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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산 둘레길 걷기 : 1일차 / 사당역 ~ 석수역 약 15키로
자세한 여행기는 ..... 함께 한 분에 블로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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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산[ 冠岳山 ]
서울시 한강 남쪽에 우뚝하게 솟아있는 산이며 높이는 632.2m이다. 그 뒤쪽으로는 청계산, 백운산, 광교산으로 연결되는 한남정맥(漢南正脈)이 이어진다. 산 정상부에는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모습이 갓을 쓰고 있는 모습을 닮아 관악산(冠岳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관악산의 능선마다 바위가 많고 큰 바위 봉우리가 연결되어 웅장한 산세를 이룬다. 북한산(北漢山)·남한산·계양산 등과 함께 서울분지를 이중으로 둘러싼 자연의 방벽으로, 옛 서울의 요새지를 이루었다. 행정구역으로는 서울특별시 관악구와 금천구, 그리고 경기도 과천시와 안양시에 걸쳐있다. 1968년 건설부 고시 제34호에 따라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73년 관악구가 영등포구에서 분구되면서 산이름이 구의 명칭이 되었다.
관악산에 대한 역사기록은 여러곳에서 등장하는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각축전을 벌일 때 매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고려시대에는 남경의 남쪽을 방위하는 산으로 중요성이 언급되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관악산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강한 불기운을 가진 산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관악산을 화산(火山)이라고도 했는데 경복궁(景福宮)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관악산의 불기운이 너무 강해 그 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그때문에 왕사였던 무학대사(無學大師)가 관악산의 불기운을 달래는 사찰을 세웠으며, 관악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숭례문(崇禮門) 앞에도 연못을 만들어 불기운을 막았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관악산은 많은 명인들이 등반하고 기록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것이 1786년 재상 체제공이 관악산을 등반하고 《유관악산기(遊冠岳山記)》를 지었다. 그는 책에서 태종의 아들 양녕대군(讓寧大君)이 관악산 연주대(戀主臺)에 올라 북쪽의 경복궁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관악산에서 한양을 바라보면 곳곳의 모양과 위치가 마치 밥상을 대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예로부터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五岳)에 속했던 산으로, 서울의 남쪽 경계를 이루고 있고 그 줄기는 과천 청계산을 거쳐 수원의 광교산까지 이른다. 북서쪽으로 자운암을 지나 서울대학교가 위치하며 동쪽으로 연주암과 과천향교를 지나 정부 과천종합청사가 위치한다. 남쪽으로 안양유원지가 자리잡고 있다. 주봉(主峰)은 연주대(戀主臺)이고, 산정의 영주대(靈珠臺)는 세조(世祖)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관악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깃대봉을 지나 삼성산(481m)으로 이어지며 그 아래 삼막사(三幕寺)라는 사찰이 있는데 이곳은 원효대사(元曉大師), 의상대사(義湘大師), 윤필의 세명의 대사가 은거하면서 불도를 닦았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관악산에는 화강암으로 형성된 기암괴석과 바위들이 많은데 각 바위마다 다양한 이름이 지어져 있다. 두꺼비바위, 무당바위, 해골바위, 장군바위, 마당바위, 얼굴바위, 돼지바위, 열녀바위, 칼바위 등 각각의 바위마다 재미있는 전설을 담고 있다.
관악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여러곳이 있다.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학교 입구에서 시작하는 등산로가 대표적이다. 정상까지 길이는 약 4km이며 맑은 계곡물과 관악산 야회식물원, 관악산 호수공원을 따라 오르는 등산로이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그리고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과천중학교 뒤편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길이는 약 3km이며 연주샘을 지나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관양고등학교에서 오르는 등산로는 약 5km인데 풍광이 좋은 곳이며, 팔각정을 지나 불성사, 깔딱고개, 장군바위를 지나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산중에는 연주암(戀主庵:경기기념물 20)·자왕암(慈王庵)·불성사(佛成寺)·삼막사(三幕寺)·관음사(觀音寺) 등의 산사(山寺)와 과천향교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삼막사는 원효·의상 등의 고승들이 수도하였다고 한다. 산정에는 기상청의 기상 레이더 시설이 있다. 관악산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세는 험한 편이고 골짜기 마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는 곳으로 예전부터 금강산에 비교되었다. 서울 도심에서 가까워 주말이면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매년 봄 철쭉제가 열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관악산 [冠岳山] (두산백과)
▲ 무당골
♣ 낙성대[ 落星垈 ]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강감찬(姜邯贊)의 사당.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 강감찬의 출생지로서, 그가 출생할 때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라는 이름으로 전하여오고 있다.
강감찬의 애국충정을 기리고자 서울시에서는 1973년에서 1974년까지 2년간에 걸쳐서 이곳을 정화하면서 사괴석(四塊石)으로 409m의 담장을 쌓고 사당 안국사(安國祠)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 낙성대이다. 안국사는 외삼문인 맞배지붕의 안국문(安國門)을 거쳐 내삼문 안에 건축되었는데, 사당 안에는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한편, 1974년 6월 10일 안국사가 완공되자 서울시에서는 그 날짜로 공원으로 지정하여 유료공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공원의 총면적은 3만 1350㎡이나 성역화된 곳은 1만 1550㎡이며, 안국사의 면적은 237.6㎡이다. 공원 경내에 5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공원 입구에 큰 연못을 파서 구름다리를 놓았으며 성역화 경내에도 낙성교가 있다.
이곳에는 고려시대에 건립된 삼층석탑이 있으며, 탑에는 ‘姜邯贊落星垈(강감찬낙성대)’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 탑은 원래 강감찬이 태어난 봉천동 218번지 집터에 있던 것을 1973∼1974년 정화사업에 따라 현위치로 옮겨왔으며, 그 터에는 따로 유허비를 세워 사적지임을 표시하였다.
탑의 양식은 단층기단 위의 삼층탑으로, 노반 이상의 상륜부(相輪部)는 없어졌다. 기단석은 각 면에 한 장의 면석이 둘러 면마다 우주(隅柱: 모서리기둥)가 새겨져 있다. 한 장의 돌로 된 갑석 한가운데에 옥신받침이 있다. 탑신의 옥신석에는 각기 우주가 모각되었고, 옥개석은 경사가 완만한 편이며, 층급(層級)은 2단으로 매우 간결하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석탑의 대석을 비틀어 어기고 탑의 위층을 빼어 한 층을 낮추어 정기를 줄이고 탑 안에 있던 보물을 훔쳐갔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들은 탑만이 아니라 탑 주위에 있던 병풍바위와 선돌바위도 모두 부수고, 탑의 동쪽 구릉을 파내어 땅의 혈맥을 끊기도 하였다고 전하여온다.
[네이버 지식백과] 낙성대 [落星垈]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서울대학교 [ Seoul National University]
요약대학본부와 16개 단과대학으로 이루어진 관악캠퍼스, 의과대학·간호대학·치의학대학원으로 이루어진 연건캠퍼스로 나뉘어 있다.
1945년 11월, 100명의 인사들로 구성된 '조선교육심의회'가 일제가 설립한 경성제국대학 건물을 활용하여 국립 종합대학교를 설립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에 1946년 8월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이 공포되었고, 이어 10월에 국립서울대학교로 개교하였다. 개교 당시 대학원 외에 9개 단과대학으로 편성하였는데, 그 편성 내역은 다음과 같다.
문리과대학(경성제대 법문학부 문과계통과 이공학부 이과계통을 통합)·법과대학(경성제대 법문학부 법과계통과 경성법학전문학교를 통합 개편)·공과대학(경성제대 이공학부 공과계통과 경성공업전문학교 및 경성광산전문학교를 통합)·의과대학(경성제대 의학부와 경성의학전문학교를 통합)·농과대학(수원농림전문학교를 흡수 개편)·상과대학(경성경제전문학교를 흡수 개편)·치과대학(사립 경성치과의전을 흡수 개편)·사범대학(경성사범학교와 경성여자사범학교를 통합 개편)·예술대학(미술·음악부 신설) 등으로 개편하였다. 이어 1950년에 사립 서울대학(구 경성약전)을 흡수하여 약학대학으로 독립시켰다.
1970년부터 동숭동(문리대학·법과대학·예술대학 미술부), 연건동(의과대학), 공릉동(공과대학), 경기도 수원(농과대학), 종암동(상과대학), 을지로(사범대학), 소공동(치과대학), 남산동(예술대학 음악부) 등지에 흩어져 있던 캠퍼스를 통합하기 위하여 관악캠퍼스 조성에 착수하였고, 1975년부터 대학본부와 단과대학들이 이전하였다. 2003년 수원 상록캠퍼스에 있던 농과대학과 수의과대학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였고, 의과대학·간호대학·치의학대학원이 있는 연건캠퍼스는 존속하여 지금에 이른다.
한편. 2011년 12에 시행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립대학에서 국립대학법인으로 전환하였다.
2013년 기준 인문대학·사회과학대학·자연과학대학·경영대학·공과대학·농업생명과학대학·미술대학·법과대학·사범대학·생활과학대학·수의과대학·약학대학·음악대학·자유전공학부(이상 관악캠퍼스)·의과대학·간호대학(이상 연건캠퍼스) 등 16개 단과대학에 83개의 학과·학부가 개설되어 있다. 일반대학원에는 석사과정으로 5계열 69개 학과·학부와 28개 협동과정이, 박사과정으로 5계열 70개 학과·학부와 29개 협동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이밖에 보건대학원·행정대학원·환경대학원·국제대학원·치의학대학원·의학대학원·경영전문대학원·법학전문대학원·융합과학기술대학원 등 9개 전문대학원이 있다.
부속시설로는 박물관·규장각한국학연구원·교수학습개발센터·실험동물자원관리원·기초과학공동기기원·언어교육원·대학생활문화원·기록관·미술관·경력개발센터·환경안전원·보건진료소·성희롱성폭력상담소·학생기숙사 등이 있으며, 통일평화연구소·생명과학공동연구소·금융경제연구원·아시아에너지환경지속가능발전연구소 등 본부직할 연구소를 비롯하여 70개 단과대학 연구소, 57개 국가지원 연구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 부설 초등학교·중학교·여자중학교·고등학교가 있으며, 산학협력단·대학신문사·(재)서울대학교발전기금·(사)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서울대학교생활협동조합 등의 법인 및 기관을 두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대학교 [Seoul National University] (두산백과)
♣ 삼성산 성지
삼성산(三聖山) 성지는 기해박해(1839년)때 새남터에서 서양인 성직자로는 처음으로 천주교를 전교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아, 1839년 9월 21일(음 8월 14일)에 군문효수의 극형으로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 범(范) 주교와 성 베드로 모방 나(羅) 신부, 성 야고보 샤스땅 정(鄭) 신부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성산성지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 호압사 [ 虎壓寺 ]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1407년(태종 7) 왕명으로창건되었다.
당시 삼성산의 산세가 호랑이 형국을 하고 있어서 과천과 한양에호환(虎患)이 많다는 점술가의 말을 듣고 산세를 누르기 위해 창건하였다고 한다. 호갑사(虎岬寺) 또는 호암사(虎巖寺)라고도 하였다.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은 거의전하지 않고, 다만 1841년(헌종 7) 4월에 의민(義旻)이 상궁 남(南)씨와 유(兪)씨의시주를 받아서 법당을 중창한 기록이 있다. 1935년 만월(滿月)이 약사전을 중건하여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약사전과 요사가 있고, 약사전 내에 약사불과 신중탱화가모셔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압사 [虎壓寺] (두산백과)
▲ 호암 늘솔길[1키로]
◈ 관악산 둘레길 걷기 : 2일차 / 석수역 ~ 사당역 걷기 17키로
▲ 금강사
▲ 안양 예술공원
▲ 잘 정비된 테크길
▲ 광명, 안양, 시흥, 군포등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에서
♣ 망해암[ 望海庵 ]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로 관악산의 지류인 야트막한 산 정상에 있다. 655년(신라 문무왕 5)에 원효대사가 처음으로 미륵불을 봉안하고 '망해암'이라고 이름붙였다고 한다.
1407년(태종 7)에 왕명을 받아 중수하였고, 1803년(순조 3)에 홍대비가 중건하였으며, 1863년(철종 14)에 대연화상이 다시 중수하였다. 이후 6·25전쟁으로 완전히 폐사되었던 것을 승려 유청봉이 용화전, 삼성각, 요사채 등을 재건하고 사적비를 세우는 등 사찰을 새롭게 정비하였다. 산 정상의 좁은 대지와 절벽을 이용하여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중심건물인 용화전에는 1479년(성종 10)에 조성한 높이 3m 규모의 석조미륵불을 봉안하고 있다. 사찰이 서향으로 들어서 있어 일몰 경치가 아름다우며, 산꼭대기에 있어 안양시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가까이에 비산동 도요지, 비산동 석실분, 평촌 지석묘, 안양사 등의 관광명소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망해암 [望海庵] (두산백과)
▲ 안양 관악산 수목원
♣ 남태령 [ 南泰嶺 ]
해발고도 183m, 길이 6㎞이다. 관악산(冠岳山)과 우면산(牛眠山) 사이에 있다. 예부터 서울과 수원을 잇는 도로로 이용되었다. 18세기 말 정조(正祖)가 수원에 있는 장헌세자(藏獻世子)의 능을 참배하러 다닐 때 지나던 길이다. 정조가 이 고개를 넘을때 고개 이름을 묻자 신하들이 남태령이라고 답하자 그 후부터 남태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 남태령은 서울 관악구 남현동과 과천시 관문동을 잇는 큰 도로이지만 옛날에는 한 두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일제강점기 때 길을 넓히면서 서울 쪽 반절은 사라졌고 과천 쪽 일부는 그대로 남아 있다. 최근 과천시가 이곳에 남태령 옛길을 복원시켰다.
옛길은 과천시 관문 사거리에서 서울쪽 오른편에 현재의 남태령 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좁은 길이다. 1㎞도 채 안되는 짧은 거리지만 옆으로 작은 계곡이 있고 주변에 숲이 우거져 있다. 도로와 만나는 입구에는 남태령 옛길 표지석을 세웠다. 지하철 4호선과 서울에서 안양·의왕·군포·수원까지 가는 버스가 지난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태령 [南泰嶺]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