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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후쿠오카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지나가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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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는, 일설에는 스페인에 옛부터 번창한 카스텔라라고 하는 왕국의 빵으로서 나가사키의 사람들에 소개되었다고 말해지고 있습니다만, 당시의 카스테라는 현재의 카스테라와는 맛도 형태도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70연간이 장기에 걸치는 포르투갈 사람들 나가사키 거주 중(안)에서, 카스테라는 이윽고 그 유래가 되는 이름만을 남겨, 나가사키에서 독자적인 진화를 이루어 갔습니다.
이윽고 쇄국의 시대가 찾아와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유일, 해외에 열린 창이 되었습니다.백설탕이 환영받는 것을 안 외국인들은, 동남아시아로부터 서양 선박이나 토우센에 다량의 설탕을 쌓고 나가사키에 도래하게 됩니다.이렇게 하고, 에도기를 통해서, 나가사키는 일본안에서도 특히 과자 만들기가 활발히 행해져 여러가지 과자가 태어나 자라게 되었습니다. 에도시대에는, 에도에서도 카스테라가 생산되어 간 것은 사실입니다만, 스페인에서 전해진 카스테라를 본격적으로 만들어 바꾸어 지금의 맛을 완성시켜 간 것은, 설탕을 풍부하게 손에 넣을 수 있어 알과 설탕의 분량을 늘리면 싯트리로 한 구워지가 되는 것을 알고 있던 나가사키의 과자 상인들이었습니다. |
이국과의 교류를 타고 나고 카스테라가 태어난 나가사키의 땅은, 화의 에도시대를 거쳐 격동의 에도막부 말기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외국 문화가 흘러들어, 일본안의 뜻 있는 사람들의 동경의 땅으로서 번창하게 되었습니다.에도막부 말기의 지사·사카모토 류마가 케이오대 3학년 연(1867년)에 나가사키에서 조직 한 유명한 「해 원대」의 일지에는, 카스테라 사양의 항목이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
나가사키에 체재하고 있었을 무렵, 카스테라를 매우 좋아해, 매일 한 근(600g)를 빵과 같이 손으로 굳게 약속해 먹었다고 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파리 만박으로 향하는 프랑스선 중(안)에서 카스테라를 먹었다고 하는 시부사와 에이이치.
또, 오자키 고요, 히구치 한잎, 마사오카 시키, 나쓰메소세키, 무로 사이세이, 키타하라하쿠슈라고 한, 일본을 대표하는 문인들의 작품안에도, 카스테라는 등장합니다.나가사키의 명과로서 독자적인 진화를 이룬 카스테라는, 그 시대의 여러가지 장소에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달고 그윽한 일화가 지금도 전하고 있습니다.