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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64) 2024. 5. 1
다윗의 메시아 예언
사무엘하 23:2-7
지난 시간 우리는 다윗은 마지막 시편을 통해서 다윗이 스스로 정리한, ‘자신의 정체성’을 살펴보았습니다.
1절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첫째, 다윗은 자신을 ‘이새의 아들’로 소개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에 의해 ‘높이 세워진 자’로, 즉 미천한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였습니다.
셋째, 자신이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임을 고백하였습니다. 야곱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동일시하며,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신 하나님이 자신에게 기름을 부어주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심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의 ‘희로애락’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찬양하는 삶을 살았음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를 통하여>
그리고 이어진 2-7절에서 아주 중요한 예언의 말씀을 남깁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새의 집안에서 목동으로 살던 자신을 높여 주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신 배경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관심(시선)은 단지 다윗 개인을 높여 주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인생을 훌쩍 뛰어넘어서 그의 후손을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날 메시아를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먼저 다윗은 자신의 예언이 자신의 말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2절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먼저 다윗은 지금부터 전하려고 하는 말이 자기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자신을 통하여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즉 자신의 입술을 주장하는 주체가 자신의 감정이나 의지가 아니라, 여호와의 영, 곧 ‘성령’임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즉, 지금 자신이 성령의 완전한 지배하에 있음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예언이 신적(神的)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근거요 충분한 조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 비단 본 다윗의 예언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 66권이 모두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음을 믿습니다.
성경은 무려 1,500여 년에 걸쳐 전혀 다른 환경, 다양한 직업, 각양의 신분을 가진 여러 사람(40여 명)에 의해 기록된 책입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시, 역사, 편지..).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모두가 하나의 통일성을 가지고 지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 모순이 없이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예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은 오신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책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사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세우는 능력이 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딤후3:16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의 정경화 과정(正經化 過程) 성경의 정경화 동기는 마르시온 등 이단들이 성경을 임의로 만들어 교회를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 황제가 기독교 박해 정책으로 성경을 없애려고 하여 어떤 책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책인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었다. (1) 성경의 정경기준(正經基準) 주후 397년 카르타고에서 열린 교회 회의에서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구약 성경을 모두 공식으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교회 회의는 “이 66권의 정경 외에는 어느 것도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에서 읽힐 수 없다”고 선포하였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① 유일신 하나님만 예배하라고 가르치고 있는가? ② 그 책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를 포함하고 있는가? ③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도 그것을 정경으로 인정했는가? ④ 그 책이 성령으로 영감 되었다는 증거가 있는가? (2) 구약의 정경화 과정 - 구약성경은 일찍부터 두 언어로 전승되어 왔다. 하나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기원전 3세기부터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된 그리스어 역 구약, 일명 칠십인 역(LXX)이다. 유대교에서는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군에 의해 파괴된 후 '얌니아'라는 지방에 있던 예쉬바(Yeshiva)라고 불리는 유대인 랍비들의 아카데미에서 구약성경의 정경을 결정하는 문제가 논의되었다. 요한난 벤 자카이라는 랍비가 주도한 이 아카데미는 어떤 책들을 '거룩한 책'에 포함시킬 것인가로 의논한 끝에 히브리어로 쓰인 39권의 책만을 구약성경의 정경으로 공식 선포하였고, 이후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편, 초기에는 히브리어 구약성경보다는 그리스어 구약성경(칠십인 역)을 경전으로 받아들였는데, 거기에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에는 없는 소위 외경이라고 하는 책들이 더 편집되어 있었고 그것이 그대로 천주교의 경전이 되었다. 천주교에서는 1546년 트렌트 회의에서 그리스어 외경을 히브리어 성경에 들어있는 39권 책과 동일하게 영감받은 권위 있는 제2의 경전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종교개혁 당시부터 외경의 경전성 문제가 논의되다가, 39권의 책만을 구약성경의 정경으로 결정되었다. (3) 신약의 정경화 과정 – 현재의 신약성경 27권의 목록이 최종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367년이 되어서다.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367년에 쓴 그의 부활절 기념 서신에서 우리의 27권의 책들을 구원의 근원들로 제시하고 있으며, 정경 안에 포함하고 있다. 이 시기에 기독교 정경의 개념이 충분히 정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교회에서 거룩한 성경으로 읽혀야 한다는 정경의 원리를 명시하며 신약 27권의 목록을 확인하였고, 종교 개혁자들이 제기한 정경 문제에 대해 1546년 트렌트공의회에서 27권의 정경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
<이스라엘의 반석이신 하나님>
그러면 다윗이 여호와의 영을 통해 받은 내용은 무엇입니가?
3~4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4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먼저 다윗은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의 반석’이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에게 있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근거와 배경이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마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주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처음부터 세워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았다면 역사의 엄혹한 과정에서 벌써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영적 이스라엘’이라 할 수 있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내용이 마16장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놀라운 대답을 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고 천국 열쇠를 맡기셨습니다.
베드로라는 한 개인을 반석으로 삼으시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신앙고백, 곧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이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반석’이라고 고백하듯이,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를 ‘교회의 반석’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는 어떤 분>
그리고 하나님은 장차 오실 메시아가 어떤 분이신지를 예언하게 하십니다.
첫째, 그분의 통치 스타일을 말씀하십니다.
3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먼저 사람을 대할 때는 ‘공의’(just)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통치하기도 하고 재판을 겸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현대사회에서는 행정권과 사법권이 구분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도 고을 원님이 재판도 하고 통치도 하고 다 했습니다. 게다가 군사권까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공의’로 다스린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차별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재판을 굽게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신분, 빈부, 성별, 외모 등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하고, 또 재판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대하셨습니다. 기득권 세력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그 시대의 약자들의 권위를 세워주시고 그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나아가 십자가의 복음을 유대인의 복음이 아닌 열방의 복음으로 확장하셨습니다(구원에서 제외된 사람이 없도록).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또, 하나님을 ‘경외’(fear)함으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시는 이유를 설명한 내용입니다. 스스로 의로운 존재라서 공의로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즉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고자 공의로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고자 애쓰신 분이십니다.
둘째, 그분의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새 시대를 예언하여 주십니다.
4절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돋는 해의 아침’, '구름 없는 아침',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이 의미하는 바는 옛 세상(질서)가 물러가고 새 세상(질서)이 도래함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실제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오신 후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율법의 시대가 가고, 복음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예수님은 ‘새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그렇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세상의 질서가 아닌 하나님의 질서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선언하였습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 장차 오실 메시아가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 시대가 어떤 시대가 될지를 정확하게 예언한 것입니다.
<영원한 계약>
다윗은 이 말씀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힙니다.
5절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여기에서 첫 부분은 분명한 오역입니다.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라고 하면 마치 ‘다윗의 집’ 즉 ‘다윗의 왕조’가 모든 백성을 공정하게 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통치자의 집안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윗이든 솔로몬이든 아니면 그 후에 이어지는 왕 중에서 이와 같은 설명에 완벽하게 맞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영어로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오실 메시아가 어떤 분이신지를 예언하게 하십니다.
“Although my house be not so with God; yet he hath made with me an everlasting covenant….”(KJB)
(“내 집은 하나님께 이 같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나와 영원한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다윗은 자기 자신이나 그가 세운 왕조가 하나님의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윗과 영원한 계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그 영원한 계약의 내용은 삼하7:12-16에 나옵니다. 다윗은 본래 하나님의 법궤에 어울리는 성전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막으시면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삼하7:12-16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 말씀은 단순히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겠다는 약속이거나 다윗의 왕조를 견고하게 세워주겠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 중에서 태어날 메시아를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하나님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단지 다윗 왕조를 영원히 지켜주시겠다는 말씀으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인생 말년이 되어서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세운 ‘영원한 계약’은 단지 다윗 왕조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그의 후손을 통해서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의 탄생에 대한 예언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통치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통치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돋는 해의 아침 빛 같은 분,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은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다윗의 씨를 통해 견고하게 세울 ‘그의 나라’는 유다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일을 완성할 메시아가 다윗의 가문을 통해 태어나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윗의 가문이 어떻게든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악한 자의 운명>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이 이루어가는 구원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는 사실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6-7절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버려질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7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살리리로다 하니라.”
여기에서 우리말 ‘사악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영어로 직역하면 ‘the sons of Belial’이 됩니다. 이것을 다른 곳에서는 ‘불량배’(삼상10:27)나 ‘잡배’(대하13:7)로 번역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냥 ‘벨리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고후6:15).
그러니까 ‘벨리알’은 단지 성품이 악하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 정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대적하는 세력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시는 일마다 사사건건 나서서 훼방하는 사단입니다.
그들은 ‘가시나무’에 비유합니다. 가시나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습니다. 그것들을 처리하려면 철과 창자루 같은 막대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짝에 쓸모가 없어서 불살라 버리고 맙니다(불은 심판의 상징).
하나님이 펼쳐가는 구원의 역사를 거스르고 대적하는 ‘사단’의 최후를 예언한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좋은 약은 바로 ‘철’ 몽둥이와 ‘창자루’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불에 의해 불살라질 운명입니다. 요한계시록이 그것을 증언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연합군은 결국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맙니다(계19:20). 이렇게 생각해보면 다윗의 예언이 참으로 놀랍도록 정확합니다. 물론 그것을 깨닫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말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자신이 하는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면서 말했을까요?
그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 다윗 자신도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단지 성령의 감동으로 받은 말씀을 그대로 선포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의 예언대로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그리고 공의롭고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적 이스라엘’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롬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고전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12:13, 갈3:28, 골3:11)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역사는 어느 날 우연히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속에서 차근차근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신 이후에 완성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구원의 역사를 깨닫고, 그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또 누군가에게 증언하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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