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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X, 무엇을 할 것인가.
a. 이것도 사랑?
'이런 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인야는 확신할 수 없었다.
못견디게 사랑해서 연적을 찾아가 결투를 신청해가면서까지 사랑을 쟁취하는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하는 절절하고 열정적이면서 아름다운 사랑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되고, 자기 스스로도 그런 정열을 품을 소양조차 부족한 사람이라 여겼기에...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은 그런 사랑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녀를 좋아했고 결혼까지 꿈꿨으니 사랑이라 믿고 싶었다.
만약 이것마저 사랑이 아니라면, 인야의 기억 속에 남은 감정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채 허공으로 흩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6월 28일 밤,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건강하시다는 목소리에 안도하면서도, 올 추석에는 꼭 돌아오라는 말씀에 가슴 한구석이 캄캄해졌다.
예전 같지 않은 어머니의 목소리.
조금만 더 참아달라 말씀드리는 인야의 마음은 쇳덩이처럼 무겁기만 했다.
이튿날, 벼르고 벼르다 G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녀가 직접 전화를 받았다. 잠에서 막 깬 듯한 상냥한 목소리와 꽤 오랫동안 통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며칠 뒤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전화를 끊고 난 뒤 인야는 자문했다.
‘만나서 뭘 어쩌자는 건가? 다른 남자와 사는 여자를 만나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답답한 마음에 120호 캔버스의 낡은 천을 뜯어내고 새 천을 씌웠다.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고된 노동이었다.
천을 가는 일 자체도 힘들었지만, 그림 파손될까 봐 노심초사하는 과정이 인야를 극도로 지치게 했다.
뜯어내 보관하는 사이 물감이 떨어지거나 구겨질까봐 전전긍긍하던 그는 결국 속쓰림에 잠을 설치다 약을 사먹고야 말았다.
무더위 속에 G가 인야의 ‘침묵의 집’을 찾아왔다.
몇 개월 만에 마주한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인야의 그림을 보며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땅거미가 질 무렵 그녀를 배웅하고 돌아오니, 서울에 잘 도착했다는 친구 P의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는 무사히 돌아갔고, 인야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리곤 일기장에 이렇게만 적었다.
아, 상냥한 그녀. 설사 영화배우처럼 이쁘지는 않지만, 굳이 그러길 바라는 내가 아니기도 하지만... 내가 겪어본 여자 중 가장 아름다운 여자일 수도 있는 그녀......
그러면서 인야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자조했다.
클라우디아와의 사랑은 독립된 이야기로 감상적으로 풀어내면서도, 정작 더 가슴 아픈 G와의 사랑 이야기는 애써 억누르듯 한두 마디로 지나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란다 너머 바르셀로나의 열기는 38도에 육박하며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무렵, 인야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가르치던 중학생 아이의 어머니가 그림 한 점을 사고 싶다며 10만 뻬세타를 건넨 것이다.
“선생님, 더 큰 액수는 힘들구요... 이 돈에 맞춘 그림 한 점 주시면 안 돼요?” 하기에,
인야는 깜짝 놀라면서도 고마워서 드로잉 한 점을 액자까지 해서 갖다 드렸다.
“저희 애를 가르치시는데, 그런 감사의 의미도 있고, 또 최소한 선생님 작품 한 점 정도는 저희 집에 걸어두고 싶어서요......” 하는 말을 덧붙였는데,
인야는 충분히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학교 과제물과 논문 번역 문제는 여전히 인야를 옥죄었다.
'아, 그림만 그리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은 인야의 마음과 달리 무심하게 돌아갔다.
G가 침묵의 집에 더녀간 후 그리움은 더 깊어졌지만,
그림을 사 줄 사람이 있다던 루이스는 소식이 없고, 수도를 고쳐줄 기술자도, 언어 문제를 도와주겠다던 청년도 모두 말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방문한 어느 아파트식 작업실은, 인야에게 깊은 부러움과 서글픔을 동시에 안겼다.
어떤 예술을 사랑하는 독지가가 그림도 수집하면서 유망한 화가들에게 그림 그릴 환경을 마련해주고 특별히 세를 받을 것도 없이... 이따금 가벼운 그림 정도를 성의로 표하는 식으로 대신한다고도 했다.
화가들이 작업에만 몰두하는 환경.
그것은 인야에게 너무나 간절한 일이었다.
돌아오는 길, 인야의 마음은 한없이 처량해졌다.
G는 다시 찾아와, 자신의 커다란 카메라로 인야의 모습을 담았다.
인야는 그녀를 위해 기꺼이 모델이 되어주었고, 그녀가 어깨동무를 하며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할 때마다 놀라면서도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뒤, 이번엔 그녀가 인야의 모델이 돼주었다.
인야가 그녀의 초상을 그리겠다고 하자, 그 말에 기꺼이 응해준 것이었는데... 크레파스로 두 장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1주일 뒤에 다시 오리라며 돌아갔는데, 그녀를 바래다주고 돌아서 올라오던 인야는 서글펐다.
꼭 그녀와 헤어져야 한다는 감정뿐만이 아닌, 뭔가 모를 자기 스스로의 처량함 때문이었다.
7월이 중순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인야는 도서관에서 조각가 '수비라치(Subirachs)'의 화집을 보고 있었는데, 깜짝 놀란 건 물론... 절망적인 한숨까지 내뱉고 말았다.
인체에 손자국 같은 공간을 넣거나 얼굴 형태를 일그러뜨리는 등의 표현 기법이(얼굴이 거꾸로 박힌 요철(凹凸)부조를 보고) 인야 자신의 생각과 너무나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인야는 경악했다.
사실 그 표현 기법은 인야 자신이 독창적으로 개발했다고 믿었던 것들이었는데... 이미 수비라치가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인야는 '수비라치'라는 조각가도 몰랐고, 그의 작품은 더더욱 알지 못했다.
그런데 올림픽을 맞아 새롭게 지어진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다른 쪽의 탑 입구에 있는 조각 작품을 보면서도, 좋다고만 생각했을 뿐... 그게 누구의 작품인지는 관심도 없었는데,
그게 수비라치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건 얼마 전,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보면서 느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인야가 젊은 시절부터 그림의 화면에 공간을 나누기 위해 (한 모퉁이를 의미하는) 세 직선을 그은 것도, 얼마 전에야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작품에 나왔다는 걸 알고는... 얼굴이 뜨거워지다 못해, 수치심과 억울함이 동시에 밀려왔던 적이 있었다.(인야는 그 전까지는 자신이 그런 표현방법을 처음 사용하는(개발한) 줄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인야 스스로는 결코 모방한 적도 없었는데, 그래서 스스로는 쾌재를 올렸던 요소였는데... 알고 보니 이미 선인들이 그런 걸 했던 것이라, 자기 스스로는 모방이 아닌 자존심을 건 연구의 결과였음에도, 세상은 인야가 이를 모방했다고 말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담, 나는 또 다시 뭔가 나만의 새로운 표현방법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나는 새로운 내 세상을 창조할 수 없는 사람일까? 나는 이 세상의 그 많은 평범한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일 뿐이란 말인가?'
인야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8월이 되었고, 아침에 인야의 잠을 깬 전화벨 소리는 미국의 친구로부터 온 것이었다.
큰 딸이 이제 중학교에 들어간다는 그는, 늘 하는 말이지만...
"야, 우리 헤어진지가 언제야? 니가 보고 싶다." 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근데, 너는 언제 미국에 올 거야?" 하는 것이었다.
"글쎄, 왜 안 가고 싶겠냐만... 아직, 능력이 없어......" 했을 뿐이다.
'아, 나는 지금 아무런 능력도 없는 사람이다. 겨우 목구멍에 풀칠을 하는 처지에 어떻게 미국까지 가느냐고, 그리고 일단은 어머니 문제로도 갈 처지도 못되는데.......'
미국 친구의 안부 전화를 뒤로하고 인야는 붓을 들었다.
G는 한 달간의 휴가를 위해 자기 나라 덴마크로 떠나기 전, 다시 와 인야의 사진을 찍어갔다. 자기 초상화를 그리게 될 인야 사진을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인야, 언제까지 유명해지길 집에서 기다리기만 할 거야? 아무도 이 깐 까라예우까지 당신을 찾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왜 발벗고 직접 나서지 못하는 거야? 하고 싶은 일을 돈 때문에 못한다면, 허다 못해 람블라에 나가 초상화라도 그려야 할 것 아냐?” 등등의 현실적인 얘길 해주었다.
인야는 깜짝 놀라면서도 그녀 말이 맞다고 동의했는데,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엔, 그들 사이엔 너무나 큰 언어 벽이 놓여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심도 깊은 얘기를 하기엔 어휘력도 부족하고 표현력마저도 어색할 것이라......
그렇지만 헤어져야 했고 인야는 결국 그녀에게,
“G, 너는 알고 있냐?” 하고 물었다.
“뭘?”
“내가 널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야, 고마워......"
인야는 그 대답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 '고마워'라는 말은 예의 바른 거절이었지만, 인야가 넘을 수 없는 선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건, 그녀는 인야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녀도 어린애가 아닌 이상 이미 인야 자신의 마음을 감지하고 있었을 터고, 그녀 역시 뭔가 갈등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구나 그녀의 말을 듣기에는, 그녀의 스페인 남자 친구도 내 존재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는 어떤 생각일까? 그도 나처럼 뭔가 갈등을 느끼고 있을까?'
사실, 인야는 G의 남자 친구에게 아픔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스스로 뭔가 G를 향한 욕망 같은 것도 자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사랑일까? 남들은 사랑을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하려고 하고 또 그걸 승리했다고도 하는데, 나는 사랑을 위해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스스로 묻고도 있었다.
'아, 모르겠다. 모르겠다......'
그런 뒤 인야는 '깐 까라예우의 다섯 친구들' 연작과 'G의 초상' 드로잉 작업에 매진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120호 대작에 열정을 쏟았다.
비록 그림이 풀리지 않아 우울해질 때도 있었지만, 수평선이 깨끗하게 보이는 바다를 꿈꾸며 9월을 기다렸다.
하루는 성당 작업실에서 캔버스에 밑칠을 하고 돌아오니, 누리아한테서 전화가 왔다.
같이 점심 먹지 않겠냐고 해서, 바로 시내로 내려갔고... 한국 식당에 가서 배불리 점심을 먹고 올라왔다.
여름의 열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어느 날 아침, 인야의 머릿속에 문득 한 아이의 얼굴이 스쳤다.
'근데, 상문이는 어떻게 됐을까?' 하는, 인야 자신이 최근까지 한글을 가르치던... 그렇지만 지금은 서울에 가 있는 아이였다.
그 아이 부모가 장손인 그 녀석을 한국의 대학에 보내기 위해(내년 특례 입학) 그동안 인야에게 한글지도를 부탁해왔던 것으로, 녀석의 한국 대학 탐색 겸 여름방학을 이용한 한국 생활적응 차 서울에 가 있기에... 그 상황이 궁금했던 것이다.
인야는 한국에 다녀오신 아이의 아버지께 전화를 걸려다 멈칫했다.
'지금은 집에 계실 시간이 아니겠지.'
그는 밤으로 연락을 미룬 채 저녁을 준비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막 숟가락을 들려던 찰나, 전화벨이 울렸는데... 바로 그 아이의 아버지였다.
안부를 나누던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수화기 너머로 예상치 못한 질문이 건너왔다.
“근데요, 혹시, 우리가 이 선생께 뭔가 도움이 될 일이 없을까요?”
갑작스러운 물음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인야는 생각하고 말 것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저는 화가니까요. 제 그림 하나 사주시면... 그게 곧 절 도와주시는 일이지요.”
농담인 듯 진담인 듯 툭 던진 인야의 담담한 말에, 상대는 이내 저녁 식사 초대로 화답했다.
“내일 저녁, 저희 집으로 한 번 오시겠어요?”
그렇게 성사된 이튿날의 만남은 뜻밖의 유쾌한 대화로 이어졌다.
식탁 위에 정갈한 음식들이 놓이고 분위기가 고조될 즈음, 아이의 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근데, 이 선생... 요리를 잘하시나 봐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고 인야가 의아해하며 되묻기까지 했는데,
“글쎄, 우리 상문이가, 선생님 수제비가 너무 맛있다고 하기에...... 하 하 하....” 하고 웃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옆에서 그 아이 어머니도,
“그러게요, 선생님! 걔가 선생님 댁에서 두어 번 수제비를 먹었다고 했거든요?”하기에,
“아, 예... 제가 먹을 게 없을 땐 가끔 해 먹긴 하는데, 뭐.. 저 먹을 때, 함께 먹자고 했더니, 애가 싫지 않아 하기에......” 하고 웃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니! 우리 집사람이, 주변에서도 그래도 제법 음식솜씨가 있다고들 하는데...... 그 녀석이, ‘선생님 수제비가 엄마 수제비보다 훨씬 더 맛있어!’ 하는 거 아니겠어요?” 하니,
“예에?” 하고 인야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뭘 넣고 또 얼마나 맛있게 끓였기에 그러는지... 나도 한 번 먹어보고 싶었다니까!”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아니, 농담이 아니고... 정말, 그러기라도 하고 싶다니까! 하 하 하....”
그러자 그 부인도,
“저도 한 번 먹고 싶어요! 호 호 호....” 하고 함께 웃어서 인야는 머쓱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터지는 유쾌한 웃음소리에 식탁의 온기는 더욱 짙어졌다.
그렇게 식사가 끝났는데,
“이 선생, 얘기가 나온 김에... 우리 상문이 잘 가르쳐준 감사의 뜻도 있고, 우리도 뭔가 성의를 표하고 싶어서 그동안 죽 생각해 오긴 했는데, 어제 얘기했던 그림 문제......” 하면서, "우리가 이 선생 그림 한 점을 사드리고 싶은데......" 하는 것이었다.
거기서도 인야는 솔직하게,
“이름 없는 제 그림을 사주신다니 영광입니다만, 저는 그림을 결코 싸게 파는 화가는 아닙니다. 혹시 가격이 맞지 않으시면 없던 일로 하셔도 괜찮습니다. 오늘 이 귀한 식사 대접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하니까요. 억지로 하실 필요 없으니 부담은 갖지 마십시오.”
인야는 결코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상대가 놀라지 않도록 미리 선을 그으며 담담하게 응수했다.
‘내가 너무 뻔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지만, 그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화가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었다. 돈이 궁하다고 해서 저자세로 쭈뼛거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렇잖아도 지난번 올림픽 때, 선생님 전시회에 갔었는데... 그림 판매 가격을 봐두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답니다.” 하는 그들의 말을 듣고서야, 인야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식사 후 그들은 인야를 ‘침묵의 집’으로 데려다주는 길에 성당 작업실까지 들렀다. 작업실을 가득 메운 그림들을 보며 그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인야는 포장되어 있던 작품들을 하나하나 뜯어 선보였고, 마침내 50호 크기의 유화 ‘화가의 전시장 방문’이 낙찰되었다.
가격은 전시회 당시 그대로인 45만 뻬세따였다.
물론 적지 않은 금액이자, 가벼운 그림이 아닌 진짜 유화작품으로 전시에도 냈던 작품이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는 있을 거라는 게 인야 생각이었다.
어차피 차로 온 김에 그들은 그 그림을 차에 싣고 가면서 인야의 은행 계좌번호를 적어갔다.
인야는 멍한 기분으로 의자에 걸터앉았다.
올림픽 전시회 이후 빚만 남았던 고단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뒤늦게 찾아온 이 기회는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필연적인 위로 같기만 했다.
그리고 다다음 날, 은행에서 선수금이 입금된 것을 확인한 인야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오랜 가뭄 끝에 대지를 적시는, 참으로 달고도 귀한 단비였다.
인야가 침묵의 집 마당의 발그레 물들어가는 포도 몇 알을 따 먹어 보니, 맛이 제법 들어 있었다.
여름이 깊어가고 있었는 것이고, 가을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바람의 끝이 달라지고 있었다.
밤이면 가을 이불을 꺼내야 할 만큼 쌀쌀해진 공기 속에서 인야는 수많은 꿈을 꾸었다. 꿈에서조차 그림의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나약함을 자책하기도 했지만, 잠은 유일한 해방이었다.
8월 마지막 날, 밝고 둥근 보름달이 밤하늘의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내려보고 있었다.
인야는 카세트 테이프를 찾아 '9월의 노래'를 들었다.
자신만의 그림, 자신만의 세계를 향한 갈망을 품은 채, 1993년의 여름이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죄송해요! 맞아요, 차례에서 확인해 보면 지금 작업 중인 부분은 VIII. 후반기 아래 에피소드들이고, 이 원고는 IX. 무엇을 할 것인가 - a. 이것도 사랑? 이 맞네요. 바로 교정본 드릴게요. 😊
IX. 무엇을 할 것인가
a. 이것도 사랑?
'이런 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인야는 확신할 수 없었다.
못 견디게 사랑해서 연적을 찾아가 결투를 신청해가면서까지 사랑을 쟁취하는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하는 절절하고 열정적이면서 아름다운 사랑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되고, 자기 스스로도 그런 정열을 품을 소양조차 부족한 사람이라 여겼기에...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은 그런 사랑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녀를 좋아했고 결혼까지 꿈꿨으니 사랑이라 믿고 싶었다.
만약 이것마저 사랑이 아니라면, 인야의 기억 속에 남은 감정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채 허공으로 흩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6월 28일 밤,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건강하시다는 목소리에 안도하면서도, 올 추석에는 꼭 돌아오라는 말씀에 가슴 한구석이 캄캄해졌다. 예전 같지 않은 어머니의 목소리. 조금만 더 참아달라 말씀드리는 인야의 마음은 쇳덩이처럼 무겁기만 했다.
이튿날, 벼르고 벼르다 G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녀가 직접 전화를 받았다. 잠에서 막 깬 듯한 상냥한 목소리와 꽤 오랫동안 통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며칠 뒤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전화를 끊고 난 뒤 인야는 자문했다.
'만나서 뭘 어쩌자는 건가? 다른 남자와 사는 여자를 만나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답답한 마음에 120호 캔버스의 낡은 천을 뜯어내고 새 천을 씌웠다.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고된 노동이었다. 천을 가는 일 자체도 힘들었지만, 그림 파손될까 봐 노심초사하는 과정이 인야를 극도로 지치게 했다. 뜯어내 보관하는 사이 물감이 떨어지거나 구겨질까봐 전전긍긍하던 그는 결국 속쓰림에 잠을 설치다 약을 사먹고야 말았다.
무더위 속에 G가 인야의 '침묵의 집'을 찾아왔다.
몇 개월 만에 마주한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인야의 그림을 보며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땅거미가 질 무렵 그녀를 배웅하고 돌아오니, 서울에 잘 도착했다는 친구 P의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는 무사히 돌아갔고, 인야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는 일기장에 이렇게만 적었다.
아, 상냥한 그녀. 설사 영화배우처럼 이쁘지는 않지만, 굳이 그러길 바라는 내가 아니기도 하지만... 내가 겪어본 여자 중 가장 아름다운 여자일 수도 있는 그녀......
그러면서 인야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자조했다.
끌라우디아와의 사랑은 독립된 이야기로 감상적으로 풀어내면서도, 정작 더 가슴 아픈 G와의 사랑 이야기는 애써 억누르듯 한두 마디로 지나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란다 너머 바르셀로나의 열기는 38도에 육박하며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무렵, 인야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가르치던 중학생 아이의 어머니가 그림 한 점을 사고 싶다며 10만 뻬세타를 건넨 것이다.
"선생님, 더 큰 액수는 힘들구요... 이 돈에 맞춘 그림 한 점 주시면 안 돼요?" 하기에, 인야는 깜짝 놀라면서도 고마워서 드로잉 한 점을 액자까지 해서 갖다 드렸다.
"저희 애를 가르치시는데, 그런 감사의 의미도 있고, 또 최소한 선생님 작품 한 점 정도는 저희 집에 걸어두고 싶어서요......" 하는 말을 덧붙였는데, 인야는 충분히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학교 과제물과 논문 번역 문제는 여전히 인야를 옥죄었다.
'아, 그림만 그리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은 인야의 마음과 달리 무심하게 돌아갔다. G가 침묵의 집에 다녀간 후 그리움은 더 깊어졌지만, 그림을 사 줄 사람이 있다던 루이스는 소식이 없고, 수도를 고쳐줄 기술자도, 언어 문제를 도와주겠다던 청년도 모두 말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방문한 어느 아파트식 작업실은, 인야에게 깊은 부러움과 서글픔을 동시에 안겼다.
어떤 예술을 사랑하는 독지가가 그림도 수집하면서 유망한 화가들에게 그림 그릴 환경을 마련해주고 특별히 세를 받을 것도 없이... 이따금 가벼운 그림 정도를 성의로 표하는 식으로 대신한다고도 했다.
화가들이 작업에만 몰두하는 환경. 그것은 인야에게 너무나 간절한 일이었다.
돌아오는 길, 인야의 마음은 한없이 처량해졌다.
G는 다시 찾아와, 자신의 커다란 카메라로 인야의 모습을 담았다.
인야는 그녀를 위해 기꺼이 모델이 되어주었고, 그녀가 어깨동무를 하며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할 때마다 놀라면서도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뒤, 이번엔 그녀가 인야의 모델이 돼주었다.
인야가 그녀의 초상을 그리겠다고 하자, 그 말에 기꺼이 응해준 것이었는데... 크레파스로 두 장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1주일 뒤에 다시 오리라며 돌아갔는데, 그녀를 바래다주고 돌아서 올라오던 인야는 서글펐다. 꼭 그녀와 헤어져야 한다는 감정뿐만이 아닌, 뭔가 모를 자기 스스로의 처량함 때문이었다.
7월이 중순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인야는 도서관에서 조각가 '수비라치(Subirachs)'의 화집을 보고 있었는데, 깜짝 놀란 건 물론... 절망적인 한숨까지 내뱉고 말았다.
인체에 손자국 같은 공간을 넣거나 얼굴 형태를 일그러뜨리는 등의 표현 기법이(얼굴이 거꾸로 박힌 요철(凹凸) 부조를 보고) 인야 자신의 생각과 너무나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인야는 경악했다.
사실 그 표현 기법은 인야 자신이 독창적으로 개발했다고 믿었던 것들이었는데... 이미 수비라치가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인야는 '수비라치'라는 조각가도 몰랐고, 그의 작품은 더더욱 알지 못했다. 그런데 올림픽을 맞아 새롭게 지어진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다른 쪽의 탑 입구에 있는 조각 작품을 보면서도, 좋다고만 생각했을 뿐... 그게 누구의 작품인지는 관심도 없었는데, 그게 수비라치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건 얼마 전,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보면서 느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인야가 젊은 시절부터 그림의 화면에 공간을 나누기 위해(한 모퉁이를 의미하는) 세 직선을 그은 것도, 얼마 전에야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작품에 나왔다는 걸 알고는... 얼굴이 뜨거워지다 못해, 수치심과 억울함이 동시에 밀려왔던 적이 있었다.(인야는 그 전까지는 자신이 그런 표현방법을 처음 사용하는(개발한) 줄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인야 스스로는 결코 모방한 적도 없었는데, 그래서 스스로는 쾌재를 올렸던 요소였는데... 알고 보니 이미 선인들이 그런 걸 했던 것이라, 자기 스스로는 모방이 아닌 자존심을 건 연구의 결과였음에도, 세상은 인야가 이를 모방했다고 말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담, 나는 또다시 뭔가 나만의 새로운 표현방법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나는 새로운 내 세상을 창조할 수 없는 사람일까? 나는 이 세상의 그 많은 평범한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일 뿐이란 말인가?'
인야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8월이 되었고, 아침에 인야의 잠을 깬 전화벨 소리는 미국의 친구로부터 온 것이었다.
큰 딸이 이제 중학교에 들어간다는 그는, 늘 하는 말이지만...
"야, 우리 헤어진 지가 언제야? 니가 보고 싶다." 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근데, 너는 언제 미국에 올 거야?" 하는 것이었다.
"글쎄, 왜 안 가고 싶겠냐만... 아직, 능력이 없어......" 했을 뿐이다.
'아, 나는 지금 아무런 능력도 없는 사람이다. 겨우 목구멍에 풀칠을 하는 처지에 어떻게 미국까지 가느냐고, 그리고 일단은 어머니 문제로도 갈 처지도 못 되는데.......'
미국 친구의 안부 전화를 뒤로하고 인야는 붓을 들었다.
G는 한 달간의 휴가를 위해 자기 나라 덴마크로 떠나기 전, 다시 와 인야의 사진을 찍어갔다. 자기 초상화를 그리게 될 인야 사진을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인야, 언제까지 유명해지길 집에서 기다리기만 할 거야? 아무도 이 깐 까라예우까지 당신을 찾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왜 발벗고 직접 나서지 못하는 거야? 하고 싶은 일을 돈 때문에 못한다면, 허다 못해 람블라에 나가 초상화라도 그려야 할 것 아냐?" 등등의 현실적인 얘길 해주었다.
인야는 깜짝 놀라면서도 그녀 말이 맞다고 동의했는데,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엔, 그들 사이엔 너무나 큰 언어 벽이 놓여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심도 깊은 얘기를 하기엔 어휘력도 부족하고 표현력마저도 어색할 것이라......
그렇지만 헤어져야 했고 인야는 결국 그녀에게,
"G, 너는 알고 있냐?" 하고 물었다.
"뭘?"
"내가 널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야, 고마워......"
인야는 그 대답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 '고마워'라는 말은 예의 바른 거절이었지만, 인야가 넘을 수 없는 선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건, 그녀는 인야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녀도 어린애가 아닌 이상 이미 인야 자신의 마음을 감지하고 있었을 터고, 그녀 역시 뭔가 갈등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구나 그녀의 말을 듣기에는, 그녀의 스페인 남자친구도 내 존재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는 어떤 생각일까? 그도 나처럼 뭔가 갈등을 느끼고 있을까?'
사실, 인야는 G의 남자친구에게 아픔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스스로 뭔가 G를 향한 욕망 같은 것도 자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사랑일까? 남들은 사랑을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하려고 하고 또 그걸 승리했다고도 하는데, 나는 사랑을 위해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스스로 묻고도 있었다.
'아, 모르겠다. 모르겠다......'
그런 뒤 인야는 '깐 까라예우의 다섯 친구들' 연작과 'G의 초상' 드로잉 작업에 매진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120호 대작에 열정을 쏟았다.
비록 그림이 풀리지 않아 우울해질 때도 있었지만, 수평선이 깨끗하게 보이는 바다를 꿈꾸며 9월을 기다렸다.
하루는 성당 작업실에서 캔버스에 밑칠을 하고 돌아오니, 누리아한테서 전화가 왔다.
같이 점심 먹지 않겠냐고 해서, 바로 시내로 내려갔고... 한국 식당에 가서 배불리 점심을 먹고 올라왔다.
여름의 열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어느 날 아침, 인야의 머릿속에 문득 한 아이의 얼굴이 스쳤다.
'근데, 상문이는 어떻게 됐을까?' 하는, 인야 자신이 최근까지 한글을 가르치던... 그렇지만 지금은 서울에 가 있는 아이였다.
그 아이 부모가 장손인 그 녀석을 한국의 대학에 보내기 위해(내년 특례 입학) 그동안 인야에게 한글 지도를 부탁해왔던 것으로, 녀석의 한국 대학 탐색 겸 여름방학을 이용한 한국 생활 적응 차 서울에 가 있기에... 그 상황이 궁금했던 것이다.
인야는 한국에 다녀오신 아이의 아버지께 전화를 걸려다 멈칫했다.
'지금은 집에 계실 시간이 아니겠지.'
그는 밤으로 연락을 미룬 채 저녁을 준비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막 숟가락을 들려던 찰나, 전화벨이 울렸는데... 바로 그 아이의 아버지였다.
안부를 나누던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수화기 너머로 예상치 못한 질문이 건너왔다.
"근데요, 혹시, 우리가 이 선생께 뭔가 도움이 될 일이 없을까요?"
갑작스러운 물음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인야는 생각하고 말 것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저는 화가니까요. 제 그림 하나 사주시면... 그게 곧 절 도와주시는 일이지요."
농담인 듯 진담인 듯 툭 던진 인야의 담담한 말에, 상대는 이내 저녁 식사 초대로 화답했다.
"내일 저녁, 저희 집으로 한 번 오시겠어요?"
그렇게 성사된 이튿날의 만남은 뜻밖의 유쾌한 대화로 이어졌다.
식탁 위에 정갈한 음식들이 놓이고 분위기가 고조될 즈음, 아이의 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근데, 이 선생... 요리를 잘하시나 봐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고 인야가 의아해하며 되묻기까지 했는데,
"글쎄, 우리 상문이가, 선생님 수제비가 너무 맛있다고 하기에...... 하하하...." 하고 웃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옆에서 그 아이 어머니도, "그러게요, 선생님! 걔가 선생님 댁에서 두어 번 수제비를 먹었다고 했거든요?" 하기에,
"아, 예... 제가 먹을 게 없을 땐 가끔 해 먹긴 하는데, 뭐.. 저 먹을 때, 함께 먹자고 했더니, 애가 싫지 않아 하기에......" 하고 웃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니! 우리 집사람이, 주변에서도 그래도 제법 음식 솜씨가 있다고들 하는데...... 그 녀석이, '선생님 수제비가 엄마 수제비보다 훨씬 더 맛있어!' 하는 거 아니겠어요?" 하니,
"예에?" 하고 인야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뭘 넣고 또 얼마나 맛있게 끓였기에 그러는지... 나도 한 번 먹어보고 싶었다니까!"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아니, 농담이 아니고... 정말, 그러기라도 하고 싶다니까! 하하하...."
그러자 그 부인도, "저도 한 번 먹고 싶어요! 호호호...." 하고 함께 웃어서 인야는 머쓱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터지는 유쾌한 웃음소리에 식탁의 온기는 더욱 짙어졌다.
그렇게 식사가 끝났는데, "이 선생, 얘기가 나온 김에... 우리 상문이 잘 가르쳐준 감사의 뜻도 있고, 우리도 뭔가 성의를 표하고 싶어서 그동안 죽 생각해 오긴 했는데, 어제 얘기했던 그림 문제......" 하면서, "우리가 이 선생 그림 한 점을 사드리고 싶은데......" 하는 것이었다.
거기서도 인야는 솔직하게,
"이름 없는 제 그림을 사주신다니 영광입니다만, 저는 그림을 결코 싸게 파는 화가는 아닙니다. 혹시 가격이 맞지 않으시면 없던 일로 하셔도 괜찮습니다. 오늘 이 귀한 식사 대접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하니까요. 억지로 하실 필요 없으니 부담은 갖지 마십시오."
인야는 결코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상대가 놀라지 않도록 미리 선을 그으며 담담하게 응수했다.
'내가 너무 뻔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지만, 그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화가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었다. 돈이 궁하다고 해서 저자세로 쭈뼛거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렇잖아도 지난번 올림픽 때, 선생님 전시회에 갔었는데... 그림 판매 가격을 봐두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답니다." 하는 그들의 말을 듣고서야, 인야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식사 후 그들은 인야를 '침묵의 집'으로 데려다주는 길에 성당 작업실까지 들렀다. 작업실을 가득 메운 그림들을 보며 그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인야는 포장되어 있던 작품들을 하나하나 뜯어 선보였고, 마침내 50호 크기의 유화 '화가의 전시장 방문'이 낙찰되었다.
가격은 전시회 당시 그대로인 45만 뻬세따였다. 물론 적지 않은 금액이자, 가벼운 그림이 아닌 진짜 유화작품으로 전시에도 냈던 작품이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는 있을 거라는 게 인야 생각이었다.
어차피 차로 온 김에 그들은 그 그림을 차에 싣고 가면서 인야의 은행 계좌번호를 적어갔다.
인야는 멍한 기분으로 의자에 걸터앉았다.
올림픽 전시회 이후 빚만 남았던 고단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뒤늦게 찾아온 이 기회는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필연적인 위로 같기만 했다.
그리고 다다음 날, 은행에서 선수금이 입금된 것을 확인한 인야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오랜 가뭄 끝에 대지를 적시는, 참으로 달고도 귀한 단비였다.
인야가 침묵의 집 마당의 발그레 물들어가는 포도 몇 알을 따 먹어 보니, 맛이 제법 들어 있었다.
여름이 깊어가고 있는 것이고, 가을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바람의 끝이 달라지고 있었다. 밤이면 가을 이불을 꺼내야 할 만큼 쌀쌀해진 공기 속에서 인야는 수많은 꿈을 꾸었다. 꿈에서조차 그림의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나약함을 자책하기도 했지만, 잠은 유일한 해방이었다.
8월 마지막 날, 밝고 둥근 보름달이 밤하늘의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내려보고 있었다.
인야는 카세트 테이프를 찾아 '9월의 노래'를 들었다.
자신만의 그림, 자신만의 세계를 향한 갈망을 품은 채, 1993년의 여름이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