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성읍이 형성되기 수세기 전, 최초의 낙농업자는 유목민이었다.
기원전 12세기경 이스라엘과 유다 고지대에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양과 염소를 치게 되 었다.
그들은 집을 둘러싼 마당을 만들어 밤이 되면 안전하게 가축을 지켰다.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는 중요하다.
예수께서도 울타리를 은유로 사용했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 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 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 고 왔다.” (요한 10,7-10)
라헬(창세 29,6)과 치포라(탈출 2,16,21) 같은 여인들은 집 근처에서 양떼를 돌보 고, 요셉의 형제들 (창세 37,12)과 다윗(1사무 17,15) 같은 남자들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서 양떼에게 풀을 먹였다.
양떼를 돌보는 데는 충실함이 요구되었으며 1사무 17,34-36과 창세 31,38-41에 서처럼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성경의 상징 이야기인 에제 34장과 시편 23편과 요한 10,2-16은 ’착한 목자’, 곧 돌보는 이나 인도자의 감동적인 이미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고지대 목자들은 나쁜 관리인, 곧 ‘도둑이요 강도’라는 평판 이 퍼져 있었다.
성전 파괴후 라삐들은 바로 이런 이유로 ‘되새김질하는 작은 가 축’을 치는 것을 금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신을 ‘착한 목자’라고 했을 때 놀랐다.
동물의 젖은 성경의 상징이 되었다. 요엘 4,18에서는 풍요의 상징이다.
“그날에는 산마다 새 포도주가 흘러내리고 언덕마다 젖이 흐르리라.” 애가 4,7에 나오는
‘눈보다 깨끗하고 우유보다 하얗다’는 표현은 결백을 드러낸다.
양과 염소는 사육하지 않고 방목했기 때문에 성경에서 우유는 전혀 다른 상징으 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을 묘사한 이사 7,21-25에서 ‘젖과 꿀’은 풍요의 상징이 아니라 정반대의 상징이다.
“정녕 이 땅에 남은 자들은 모두 엉긴 젖과 꿀을 먹게 되리라… 모두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덮이리라….
다만 소나 먹이고 양이나 밟고 다니는 곳이 되고 말리라.” 옛사람들은 주로 젖을 먹기위해 동물을 길렀다.
1코린 9,7은 “양떼를 치면서 그 젖을 짜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잠언 27,26-27은 양떼를 잘 돌보면 이익을 낼 것이라고 한다.
“새끼 양들은 네 옷을 장만해주고 숫염소들은 밭을 살 돈이 된 다.
염소 젖은 넉넉하여 네 양식이 되고 네 집안의 양식과 네 여 종들의 생계가 되어 준다.” 염소 역시 젖을 얻기 위해 키웠으며 다른 동물보다 선호했다. (염소 젖이나 치즈는 소화가 잘된다.) 특히 유목민들에게 우유와 그 부산물은 가 장 영양가있는 음식이었다.
히브리어 ‘할라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유우를 뜻한다.
날씨가 더우면 우유를 오랫동안 동안 신선하게 보관할 수 없다.
우유는 이유기 전 아기들에게 가장 적당 한 음식이라 한 말은 모유를 뜻한 것 같다.(1코린 3,2; 히브 5,12; 1베드 2,2) 성경에 나오는 ‘버터’는 오늘날 우리가 먹는 것보다 기름기가 더 많으며 부드럽 게 응고된 유유를 가리킨다, 중세 유다학자 라쉬는 ‘엉긴 소젖’(신명 32,14)은 오 늘날 크림 버터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한다.
1사무 17,18과 2사무 17,29 그리고 욥기 10,10에 나오는 치즈 (엉긴 젖)는 틀에 집어넣고 눌러 햇볕에 말린 것이다.
이런 치즈를 베두인들은 ‘아피그’라고 하는 데 이들은 오늘날에도 거의 같은 방법으로 만든다.
아피그는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고 언제든지 물을 부어 다시 만들 수 있다.
우유나 고기로 만든 음식을 엄격히 분리할 것을 명하는 유다의 음식 규정 덕분 에 이스라엘에는 우유를 재료로 하는 조리법이 많다.
오늘날 ‘샤부오트(오순절)’ 잔치상에는 우유로 만든 음식이 많이 오른다.
사부오트는 원래 추수감사제로 동 물을 잡아 바쳤다.
세월이 흐르면서 현인들은 오순절과 십계명을 연결시켰고, 고기가 축일 식단에서 빠지면서 우유로 만든 음식이 등장했다.
이러한 전통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채소와 과일을 먹었다는 창세 1,29에서 착안한 것으로 하 느님이 십계명을 주신 것을 기억하는 날, 더 나은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원의 를 표현하 것이다. 아가 4,11은 ‘혀 밑의 꿀과 젖’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만족시키기 바란다고 한다.
Miriam F. Vamosh (2006년), ‘성경시대의 음식’ (바오로딸 출판)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