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가 깃든 산사기행]함안 무릉산(武陵山) 장춘사(長春寺)
장춘사에서 문득 거기 불명산 화암사가 떠올랐다. 아슴아슴한 기억을 더듬는다. 그런데 어디 하나 닮은 데가 없다. 산속에 들어앉아 산도 보이지 않던 화암사, 밖이라고는 하늘밖에 보이지 않던 절. 장춘사에서는 그래도 산도 보이고 하늘도 환하고 저 아래 가물가물한 불빛도 친근하지 않는가. 자그맣고 아담한 절, 어둑서니 내려앉는 그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초저녁 향긋한 차를 앞에 두고 주지스님과 나누는 이야기에 가을밤이 깊어간다. 먼 길에 굳었던 몸이 풀어질 즈음 하룻밤 묵을 방에 불을 밝힌다. 조사전을 겸한 승방, ‘무릉산 장춘사 개산조 무염국사 진영’ 속 스님께서 그윽한 미소를 지어 보이신다.
캄캄하다지만 이제 겨우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도시의 밤과 달리 눈꺼풀이 무겁기만 하다. 방문을 열고 찬바람을 맞으며 별을 헤어본다. 낙동강 어귀에서 백두대간으로 거슬러 오르는 산줄기, 이제 두어 번 남은 걸음으로 그 속에 깃든 절들과 그동안 지나온 길들을 갈무리해야 한다. 잰걸음으로 달려온 통에 미처 참배치 못한 절들과 참배했다지만 어두운 눈 때문에 보여드리지 못한 절들의 참 모습이 얼마나 많을까. 게으르고 더딘 걸음, 얕은 안목이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가을밤 바람소리만이 또렷하다. 문을 닫고 누웠다가도 ‘비가 오려나?’ 하고 창호지 바른 문을 빼곰히 열어 본다. 정갈한 마당 위로 낙엽 뒹구는 소리가 꼭 빗소리처럼 들렸던 것이다. 풍경 흔들리는 소리, 나무를 훑고 지나가는 소리가 곧 바람소리가 되었다.
순간 무릉산 장춘사(長春寺)는 ‘장추사(長秋寺)’가 된다. 왜 무릉산(武陵山)이고, 왜 장춘사인지 온종일 궁금했는데 가을 바람 불던 밤, 비로소 꽃 피는 봄 장춘사에 꼭 다시 와 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