉심즉불(卽心卽佛)”의 경우,
마음(心)에 즉하고 부처(佛)에 즉하다는 말이다.
뜻은 “마음이 곧 부처”란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 ‘즉(卽)’은 ‘곧’이란 뜻이다.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이다.” 그런 뜻이다.
• “경전에 즉한다”라고 하면 경전에 푹 빠져든다는 뜻이다.
그 경전 안으로 들어가서 그 경전에 정신을 맡기고 그에 매몰된다는 말이다.
이럴 때 ‘즉(卽)’이라고 하면 행하는 사람이 그 대상에 매몰돼 있는 것이다. ‘~과 하나가 된 상태’를 말한다.
•「“자기 진면목을 보는 것이 불법의 요체이다.
법을 말하는 사람은 법을 듣는 사람에게 즉(卽)해 있다.”
여기서 ‘즉한다’는 것은 법을 설하는 사람이 법을 듣는 사람의
가슴 속에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불법은 법을 전하고 법을 듣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말 그대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법을 설하는 사람이 따로 없으니. 설법이라고 할 만한 것도 따로 없다.」-
지리산 상무주암 현기 스님 법문에서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는
봄바람이 의구하게 부니 풀뿌리 속잎이 맹동하며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른다고 노래한다.
그런가하면 보습쟁기 차려놓고 논과 밭을 갈리라며 농사를 이야기한다.
하나의 가사 속에 아름다운 서정(抒情)이 흐르고
시간에 즉(卽)해 사는 삶을 분명하게 읊고 있다.」
- 홍성란 수필 <시간의 흐름을 안다는 것>에서,
여기서 ‘즉’은 ‘때맞추어’ 혹은 ‘서로 딱 들어맞다’ 그런 뜻이다.
• 「참선을 하면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머릿속에서 지나간 일이나 잡된 생각은 모두 지우고
오직 현재만을 생각하는 훈련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 ‘즉(卽)한다’고 한다.」
이 경우도 ‘~과 하나가 된 상태’를 말한다.
•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행위가 일어나고 말이 나올 때,
그것에 즉(卽)하면 밝지만, 거기에 의미와 이미지를 부여해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발동하면 어둠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 경우 역시 ‘~과 하나가 된 상태’를 말한다.
• 배휴(裴休)가 물었다.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데, 어느 마음이 부처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에 대사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몇 개의 마음을 가졌느냐?”
“그렇다면 범부에 즉(卽)한 마음이 부처입니까?
아니면 성인에 즉(卽)한 마음이 부처입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어느 곳에 범ㆍ성의 마음이 따로 있더냐.”
여기서는 ‘서로 딱 들어맞다’ 그런 뜻으로 쓰였다.
• 「전통교학의 입장은 <화엄경>의 진여연기론(眞如緣起論)에
그 바탕을 두고 있으나 아뢰야식연기론(阿賴耶識緣起論)은
진여를 본체로 보는 점은 같으나, 그 진여에 즉(卽)하지 않은
가유(假有)의 세계를 인정하는 점이 상이하다.
이와 같은 사상경향은 의상(義湘)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는 ‘서로 딱 들어맞다’ 혹은 ‘그렇게 될 때는’ 그런 뜻으로 쓰였다.
② ‘즉(卽)’이 다음에 오는 글자를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즉, 앞에서 뒤에 오는 낱말의 의미를 제한하거나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즉사(卽死), 즉시(卽時), 즉각(卽刻), 즉견(卽見),
즉문즉설(卽問卽說), 즉위(卽位), 즉효(卽效), 즉흥(卽興),
즉행(卽行), 즉결(卽決) 등의 말이 있다.
이때는 주로 ‘곧, 곧바로, 당장’ 그런 의미로 쓰였다.
• 움직임 그 자체의 원문은 '즉동(卽動)'이고,
미혹함 그 자체는 '즉미(卽迷)'이다.
여기서 '즉(卽)'은 뒤에 오는 글자 그 자체를 강조하는 용법이다.
• 대주 혜해(大珠慧海) 선사의 대답이 “심유염(心有染)이 즉색(卽色)이요,
심무염(心無染)이 즉공(卽空)이다.”라고 했다.
“마음에 물듦이 곧 색이고, 마음에 물듦이 없는 것이 곧 공이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즉(卽)’은 다음에 오는 색과 공을 강조하고 있다.
• “즉신성불(卽身成佛)” - 여기서 ‘’즉(卽)‘자는
‘바로 그’ ‘곧’ 하는 뜻을 나타낸다.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 몸 자체가 부처가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여기서도 ‘즉(卽)’은 다음에 오는 글자 신(身-몸)을 강조하고 있다.
• 마찬가지로 “즉심시불(卽心是佛)”은 '마음 그 자체가 바로 부처'라는 뜻이다.
여기서 ‘즉(卽)’이 다음에 오는 글자 심(心-마음)을 강조하고 있다.
③ 서로 다른 두 현상 간의 시간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말.
• 예를 들면, 빛이 들어오자마자 어둠이 가듯이
시간의 간격이 없는 관계를 동시즉(同時卽)이라 한다.
이에 비해 씨앗을 뿌리면 이윽고 싹이 트듯이
시간의 간격이 있는 관계를 이시즉(異時卽)이라 한다.
‘즉해 있다’는 것은 동시즉(同時卽)을 말한다.
따라서 찰라간의 간격만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즉해 있는 것이 아니다.
④ ‘즉(卽)한다’란 말이 “그 어떤 것 그 자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 ‘즉자(卽自)’라고 하면 ‘자기 안에만 있어서
도무지 바깥을 모르는 자기’라는 뜻이다.
⑤ ‘즉(卽)한다’란 말이 ‘~과 하나가 된 상태,
혹은 서로 딱 들어맞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 현재에 즉(卽)해서 살아가야 하는 게 인생이라고 말했다.
• 지엽적인 문제에 너무 매달리기보다
이러한 문제는 이제 본문에 즉(卽)해서 논의돼야 한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