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
그 마을에 가면
정동진이라는 억새꽃 같은 간이역이 있다.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
가끔 두 칸 열차 가득
조개껍질이 되어버린 몸들을 싣고 떠나는 역.
여기에는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
아름다운 천정도 볼 수 있다.
강릉에서 20분, 7번국도를 따라가면
바닷바람에 철로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역사(驛舍),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동행
산길을 가다 보면
혼자 건너지 못할 개울 만나고
둘 힘 합해야 기어오를 수 있는 바위 만나네.
그런 길에는
서로 아름다운 손을 남기면서 가야 하네.
나는 그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그 손 한번 훌륭하게 남기지 못했네.
산길을 밝히는 도라지꽃 한번 되지 못했네.
남은 길에는 누구의 산새라도 되어주어야 하는 걸까?
먼 길 비 오고 안개 끼어
앞길 보이지 않네.
길을 가로막고 있는 저 바위도
젖은 몸 따뜻하게 갖다대니
비 그을 안식처가 되네.
내일은 평짓길을 가다가 다시
가파른 기슭을 만날지라도
이제 서로 그 절벽은 되지 마세.
초향(草鄕)
적금을 타 주택자금이 마련되면, 을랑이 엄마
내다버린 생각들을 다시 챙겨
메추리가 뒤란으로 기어드는 산골마을
곱게 널린 노을 아래로 돌아가자.
가서, 솔가지 지펴 저녁 연기를 올리며 살자.
집 둘레엔 듬성듬성 탱자나무를 심어 울을 치고
빨래가 재주 넘어올 나일론 줄도 달아보지 않으련?
겨울잠 자는 농구(農具)들을 깨워 새로 모아놓고
묵은 화로는 닦아서 환한 얼굴을 불러내야겠지?
밤이면 흔들리는 불빛 아래 새끼줄같이 긴 詩를 쓰면서
달빛 분주히 쫓겨가는 새벽녘이면 제일 먼저 일어나
냇가 풀숲에다 염소를 끌어다 놔야겠지?
눈 감으면 언제라도 맑은 하늘이 숨쉬는 고향의 개울가
버들강아지 푸른 혈이 다시 돋고 울타리의 탱자꽃이
하얀 리본처럼 피어날 때, 을랑이 엄마
그대는 해랑이를 업고 텃밭으로 나가고
나는 마을 언덕의 굽은 등을 타고 앉아 을랑이에게
저 검은 들녘을 기어가는 논두렁의 역사(歷史)를
낱낱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함께 봄을 일구어 보자.
커브가 아름다운 여자
구불구불한 길.
커브가 많은 삶은 슬프다,
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얼굴을 문지르고 있으면 그녀에게선
아름다운 커브가 나온다.
커브가 많은 그녀. 기둥을 자주 수리했던 여자, 어룽무늬 커튼이 쳐진 여자,
난간이 있는 여자, 일요일이면 혼자 쉬어야 하는 여자, 바이올린 같은 현이 있
는 여자, 그래서 한번 더 슬픈 커브를 갖는 그녀.
그러나 그녀의 커브를 몇 굽이 돌다보면
의외로 넓고 푸른 뜰을 만날 수 있다.
그 뜰에서 키우는
비둘기와 양을 만날 수 있고,
날마다 하느님의 들녘으로 나가는
황소 같은 어진 발걸음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뜰을 가득 채워오는 농아들 웃음이
그녀의 어둔 공간을 밝히고
하늘의 별로 반짝여올 때
그녀의 커브는
커브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벼랑을 슬기롭게 돌아나간 커브,
그 커브가 그녀를 향기롭게 한다.
누워있는 것을 보면 나는 올라타고 싶다
나는 누워만 있는 것을 보면 올라가보고 싶다.
그 누워 있는 것들에 신나게 올라가서
한번 가쁜 숨을 매몰차게 몰아쉬고 싶다.
가쁜 숨을
기쁘게
내쉴 것들을 고르다 보니,
나를 기다리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워 있는 침대, 누워 있는 천장, 누워 있는 하늘.....
저기 한 여자도
한사코 누워만 있는
바위를 올라타느라
가쁜 숨을
크게 내뿜고 있다.
여자가 슬슬 기어오르는 모습을 보니까
귀엽다.
용감해 보인다.
아니, 불행해 보인다.
세상에!
오죽했으면 여자가 하늘을 올라타야 할까?
나는 누워 잠자는 걸 보면 꼭 한번 올라타보고 싶다.
누워 있는 상사, 누워 있는 행정, 누워 있는 학문....
아랫목에 관하여
세상 모든 방에는 바닥이 있다. 그리고 그 바닥에는 따뜻한 아랫목이 있다.
바닥이 없고 방이 없어도 아랫목은 존재한다.
시린 손, 시린 발 이런 것들은 아랫목에서 쫑겨난 또 다른 아랫목이다. 시린
손, 시린 발, 이런 것들도 모아서 한 군데 쌓아두면 김이 무럭무럭 난다.
우리는 이 아랫목을 위해 그 많은 벽을 쌓고, 커다란 창문을 달고, 분홍색 커
튼을 친다. 따라서 아랫목이 없는 방은 모두 헛간이거나 죄다 헛소리이다.
덮을 이불이 없는 것들....
한없이 헐벗은 것들을 잘 덮어주는 이야기는 따뜻한 향기를 갖는다.
장식용 향기는 휘발성이지만 이 향기는 아랫목에서 푸욱 고아진 술처럼 은은
한 맛이 있고 넓이가 있다. 따라서 한 잔만 마셔도 취한다. 깊게 즐거워 옆사람
에게 자꾸 권하게 되고, 권하다보면 다시 아랫목에서 시린 손발들을 서로 만나
게 된다.
그에게는 향기로운 아랫목이 있다.
팬티, 그 순수에 관하여
이처럼 순수한 천은
그대에게 빨래로 맡길 순 없다.
요구 대로 마구 벗어 던져줄 순 없다.
그대가
내 순수를 아무 거리낌 없이 빼앗아가고
내가 그에 순순히 응해야만 했을 땐
그대는 이미
나의 아름다운 아내가 아니라,
아무렇게나 출입하는 옆집 할머니가 되고
나는 그대의 구석구석까지 다
들여다본 것이 된다. 그대는
나의 신비스런 물건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 것이 된다.
그것을 그처럼 열심히 주무른다고 하여
이미 얼룩진 것이 순백으로 돌아올 순 없다.
그대가 그것을 세차게 주무르며 속을 헤집고 있을 땐
이 지상(地上) 아름다운 꿈이란 모조리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자꾸자꾸 야위어만 갈 것이다.
그대는 나와 상관없이 살만 디룩디룩 찔 것이다.
말하여질 수 없는 여백,
그 순수한 천 한 자락을 꼭 숨기고
우리들은 안방에서
대대로 물려줄 장롱이 될 순 없는 것일까?
신비스러움을 다치지 않게 살며시 꺼내보는
장롱 속의 소중한 물건이 될 순 없는 것일까?
벽은 우리들에게 넓이와 높이를 갖게 한다
벽!
가끔 하숙생을 모집하는 벽. 불법 무기를 신고하라는 벽. 공산당은 때려잡자
는 벽. 못을 치면 크게 반발하는 벽. 그러나 최진실의 치마도 살짝 들어올릴 줄
아는 벽. 그 밖의 또 다른 벽, 벽, 벽들.....
그 벽들에는 앞을 외면한 등이 숨어 있다.
나는 그 벽들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다.
잠자리도 같이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벽들에도 예쁜 창과 아름다운 조명등을 달아주니까 달라진다.
한 잔의 술을 건네니까 돌린 등을 감쪽같이 감춘다.
따뜻한 사무실이 되고, 아늑한 방이 된다.
벽은 나를 나답게 가꾸게 하고, 내게
넓이와 높이가 있는 공간도 갖게 한다.
벽이 없는 이 말,
이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또 다른 벽이리라.
빨래
이렇게 모가지를 비틀면 어떡하냐고
찔끔찔끔 눈물을 짜며
그가 완강하게 버틸 때면,
이놈 고분고분하지 않는다고
시커먼 거짓말 뱉어내지 않고 끝까지 숨기고 있다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두들겨 패서
질질 옥상으로 끌고가 거꾸로 매달아버린다, 그녀는.
그러면 그는 그때서야 백기를 꺼낸다.
정말 이렇게 나아가서는 안 되겠다고,
어떻게든 집안에
평화의 깃발은 펄럭이고 봐야겠다고.
보라, 그녀는 그를 다루는 1급 기술자다.
대작(對酌)
우리 집에는 이상한 녀석 한 명이 살고 있다. 눈이 오면 한없이 눈발을 맞
는 녀석, 바람이 불면 쉽게 마음을 날리는 초가지붕 같은 녀석이 살고 있다. 문
풍지처럼 잘 울고 비가 올 때면 하늘을 썬팅이나 하고 있는 한심한 녀석. 외양
간 소처럼 되새김질을 잘하는 녀석. 거미줄이 쳐진 녀석. 울타리가 없는 녀석.
그러나 그의 내부는 의외로 우아하게 실내장식이 되어 있다. 30년 카페 분위
기를 풍기는 조용한 공간, 유럽풍의 벽과 체크 무늬의 조명, 앞쪽 구석에 피아
노 한 대가 조용히 놓여 있고 무대 정면에는 통기타를 든 남자가 흘러간 가요
와 팝 음악을 번갈아 연주한다. 3천 원에서 7천 원 사이의 쓸쓸함을 골라 마실
수 있고, 3만 원에서 5만 원까지의 슬픔을 품위 있게 씹을 수 있는 곳. 주로 재
즈풍 남녀들이 즐겨 찾는 곳. 여기에 들어가려면 화랑을 거쳐 지하로 조심조심
내려가야 하고, 나갈 땐 반대편 계단을 통해 은행나무가 서 있는 돌담길로 슬
쩍 나와야 한다.
참으로 멜로 음악 같은 녀석. 마누라가 제일 좋아하지만 또한 제일 싫어하는
녀석. 내가 쳐다보면 고개를 얼른 딴 데로 돌리는 녀석, 나와 똑같은 안경을 걸
친 녀석.
오늘은 홀로 집 앞 포장마차에 나와 고 녀석과 술잔을 크게 주고 또 받고...
나의 위크 포인트
고것이 형편없다며, 아니 너무 작다며 내 고충을 제일 잘 알고 있는 마누라가
밤마다 괴롭혀오면 난 정말 죽을 지경이 됩니다.
형편없는 게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만 마누라가 베개맡에서 나의 제일 민감
한 포인트를 아예 노골적으로 불평해 오면 나는 결혼한 것이 정말 후회스럽습
니다. 더욱이 이를 개선할 돈도 없으니... 밤이 되는 것이 무서워집니다.
그러나 고렇게밖에 물려받지 못한 걸 어떡합니까? 그렇다고 옆집 아저씨에
견주고, 대학 동창들한테까지 비교하면 내 얼굴이 뭐가 됩니까? 난 또 어떻게
고개를 들고 거리를 다닙니까?
말이 났으니 터놓고 한번 얘기해 봅시다. 그것이 큰 게 좋다고 생각하십니
까?
그것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기능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으리으리한 기둥과 튼튼한 지붕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부
드러운 손, 따뜻한 가슴이 없으면 그건 말짱 헛것이에요. 그건 따뜻한 아랫목과
향기로운 이야기가 존재해야 진정한 의미의 그것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당신, 너무 큰 것만 좋아하지 마세요. 침실이란 작은 것이 더 따뜻하고 아늑
해요.
안 그래요, 침실이란?
나의 고지식함을 알았다
그의 말 속에는 의자가 있다.
형체가 있기도 하고 또한 없기도 한 의자.
그는 늘
그 의자를 들고 다니면서 고객을 만나고 손님을 접대한다.
어떤 때는 가끔 그 의자를 집에 놔두고 출근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집에서 그의 마누라가 이를 반들반들하게 닦아놓는다.
그는 줄곧 출세를 했다.
고속 출세를 하다보니깐 신호 위반도 많이 했다.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뛰다가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있다.
그럴 때에도 그는
그 의자를 봉투에 넣어 건네주고 위기를 넘겼다.
어느 날 나도 나를 한번 들여다봤다.
의자가 없었다.
밑에 관하여
나는 위보다는 밑을 사랑한다.
밑이 큰 나무, 밑이 큰 그릇, 밑이 큰 여자....
그 탄탄한 밑동을 사랑한다.
위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밑동도 다 넓은 것은 아니지만
참나무처럼 튼튼한 사람,
그 사람 밑을 내려가보면
넓은 뿌리가 바닥을
악착같이 끌어안고 있다.
밑을 잘 다지고 가꾸는 사람들....
우리도 밑을
논밭처럼 잘 일궈야 똑바로 설 수 있다.
가로수처럼 확실한 밑을 믿고
대로를 당당하게 걸을 수 있다.
거리에서 명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밑이 구린 것들, 밑이 썩은 것들은
내일로 얼굴을 내밀 수 없고
옆 사람에게도 가지를 칠 수 없다.
나는 밑을 사랑한다.
밑이 넓은 말, 밑이 넓은 행동, 밑이 넓은 일...
그 근본을 사랑한다.
근본이 없어도
근본을 이루려는 아랫도리를 사랑한다.
누드화를 바라보며
맨발로 걷는 그를
형편없는 기법이야
라고 비웃지 말아요.
황야에 깃들인 저 검은 숲을 보아다오.
쓸쓸한 구석에 저렇게
모닥불을 피워놓고
달군 봉으로 치는
종소리가 아름답지 않으오?
그 종소리가
가면들을 벗기고, 벽을
무수히
넘어뜨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으오?
그의 단풍
자꾸만 시비를 걸어오는 자가 있어 작성중이던 서류를 팽개치고 밖에 나와
있습니다. 창을 사방으로 달아주는 가을. 흔들거리는 것은 흔들거리는 만큼 내
영혼에 기대어오는군요. 그래서 난 안경을 고쳐 쓰고 뜰을 좀 걷기로 합니다.
눈과 귀를 온몸에 붙이고 낙엽처럼 뒹굴다가 그를 만나서 술집으로 갈 작정입
니다. 술안주론 그가 즐기던 프란츠 카프카, 에리카 종, 가스통 바슐라르를 시
킬까 합니다. 아니 벤치의 여자, 저 뱀껍질 같은 스타킹이 더 어울릴 것 같군
요. 혹 그가 지저분하게 이 따위가 뭐냐고 따지면 난 얼른 안으로 들어올 것입
니다. 더 근사한 안주를 구하러.
창 밖은 지독히도 누런 생각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는 오규원의 은행나무.
우리 집 트레이드 마크로는
우리 집에는 물려받은 두 개의 뿔이 있다.
하나는 내가 증조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끝이 뭉툭하나 찔리면 통
증이 매우 오래가는 뿔이다. 보이지 않아 만질 수가 없고 주로 밀어붙이는 데
에 용이하게 쓰인다. 이 뿔은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근질근질해
지고, 갑자기 힘이 솟는다. 신통한 마력 때문에 벽이 많은 이웃, 회사, 관공서
등에 갈 때는 머릿속에 꼭 이것을 담아 가고 싶어진다.
또 하나는 아내가 자기의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뿔로 조립형이다. 뾰족한
부분을 나사처럼 끼울 수도 있고 뗄 수도 있는 뿔. 신축성 있는 용도만큼이나
다양한 표정에 잘 어울린다. 따라서 양의 머리, 소의 머리, 공룡의 머리는 물론
이고 심지어는 여우의 머리, 뱀의 머리, 카멜레온의 머리에까지 잘 어울린다.
색깔이 알록달록하고 모양이 참 예쁘다.
그런데 우리 집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놀다가 쌈이 붙으면 종종 이걸 꺼내온
다. 한 녀석은 나의 뿔, 또 한 녀석은 아내의 뿔. 어떻게 찾아냈는지 이걸 꺼내
와 서로에게 겨눈다. 뭉툭한 뿔과 뾰족한 뿔로 서로 머리 맞대고 칼로 물베기
식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나는 이번 가족 대항 진기명품(珍奇名品) 대회에 이뿔들을 출품시킬까 한다.
모두가 들국화 시인이 되게 하라
이번 가을은 농부들 마음 위에서
귀뚜라미 울음 소리가 데굴데굴 굴러가게 하라.
그리하여 섬돌 아래에서 사발로 줍게 하라.
튕겨낼 듯 댓가지 휘고 있는 가을 과일들도
그 꽉 찬 결실만 생각하며 따게 하라.
혹 깨물지 못할 쭈그린 얼굴이 있거든
그것은 저 빈 들녘의 허수아비 몫으로만 남게 하라.
더 이상 지는 잎에까지 상처받지 않고
푸른 하늘과 손잡고 가고 있는 길 옆 들국화처럼
모두가 시인이 되어서 돌아오게 하라.
초가집이 보인다
그 집에는 문이 따로 없다.
그 집에 들어가려면
아무데나 밀면 되고, 또한
아무거나 잡아당기면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유별난 문이 따로 있는 것 같으면서도
출입문이 따로 없는 집.
야, 이런 집이 아직도 있을 수 있나?
지붕 위론 박넝쿨이 올라가고 있고,
울타리엔 개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집.
방에는 거미가 수없이 세들었지만
아직 향기로운 술독이 익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아랫목에까지 둥지를 틀어올 무렵이면
휘파람으로 달빛을 불러들이고
한 접시의 밤하늘을
술안주로 차려오는 집.
그를 열면, 그런 집이 보인다.
땅 위를 기어가는 것들에는
땅을 기어가는 것들에는
기둥에 붙들어맬 수 없는 고집이 있다.
황토밭을 달리다가 잠시 뒤돌아보는 고구마 순,
벽을 기어오르며 허공에 내미는 담쟁이손,
이것들에게는 허리가 꺾이고 발목이 묶이더라도
오로지 가고야 말겠다는 강인한 근성이
무섭도록 꿈틀댄다.
그 구불구불한 줄기를 들치면
대나무 뿌리 같은 손이 있고,
그 손 속에
들녘으로 나가는 어머니
호미자루가 쥐어져 있다.
꺾인 자리를 지우며 푸른 하늘을 향해
날개 펴는 새순 속에는 또
얘야, 손발이 부르트도록 땅을 뒤져 네게 올려주마 하시던
고무 신발 같은 말씀이 달리고 있고,
주렁주렁 열매 달린 묵은 순 속에는
딱딱한 매듭으로 남거나 삭정이로 부러지는
줄기의 마지막 모습이
아프게 숨어 있다.
땅을 기어가는 것들,
절벽을 기어오르는 줄기들에는
어둔 싹들을 이 세상으로 업어낸
아름다운 등이 있다.
하현달
어느 날 밤 마당가에서 서성이다가
나는 보고 또 보았다.
바람에 날리는 달빛,
돌아오지 못한 할아버지 흰 옷자락을.
잠 못 든 댓잎 소리, 싸락눈도 잘게 뿌리고 있었다.
그때 동네 대밭 머리 위로 떠오르던 하현달.
이윽고 우리 집 신발장 위로
싸늘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어릴적 무서운 그림자의
기억, 무서운 꿈처럼.
사납게 개 짖는 소리를 끌고 달빛이
집 대문을 막 넘어오고 있었다.
받아올 것이 너무 많아서였을까?
그 흔한 싸리울 하나 세우지 않고
주무시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 밤
까닭 없는 부름으로 대문을 나섰다
흰 고무신 두 짝만 남기고
맨발로, 맨발로.
그 뒤로
문고리를 꼭꼭 잠그셨다, 할머님은.
등잔불도 아예 치우고 누워만 계시다가
어둠이 되셨다, 할머님은 끝내.
누구의 부름을 받으신 걸까?
등불 없어진 자리처럼 허전한 우리 집.
마당가에 서서 문득 신발장을 다시 올려다 봤을 때
마지막 유언처럼 남아 빛나는 신발.
그 속엔
밝히지 못한 어둠이 있다, 읊조리며 시린 눈을 감았다 뜨면
마당 가득 쳐들어오는 시퍼런 물결. 그 무서운 기억의 달빛 속
싸락눈으로 나는 싸늘하게 깨어 서성이고 있었다.
가을은 그녀에게 다리를 놓아온다
다리(橋)는
철근, 시멘트, 포크레인
이런 것으로만 놓는 것이 아닌가 보네.
문득 창가에 핀 한 송이 국화가
건너편 베란다로 다리를 놓아오네.
아파트 담장 코스모스도
국민학교 운동회로 다리를 놓아오네.
가을 햇빛은
물든 은행잎을 징검다리 삼아
과수원 능금나무 위로 건너가고
능금은 그 집 둘째딸 입술에서 익네.
아이들 햐얀 운동화는 강에다 종이배를 띄워오네.
남대천 연어들이 떼지어 태평양에서 귀향하고
나는 그 다리를 거스르면서 고향에 전화를 하네.
오늘 이 계절이 놓아오는
제일 아름다운 다리를 건너서
그녀에게 가고 싶네.
아름다운 모퉁이에 관하여
모퉁이가 아름다운 건물을 보면
사람도 모름지기 모퉁이가 아름다워야
아름다운
입체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향기로운
내부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퉁이가 둥근 말, 모퉁이가 귀여운 사랑
이들에게는
한결같이 모난 부분을 둥그렇게 구부린 흔적이
바라보는 사람을 황홀하게 한다.
나는 이 아름다운 옆구리를 한번 돌아가보면서
모퉁이란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될
건물의 중요한 한 분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부까지 품위 있게 해주는
의식의 요긴한 한 얼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퉁이를 가꾸는 사람들...
경제학적으로 검토하면 비효율적 투자이겠지만
모두가 모퉁이를 가꾸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또 어디를 돌아가보고 살아야 하나?
향기로운 넓이와 높이를 가진 입체물들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뻥! 뻥!
뻥튀기가 유행하고 있다
대학 캠퍼스에, 경상도에, 전라도에, 대구 라코스떼 매장에, 서울 전경련 회관
에.
그 부풀린 얼굴들을 좌판의
일간 신문들이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사실도 저렇게 뻥튀기가 가능하구나 생각하니, 매우 심각하다.
아니다, 심각한 건 한 할머니가
그 푸짐함을 사서 어린 손주에게 진지하게 안겨주는 게 심각하다.
....그것이 뻥인 줄 알면서
아니다 아니다, 진짜 심각한 건
그 아이가 퉤 퉤 뱉어버리며 가고 있는 게 정말 심각하다.
....그것이 뻥인 줄 모르면서
뻥!
뻥튀기가 끝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뻥튀기는 끝나지 말아야 한다
그의 삶, 영원한 멸망을 위해서....
그들은 스크럼을 짜고 행진하는 속성이 있다
개미들을 무시하면 야단난다.
개미들에게도
사랑이 있고, 처자식이 있고, 나라가 있다.
떼지어 일렬로 행진하는 모습을 보라.
가족과 나라를 위해
검은 통바지를 입고 도로공사에 참여하는 아낙들 발걸음이다.
흙먼지 일으키며 현장으로 가는 트럭의 행렬이다.
거기에는 뉴딜정책이 있고,
테네시 댐공사도 있다.
흩어져 행동하면 초라해 보이고,
함께 모여 움직이면 두렵고 아름답게 보이는 모습.
규모의 경제학도 숨어 꿈틀댄다.
개미군단, 개미전략, 개미문화....
이 군집의 언어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한강이 영차영차 흐르고, 태극기도 자랑스럽게 펄럭인다.
저 시장 바닥을 부단히 움직이는 개미들,
넥타이를 매고 지하도에 줄 서 퇴근을 기다리는 개미들....
그 집단을 무시하면 야단난다.
도둑놈을 잡자
내 육체 속에는 도둑놈이 살고 있다.
나와 같이 눕고, 자면서 나를 은밀하게 괴롭히는 놈. 눈이 해야 할 일, 귀가
해야 할 일, 발이 해야 할 일,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 이런 것들이 적힌 행동
지침만 탐내 중요한 시기에 나를 꼭 당황하게 하는 놈.
요놈이 내 몸 속에서 이렇게 활개치고 다니는데도, 내 몸 밖은 참 평화롭다.
아니, 지극히 정상적인 하루가 연속된다.
하루하루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다보니 이놈은 자꾸 외부로 활동 영역을 확장
해 간다. 그래서 가끔 나의 웃음, 행동, 양심 이런 것들을 훔쳐다가 남에게 싼
값에 팔기도 한다. 이 돈으로 친구들과 단란주점에 가서 신나게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제일 두려운 것은 이놈이 남의 것을 슬쩍해 오는 것. 남의 말, 지식,
지위, 명예 이런 것들을 훔쳐올 때면 나는 두렵다. 들킬까봐 두렵고, 도둑놈으
로 영원히 낙인 찍힐까봐 두렵고, 나와 상관없는 이상한 사람이 될까봐 정말
두렵다.
요 얄미운 놈. 나와 똑같은 신발을 신고 있는 놈.
도둑을 막기 위해 영혼의 골목을 순찰하고 계시는 하늘나라 경찰 여러분!
내게서 요놈을 즉시 좀 체포해 갈 수 없겠소?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을 읽고 나서
백지에
시간, 공간
이라고 명사 두 개를 또록또록 써준다.
그랬더니 거짓말같이
시간의 마당 위에서
풀풀 먼지가 일어난다.
이번에는 한번 씨익 웃어준 다음
기둥, 지붕, 이엉
이런 이름들을 올려놓아 본다.
그랬더니 요것들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기 의도 대로
한 채의 움막을 훌륭하게 짓는다.
백지 속의 움막
얼마나 적요할까.
요번에는 내가
거기 누구 없소?
하고 외치니
한 할아버지가 쓱 나타난다
21세기 의상을 걸치고.
변환 스위치가 필요하다
좋은 사고를 제조하기 위해선
우선 작동이 잘 되는
변환 스위치가 여럿 필요하다.
관점을 신속하게 거꾸로 바꿀 줄 아는 reversal 스위치
진부한 상상을 버리고 컬러풀한 상상으로 이동을 모색하게 하는 po 스위치
적재적소에 디딤돌을 놓아 건너뛰게 하는 stone 스위치
무작위 대입을 통해 제 짝을 찾게 하는 random 스위치
고정관념으로부터 탈출을 모색하게 하는 dominant 스위치
흩어진 것들에 줄을 세우고 집단 체조를 시키는 combination 스위치.
자, 준비가 끝났으면 파워를 넣고
한번 시험 가동을 해보자.
원료로는
뚱뚱한 여자, 주근깨, 토종개, 달빛, 누룩, 청포도, 홍시, 장작불, 개오동 열매
잠시 경험, 지식, 정보의 작업라인이 분주히 움직이더니
창조적 접근만 허용하는 관리체계의 결재가 떨어졌다.
그리고 품질 좋은 사고가 제조되었다.
<토종개 한 마리, 검정깨 네 홉, 청포도 3kg, 누룩 두 되 가웃, 대추 한 사발
을
달빛에 발효시켜 가양주를 양조하겠다>는 개오동 열매 같은 시(詩),
허약체질과 발기부전에 특효인.
아직도 그곳에서는 추억과 교전(交戰)할 수 있다
나의 육신을 시골 마룻바닥에 업혀
여름 휴가를 아침부터 즐기고 있으면
내가, 전사한 무슨 시체라도 되는 양
파리들 착륙 소리가 분주해진다. 요놈들이
숲속을 은밀히 포복하며 지뢰 탐지기를
여기저기 대고 다닐 때면
어디론가 급히 구조 요청이 타전되고
어김없이 에프킬라가 등장한다.
그러면, 잠시동안 평화가 시작되고
마당에는 한낮의 태양이 조명탄처럼 걸리게 된다.
모든 것들이 엎드려 숨죽일 때,
내 육신이 점령해야 할 어느 들녘이라도 되는 양
이번에는
참새들이 중공군처럼 왁자지껄하게 떠들어오는 것이다.
안 되겠다 싶어 요놈들을 생포하려 하면
녀석들은 가지고 있던 무기들도 내팽개치고
후르륵후르륵 퇴각(退却)하고 마는 거다, 오후의 나른함 속으로.
종일토록 이 하찮은 미물(微物)들과 실랑일 땡기다보면
서산 어스름은 어느새 엉금엉금 기어내려 온다.
그러면 이번에는 내 차례를 받으라는 듯, 어디선가
쌩! 쌩!
날카로운 창을 던지며 새카만 복면의 모기떼들이
여름밤 깊숙한 곳까지 공격해 오는 것이다.
추억의 창(槍)을 밤하늘이 수없이 내게 날려오는 것이다.
누구나 별장을 지을 수 있다
나의 고정관념, 딱딱한 사고에도 이제 인테리어를 하자.
내 중심 대신에 고객 중심의 개념을 도입하고
우중충한 내부에도
조명과 색채를 끌어들여
좀 아늑한 입체감이 나도록 하자.
무엇이 문제인가를 먼저 살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비좁은 실내공간
함부로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문
늘 우울을 드리우고 있는 커튼과 날카로운 모서리
밑이 훤히 드러난 바닥과 낮은 천장
아무데나 걸린 싸구려 장신구
그리고 항상 여유가 없는 짜증스런 수납장들....
어떤 스타일로 꾸밀 것인가
내츄럴? 프로빈셜?
아니면, 엘리건트?
우선 인테리어 스타일을 정한 다음,
전체적인 조화와 통일을 생각해
날카로운 모서리와 벽을 허물고
의미없는 장신구들을 요령있게 재배치했다.
그리고 흡음과 보온에 알맞은 벽지를
유연한 성품의 풀로 발라
절제된 생각, 분재 한 그루와
은은한 배광의 조명으로 마무리했다.
실내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깊이와 넓이도 있고 향기가 감돈다.
고객들이 별장이야, 별장! 하며 어리둥절한다.
요즈음 가슴들에는 가짜가 많다
요즘 거리에는 가슴을 예쁘게 고치는 바람이 불고 있다. 큰 가슴, 탄력 있는
가슴, 봉곳한 가슴, 찔려도 되게 기분 좋은 가슴, 이승희 같은 가슴...
이런 가슴으로 꾸미기 위해 실리콘을 넣고, 가슴을 마사지하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 더욱이 밋밋한 가슴, 쭈글쭈글한 가슴까지 가세해서 유명 브랜드 브래지
어를 갖다 붙이고 성형 수술을 하는 유행도 생기게 되었다.
참 이상한 세상이다 부풀린 가슴, 위장한 가슴, 순 껍데기뿐인 가슴들이 저렇
게 거리를 당당하게 활보하는 것이.
저런 가슴들이 가짜라면 그것과 한핏줄을 나누고 있는 입도 가짜이고, 여기에
서 나오는 고매한 말도 전부 가짜임이 틀림없을 텐데, 우리는 왜 이렇게 가짜
에 속고 살아야 하나? 더욱이 가짜를 만지면서? 가짜 선행도 따지고 보면 축
처진 가슴이거나, 모두 말라빠진 가슴으로 귀착할 텐데...
그의 삶.
가짜 가슴을 달고 다니는 무수한 사람들 속에서 한 사람이 큰 가슴을 덜렁거
리며 걸어나오고 있다.
갑자기 세상도 덜렁거리고 있다.
군살을 유의하자
날씬한 행정, 날씬한 사고, 날씬한 말...
이들을 잘 살펴보면
수시로
자신의 몸을 비춰보는
거울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설사를 하게 하자
어제 나는 고스톱을 쳤다네.
쳐서 나는 망했고, 그것도 찌그러진 깡통처럼 망했고
망하다보니 정신이 번쩍 들어
도덕군자가 될 수 있었다네.
떨어져나와 차원 높게, 좀처럼 설사를 하지 않는
탐욕의 손들을
정치적으로,경제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네.
장난이 아니라 제 정신이 되고 보니
꿀꺽한 사람들은
꿀꺽하고 싶어도 꿀꺽하지 않고 참는 자를 위해
한 장을 뒤집을 때마다 찍, 철벅, 아이고
바닥을 기름지게 하는 소리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네.
판을 더럽힌 자들은
피박을 써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네.
아, 이 땅 칠싸리들 인생을 위해
고스톱을 치면서... 청문회를 보면서.
그 줄은 나를 부끄럽게 한다
제 몸통보다 더 큰
먹이를 물고 여섯 발로 뛰는 개미들.
그들 뒤에는 아름다운 줄이 꼬아져 있다.
앞을 향해 부단히 움직이고
가로막으면 금방 진로를 바꾸는 줄.
끝까지 따라가보면
외진 곳에 집이 있고
그 속에 꿈틀거리는 새끼들이 눈부시다.
야, 줄은 집에서 꼬아내는구나.
스스로 움직이고 진로를 바꾸는 줄은
결국 집 속의 새끼들이 꼬아내고 내 발목에도 묶여져 있는구나.
그 줄을 밟고 있으니
갑자기 다리 근육이 씰룩거리고 손까지 마비가 온다.
몸 속에서 꿈틀하는 줄.
나의 아이들이 나의 발목을, 나는 아버지의 발목을, 내 아버지는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발목을....
이렇게 묶어 꼬아낸 김氏 집의 줄도
저처럼 훌륭할까?
발목이 묶여 있는데도
지금 내 몸은 왜 이렇게 자유로울까?
생각하며 따라가 본 개미집
그들 뒤에는
폐가(廢家)를 기와집으로 가꾼 아름다운 줄이 꼬아져 있다.
벽
가려보고 드러내봐도 내 앞뒤 골목은 온통 벽이로구나. 한 발로 뻥 찼을 땐
여지없이 되튕기며 발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벽.
야, 벽에도 이단 옆차기가 있고, 돌려차기가 있구나. 속이 훤히 드러난 유리
벽이 있고, 보초를 세워야 하는 철조망 벽이 있구나.
그러면 벽에도 나이가 있고 학벌이 있고 지위가 있다는 것인데, 맘에 안 든
벽을 마구 감옥에 잡아넣는다면 누가 경쟁을 하나? 벽 없이도 세상을 이룰 수
있나? 우리들 마지막 버팀목이 벽이라면 벽 없이도 희망은 존재할까?
벽을 쌓으려면 스폰지를 넣거나 변경이 용이하도록 조립형으로 설계해야 하
리라.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견고하게 구축하더라도 잦은 발길질과 교묘한 철
거 전략에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벽은 융통성 있게 존재해야 하리라.
지금 나의 말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한 사나이가 망치를 들
고 힘차게 걸어가고 있다.
뉴질랜드에 가면 볼 수 있다
나는 양 한 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지능지수가 높고 조직생활에 익숙한 유럽산(産)으로 메리노 종이다. 草地 없
이도 마음속에 넓은 평원만 있으면 누구나 사육할 수 있는 양. 온화한 지중해
성 기후를 좋아하는 이놈이 생산해 내는 털은 참으로 부드러워 분위기 연출에
매우 효과적이다.
나는 이 양을 끌고 매일 출퇴근을 한다. 가끔 전철 속에서 요놈을 건드리는
사람도 있지만 이럴 때도 나의 양은 좀처럼 대응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 얼마 전 요놈이 양이라는 성품을 포기하고 예상을 뒤엎는 행동을 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발정이 난 것인지, 아니면 늘 바싹 조여 있던 짧은 고삐가 불만이었는지 그만
매어둔 말뚝을 뽑고 울타리를 뛰쳐나간 것이다. 나가서 평소 발길질이 잦던 직
장 동료 E씨를 냅다 들이받아버린 것이다.
깡통처럼 찌그러진 E씨. 뿔에 꽂힌 깡통을 두드려보니까 E씨 몸만 들이받힌
게 아니었다. E씨의 생각, 과거, 현재, 미래, E씨의 가족들까지 들이받아버린
것이었다. 뜻하지 않는 행동으로 볼썽사나운 구경거리를 제공한 나는 당황한
나머지 성난 양을 친구들이 잡아다 주는 것도 모르고 집으로 성급히 발길을 돌
리기에 바빴다.
며칠 후 나는 온순한 품종으로 평소 칭송이 자자했던 나의 양에게 일격을
당한 것 같아 이번 기회에 요놈의 뿔을 잘라버리든지 아니면 아예 내다 팔아버
리든지 할 작정으로 외양간을 손질하고 있는데, 별안간 E씨가 나의 외양간에
나타난 것이었다. 나보다 훨씬 품질 좋은 뉴질랜드산(産) 양을 몰고 와서 내게
아주 정중하게 사과해 오는 것이었다.
해체하면 수습의 길이 보인다
나는 얼마 전 한 여자로부터 참으로 가당찮은 요청을 받았습니다.
글쎄 제게, 털털거리는 자기의 바다를 고쳐주든지 아니면 아예 자기의 바다가
되어달라는 겁니다.
요구가 하도 복잡한 고물자동차 같아서 나는 그녀의 바다를 정비공장에 데려
가기로 하였습니다.
바다를 하나씩 뜯어내는 해체반에서 번호판, 문짝, 유리창, 바퀴, 그리고 색깔
순으로 한번 뜯어보았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몰골의 바다가 드러나더군요.
철근 같은 바다, 구멍 뚫린 바다, 구석기 같은 바다.
야, 바다도 해체가 가능하구나. 바다도 나사처럼 풀어지고, 복잡한 전선이 있
고, 찌그러지는구나. 더욱 놀란 것은 탱탱 녹슨 브레이크가 존재한다는 사실.
나는 한잔의 커피를 마시며 엔진반, 판금반에서 삐걱이는 부품을 갈아끼우고
찌그러진 부분도 말끔하게 펴주었습니다. 그리고 안전운행 정보와 함께 흐린날
앞이 잘 보이도록 윈도브러시를 정중하게 손질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 그녀는 벤츠 자동차 같은 바다를 몰고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어요? 중고이지만 실내공간이 넓고 아늑해서 아주 중후한 분위기까
지 풍기는.
공명(共鳴)은 마음의 조율부터
추풍령 아래서 30년 징소리를 다듬어온 김일웅氏,
울림이 없는 징도 그에게 가져가면
녹슬고 찌그러진 부분을 잘라버리고
일궈야 할 부분만 모루 위에서 야무지게 별러
소리에 새로운 옷을 입혀주고 모자를 씌워준다네.
그는 징에도 인격이 있다고 굳게굳게 믿으며
당기고 펴고 한 쇠에 징의 신체를 만들 때
이유없이 두들겨 맞는 고통일지라도
끝까지 참아내는 둥그런 가슴,
이를 승화하여 뱉어내는 입을
테두리로 세운다네.
그리고 가장자리가 가운데를 돕도록 하는
아름다운 내부공간과
약간 사무치도록 세선도 그려넣어
남 다르게 조율하는 것이
그의 비법이라네.
누구든지 그가 고쳐준 징에 몸을 한번 실어보면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소리,
몸소 실천해야 하는 소리를 커다랗게 듣게 된다네.
방
그 방은 창을 통해 안이 훤히 드러난다. 연둣빛 레이스 커튼을 드리웠고 널
린 브래지어가 한결같이 희망표이다. 고개를 들면 갤럭시 손목시계, 악어가죽
핸드백이 한눈에 확 들어온다. 바닥은 아담하고 천장은 유난히 높고 알록달록
한 박달나무 숲속 같은 분위기가 달려오는 방. 저렇게 꾸미는 데는 몇 년이 걸
렸을까. 그 방에 닿으려면 창동역에서 도봉산 쪽으로 날아가는 화살표를 두 번
따라가야 하고 909국 다이얼을 돌려야 한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만큼 그 방 밖도 늘 매혹적이고 불안하다. 항상
불이 켜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불이 꺼져 있으면 그 방 밖은 가을이고 수상하
다. 그리고 낙엽이 뒹굴고 바람이 불면 그 방은 사정없이 흔들린다. 방은 흔들
릴 때가 아름답다. 흔들릴 때마다 굳게 잠긴 자물통이 침묵의 장식처럼 중심을
잡아주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돌아다보면 그 방은 다시 불이 켜진다.
참으로 이상한 방. 한번 쓱 들어가 맘껏 뒹굴어보고 싶은 방. 브래지어가 창
인 그녀.
숲
어느 날 숲에 들어서서 보았다,
가난한 영혼들이 서식하는 모습을.
큰 나무는 작은 나무를 깔보지 않고
작은 나무는 더 작은 나무에 군림하지 않았으며
외로운 마음은 외로운 마음들끼리
울타리를 치지 않고 살아가는 마을을.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아랫집에서 윗집으로 받아올리는 웃음 소리가 있고,
윗집에서 아랫집으로 받아내리는 눈물 소리가 있다.
그리고 함께 쓰러졌다 일어서는 합창 소리가 들린다.
아, 그 숲에 발 딛고 있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우리 숲에서는 누가 그 아름다운 합창 소리를 쫓아버렸는가.
자작나무는 자작나무끼리
대나무는 대나무끼리 모이게만 하였는가.
어느 날 숲에 들어서서 보았다,
우릴 부끄럽게 하는 어깨를.
숨쉬는 푸른 평화를.
가을이 우리를 재촉하고 있다
이제 그만 툭툭 자리를 털고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가을이 문턱에서 가볍게 노크해 올 때.
대지는 한여름의 열을 뿜고
초록은 아직 꿈속을 헤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간에 우리는 벌떡 일어나
풀어논 생각들을 서둘러 거두어야 한다.
한결 부드럽게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불어와 창(窓)들을 끝없이 열어놓고
대문 바깥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모든 것들이 새로운 출발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
들녘도 새로운 손님들을 마중나가는 시간,
이런 시간, 이런 지점에 갇혀 우리는
언제까지 취하여 있을 수는 없다.
다음 계절에 지각하기 전에
아쉬운 기억들이 옷깃을 잡아도 우리는
곤충처럼 눈을 부릅뜨고
등불을 하나씩 붙들고
깨어 있어야만 한다.
문턱 앞에는 벌써
한 송이 국화가
우리에게
가을을 온몸으로 던져오고 있다.
천정
푸른 하늘
물론 시베리아 고기압의 팽창 현상이겠지만 저 광활한 공간 위에 저렇게 아
름다운 문양이 담긴 천정을 내게 띄우는 자, 그는 누구일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소나무가 울타리처럼 둘러싸인 집, 그 집에는 한 할아버지가 학처럼 살고 있
다는 것이다. 그는 의사로 그 동안 모은 재산을 어두운 곳에 나누어 주고, 지금
은 이곳 외 딴 집에 홀로 깃들여 날마다 낡은 성경책이나 넘기며 기우는 책상
에 앉아서 어디론가 정성껏 편지를 쓴다는 것이다.
가끔 낯선 얼굴들이 이곳에 나타나곤 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목발이거나, 혀
가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뿐이었다.
그들이 오는 날이면 늦은 밤까지 해가 질 줄 모르고 등불 다는 소리가 들려
오는 집.
여기에서 그들은 허물어져 가는 한쪽 하늘을 고치며 할아버지와 어떤 이야기
를 나누었을까? 그 이야기에 담긴 문양은?
궁금해 방문을 사알 열면 그 동안 받은 답장이 얼마나 쌓였는지 책상을 넘고
지붕을 넘어 한없이 한없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아버지
는 좀처럼 볼 수가 없고 단지 쌓인 편지 속에서 날개를 펴는 학만 어렴풋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천정! 그래 높은 곳에 얹혀 있는 것만 천정이 아니리라. 저처럼 하늘로 조용
히 올라가고 있는 것도, 아니 머리를 바닥에 수그리게 하는 것도 천정이리라.
향기로운 항아리를 하나 빚고 싶다
뚝배기 같은 사람들이 흔한 시대, 나는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뜻이 잘 통하는 한 친구를 만나면
참으로 아름다운 항아리를 하나 빚고 싶다.
혼자로는 만들 수 없고, 둘이 노력해야
아늑한 문양과 향기로운 공간을 세울 수 있는 항아리.
그 보이지 않는 항아리를 빚는 데에
처음부터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질 리 만무하겠지만
나를 먼저 죽이고, 모난 모서리를 허물면
부드러운 손이
내게서 그에게로 가고, 그에게서도 내게로 오리라.
그 손에는 서로의 아픔과 슬픔이 쥐어져 있어서
문양의 색상과 내용도 다양하게 구성하리라.
그러나, 완성을 위해선 결코 서두르진 않으리라.
어쩌면 그와 나는 이 세상에선 영원히 빚지 못 할지 모른다.
어느 한 사람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그 완성을 이룰지 모른다.
심성이 정말로 진흙처럼 고운 한 친구를 만나면
나는 청자 같은 항아리를 하나 빚고 싶다.
문양이 아름다운 항아리, 향기가 영원히 남는 항아리.
남들이 부러워하는 국보급 항아리.
그녀를 만날 땐 육체의 즐거움을 먼저 생각하라
<안정숙>이란 문패가 붙은 집에는
두 세대가 산다.
1층에는 <안정숙>의 영혼이,
2층에는 <안정숙>의 육체가.
그런데 둘 다 같은 전세금을 내고 세들었는데도
주종이 확연하다.
2층은 1층을 통해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고
1층은 2층의 소란까지도 간섭을 한다.
즉, 영혼은 바닥에 가까이 살면서도 모두 주인 행세를 하고
육체는 하늘 가까이 살면서도 모두 하인 노릇을 해야 한다.
이렇게 불공평하다가 보니깐 어느 날
1층과 2층 사이에 싸움이 붙었다.
영혼은 육체가 자주 외출하는 것이 문제였고,
육체는 영혼이 너무 고고한 척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결국, 육체가 영혼을 냅다 업어치기로 고꾸라뜨려버렸다.
그러곤 영혼을 집에서 내쫓아버렸다.
영혼이 없는 안정숙 의 집,
그 집은 이젠 주인이 바뀌게 되었다.
육체가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었다. 따라서
안정숙 의 집을 방문할 땐
당분간
육체가 즐거워하는 선물을 들고 가야 한다.
가을 하늘
누가 쓴 편지일까?
거미가 소인을 찍고
능금나무가 저렇게 예쁜 우표를 붙인.
에프킬라를 뿌리며
자꾸 귀찮게 굴면 나는 더 이상 못 참는다.
모기, 너희 복면의 족속들.....
무리를 지을 테면 지어봐!
괴롭히려면 더 괴롭혀봐!
무더위가 쏟아지는 날이면
유독 극성스레 덤비는 놈들을 향해
나는 에프킬라를 들고 벌떡 일어나
시퍼렇게 눈빛을 뽑는다.
단숨의 분무에 상황이 갑자기 안개가 되면
어디선가 쿨룩쿨룩 기침 소리가 들려오고
발광하며 흩어지는 무리들.
몇몇은 농짝 사이에 머리를 박거나
거미줄에 붙잡히거나 하지만
대부분 구석의 변사체로 사라진다.
순간의 평화를 위해
나는 잠시 이성을 잃었지만
다음날 아침 쓰레받기에
너희들 죽음을 쓸면
우리들 과거가 왜 그렇게 쓸쓸해지는지.
갑자기 나의 혀는 또
왜 그렇게 딱딱해지는 것인지.
모든 고향에는 무지개가 뜬다
버들강아지를 꺾어들고 앉아서
휘파람을 불면
해안선, 보리밭, 대숲
이들을 보듬고 도는 하얀 시내가 보이고,
닭들이 꿩으로 날아가는 소리도
동구 밖까지 들린다.
그리고 나의 노래가
끝나는 부근에
살구나무 한 그루가 휘어진 가지를
이웃집 담장 너머로 드리운다.
이곳에서는 골목도
꼬부라지고, 그 꼬부라짐 속에서
아이들이 연달아 탄생한다.
탄생하다 그친 곳에서
개구멍과 헌 길이 시작되고, 새 길이
꿈틀꿈틀 올라가는 언덕 위에
무지개가 뜬다.
눈물이 많은 영혼 속에서만 뜨는 무지개.
그리운 옛집
옛집은 누구에게나 다 있네. 있지 않으면 그곳으로 향하는 비포장 길이라도
남아 있네. 팽나무가 멀리까지 마중나오고, 코스모스가 양옆으로 길게 도열해
있는 길. 그 길에는 다리, 개울, 언덕, 앵두나무 등이 연결되어 있어서 길을 잡
아당기면 고구마 줄기처럼 이것들이 줄줄이 매달려 나오네.
문패는 허름하게 변해 있고, 울타리는 아주 초라하게 쓰러져 있어야만 옛집이
아름답게 보인다네. 거기에는 잔주름 같은 거미줄과 무성한 세월, 잡초들도 언
제나 제 목소리보다 더 크게 자리잡고 있어서 이를 조용히 걷어내고 있으면 옛
날이 훨씬 더 선명하게 보인다네. 그 시절의 장독대, 창문, 뒤란, 웃음소리....
그러나 다시는 수리할 수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집. 눈이 내리면 더욱 그리워
지는 집. 그리운 옛집.
어느 날 나는 전철 속에서 문득 나의 옛집을 만났다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나의 옛집이 아니었네.
그녀가 서성이고 있다
산들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뜰도 잠을 깨는지 술렁거립니다.
누구에게나 다 뜰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산들바람은
뜰이 있는 사람에게 조용히 다가와
창을 두드립니다.
온통 뜰밖에 가진 것이 없던 시절
내게, 앞뜰을 차지했던 산들바람이 있었습니다.
가끔 문고리를 잡아당기고 방으로 들어와
외투를 벗으며 웃기도 하였는데
머리칼이 얼마나 부드럽고
목소리가 또 얼마나 곱던지
나는 이 앞뜰 산들바람과 손을 잡고
산보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기분이 여간 상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나의 뒤뜰을 한번 나가봤더니
또다른 산들바람이 뒤뜰을
더 아름답게 배회하고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나는 뒤뜰 산들바람을 가꾸며 살기로 하였지요.
그러나 오늘, 뒤뜰 산들바람이 외출중인 오늘
내 추억의 속옷들은
너무나 신나게
앞뜰 산들바람에 재주를 넘고 있습니다.
연출은 눈에 띄지 않아야 효과가 크다
남들은 거울 밖에서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몸을 다듬는 데 반해 그녀는 거
울 안에서 옷을 입고, 몸을 다듬고, 화장을 한다. 그리고 그녀는 거울 속의 그
녀를 앞세우고 다니며 인사를 하고, 사람들을 만난다.
그녀의 연출법은 너무나 독특해 아무도 흉내낼 수 없지만 그녀와 조용히 이
야기를 나누다 보면 값비싼 화장품, 바지, 신발, 모자, 스카프 이런 것들을 거울
안으로 분주히 가져가는 그녀의 손도 볼 수 있다.
카멜레온 같은 그녀. 징그러울 정도로 커튼을 잘 치는 그녀.
그러나, 그녀의 방에 들어가면 직접화법을 간접화법으로 바꾼 무수한 말의 껍
데기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녀의 초라한 알몸도.
가을은 나의 정원을 들여다보게 한다
부단히 굴러가는 내게도 자동차 트렁크 같은 공간이 있네. 나를 기쁘게 슬프
게 했던 공간. 나는 그 안에 많은 것들을 싣고 구르네. 가파른 언덕을 오르거나
내리막길을 구를 때도 나는 가끔 거기에 앉아 쉬거나, 아쉽게 거기를 뒤돌아보
면서 길을 가고 있네.
트렁크가 크다고 실을 것이 반드시 많다고 볼 수 없듯, 공간이 넓다고 해서
실려 있는 것이 다 많은 것은 아닌가 보네. 나보다 몇 배나 더 큰 공간을 가졌
던 그, 그 큰 공간을 만들기 위해 파리로 홀로 유학을 떠났던 그. 그에게 한번
들어가 보면 그의 공간은 텅 비어 있네. 단지 프랑스産 창문과 커튼만이 펄럭
일 뿐. 그러나 그는 커튼과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길을 가고 있네.
밖에 있거나, 안에 있거나 하는 공간.
그는 밖에다 탑을 세워 그 공간을 공원처럼 가꾸지만, 나는 안에다 화초를 심
어 정원처럼 가꾼다네.
오늘은 그 정원에 국화가 만발했네. 나는 그 국화 한 송이 꺾어들고 지금 마
구 무너지고 있네.
틈만나면 그것은 누군가를 노린다
남들은 손톱을 기르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손톱을 바싹 깎지 않으면 불안합
니다. 손톱 밑에 새카만 때가 낄까봐 불안하고, 나의 나태가 누구에게 들킬까봐
서 불안합니다. 그래서 정장을 할 때면 나는 불안해서 한번 깎고, 불안하지 않
아서 다시 한번 깎습니다.
자주 깎지 않은 손톱, 뾰족한 손톱은 손톱 이상의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걸
아침 신문을 펼치고 나서 또 알았습니다. 날카롭게 세운 손톱들이 신문에 가득
들어 있었고, 그 손톱들이 나의 출근길까지 불안하게 했습니다. 상대방의 허점
을 겨냥하고 있는 정치면의 손톱. 자신의 볼록한 배만 한없이 긁고 있는 경제
면의 손톱. 세상의 상처를 다시 헤집고 있는 사회면의 굶주린 손톱. 그리고 직
장에 얼굴 없이 존재하는 교활한 손톱들.... 사실은 우리 집 그녀의 아픈 가슴도
언젠가 내가 그녀를 날카롭게 할켰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손톱을 깎기로 합니다, 부드럽고 예쁜 악수를 건네기 위해. 거울을 보고 한번
깎고, 책상 위에 꽂힌 꽃을 보고 한번 더 깎기로 합니다. 몹시 화가 났을 땐 조
용히 성경을 한번 읽고 나서 깎기로 합니다.
입구가 숨겨져 있을수록 여자는 아름답다
그 집에는 채광량이 풍성한 북구풍 창이 달려 있다. 40년 낡은 외관이지만
창을 열면 현관에 한 남자가 깜박 잊고 간 남색 우산, 실내악처럼 조용히 흐르
는 통나무 무늬의 마루, 밤마다 색깔을 바꾸어 다는 천장, 독특한 방법으로 난
방이 되는 방바닥, 바로크식 가구들과 장신구들이 북구풍 햇빛을 받으면 분위
기가 자못 황홀해진다.
거기에도 기상 변화가 가끔 있는지 검은 구름이 걸리고, 비가 들이치는 날이
있다. 이럴 땐 대부분 살짝 열린 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천장의 등불을 흔들고
덧창을 열어놓기도 한다. 작은 창이지만 덧창에는 의외로 넓고 깊은 것들이 들
여다 뵌다. 사계절처럼 변화가 뚜렷한 고독의 색깔, 담쟁이넝쿨처럼 무성히 벽
을 타고 오른 외로움, 혼자 마시다 놔둔 찻잔의 식은 그리움, 방바닥에 벗어논
주인의 외부와 양주병 속에서 잔을 기울이고 있는 주인의 쓸쓸한 내부.
가끔 창을 닦고 청색으로 갈아끼우는 집. 옆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기웃
거리는 집, 그녀에겐 입구를 좀처럼 찾을 수가 없네.
뷔페식으로
김진영전(展)의 작품들을
뷔페식으로
다양하게 감상하려면
감상 전에 우선
와인이나 꼬냑으로 입맛을 돋구는 게 중요하다.
감상은 조금씩, 자주 하는 것이 좋고
처음부터 자극적이거나 딱딱한 감상은 피한다.
감상할 부위는 접시에 깨끗이 담아서,
둥그런 것은 포크로 찍어서 한다.
취향에 맞는 소스와 드레싱을 선택하고 게걸스런 감상은 금물
주(主)감상 다음에 디저트, 커피를 즐길 수 있다는 걸 명심해
해변을 거닐듯, 오솔길을 산책하듯 감상한다.
자, 준비가 끝났으면 같은 방식으로
봄, 여름이 밤낮없이 빚어 출품한 저 가을 예술품들....
능금, 코스모스, 벼이삭, 홍시, 들국화, 홍엽들을
그대 품처럼 황혼 속에다 머리를 디밀고 감상해 보자.
그곳의 장수에는 비빔밥이 최고다
인스턴트 비빔밥을 만들어보자.
비빔밥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지만
초보자라도 맛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재료로 알록달록한 마음과
임기응변만 준비되어 있으면
누구나 쉽게 도전해 볼 수 있는 메뉴.
우선, 뻣뻣한 말들은
시금치와 콩나물처럼 데쳐서 순을 죽이고
가슴속 응어리는 깨서 계란처럼 지단을 부친다.
예쁜 용기에 재료를 색색깔로 얹은 다음
고추장이 중요,
시뻘건 마음이 전체를 포장할 수 있도록
넉넉히 퍼 넣고
고소한 맛이 나도록 감사의 변(辯)도
그 위에 참기름처럼 뿌린다.
한두 가지 재료가 빠져도 되고
대신 더 값비싼 재료가 있으면 이를 응용해도 좋다.
자, 인사(人事)철 그곳의 장수에 좋은 비빔밥이 만들어졌다.
세 병을 마시면 엉겅퀴꽃이 핀다
내가 마시는 두 병의 술,
그 속에는 아름다운 섬이 있다.
두 병을 들이키면
그 섬에서 해가 뜨고, 한 여자가 옷을 벗는다.
그러나 내가 세 병을 뒤집으면, 없다.
섬도, 옷 벗은 여인도.
내가 넘어뜨리는 술병들....
그 볼링핀 같은 말들 사이에
세계가 있거나 없거나 한다. 그 세계는
잔에 부어 다양하게 건네보면 안다. 따라서
세계가 없는 것은 죄다 콜라병이거나, 빈 좌석이다.
나는 어제 두 병과 세 병 사이의 세계에서
한 여인을 섬으로 유인했고, 그리고 그녀의
봉곳한 가슴을 만졌다. 거칠게 만지다가 가끔
두들겨맞기도 하였지만....
아름다운 섬에선 늘 황제로 군림해 왔던 나,
어제의 나를 위로하러 오늘도 나는
다시 또 두 병과 세 병 사이의 세계를 서성인다.
그러나, 아무리 다양하게 한 병, 두 병을 뒤집어도
어제의 나를 만날 수가 없다. 다만 아침 해장국 끓여주던
한 여자의 엉겅퀴 같은 얼굴을 별안간.....
슬픔도 가꾸면 재산이 된다
귀하게 얻은 슬픔이란
뿌리가 잘 썩는 분재 같아
고운 흙으로 분갈이를 해주지 않으면
내부공간을 심하게 망가뜨린다.
따라서 내부공간을 가꾸기 위해서는
보습용 물레방아, 흔들의자를 들여놓고
대(竹)발로 밖을 차단해 놓은
마음의 베란다 한 켠이 필요하다.
자주 눈길을 주며, 웃자라거나
삐져자란 슬픔을 다듬을 수 있도록
예쁜 창도
안으로 달아놓아야 한다.
잘 보살핀 슬픔, 옹이가 곱게 앉은 슬픔이란
거실, 현관, 정원, 옥상 어디에 내놔도
주변을 깊고 넓게 변하게 한다. 값 비싼 난(蘭)처럼
진한 향기를 감돌게 하고, 조용한 숲속으로 바꾸어준다.
저기, 슬픔을 방치해
내부공간이 헛간처럼 망가진 사람이
내부공간 밖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외딴 집
누구 계세요?
도(道)를 닦고 있소!
그럼, 道 계세요?
들어와요!
파랑새 극장에 가면 최영규를 만날 수 있다
남양주 조안면 송촌리 덕촌 마을에 가면
양수리 향어 비늘 같은 돌 너와집이 한 채 있다.
대문의 보초를 은행나무가 서고, 강아지가 낮잠을 즐기는 집.
그는
모나지 않는 지붕처럼 늘 주변환경을 중요시한다.
강바닥을 주어와 낮게 포갠 담
옆집 헛간, 앞집 지붕, 강 건너 러브호텔들이
담 위를 맘대로 넘어와도
그냥 붙들고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뜰.
그는 넉살이 너무 좋고,
아무리 높은 벽이라 할지라도
담쟁이넝쿨처럼 간단하게 허물어버리는
징그러운 재주도 한쪽 모퉁이에 키우고 있다.
그러나, 그는 긴 마당에
질경이들까지 제멋대로 행세하게 내버려두는 중농주의자(重農主義者)이지만,
그의 내부는 놀랍게도
저축통장, 이자 납입 고지서 등이 흩어져
자기 주장을 확실히 하고 있는 중상주의자(重商主義者)다.
매월 셋째주 월요일 19시,
동숭동 파랑새 극장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알몸의 대화를 위하여
옷을 벗었다, 팬티까지.
남의 팬티까지 빌려서
벗었다. 그런데도 벗을 옷이 또 있나?
답답하다. 답답하다는 건 아직
알몸이 되지 못했다는 증거요,
더 벗어야 한다는 옐로 카드일 게다.
그러나 옷을 벗지 못하는 사람들,
영혼에까지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모피를 걸친 사람들....
자신은 더 두껍게 껴입으면서
남보다 먼저 양말을 벗으라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하고는 같이 목욕탕에 갈 수 없겠죠?
같이 그것을 덜렁거리며 레슬링을 할 순 없겠죠?
자, 옷을 벗어봅시다요 조금 부끄러워하면서
아니, 크게 자랑스러워하면서
일단 벗고 나면 생각이 한결 가벼워지리라.
시야도 넓어져
끝까지 벗지 않는 자들의 뒷모습,
그 추하고 초라한 미래까지 잘 보이리라.
거미줄을 바라보며
그가 저렇게 그네를 탈 땐 모기나 풍뎅일 노리고 있는 게 아니리라. 저 슬픈
석양,그 아래 마을 골목을 적시고 있는 노을의 사연을 칭칭 얽어두고픈 그리움
에서이리라.
그가 신문에 출현하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그는 어두운 골목에서
불량아, 깡패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의 갑작스런 잠적도 세상에서 영원한 추방
으로 여겨 골목에서 삭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웃음이 신문에 출현해 사람들을 30년 만에 다시 깨웠을 땐 그는
이미 유명한 소리꾼이었다. 남의 집 잡부였던 어머니와 함께 북채를 쥐고서 서
로의 고달펐던 배경이 되고 있었다.
오늘은 그가 어머니를 업고 아름답게 그네를 타고 있다. 함께 눈시울을 붉히
며 앞산, 개울을 건너와 어두웠던 골목을 어루만지면서 마을 사람들을 그 아래
로 불러내고 있다.
임진강에서 다시 바라보다
어릴적 고향 마을 한가운데에는
앞 마을과 손 꼭 잡고 살아가게 하뎐
다리가 하나 있었네.
부엌 부지깽이 안부까지 서로 오가던 다리.
그러나 어느 때일까?
태풍 몰아치던 어느 날
무섭게 달려오던 홍수가
그 다리를 걷어가 버렸네,
아주 깡그리.
그래서 두 마을은 갑자기 멀어지게 되었네.
얼마나 넓고 깊게 소용돌이쳤던 산천의 눈물이었을까?
어느덧 나도 빳빳하게 콧수염만 돋아
쉬 놓이지 않는 다리의 마을에 앉아서
몽상 속 이쪽저쪽에 아름답게 걸쳐 있는
그 다리를
다시 바라보고 있네.
한없이 안타까운 가슴을 꺼내 흔들며
두 마을 소식을 건네는 억새꽃이 되고 있네.
나무 밑동을 싸며
나는 지금 나무 밑동에다
붕대를 감고 있다.
바람 부는 가을
물드는 황혼의
머언 기억 밖에서
내 슬픈 언어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들어 오고,
아직 닿아보지 못한 길의 끝이
어둠 속으로 잠겨갈 무렵,
가물가물 다가오는 시간의 얼굴을
내 손은 어루만지고 있다.
자꾸만 흐려지는 하늘 밖
능금들은 구름을 따라가고 있다.
그때 무어라 일러주고 가는 얘기들.....
물들지 못한 나의 뜰엔
몇 잎 은행잎도 펄럭이고
헐벗은 나무의 상처가 더욱 헐고 있다.
아, 이렇게 뼈마디 쑤셔오는 것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오늘도 나는 한 잎의 엽서를 입에 물고
그대의 뒷모습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
문득, 낯선 거리를 헤매다 온 바람이
소맷자락을 흔들고 간다.
나는 그 바람이 놓고 간 싸늘함을
내 나름의 은밀한 솜씨로 싸매고 있다.
포근히 옷깃을 여며주고 있다.
저물어가는 계절, 모든 밑동에서
온갖 추억은 눈 뜬다
나는 지금 그 뼈아픈 상처의 시간대(帶)에
붕대를 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